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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언론인 최초로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수상한 김보라미 변호사를 만나 20년 가까운 공익 활동을 통해 느낀 한국 사회에 관해 묻고 들었습니다.


(중략) 선진국 시스템을 보면 학생도 기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언론인 보호는 정규직 언론인들만 보호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고, 그때 저를 인터뷰하러 왔던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제가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기자들이야말로 기자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더니 기자께서 자괴감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변호사님, 미디어오늘도 기자협회에 가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미디어오늘은요, 2015년에 안종필자유언론상 본상을 받은 훌륭한 언론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협회 소속사로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직원 수가 20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자를 보호하는 일에 관해서만은 언론인 스스로 겸양을 표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 보호에 관해서는 스스로 더 나서서 주장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요. 금기시되어야 하는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남용되고, 형사고소고발이 남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방송국이 알아서 위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20세기 냉전 시대에나 쓸 법한 표현을 정부가 쓰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정치권에 예속된 방통위와 방심위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언론인의 목을 옥죄고 있습니다.

언론인 스스로 본인을 지키기조차 힘든 이런 상황에서 작년은 언론인의 안전과 불처벌 이슈에 관한 UN 행동계획을 발표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여러 행사가 이뤄졌는데, 언론인의 안전 보장은 언론인이 스스로 지켜야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는 중요한 맥락이 그 행사들에는 있었습니다.

저는 이 상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하지만 언론계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함께 연대하자, 손 내미는 그런 의미로서 오늘 수상의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논문에서만 봤던 모습, 진실을 위해 그 진실을 몸으로 구현해주신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저도 앞으로 필요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더 열심히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보라미, 2023 안종필자유언론상 본상 대상 수상 소감 중에서. 2023년 10월 24일. 한국프레스센터.

안종필(1937년 5월 5일~1980년 2월 29일)은 동아일보 해직 기자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언론자유 투쟁에 앞장 섰던 언론인이다. 군사 정부 아래 투옥됐고, 10.26 사태로 무너진 유신체제의 균열로 가까스로 출감했지만, 투옥 중 얻는 병으로 숨졌다. 그의 사후 동료 언론인들은 언론인 안종필의 뜻을 기려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제정했다. 그게 1987년의 일이다.

권력과 싸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흔히 ‘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비판하며 권력에 맞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권력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훈계하거나, 권력과 한몸이 되어 권력 그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특권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저 자기 일을 하는 기자들,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에 맞서 그저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는 많다. 많다고 생각한다.

올해 안종필자유언론상 수상자는 그런 기자들 속에서 나오진 않았다. 최초로 ‘비언론인’으로서 본상 대상을 받는 이는 김보라미(변호사)다. 김보라미에게 그 ‘비언론인 최초 수상’의 의미와 함께 그가 직접 체험한 우리 사회의 민낯에 관해 물었다.

고 안종필 기자. 1937년 5월 5일~1980년 2월 29일.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수상하기 위해 단상으로 걸어가는 김보라미(변호사). 2023년 10월 24일. 사진은 민노씨.

민노: 우선 최근 대리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에 관한 여권법 위반 사건이 있었습니다. 장진영 작가는 여행금지국가를 외교부 장관 허가 없이 방문해 여권법을 위반해 벌금 5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았는데요.

김보라미: 장진영 작가 사건을 맡기 전에는 몰랐어요.

민노: 몰랐다?

샘물교회 사건(2007) 이후 외교부 허가제, 분쟁지역 취재 네트워크 소실


김보라미: 언론인들이 여권법 문제로 분쟁지역에 사실상 가지 못한다는 걸 몰랐어요.

민노: 아예 못가나요? 저도 몰랐습니다.

김보라미: 그러니까! 그게 이상했어요. 인류 역사에 분쟁이 없는 시기는 없었잖아요.

민노: 그렇죠.

김보라미: 이라크 전쟁 이후로 제한이 생긴 거예요. 샘물교회 사건(2007) 때.

  • 2007년 7월 1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소재한 분당샘물교회 교인들이 무슬림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으로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 입국을 강행했다.
  • 현지 이슬람 근본주의 과격단체 탈레반은 이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 정부는 이들을 생환시키기 위해 많은 인력과 세금을 투입했다.
  • 결국 피랍된 23명(현지 인솔자 3명 포함) 중 목사를 포함해 2명이 사망했다.
피살된 2명, 먼저 석방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9명 샘물교회 피랍 인질 석방 모습. 국정원 제공.
피살된 2명, 먼저 석방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9명 샘물교회 피랍 인질 석방 모습. 국정원 제공.

민노: 아, 기억나요.

김보라미: 외교부가 분쟁 지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정하면 허가를 받지 않고선 못 가는데, 그 허가 사유가 굉장히 제한적이죠. 분쟁지역에 대한 여행을 허가제로 했는데, 만약 무슨 사고가 생기면 공무원도 책임을 져야 하니까 부담스러워서 허가조건이 엄격했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3주간은 허가 자체가 안 나와서 아무도 못 갔어요. 우리가 가지 못하는 사이에 BBC, CNN 같은 곳에선 100명 이상의 기자단을 보내서 보도하고요. 우리는 그냥 받아쓰기 한 거죠.

민노: 샘물교회 사건 이후로 그렇게 된 거군요.

김보라미: 샘물교회 사건이 벌써 16년 전이잖아요. 그래서 아는 기자에게 여쭤봤어요. 기자 말씀이 분쟁 지역에는 아무래도 위험하고 기자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서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데, 허가 자체도 쉽지 않아 못 가게 되니 더 안 가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분쟁지역 취재 네트워크가 다 끊겼다는 거예요. 분쟁지역 취재도 전문 영역이라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중요하거든요.

민노: 네트워크가 끊겼다… 그렇게 됐군요.

