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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특집.
[제네바 오전 8시]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의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다음, 소희
S#. 학교 담임 교사를 조사하러 가는 차 안. 오유진 경감(배두나)과 배순오 형사(박우영).
오유진: 순오 씨. 그 현장 실습 말이에요.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대학병원 인턴십 같은 건가 했어. 왜, 실전에서 기술을 배워야만 완성되는 교육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현장 가서 직접 배우라는 거잖아요. 근데… 아니죠? (배순오 형사가 동의하듯 고개를 젓는다. 차 앞 횡단보도에서 어린아이들을 통솔하며 함께 길을 건너는 여성이 보인다. “가자, 도담이 가자. 손 들고, 가자” 아이들이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지난다)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S#. 학교 담임 조사를 마치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온 오유진.
형사과장: (오유진 경감에게 화내면서) 명백히 자살이면 거기서 끝이지. 뭘 더 해?
오유진: 그 사람이 내부 고발장 쓴 거는? 그걸 팠어야죠!
형사과장: 우리가 그걸 왜 파고 다니냐고. 노동청, 교육청에서 할 일을!
오유진: 아니요! 조사해야 돼요! 그것들을! 조사해야 된다고! 애들이 죽어 나가는데 ‘취업률, 취업률’ 노래나 부르고. 노동청, 교육청이 봐주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에요. (기업이) 명백히 근로기준법 위반하고, (학교가) 관리 감독 부실하게 하고 있는데.
인트로 & 3분 요약
세계화와 직업 훈련은 무슨 관계일까요?
- 앞선 인터뷰에서 이어지는 ‘세계화’ 인터뷰 3편의 주제는 ‘직업 훈련’입니다.
- 이번 인터뷰 역시 [자본주의의 미래] (폴 콜리어, 2018, 한글 2020)를 매개로 진행했습니다. 다만, 이 인터뷰를 읽기 위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읽으면 좋습니다. 앞선 인터뷰도 마찬가지로 읽으면 좋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 아래는 바쁜 독자를 위한 요약본(약 3분 정도의 분량)입니다. 인터뷰 본문을 직접 읽는 걸 권하지만, 바쁘시다면 요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선 인터뷰를 간략히 다시 정리하면,
- 이상헌 박사는 세계화가 경제(특히 인간의 노동)를 ‘공간’에서 분리함으로써 포퓰리즘을 낳았다는 [자본주의의 미래] (폴 콜리어, 2019)의 문제의식을 설명합니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본처럼 인간의 노동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폼나게 세계 경제를 이야기하는 세계화 엘리트 자신들처럼 말이죠.
- 하지만 인간은 자본처럼 세계 곳곳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없습니다. 노동은 그 사람이 살아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 뿌리 박혀 있고, 그때 비로소 노동은 그 사람의 정체성를 표현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 세계화 엘리트의 생각처럼 인간의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바람직한 걸까요? 그런 노동의 이동은 “유출국”과 “유입국” 모두에 손해라는 게 콜리어의 시각입니다. “가령, 수단의 의사가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택시 운전에 종사하면 세계의 GDP는 증가”하지만, “그의 희소한 숙련 기능은 명백히 잘못 사용되는 것”이라고 콜리어는 말합니다.
- 그리고 항상 경제는 정치와 한몸이었습니다. 유입국의 경제적 조건 속에 담긴 정치적 통합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영국의 택시 운전사가 된 아프리카 수단의 의사는 영국 사회에서 ‘갈등의 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주 노동과 이민에 관한 통합의 방법론과 그 비용에 관한 부족한 고려 속에서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이 출현합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가 언젠가 도착해야 할 사회로 여기는 핀란드와 스웨덴에 극우 포퓰리즘이 먼저 도착해 있는 섬뜩한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편, 세계화의 열매를 수확한 건 대도시, 그리고 그중에서도 대도시에서 사는 고숙련 노동자라고 콜리어는 말합니다. 이들은 대도시의 인프라와 수많은 도시민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관계, 그리고 법의 지배라는 ‘공공재’에 의한 것입니다. 그 ‘집적 이익’을 결국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집적 이익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은 토지 소유자와 엘리트(고숙련 노동자)의 몫이 되어버립니다. 이들은 그 집적 이익에 기여한 바가 없거나 있더라도 극히 적기 때문에 대도시 엘리트의 수익은 ‘경제적 지대’의 성격을 가지고, 특히 일부에게는 지대 추구 행위의 양상도 나타납니다.
