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독자를 위한 요약:
- 미국 연방대법원은 명예훼손 소송의 원고가 누구인가(국가, 공무원 등 ‘공인’인가, 아니면 그냥 개인, 즉 ‘사인’인가)에 따라 명예훼손의 입증책임을 달리 부과합니다.
- 즉, 국가기관이나 공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그 원고가 “현실적 악의”를 입증할 책임을 집니다. (대표 사례: 뉴욕타임스 vs. 설리번 사건, 1964)
- 하지만 반대로 개인, ‘사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할 책임이 없다는 게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대표 사례: 게르츠 vs. 웰치사 사건,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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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끝에 지난 8월 31일 양당 의원 각 2명과 양당이 추천한 전문가 2명씩 총 8명으로 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하기로 하여 9월 26일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다시 여야 9명씩 총 18명으로 구성된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를 구성해 올해 말까지 언론 전반에 대한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당초 개정안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 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면서(개정안 제30조의2), “허위·조작보도”의 정의를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라고 규정하였다(개정안 제2조제17호의3).
우리나라의 경우 이 법의 개정론이 대두된 것은 언론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언론 피해 소송에서 전체 47.4%는 500만 원 이하로 배상액이 결정된다. 그 금액은 변호사 비용도 안될 뿐더러, 입은 피해에 비해 손해배상액이 터무니 없이 낮다.
향후 논의에 도움이 될까하여 미국의 기념비적인 판결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았다.
원고가 ‘공인’이면 입증책임(O):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1964)
‘뉴욕타임스 vs. 설리번 사건’이다. 우선 결론을 말하면, ‘뉴욕타임스 vs. 설리번 사건’ (1964)[footnote]New York Times Co. v. Sullivan, 376 U.S. 254 (1964) [/footnote]는 미국 제1차 수정헌법(1791)의 언론 자유의 보호가 미국 공무원들의 명예훼손 제소 능력을 제한한다고 하는 연방대법원의 원칙 판결이다.
명예훼손 소송의 원고가 공무원 또는 공무수행자라면 통상적인 명예훼손의 요소—허위의 명예훼손적 진술을 제3자에게 공포—를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 진술에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즉, 피고(언론사, 기자, 표현자)가 그 진술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그 진술에 대한 사실 여부의 확인을 하려들지 않았음을 말한다.
사건의 발단은 뉴욕타임스가 1960년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 경찰이 민권 항의자들을 학대했다고 비판하는 마틴 루터 킹 지지자들의 전면 광고를 게재함으로서 비롯되었다. 광고에는 몇 가지 사실오류가 있었는데, 예컨대 그 사실에 관한 오류는 다음과 같다.
- 킹 목사가 항의도중 체포된 횟수
- 시위자들이 부른 노래
- 시위참가 학생들의 제적 여부 등
몽고메리 경찰국장인 L. B. 설리번은 뉴욕타임스를 명예훼손으로 카운티법원에 고소했다. 법원은 광고의 부정확성이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였고, 배심원단은 설리번에게 $5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뉴욕타임스는 알라바마 대법원에 항소했으나 기각되자,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1964년 3월 연방대법원은 9대 0 만장일치로 알라바마 주법원의 판결이 제1차 수정헌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미국 남부 민권운동에 대한 자유로운 보도를 옹호하였다.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수정헌법 제1조는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사실 관계에 관한 완벽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기존 명예훼손에 관한 (불가벌) 요건은 언론에 대해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즉,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한다.)”
이 결정은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중요 결정 중 하나다. 이 결정 이전까지 민권 운동 활동가의 간행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부 공무원들은 명예훼손 소송을 이용했다. 남주 주들이 민권 운동 조직에 대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인용된 배상액은 거의 3억 달러에 달했다.
원고가 ‘사인’이면 입증책임(X): 게르츠 대 웰치사 사건 (1974)
연방대법원은 게르츠 vs. 로버트 웰치사 사건(1974)[footnote]Gertz v. Robert Welch, Inc. (1974) [/footnote]사건에서 명예훼손 소송 원고가 사인(私人)인 경우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68년 시카고 경찰 로널드 누시오(Ronald Nuccio)는 로버트 넬슨(Robert Nelson)이라는 청년을 총격으로 사살했다. 주검사는 누시오를 살인과 제2급 모살죄로 기소했고, 넬슨의 유가족은 당시 평판 좋은 변호사였던 엘머 레르츠(Elmer Gertz)를 선임해 누시오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극우 보수주의 존 버치 협회(JBS)의 설립자이자 협회 월간잡지 ‘아메리칸 오피니언’의 발행인인 로버트 웰치는 1969년 3월호에 [음모: 리차드 누시오와 경찰에 관한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 원고 측 변호사인 엘머 게르츠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글에서 웰츠는 게르츠를 전위적인 레닌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이 소송을 경찰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작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재인용 및 참조: 언론중재위원회 웹진 통권 4호, 1982)
게르츠는 웰치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고, 하급심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기준을 적용하여 게르츠가 명예훼손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여야 한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게르츠는 사인(私人)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적 악의”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1964) 사건에서 공인(公人)에게 요구되었던 입증책임을 공연히 명예가 훼손된 사인에게는 요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게르츠는 로버트 웰치사가 “현실적 악의”를 품고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공격했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에서 벗어나 그런 공격(명예훼손) 사실만을 제시하면 족했고, 이는 제1차 수정헌법에 따른 것이라고 연방대법원은 설시했다.
참고로 징벌적 손배의 정도와 관련하여 브라우닝-페리스 인더스트리 대 켈코 디스포절 사건(1989)[footnote]Browning-Ferris Industries v. Kelco Disposal, 492 U.S. 257 (1989)[/footnote]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수정헌법(1791) 제8조가 규정한 ‘지나친 벌금의 금지’는 미국이 당사자가 아닌 민사사건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과도한 보석금을 요구하거나, 과도한 벌금을 부과하거나, 잔혹하고 이례적인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
Excessive bail shall not be required, nor excessive fines imposed, nor cruel and unusual punishments inflicted.-미국 수정 헌법 제8조(Eighth Amendment 또는 Amendment VIII)
이 사건에서 배심단은 피고에게 $51,146의 보전 배상과 6백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평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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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인권칼럼’으로 필자는 이광택 언론인권센터 이사장(국민대 명예교수)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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