외교부가 분쟁지역 취재 데스킹하는 나라


김보라미: 장진영 작가 사건을 하면서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검찰이 정말 기소를 할까 했는데 기소까지 하고 벌금이 나온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기소하고, 벌금형이 나온 거죠. 분쟁 지역에 직접 목숨을 걸고 찾아가 현장을 직접 담아내는 종군기자들은, 공공의 차원에서는 우리가 칭찬해줘야 하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상을 주고, 보호해줘야 할 사람인데, 기소를 하고 벌금을 물린다는 게… 이건 말이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2월 24일 발발했고, 외교부는 전쟁 초기부터 약 3주가량 어떤 언론사도 우크라이나 취재허가를 안 내줬어요. 여행을 아예 금지했죠. 그런데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직후 막 회복하려던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전쟁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큰 전쟁이라 취재를 안 할 수 없는 전쟁이었죠. 전쟁초기 CNN은 75명을 파견하고, 영국 언론사들도 한 50명 정도씩 가는 상황이었는데도 우리나라는 아예 초반에 현장에서 취재자체를 못한 거죠. 취재허가를 3월 18일까지 전면 불허했어요. 그리고 3월 18일쯤이 되니까 이건 정말 안 갈 수 없으니까 외교부는 그제서야 허가조건을 제시하고 안내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방문 기간 3일짜리 허가를 내준거에요. 이건 뭐 취재하지 말라라는 소리죠. 3일면 그냥 우크라이나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야 하는 그런 수준이죠.

민노: 정말 너무 촉박한 기간이네요.

김보라미: 거기에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에요. 여러 언론사가 많이 겹치면 못 가요. 돌아가면서 3일씩 갔던 거에요 너무 많이 한번에 가면 위험하다고 해서. 이게 무슨 취재가 되었겠어요.

민노: 외교부가 아주 디테일하게 통제하네요.

김보라미: 외교부가 취재할 수 있는 기간, 취재할 수 있는 장소, 누구누구가 갈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허가하는 방식이는 이는 언론사에서 데스킹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허가를 받을 때 “취재계획서”까지 요구하는데 이건 언론사 내부 데스킹과 유사하게 취재내용에 참견하고 관여하고 있는 거죠. 그때 KBS 유원중 기자가 외교부 허가받아 2박3일 취재갔다와서 자괴감으로 쓴 리포트가 있어요. 자신은 분쟁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다녀왔지만, 결국은 ‘여행’을 하고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유원중 기자의 고백이었어요. 왜냐면 안전한 곳에서 3일 만에 다시 돌아왔어야 했으니까요.

분쟁지역을 취재한 종군기자의 보람이 아니라 2박3일 ‘우크라이나 여행’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을 토로한 유원중 기자의 기사. KBS 기사 갈무리.

민노: 유원중 기자의 자괴감이 십분 공감되네요…

김보라미: 그래서 허가기간이 조금 늘어서 지금은 2주 가요.

민노: 2주요?

김보라미: 2주도 취재하러 간다고 말할 수 없죠.

민노: 그래도 2주면 긴 시간 같기도 한데요?

김보라미: 아니에요. 2주도 이건 취재를 한다고 할 수 없고요. 그것도 우크라이나의 전면적인 분쟁지역을 취재하러 가야 하는데 여전히 우크라니아의 위험지역은 허가가 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민노: 외교부로선 자국민 보호의 가치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기자 입장에서는 취재권) 크게 이 두 가치 중에서 자국민 생명권 보호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기는 하네요. 적어도 그런 명분이겠죠?

김보라미: 언론인에 대한 제한된 허가절차는 자국민 생명권 보호보다는 공무원으로서 문제될 요소는 최대한 줄여보려는 거겠죠.

민노: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위험부담을 지기 싫다?

김보라미: 종군 기자들의 죽음은 물론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분쟁지역에는 기자를 보내지 말자, 그런 여론은 어디에서도 없잖아요. 그런 나라 어디 있어요?

민노: 지난달에 이상헌 박사께서 말씀하시길,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그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는데, 그 말씀이 연상되네요.

이상헌: 그러니까 벤치마크 대상이 되는 정도 나라는 이미 내부에서 국제적인 어젠다, 의식이 강해요. 자신이 어느 정도 기준이 되는 나라니까 국제간 기준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굉장히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해요. 유럽 국가들이 상당수가 그렇고요. 그런데 한국은 벤치마킹을 당하는데, 아직 국제적인 이슈에 관해서 개입하거나 나서거나 설득하는 단계는 아니에요.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슬로우뉴스, 제네바 오전 8시: ‘한국을 벤치마킹한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김보라미: 방송계의 퓰리처 상을 받은 고 브렌트 르노(Brent Renaud. 1971년 10월 13일~2022년 3월 13일)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도 우크라이나 취재하다 유명을 달리하셨어요.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전쟁지역 취재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어디에서도 없어요. 

2022년 3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중 러시아군 총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미국 독립 저널리스트 브렌트 르노. 향년 51세. 사진은 브렌트 르노 제공.

군대에서 주는 정보만으로, 정부에서 주는 정보만으로 보도할 수 없죠. 시리아 분쟁을 취재하다가 살해된 고 마리 콜빈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미법원은 용감하게 인도주의적 위기를 보도한 것에 대해 그 의미를 짚어 주기도 했었어요. 우크라이나를 취재한 장진영(사진작가) 역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사람인데, 그런데 그런 사람을 기소한다는 게 저로선 너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국경없는 기자회 역시도 이 사건에 대해 “한국 당국은 목숨을 걸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자들을 기소하기보다 감사해야 한다”고 성명을 내기도 했죠.

인도주의적 위기를 직접 보고, 사진을 찍어서 보도했던 것은, 인류에게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를 충실하게 알리는 귀한 작업인데… 우리는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기껏 나가서 그런 의미 있는 작업을 했는데, 외교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하다니…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현재 외교부의 허가는 사실상 데스킹으로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허가”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하며 형사소송과 위헌법률심판제청중입니다. 