- 그래서 콜리어는 이들에게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수입에 더해서 ‘대도시’라는 위치를 결합해서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런 아이디어는 아주 급진적인 것이라고 이상헌 박사는 말합니다. 타당성은 별론으로 실현 가능성은 영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더욱더 그 가능성이 적다는 게 이상헌 박사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세계화 인터뷰 3편의 주제는 ‘직업 훈련’, 특히 스위스와 독일의 도제식 직업 훈련입니다. 직업 훈련이 세계화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이상헌 박사는 세계화라는 맥락 속에서 독일과 스위스의 직업 훈련이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기부터는 반말 문투로 정리할게요. ^^
- 세계화는 대도시와 지방 도시의 양극화와 노동 계층의 ‘계급 분단’을 가속하고 구조화했다.
- 이런 조건 속에서 대도시 엘리트는 대학 교육의 세례를 받고 학위와 자격증이 표상하는 능력주의라는 무기로 수많은 평범한 시민이 나눠 가져야 할 대도시의 집적 이익을 과도하게 가져갔다는 게 콜리어의 문제의식이다.
- 특히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과 같은 나라는 인지적 교육 과정(대학)을 거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의 수익 격차가 아주 크다. 이상헌 박사는 그런 경쟁 도구로서의 교육에 따른 격차가 고착하고 심화하는 현상을 ‘구조적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경쟁 교육의 구조적 프리미엄이 아주 크고 견고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양극화는 더 극복하기 어렵다.
- 하지만 북유럽은 경쟁 도구로서의 교육에 따른 승자와 패자의 구별이나 그 차이가 크지 않고, 인지적 교육의 대표격인 대학 교육에 못지않게 비인지적 교육의 대표격인 ‘직업 훈련’이라는 전통이 있다. 이를 대표하는 나라는 독일과 스위스다. 이들 나라 젊은이는 사회적 존중과 경제적 대가의 두 마리 토끼를 ‘직업 훈련’이라는 잘 갖춰진 시스템 속에서 찾아간다. 여러 대학에 합격했지만 직업 훈련 과정을 선택하는 책 속 ‘젊은 독일인 여성’의 사례(콜리어 집 가사도우미 학생)가 이를 상징한다.
- 영국과 미국은 이런 독일과 스위스의 직업 훈련 시스템을 자신의 사회에 이식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상헌 박사는 그 이유를 특히 독일과 스위스에 있는 업종별과 산업별로 잘 묶여 있는 기업 연대체 시스템과 그 지역 기업과 대학의 긴밀한 협업 시스템 그리고 그 지역의 축적된 전통과 관습적 문화에서 찾는다. 영국과 미국에는 그런 게 없다. 일본과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상헌 박사가 언급한 ‘구조적 프리미엄’이 실은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우연 또는 운명이며, 어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걸 잘 보여주는 콜리어 자신의 회상 장면이 있다. 인상적인 구절이라 약간 길지만 옮긴다.
열네 살 때, 사촌과 나는 서로 비슷비슷했다. 둘 다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부모의 자식으로 같은 날에 태어났고,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내 사촌의 삶은 부친의 때 이른 사망으로 궤도를 벗어났다. 부친이라는 권위적 인물을 상실한 탓에 그녀는 10대에 미혼모가 되었고, 그에 동반하는 결점과 굴육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반면에 나의 삶은 고득학교를 졸업하면서 옥스퍼드의 장학생으로 변신하는 발판을 딛고 진보했다. 그곳에서 몇 단계를 더 거쳐 옥스퍼드와 하버드, 파리에서 교수가 되었다. 이것도 자존감에 충분하지 않았는지, 나는 노동당 정부 시절에 대영제국 3급 훈장을 받았고, 보수당 정부 시절에는 기사 작위를 받은 데다가, 영국 학술원의 나의 동료들은 나에게 학술원장 표창을 수여했다.
이처럼 일단 격차가 생기자 갈수록 거리가 더 벌어지는 역학이 작동했다. 내 사촌의 딸들도 열일곱 살에 10대 미혼모가 되었다. 나의 아이는 열일곱 살에 영국에서 아주 우수한 학교로 손꼽히는 곳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폴 콜리어, [자본주의의 미래], 제1장 새로운 불안 (2018, 한글 2020).
