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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하마스에 의한 이스라엘 남부 공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팔레스타인 관련 소식들이 우리의 뉴스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언론들의 보도는 어떠한가? 대체로 서구 언론 받아쓰기가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경기 보도하듯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전쟁 스펙터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중은 관전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단편적인 사실을 둘러싼 즉자적인 반응들은 언론들의 트래픽 장사의 동인이 된다. 이런 가운데 역사적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희생된다.

가장 뜨거운 뉴스는 교전했던 하마스 군대가 이스라엘 어린이들까지 참수했다는 뉴스였다. 문제는 이 뉴스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도 시청자의 반응은 “선 넘었네”, “보복공격 당해도 싸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보다 끔찍하고 광범한 민간인 살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마스가 어린이까지 참수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이스라엘 TV채널인 i24NEWS가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한 군인들의 말을 인용 보도하면서였다. 이스라엘 남부에서 발생한 약 1000명의 사망자 가운데 약 40명의 어린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수십 년간 죽어간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수천 명의 죽음만큼이나 말이다.

하지만 뒤이은 다른 통신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런 주장에는 정확한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니르 디나르는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신 상태를 조사하지 않을 것이며, 조사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수 사실 확인은) “죽은 자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인터셉트와의 인터뷰에서 디나르 대변인은 “어떤 군인 한 명이 기자들에게 ‘내가 봤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이스라엘군은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 가디언의 베단 맥커넌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하마스에 의해 40명의 아기가 참수당했다’는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고 완전히 무책임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셰라 프렌켈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기자들이 이러한 주장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출처와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방법으로 확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뉴스의 확산은 서구의 주류 언론들에 의해 반복됐다. 미국에서 가장 선정적이고 보수적인 TV방송국 폭스뉴스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아기들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 내 유일한 팔레스타인계 정치인 라시다 틀라이브에게 ‘테러리스트들이 아기들의 머리를 자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추궁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낳은 원죄는 영국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과오, 전후 미국의 오일달러를 위한 중동 정책, 시오니스트들의 무단 점령과 분리 장벽과 봉쇄 정책(apartheid)에 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정부, 그리고 주류 언론은 이 비극 앞에 아무런 반성이 없어 보인다. 언론들은 미친 듯이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온갖 선동을 반복하고 있다. 양국의 좌파 정치인과 운동 조직들만이 온전한 입장을 내고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무관하게 국내 주요 언론들은 ‘하마스의 아기 참수’라는 끔찍하고 선정적인 보도를 반복적으로 ‘복사-붙여넣기’ 했다. 그 밖에도 명백하게 가짜뉴스인 선동적 게시물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틱톡에서는 수년 전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촬영된 영상들까지 가짜뉴스 확산에 동원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의 댓글창에는 여지없이 끔찍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말들이 즐비하다.

KBS는 BBC를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참수하는 사진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미국 정부가 하마스의 영아살해를 확인했다고 전했지만,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의 말과 언론 보도를 언급한 것일 뿐이 바이든이나 미국 정부 당국자가 그런 사진을 직접 보거나 하마스의 영유아 살해를 확인한 보고를 받지는 않았다는 해명이었다.

그 사이 이스라엘군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붕 없는 강제수용소’ 가자지구를 향한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우리는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고 발언했고, 10만 명의 지상군이 가자지구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안 그래도 240만 인구의 80퍼센트가 원조에 의존하던 가자지구의 민중들은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에 완전히 봉쇄되어 있고, “피의 보복” 앞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가. 고의든 아니든 가짜뉴스의 무분별한 유포는 이 ‘피의 보복’에 빌미를 안겨주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최소 640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점령군과 불법 유대인 정착민에 의해 살해됐고, 이스라엘인은 308명(이 중 131명은 군인)이 살해됐다. 이런 수적 차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오늘날 가자지구는 ‘지붕 없는 감옥’이자 ‘거대한 수용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언론들의 보도는 이런 맥락을 소개하고 있는가? 검증되지 않은 뉴스를 검증 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책임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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