민노: 1심인가요?

김보라미: 네. 명백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쟁지역을 취재한 언론인이 그 일로 인해서 기소가 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버가 상업 목적으로 분쟁지역에 간다면?


민노: 질문이 하나 생각났는데요. 가령 유튜브 등에 ‘자극적인 영상’ 올릴 목적, 그러니까 상업적인 목적으로 분쟁 지역에 가는 것, 저널리즘의 목적으로 분쟁 지역에 가는 것. 이 둘은 쉽게 구별이 될까요? 굳이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외교부 입장에서도 그렇고, 만약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분쟁지역에 가는 국민(유튜버)이 있다면… 그 분들도 자기는 저널리즘 목적으로 간 거라고 주장할 것 같아서 말이죠. 만약에 저널리즘의 목적으로 분쟁지역에 간 프리랜서 기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말이죠.

김보라미: 가령 의용군으로 참여해서 본인 ‘화보’를 찍은 거라면, 쉽게 구별이 될 것 같고요. 저널리즘적 방법에 의한 취재가 아니니깐요. 다만, 그 부분은 언론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여러가지 매커니즘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죠. 적어도 기자협회가 프리랜서 언론인들에 대한 길을 터줄 수 있겠지만, 아직 기자협회에서는 완고하게 프리랜서 언론인들은 회원으로 받지 않고 있습니다. 

민노: 그래서 수상소감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죠.

김보라미: 네, 그죠. 종군기자들 중에는 프리랜서 기자들이 많거든요. 브렌트 르노 감독도 타임지 소속 기자가 아니라 독립 저널리스트인데 타임과 협업한 거죠.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를 지원할 수 있는 장치들이 확대되거나 명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민노: 그럼 법리적으로는 기자의 취재 행위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라서 위법성을 조각(제거)해야 한다, 이런 관점인가요?

김보라미: 아니요. 기자들의 행위는 허가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노: 아, 허가 대상이 아니다!

연출된 사진입니다.

김보라미: 지금 허가 대상이 되니까 조건이 막 들어가잖아요. 계속 말씀드리는 것처럼 외교부가 데스킹하는 거거든요. 몇 명 갈 수 있다. MBC는 몇 명, KBS는 몇 명, SBS는 몇 명… 어느 지역은 갈 수 있고, 어느 지역은 갈 수 없다. 이게 데스킹이잖아요. 뭘 촬영할지 어떻게 보도할지도 다 사전에 미리 외교부에 제출해야 해요.

민노: 외교부가 데스킹한다는 표현은 아주 인상적이고, 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와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적절한 비유인데요. 아까도 잠깐 말했지만, 외교부를 선의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우선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적인 제도를 적용함에 있어서, 그 행위의 의미를 고려함이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그 규정에 위반하면 무조건 고발해야 할 공적 의무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요?

김보라미: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도의 취지를 취재를 허용하는 규정의 취지로 해당 제도를 해석한다면 외교부는 특히 전쟁 발발 초기에는 약 3주 동안이나 아예 우크라이나에 못 가게 막아버렸잖아요. 10년 넘게 허가제를 유지하면서 예외 없이 전부 고발하는 행태를 취했다면, 그 제도는 오히려 종군기자 시스템을 궤멸하는 수단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심지어 전쟁 발발 3주만에 허가하면서 3일 동안 취재하라는 건 저널리즘에 관해서는 고민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의미에서 인상 깊었어요. 

분쟁 지역 출국 ‘허가’? 우리나라뿐이에요


민노: 장진영 님은 재판 과정에서 어떤 입장 발표나 소감, 이런 언급이 있었나요?

김보라미: 장진영 작가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인들의 연대와 지지하에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저희가 기자회견문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온라인 상에서 지지와 연대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기자는 우리나라 영사관 앞에서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우리가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미디어디펜스에서는 재정적으로 재판을 지원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와서 500만 원 정도 펀딩해주셨습니다. 국제기자연맹(IFJ)도, 국제언론인협회(IPI)도,  국경없는기자회도 한국정부에 항의 성명을 발표해주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기자의 항의 시위를 통해 정의와 상식을 지향하는 언론인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야말로 언론인들이 점점 어려워지는 언론환경속에서 힘을 내 보도하고 노력하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기자협회뿐만 아니라 총 19개의 시민사회 단체가 연대 의사를 표명해 주었습니다. 장진영 사진작가 역시 본인 한명의 무죄가 아니라, 해당 조항의 문제점이 법개정으로 발전되어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시더라고요.

민노: 정말 그러네요.

김보라미: 유럽평의회의 경우 분쟁 및 침략 상황에서의 저널리즘 원칙에 관한 권고안을 냈어요. 2022년 3월 7일이죠. 언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언론인의 권리를 제한해선 안 된다. 국경 간 이동과 분쟁 지역 접근을 포함해서 언론인에게 이동의 자유와 정보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비자, 서류 발급, 전문장비 반출 등도 이동의 자유에 포함되죠. 

민노: 그만큼 저널리즘 활동의 특성과 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한다는 의미겠네요.

김보라미: 그만큼 저널리즘 보호의 실천이 어렵거나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번 강조한다고 봐야겠죠. 