이상헌의 제네바 오전 8시 [ep. 20]
세계화를 견디며:
스위스 직업 훈련
질문, 정리: 민노
알림 및 안내
– 스위스 제네바 기준 2024년 5월 3일 오전 8시에서 오전 9시 10분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 독자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질문은 그 답변 앞뒤로 맥락화해서, 정리했습니다.
직업 훈련 (개요)
- 배경으로 알면 좋을 콜리어의 책 속 지문을 요약하고, 인용합니다. 관련 지식이 풍부하거나 시간이 부족한 독자는 생략하셔도 무방합니다. (편집자)
인지적 능력 v. 비인지적 능력
폴 콜리어는 인지적 능력, 주로 대학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능력에 못지않게 실용적인 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비인지적 능력, 가령 직업 훈련이나 실질적인 체험 등을 통해 얻어지는 인내심과 암묵지 혹은 노하우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교는 삶을 위한 준비라고 하기는 어렵고, 실은 훈련을 위한 준비이다. 학교가 갖춰주는 것은 잘해봐야 일부 사람이 일부 직업에서 고생산성 숙련 기능을 연마하는 데에 필요한 인지적 능력일 것이다. 비인지적 능력은 학교 교육에서 인지적 능력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뛰어난 인지적 능력보다는 잘 육성된 비인지적 능력이 더 중요한 고생산성 직무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인내심이 그러한 비인지적 능력 중의 하나이다. 학교 교육에서 직업 훈련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계속 인지적 경로를 밟는 사람들과 인지적 기능으로부터 비인지적 기능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을 비교하면, 전자보다 후자의 과정이 더 힘겹고 까다롭다. (중략)
같은 책, ‘제8장 계급분단: 모든 것을 누리는 가정과 해체되는 가정’.
스위스, 대학 교육과 직업 훈련의 조화
그리고 인지적 능력 육성에서 세계 최고의 숙련 시스템을 갖춘 좋은 대학이 많은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지만, 비인지적 능력을 길러내는 직업 훈련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나라는 독일과 스위스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직업 훈련을 기꺼이 선택하는 이유로 경제적 대가와 함께 ‘존중’받는 일로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지적한다. 독일과 스위스의 직업 훈련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좀 길지만, 마저 인용해 보자.
스위스의 직업 훈련은 상당히 묵직하다. 훈련 과정에 보통 3~4년이 걸리고, 기업이 훈련 비용의 절반을 댈 정도로 큰돈을 쓰면서 깊숙이 관여한다. 직업 훈련에 대한 인기도 높다. 젊은이의 60%가 직업 훈련을 선택하는데, 훈련 과정에 등록해서 공부하는 동안 돈이 지급된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러한 직업 훈련이 일류 일자리로 가기 위한 경로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직업 훈련이 거둔 성과의 더욱더 훌륭한 점은 최고 수준의 직업 훈련이 세계 10위권 대학교와 같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비인지적 교육 경로(스위스식 직업 훈련)가 번창한다고 해서 인지적인 교육 경로(스위스 대학)가 약해질 이유는 없다.
같은 책. 같은 장. 괄호는 편집자.
독일인 가사도우미, 직업 훈련을 택한 이유
콜리어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독일인 가사도우미의 일화를 들려준다. 독일의 직업 훈련이 그 나라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 일화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 가족은 1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자 집에 기숙하면서 가사 도우미로 보수도 버는 아주 뛰어난 젊은 독일인 여성과 같이 생활했다. 그녀는 대학교에 진학할지, 아니면 구체적인 직업 훈련을 받을지 선택해야 하는 바로 그 단계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하기만 한다면 학술적인 교육을 계속 이어갈 인지적 재능도 충분했고, 합격 통지를 받아둔 대학교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고향에서 한 회사와 한 대학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직업 훈련 과정을 열망했다. 그녀가 등록한 훈련 과정의 내용은 교육생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배우기로 선택한 직무는 마케팅이었는데, 그 회사가 생산하던 제품은 기술적으로 섬세한 장비였고 그녀는 바로 이것을 마케팅하는 능력을 배워야 했다. 1년 차 교육의 첫 주일에 그녀는 그 장비를 제작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선반을 만지면서 작업했다. 3년 차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녀는 이제 그 회사에 취직한 직원이며, 보수도 훌륭하고, 일자리도 안정적이다. 그러한 결정적인 선택을 하던 중에 그녀는 놀라워하는 우리의 반응을 오히려 놀라워했다. 그녀가 택한 경로는 학교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힘겨운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이 평가할 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존중과 물질적 보상이 그녀를 그 길로 인도했다.