민노: 하지만 유럽평의회 ‘권고’ 는, 법적인 효과, 효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보라미: ‘권고’가 법이 아니니 안 지켜도 된다고 보는 건, 형식적인 법적용으로만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국제사회의 룰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구성될 수 밖에 없어요. UN 표현의자유 특별보호관이 권고를 내면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부담’을 느끼죠. UN이나 유럽평의회와 같은 국제기구가 주권국에 대해 어떤 법적 집행력을 가지고 ‘야, 대한민국, 니네 사실적시 명예훼손 페지해!’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존중해야 하는 국제법과 룰을 만들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유럽평의회의 권고는 없는 것과 같다고 해석할 수는 없겠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자가 국가 허가를 받지 않고 분쟁 지역에 갔다고, 그 기자를 기소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OECD 국가 중에 그런 법률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관심 커서 개선되는 제도 별로 없어요…단, 기자 스스로 관심 없는 건 문제


김보라미: 크지 않죠. (민노: 대리인으로서 아쉽겠어요…) 저는 그런데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여기에 쏟아지는 관심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제도들을 좀 개선하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사실 관심이 커서 없어지는 제도는 사실 별로 없어요. 물론 관심을 가져주면 큰 도움이 되지만.

민노: 제도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우선은 중요하다?

김보라미: 그렇죠. 그런데 정말 제가 문제로 생각하는 건, 기자들이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거죠. 10년 넘게 이런 ‘사전 허가제'(검열)가 유지돼 오고 있는데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어떤 기자는 ‘그럼 보호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주장을 하는 기자들도 있고요.

민노: 우리나라에선 이-팔 전쟁 유아 살해 미확인 보도처럼 전쟁의 비극마저 ‘클릭 저널리즘’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많고, 또 작은 언론사는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이런 클릭 저널리즘 현실에서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전쟁을 취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김보라미: 그렇죠. 그럼에도 현장 취재는 기본이 되어야 하는 원칙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모든 기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다만 선진국에서는 분쟁 지역을 직접 취재하는 종군기자를 존경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청와대 출입하고, 소위 힘 있는 분들과 친분 있고, 법조기자 이런 사람들이 잘 나가는 기자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저널리즘 정신에 맞는 취재 활동을 하는 기자들이 더 칭찬받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게 필요할 텐데, 장진영 사건은 그런 취지로 생각하면 의미가 큰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기자가 관심 가질 필요는 없지만, 공영언론은 다르죠


민노: 장진영 작가 사건은 가장 바람직한 전개 과정은 어떤 건가요.

김보라미: 개인에게는 무죄가 나오면 베스트죠. 외교부는 스스로 좀 조심하게 되는 기회가 되면 좋겠고요.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법률이 바뀌어야 할텐데, 국회가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일까?

민노: 마이너한 이슈겠죠, 국회의원들 입장에선.

김보라미: 마이너한 이슈겠죠. 그래서 이건 기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기자들 스스로 답답해요, 풀어주세요, 이래야 하는 이슈라고 생각해요.

민노: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이 외국 분쟁 지역, 국제적 분쟁 지역에 관한 관심이 크렇게 크지 않을 것 같기는 해요.

김보라미: 많은 기자들이 꼭 그런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다만, 공영방송은 가져야죠.

민노: 그러게요. KBS나 MBC, 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정도는 직접 기자를 파견하고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져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김보라미: 분쟁 지역에 간다는 것 자체가 돈이 들는 일이라서 작은 언론사는 쉽지 않겠죠. 그렇다면 기자협회 같은 곳이 보호 시스템을 지원해 줄 수 있고, 사실 이런 걸 기자들이 요구해야죠. 왜냐하면 언론인들의 회비로 유지되는 협회니까요. 그런데 애초에 그런 요구가 있었느냐면, 그런 요구도 없었다는 거죠. 요청도 없는데 자진해서 그런 제도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걸 좀 고민해 볼 시점이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 기대하는 국제적인 관심에 부응하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그런 행동을 해야죠. 분쟁지역 보도도 그 중 하나로 생각하고요. 그래서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일반 국민들보다 기자 스스로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헌법재판과 형사사건 동시 진행 중


민노: 장진영 작가 사건을 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보라미: 제가 언론연대 정책위원회 위원을 꽤 오래 했거든요. 그 인연으로 만났는데, 처음에는 형사사건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민노: 현재 형사사건과 헌법소송을 둘 다 진행 중이시죠?

김보라미: 네, 원래 저는 제도 개선과 관련한 파트만 돕겠다고 했는데, 여러 곳을 수소문했지만 형사소송을 맡아줄 변호사가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러면 형사사건까지 그냥 맡기로 한 거죠.

민노: 큰 결심을 하셨네요. 아무래도 형사사건은 많이 힘들죠?

김보라미: 그렇죠. 시간도 많이 걸리고, 형사 사건은 위헌 여부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법리들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까…

민노: 망중립성 포럼,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에서는 저도 보라미 님과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그동안 꾸준하고 다양하게 공익적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김보라미: 변호사 경력이 거의 20년이 되어 가지 않습니까? (웃음) 그런에 변호사 처음 할 때부터 시간이 되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은 꾸준히 해야지,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의무감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장진영 작가 사건 같은 것을 하면 보람도 크고요. 

민노: 로펌 소속으로 좀 눈치 보이지 않나요?

김보라미: 고용 변호사는 아니니까요. 

민노: 공익적 활동은 본업에 도움이 되나요, 방해가 되나요, 아니면 별개인가요.

김보라미: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하고 있는 사건들과 연계될 수 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무 자르듯 말할 수 없는 게 변호사업이라는 게… 사실 법리는 연결되어 있잖아요. (민노: 그렇죠.) 그래서 장진영 작가 사건도 하면서 배우는 게 많죠. 사건을 하면서 매번 배우는 게 있고, 또 무엇보다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품과 삶의 태도들에서 많이 배우죠.

법리를 떠나서 소송이라는 건 공익사건이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서 옳은 게 무엇인지를 판단받는 거잖아요. 물론 그렇게 절차적으로 긴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것은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인 경우가 대다수라서 그 소송과정 자체에서 사람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또 아직 사회에서 모호했던 부분들을 정리해주는 역할도 분명히 하고 있어서 저는 공익 사건이나 아니거나 모두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민주당과 국민의힘… 공통점


민노: 문재인 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했고, 윤석열 정부는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장악 기술자’로 불렸던 사람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퇴행적인 인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튼 두 정권은 성격은 달리하지만, 권력은 언론을 규제하고, 내 입맛에 맞게 길들여야겠다는 같은 속성을 지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하는데요.

윤석열(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장악 기술자’로 불렸던 이동관(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2023년 8월 25일. 대통령실.

김보라미: 목표는 비슷하지만 그 절차라든가, 시민사회와 토론이 가능한가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죠. 

민노: 각각에 관해서 공통점과 차이에 관해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보라미: 아시겠습니다만, 민주당은 국민의힘 처럼 자신감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그래도 절차라는 걸 지켜가면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의견도 수렴하고. 아무튼 민주당도 가짜뉴스 관련해서는 정권 초반에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니까 못했죠. 할 수가 없었죠.

민노: 비판 의견이 꽤 있었죠.

민주당과 국민의힘… 차이점 ‘무식한 방법으로’


김보라미: UN표현의자유 특별보호관이 2022년 보고서에서 한국 상황을 언급하고 있어요.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법개정시도”로 평가하고, 언로닝ㄴ과 언론매체에 대한 민사명예훼손 소송에서 청구되는 손해를 제한하라고 권고까지 했어요. 그런 여론이나 논리가 말이 되니까 어쨌든 민주당은 받아들인 거죠. 무척 억울해하면서도 받아들였어요. 저는 그게 큰 차이인 것 같아요.

민노: 그게 큰 차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김보라미: 지금 국민의힘은 자신감도 없고, 의견 수렴 절차라는 게 없어요. 해서는 안되는 금기에 대해서도 뭐든 시행령이든 규칙이든 이런 걸로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합의제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독임제로 운영하고 있기까지 하잖아요? 그러니까 법률 문헌을 합헌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형식적 문언에만 부합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법률이나 시행령이나 규칙으로… 무리한 확장 해석도 다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밀어 부치는데, 이건 사회적 공감이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싸울 때 논리가 없는 자들이, 목소리만 크고 욕설을 내뱉지만 내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현재 국민의 힘은 여론의 지지도, 국회에서의 법률도 생산해 내지 못하니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행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류희림(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2023년 11월 22일. 방심위 제공.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얼마나 후진 프로세스인가…


김보라미: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취임하고 나서 9월 말에서 10월 내내 보도자료가 4번인가 나왔어요. 그런데 최종안(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 출범)이 추석 전날(9월 27일) 나온 거 아세요? 추석 전날 뭐하는 건지 모르겠고, 여론 수렴은 누구랑 하는지 모르겠고, 포털 입장에서는 시키니까 할 수밖에 없잖아요.

민노: 알아서 눈치 보고 있는 거죠, 지금.

김보라미: 허위정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서 만들어야 하는 건데, 그런 사회적 합의를 건너 뛰고, 위에서 시키는대로 진행한다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후진 프로세스인가… 그게 약간 충격이었어요. 추석 전날 방통위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급하게 보도자료 낸 건 너무 충격이면서, 허탈한 느낌이었어요. 

추석엔 좀 쉽게 해줍시다, 좀!

민노: 우리나라는 디지털 인프라가 굉장히 강력한 안정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포털로 상징되는 국내 빅테크가 권력의 입김에는 이렇게 취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권력의 칼날이 어느 방향에서 날라오느냐에 따라 적극적으로 영향받을 수 있으니까요.

김보라미: 디지털 회사의 경우에 유통되는 기사 컨텐츠는 자신들이 직접 생산해 낸 표현물이 아니니,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법적 리스크는 디지털회사들이 받고 싶어 하지 않죠. UN에서 반복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그런 맥락을 고려해서 디지털 회사가 가짜뉴스 여부에 관해 직접 결정할 권한을 주지 말라는 거예요.

민노: 우리나라 네이버나 카카오는 UN 권고를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요?

김보라미: 좋아할 것 같지만, 국내 규제 환경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민노: 사실 민간 기업에 법원의 권한을 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김보라미: 그런데 이번 이동관 방통위가 발표한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는, 민간기업에 법원의 권한을 준 것이 아니라, 행정기구가 정한 대로 민간기업의 목을 잡고 끌고 가는 거예요.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처음 받은 ‘비언론인’


민노: 이 질문은 가장 먼저 드렸어야 하는 질문인데요. 비언론인 출신으로 안종필상을 처음 받았습니다. 그 의미를 자평한다면요.

김보라미: 수상식날에도 얘기했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주시는 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언론인 스스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이 진화하면서 오히려 더 언론 환경이 악화하고,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출현으로 토대를 구성하는 기술 자체가 변화하는 와중에  표현의 자유는 점점 더 악화하고, 그래서 언론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런 새로운 환경을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로 주신 것으로 생각해요.

민노: 개인적으로 기쁘셨나요? 어땠나요?

김보라미: 우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별로 한 일이 많지 않은데 주신다고 하니까 미안했죠. 통아투위와 조선투위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고, MB 정부 때 언론 환경이 한번 뒤집혔잖아요. 전부 해직되고, 그랬는데… 어쨌든 윤석열 정부에서 또 MB 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일들이 또 생기고 있으니까 굉장히 마음이 안 좋죠.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하기에는 우리 시대가 왜 이렇게 퇴행하고 있을까 되게 슬픈 느낌도 들고요. 그거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고…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수상는 김보라미(변호사). 2023년 10월 24일. 사진 민노씨.

흑인을 차별하는 인공지능


민노: 인공지능이 서비스 형태로 본격적으로 대중화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술의 진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과 상업적으로 도구화한는 것, 이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있잖아요. 굳이 어느 방향이 더 위험하다고 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잘 대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의 흐름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세요?