같은 책, 같은 장, 괄호는 편집자.
경쟁 도구로서의 교육
교육이라는 게 노동시장이나 사회에 나가기 위한 경쟁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다. 저소득층 아이는 이런 경쟁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특히 금전적인 이익이 달린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연구들이 많다. 이런 연구들은 가끔 설계나 표본 등에서 엄밀성을 결여하는 경우가 있지만, 방향성만은 맞는 지적이다.
승리의 대가
그 격차를 줄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북유럽은 우선 부모 간 소득이나 교육 격차가 크지 않다. 아동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격차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이게 영미와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교육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프리미엄, 가령 소득 격차 등은 노동 경쟁이 심한 나라에서 더 그 승리의 대가가 큰 편이다. 그것 역시 영미와 북유럽의 차이다.
그러니까 북유럽은 전문직으로 갈수록 소득이 크긴 하지만, 교육이나 노동 경쟁에서 승리한 대가가 별로 크지 않다. 교육 프리미엄의 규모가 작다. 그래서 교육을 경쟁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영미나 유럽에서는 그 프리미엄이 상대적으로 크고, 북유럽이나 독일, 스위스는 그게 좀 작다.
한국, 구조적 프리미엄
한국?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국은 경쟁적 도구로서 교육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 프리미엄이 크고 오래 간다. 한번 고착하면 계속 가고, 점점 커진다. 그래서 나는 그걸 ‘구조적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경쟁 수단으로서 교육이 가지는 위상이 다른 곳들보다 훨씬 크다.
결국 교육이 초래하는 ‘승리의 프리미엄’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그 구조적 프리미엄이 커지면, 교육에 경쟁의 디테일한 요소들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그 프리미엄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급 격차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거다.
콜리어도 그 문제를 알고 있다. 그래서 교육의 문제, 특히 스위스와 독일의 직업 훈련 문제를 꺼낸다. 다만, 그 교육의 문제를 맥락적으로 대도시 비판과 연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소 따로따로 다룬 면이 있다.
도제식 직업 훈련
스위스와 독일은 직업 훈련 분야에서는 독특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고부가가치 제조업 숙련 분야에서 50년 이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왜 독일과 스위스만 가능했나
흔히 스위스는 얼핏 관광이나 금융이 유명하지만, 정밀기계 엔지니어링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조업도 아주 강한 나라다. 가령, 공장 정밀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아주 정밀한 부품을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주로 만든다. 즉, 스위스는 제조업 기반이 아주 튼튼한 나라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나 한국 등의 도전에도 이런 강력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직업 훈련 시스템 덕분이다.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많은 나라가 벤치마킹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그랬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현재 스코어, 이런 도제식 직업 훈련은 독일과 스위스만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 포디즘의 쇠락은 노동자 숙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영국도 탄광이 무너지고,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그런 고민이 시작됐다. 그 해법으로 ‘스위스 도제식 직업 훈련’ 제도를 많이 연구했다. 미국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실패했다.
세 가지 요소: 기업, 노조, 전통
미국은 왜 실패했을까. 왜 스위스나 독일식 직업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했을까.
스위스 직업 훈련이라는 건, 학교에서 절반은 배우고, 현장에서 절반은 배우는 거다. 3년~4년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자격증을 준다. 그리고 그 자격증으로 취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 분야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직장에 입사하고 싶다면, 그 직업 훈련 과정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 자격증이 없으면 취업 자체가 힘든 게 스위스다.
그래서 그런 직업 훈련 시스템이 없는 곳에는 이주노동자가 많다. 심지어 금융은 직업 훈련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에 가깝지만, 은행에도 도제 시스템이 있긴 하다. 가령 특정한 텔러(창구 앞 직원)는 도제 시스템을 통해서 취업한다. 물론 대학을 나와서 취업하는 직업군은 또 별도로 존재한다.
질문을 바꿔서 왜 독일과 스위스만 잘하고, 다른 나라는 잘 못하거나 안 되는 걸까. 몇 가지 요소를 추려볼 수 있다.