김보라미: 두 개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령 예를 들면요. AI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 중에서 오늘날 얼굴 인식 프로그램 같은 경우, 얼굴 인식 프로그램은 정부 혼자 발전시킨 게 아니라 사기업이 관련 데이터, 기술을 발전시켜왔어요, 그런데 그런 데이터와 기술을 공공기관이 또 이용하죠. 미국의 경우 경찰과 같은 공공영역에서 그런 솔루션을 사들여요. 공공과 민간이 서로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위수탁관계, 또는 협업관계 등으로 위험성은 더 넓어지고 강화되죠.  

민노: 말씀을 들으니 오바마 이후 ‘클라우드 퍼스트’ 정책의 연장에서 제다이 프로젝트를 거쳐 JWCC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전투원 클라우드 역량 강화 프로젝트가 떠오르네요. 거대 빅테크들이 경쟁한 국방부 프로젝트죠.

미 국방부는 단일 벤더가 모든 계약을 독식하는 기존 ‘제다이 프로젝트’를 철회하고, 멀티 클라우드 벤더를 활용하는 ‘JWCC’(합동 전투원 클라우드 역량) 프로젝트를 출범해 2022년 12월 7일 아마존, 구글, MS, 오라클 4개 빅테크와 총 90억 달러(한화 약 11조 9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지는 미 국방부 제공.

김보라미: 안면인식 AI 오류로 엉뚱한 사람, 특히 흑인을 잡아간 일이 있었잖아요. 특히 이런 기술이 인종적인 편향, 기술 차별을 보인다는 점이에요. 흑인계와 아시아계에 관한 오류 비율이 백인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이건 안면인식기술 초기부터 나타났던 오류에요. 초기 기술개발과정에서 여성이 카메라에 잡히면 동물로 인식되곤 했었죠. 

진범이 경찰에게 제시한 가짜면허증 속 사진(왼쪽). 미국 경찰 안면인식 인공지능(AI) 오류 때문에 절도범으로 몰린 시민 니지어 파크스 씨(오른쪽). 각각 메일온라인 캡처·파크스 변호사 제공. “미 국립표준기술원(NIST)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제품을 포함해 189개 안면인식 AI를 분석한 결과, 흑인 및 아시아계에 대한 오류 비율이 백인보다 10∼100배 높았다.”(내용 발췌’동아일보‘)

민노: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부 서비스와 결합하는 인공지능…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김보라미: 오늘날 시대는 민간의 AI 기술과 정부의 서비스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예단하기는 쉽지 않아요. 참고로 미국은 오늘인가(인터뷰 당시 10월 31일 화요일) 어젠가 AI에 관한 행정명령이 나왔죠.

민노: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 관한 유토피아적 시선도 여전히 존재하고, 또 비관론이나 디스토피아적 시선도 존재하는데요. 어느 쪽이세요?

김보라미: 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좋은 역할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는데, 안 좋은 일들이 더 눈에 확 띄는 거 같아요. 그런 뉴스들이 더 쇼킹하고, 충격적이잖아요. 선정적이고요. 기술에 관한 부작용이 세상에 전해지는 방식은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민노: 의외네요?

김보라미: 인류가 디지털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살 수 있는 상태는 이미 지나갔고, 그렇다면 부작용과 위험을 조율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노: 저는 테크놀로지 자체는 철학도 노선도 정치도 없지만, 그걸 이용하는 정치와 기업이… 기업으로선 이게 나에게 돈이 돼, 안 돼라는 기준으로 그 테크놀로지를 바라볼 거고, 정치 권력은 그 테크놀로지를 내 권력에 도움이 돼, 안 돼로 바라볼 거라서 그 두 개의 힘이 서로 충돌하거나 담합하면서 패러다임 쉬프트가 발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은 최선의 전략, 하지만 인권은 비인기종목


김보라미: 그렇기 때문에 기준을 만드는 게 상당히 중요하고, 그게 원칙에 입각한 규제인데, 오늘날 인권은 그 원칙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인권에 기반한 규제와 접근을 해야겠죠. 

민노: 좀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권이 최선의 전략이 되려면, 정치권력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화된 시민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인권은 일종의 ‘비인기종목’이라는 거죠.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보라미: 그럴 수 있어요. 왜냐하며 인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혜택받아야 하고, 그것을 주장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민노: 맞아요. 대개 가장 힘 없는 사람들이죠.

김보라미: 인권은 그런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고안된 어떤 법적 장치 같은 거죠. 투명인간 같은 힘 없는 시민이 역할할 수 있도록 어떤 사회적 가치와 시스템을 조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해서 인권이 실질화되냐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겠죠.

민노: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헌법적인 기본권, 인권에 가까운 개념으로서 어떤 헌법적 권리를 의식하기보다는 정말 눈앞에 있는 어떤 법률, 좀 더 특별한 어떤 법에 규정된 권한에 더 민감하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AI에 관한 최초의 행정명령을 언급하신 것처럼, AI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인권 가이드가 필요하잖아요?

김보라미: 가이드는 필요하지만, 가이드를 만드는 구체적인 원리는 인권으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겠죠. 그렇게 접근하지 않으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기술마다 차별적인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술이 계속 바뀌니 계속 차별적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할 거에요. 그래서 기준과 원칙은 인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나냐는 접근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이걸 기술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비관론과 낙관론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보자는 식의 접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합니다. 

민노: 저는 되게 공감하면서도, 지금 정부 쪽에서 움직이는 법제들을 보면요. 규제에 관한 법이 1개라면 진흥에 관한 법이 20개 30개 정도 잖아요.

김보라미: 진흥법은… (웃음) 20개, 30개 아니라 더 많죠. (웃음) 진흥법은 정말 법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슨 위원회나 기구를 만들려고 만드는 법인 것 같아요. 그래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안종필, 나에게 상을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민노: 고(故) 김세은 교수 논문을 저에게도 추천하셨잖아요. 저도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서른다섯 나이에 방송국을 쫓겨나서 이리 저리 떠돈 지 35년. 어느 직장을 가도 스스로 ‘문간방 나그네’로 생각하고 지냈으니 이룬 업적도 없고 가진 재물도 없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현실의 길을 버리고 역사의 길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나의 보람으로 충분하다. -K

나는 아직도 그 동아일보에 돌아가고 싶다. 단 하루라도 편집국 한켠 내가 있었던 자리에 가서 앉아보고 싶다. (···)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어 3등 신문, 찌라시 신문으로 불리는 그 신문 제작의 현장에 서서 왜 그 신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지금의 동아일보 사람들과 얘기해보고 싶다.  -E

김세은, [특별연재] 동아투위 위원들의 생애를 연구하다. 미디어오늘: 2013. (논문을 김세은 교수가 직접 발췌 요약)

김보라미: 김세은 교수 논문을 울면서 읽었어요. 시상식에 갔는데 욱하더라구요… 나에게 상을 주는 분들(동아투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냥 궁금해서 검색했는데 위키백과에 있는 내용은 너무 짧았어요. 그래서 좀 긴 글을 읽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찾아봤는데 김세은 교수 논문만 2개 정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운 받아서 읽어봤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왜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걸까요?

고 김세은 교수. 사진은 한국언론학회.

민노: 그러게요. 웬만하면 사과를 안하죠, 우리나라 언론은.

김보라미: 역사적인 사건의 피해자들을 이렇게 그냥 방치하는 구나. 오히려 큰 사건의 피해자들은 이렇게 방치되는구나라는 게 너무 슬펐고, 또 그 분들이 그래도 한겨레도 만들고, 또 이렇게 상도 만들어서 후배들도 격려하고 하는 게 참 부럽더라고요. 언론계에는 멋있는 분들이 있구나, 좀 부럽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또 어쩌면 우리 언론법이나 언론학이 이런 운동과 내용으로 시작해야, 현재의 왜곡된 언론환경에 대한 시작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래야 개선점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민노: 동아투위로 DBpia에서 논문을 검색하면, 정말 딱 두 개뿐이네요…. 2010년, 2012년. 김세은 교수께서 쓰신 [해직 언론인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 연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2012)와 [해직 그리고 그 이후…: 해직 언론인의 삶과 직업을 통해 본 한국 현대언론사의 재구성] (2010) 이 두 논문뿐이네요.

김보라미: 그죠? 이거 참 그렇죠? 

민노: ‘해직 언론인’으로 검색해도 김세은 교수의 [‘신’해직 언론인의 ‘압축적’ 생애사를 통해 본 한국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 YTN와 MBC 사례를 중심으로] (2017)을 제외하고는 본격 연구서라고 할 만한 논문은 거의 없네요… 이렇게까지 해직언론인에 관한 관심이 없다시피한 게 불가사의할 지경인데요…

김보라미: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 기자들은 자기 문제에 관해 그렇게 관심이 없나? 기자들도 박사 많이 했다는데… 그래서 울컥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동아투위로 엄혹한 시절에 고생했던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고초를 겪고, 청춘을 날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이런 상을 만들어서 후배를 격려하고, 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언론의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성명도 발표했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연구하는 사람이 김세은 교수밖에 없었나?

민노: 그러게요…

김보라미: 그리고 또 동아투위, 조선투위가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는, 김영삼, 김대중 시절만 해도 해결할 수 있었잖아요? 기회가 있었는데… 김영삼, 김대중조차도 동아투위, 조선투위와 교류를 계속했다는 거예요.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인이었을 때요. 그런데 막상 정권을 잡으니 거대 언론의 지지가 없으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동아투위, 조선투위 이슈가 쉽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김세은 교수 논문을 읽어보니까. 마음이 참 아팠고,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신 분들도 너무 많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이런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그것이 MB 시절을 겪고,지금 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걸 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답답함, 이런 역사는 너무 중요한 가치와 맥락을 가지는데, 선진국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의미있는 역사가 연구조차 되지 않는 분야구나…. 그 역사를 온몸으로 실천해주신 분들이 주신 상이니 너무 영광스럽고, 또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변희수 하사의 기억


민노: 변희수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지면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장례식 이야기를 길게 해주셨는데요. 이런 기억의 의미는 어때요? 이런 기억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그런 힘을 주는 기억인가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도 잘 이렇게 정리는 안 되지만…

고 변희수 하사. 1998년 6월 11일~2021년 3월 3일.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 위키미디어.

김보라미: 그건 저보다 민노씨가 더 많이 경험해서 알고 있지 않나요?

민노: 글쎄요. 제가 취재하고 싶은 사람은 굳이 나누면 두 부류죠. 반짝반짝 세상을 빛나게 해주는 멋있는 일을 하는 분, 김보라미 님도 그런 분이고요. 그리고 한편에서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리 소리를 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분들… 뭐 저랑 별 차이 없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김보라미: 그런 분들을 취재하면서 사명감을 느끼는 거 아니에요? 민노씨도.

민노: 하고 싶기는 한데, 역량도 안 되고, 여유도 좀 없는 편이고요. 실은 목소리를 잃은 분들보다는 반짝반짝에 가까운 분들을 더 많이 만나는 편이죠.

김보라미: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웃음)

민노: 저도 그게 좀 불만이에요, 스스로…

김보라미: 사실 막 소외된 사람들 만나기도 쉽지 않죠.

민노: 조심스러운 거죠. 이분들이 착하다는 보장도 없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저도 그렇고요…

임태훈 소장, 참 재밌는 분!


김보라미: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임태훈 소장, 참 재밌는 분이세요. YTN 시청자위원회에서 만난 인연이 이어졌는데, 정말 군 피해자 이런 사람들에 관해서는 정말 물불 안 가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우리나라에서 정말 활동가로 말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노: 열정적인 투사형이시네요?

김보라미: 투사이긴 한데, 요즘은 거의 못 보는 활동가죠. 제가 20년 가까이 변호사하면서 만난 여러 활동가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분 같아요. 임태훈 소장이 아무래도 하는 일이 죽음과 가까운 일을 하잖아요. 이예람 중사 때도 너무 고생했고, 그래서 인간이 그런 경험을 하면 트라우마가 쌓일 수밖에 없는데, 정말 곁에서 보면, 나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온몸을 다 던져서 운동하는 친구…

YTN 시청자위원으로 만나 친해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참 재밌는 분!

민노: 본인은 어때요? 열정적인 활동가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김보라미: 저는 변호사죠. (민노: 기본은 변호사?)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는 편이죠. 가급적이면 이성의 범위 안에서 법리적인 범위 안에서 활동하려고 하는데, 창조성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웃음) 경직된 사고에 갇혀서… (웃음)

민노: 뭐 변호사가 하는 일이 좀 그렇죠.

김보라미: 그렇죠. 우리는 창조력이 좀 떨어지니까… 직업병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수직적이잖아요. 헌법, 법률, 시행령, 규칙…. 이렇게 계열적이고, 논리적이니까요. 그런데 임 소장님은 그런 게 좀 없어서 나는 그런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되고 안 되고가 포인트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그 기준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놀랐고,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놀랍다! 사실 그런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법이 만들어 가는 게 아니고.

나이가 드니까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민노: 본인도 충동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나요?

김보라미: 제가요? 그랬나?

민노: 그런 식의 열망이 있지 않나요? 갑자기 막 여행을 떠난다든지…

김보라미: 그건 열정이나 열망의 이슈라기 보다는 삶이 여유로운 이슈인 듯요 (웃음) 열정과 열망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민노: 그러면 본인의 장점이랄까, 미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실함? 의외로 따뜻한 마음?

김보라미: (흐흐흐) 외외는 또 뭐야? (…) 나이가 드니까 남한테 배우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 안 보였던 게 나이가 드니까 저것도 되게 좋네라고 느끼는 포인트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게 좋더라고요.

민노: 유교에서는 귀가 순해진다, 이순(耳順; 60세를 가리킴)이라고 하죠. (웃음)

김보라미: 나는 조금 더 나이를 빨리 먹은 것으로 그렇게 하시죠. (웃음) 남한테 배우는 게 많아져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나름으로 약간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즐거워요. 그렇게 배움이 많아지는 건.

나이를 먹을 수록 배움이 더 즐겁다.

끝인사, 돌파구?


민노: 최근 미디어 환경에 어떻게 보세요. 어떤 돌파구가 있을까요. 끝인사를 겸해서.

김보라미: 질문받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원래 매체라 함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걸 지향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 혁명 때도 그랬고. 미국에서도 그랬고.

민노: 황색언론의 기원이 퓰리처와 허스트의 막장 경쟁이었죠.

김보라미: 그래서 사실은 저는 ‘냅두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공멸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놔두면 사업도 유지할 수 없어서 일종의 자율 규제도 만들고 언론 윤리도 만들고 그런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시대가 많이 변했잖아요. 기준점이 많이 변했죠. 예전에는 허용됐던 표현들이 오늘날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든지. 가령, 사람의 외모에 관한 표현이나 평가라든지, 그런 표현을 더는 사람들이 쓰지 않잖아요.

민노: 조심스러워졌죠, 이제.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4월-12월)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퓰리처상’의 그 조셉 퓰리처(왼쪽)과 우리에게는 미국의 신문왕으로 알려진 윌러엄 랜돌프 허스트(오른쪽). 이들이 입고 있는 노란색 원피스는 당시 유행했던 ‘엘로우 키드’ 만화 캐릭터의 복장이다. 여기에서 옐로우 저널리즘이 유래했다. 즉, 당시 선정주의적 가짜뉴스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삽화는 레온 배릿(Leon Barritt).

김보라미: 그렇게 저널리즘적 방법도 문명화하고, 사실은 그런 것들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돼서 좀 더 문명화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거죠. 언론에 대한 불신은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큰 문제라서 다들 걱정하는 거죠. 자율 규제를 조금 좀 잘 만들어 나가고, 미디어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독립적인 매체들, 슬로우뉴스라든지 뉴스타파라든지 독립적인 매체들을 통해서 저널리즘적 방법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되 그렇지 못한 것들을 자율규제에서 출분히 걸러질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게 필요한데… (한숨) 소위 말하는 레거시 미디어, 주류 매체조차도 종이 매체로 나가는 기사랑 인터넷 매체로 나가는 기사가 다르잖아요.

민노: 좀 ‘지킬 앤 하이드’스럽죠. 다중이죠.

김보라미: 그러니까 그런 것들, 제평위 문제 때도 그렇고, 연합뉴스도 그 이슈가 있었잖아요. 어뷰징 기사를 막 내보내는데, 연합뉴스는 정부로부터 해마다 수백억 원씩 받는 기간통신사였으니까요.

민노: 1년에 300억 원 넘게 받으니까요….

김보라미: 그러니까요. 그런 걸 거를 수 있는 걸 민간에서 만들어 나가야 하고, 만약에 어렵다면 적어도 기사형 광고로 인한 피해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광고형 기사, 광고에 기반을 둔 기사들이 너무 많아요. 또 2019년에 국경없는 기자회가, ISO 표준으로 저널리즘 신뢰성에 대한 지표를 개발해 JTI 지표를 만들었는데, 혁신적인 자율규제 제도로 평가받고 있어요. 이런 방법들부터 시작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켜나가면서 접근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생각해요. 

민노: 그런데 자율규제도 잘 안하잖아요….지금.

김보라미: 맞는 말씀이시고, 본격적인 자율규제 논의에 불을 지펴서, 창조적인 방법들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노: 오늘 긴 시간 고맙습니다.

김보라미: 대화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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