1. 기업: 독일과 스위스는 직업 훈련을 설계할 때부터 그런 인재를 원하는 기업이 그 시스템에 들어와서 기업이 필요한 수요를 그 교육에 직접 반영한다.
2. 노조: 그리고 이 직업 훈련 시스템에는 ‘노조’가 큰 역할로 포함돼 있다. 직업 훈련은 노조에도 아주 큰 관심사다. 그리고 노조가 이 직업 훈련생 선발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독일은 운영은 기업, 정부, 노조가 참여하고, 또 직업 훈련 과정 중에 ‘노조’ 교육 과정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직업 훈련을 마친 졸업생 상당수가 다시 노조에 가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더불어 해당 제조업의 생산 과정을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도 노조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 속에서 노조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숙련도가 아주 중요해진다. 그래야 그런 생산과정의 업데이트가 가능하니까.
3. 끊임없는 업그레이드, 계속적 숙련 과정: 독일과 스위스에서 직업 훈련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연속적으로 숙련 과정이 업그레이드된다. 일명 ‘마이스터'(Meister: 장인, 명인)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도 그 시스템 출신이고,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단순히 학교와 기업의 연결이 아니다. 그 배경에 학교, 기업, 정부, 노조가 각자 역할을 하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핵심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일련의 유기적인 시스템은 그저 그걸 겉으로 흉내 낸 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역사가 필요하고, 노하우와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그 지역의 문화가 조금씩 축적된 결과에 가깝다. 미국이나 영국은 그 알맹이는 빼고, 껍데기만 가져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영미에서는 직업 훈련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한 훈련생이 많았고, 독일과 스위스 시스템과는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됐다.
기업의 준비물
일단 돈이 많이 든다
직업 교육을 시키는 거라서 기업이 돈을 대고, 또 노동 대가도 줘야 한다. 한마디로 돈이 많이 든다. 1년 동안 일 배우고, 2년째부터는 기업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일을 좀 하겠지. 처음에는 배우는 것만으로도 지원해야 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니까 또 돈을 지급해야 한다.
경쟁 업체에 취업할 수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두 번째 리스크는 도제식 훈련으로 그 과정에서 자격증을 얻었다고 해서 꼭 자신을 지원한 기업에서 일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해당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일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도 막 가고 그런다. A 기업이 투자했는데, B 기업으로 갈 수도 있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위험부담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넘어선 강력한 연대체
그래서? 업종별로 산업별로 기업들이 잘 조직돼 있어야 한다. A 기업이 지원했다고 해서 A에 머물러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A에서 지원한 직업 훈련생 a가 일할 만 하니까 B 기업에서 직장을 얻는다고 해서 A 기업이 ‘나 안 해!’ 이러면 이 시스템은 말짱 꽝이다. 기업들의 강력한 연대체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결국 ‘죄수의 딜레마’를 넘어서야 한다. 결국 직업 훈련 시스템이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강력한 신뢰를 밀어붙일 수 있는 나라가 독일과 스위스다. 기업, 정부, 노조가 강력하게 이런 플랜을 밀어붙일 수 있는 나라다.
직업 훈련을 대하는 기업의 자세는?
기업은 장기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처음 1~2년은 완전히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다. 처음에는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한 1년~2년은 지나야 훈련생으로부터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보통 스위스는 1년에 한 명당 3천~4천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기업이 최소한 3~4년이라는 긴 기간을 두고 봐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그런데 그런 비용이 아까우니까 1~2년밖에 안 됐는데 막 일을 시키기도 한다. 결국 기업은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런 유혹에 빠지면, 교육의 질도 낮아지고, 결국 윈-윈이 아니라 훈련생이나 기업이나 둘 다 결국은 손해다.
시.스.템.
한국? 영국? 미국? 그런 능력도 전통도 없다
한국에는 이런 게 없다. 업종별로도 산업별로 내부적인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가 다르다. 대기업 간에도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해가 달라 내부적인 조율이 안 된다. 경영단체가 정치적인 정책적인 이해관계에서는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내부적 이해를 조율하는 것은 약하다.
독일처럼 스위스처럼 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한 몸처럼 협력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영국이나 그런 걸 못 한다. 영국은 그런 전통이 없다. 미국은 이미 여러 번 실패했지만, 바이든은 도제식 직업 훈련을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
일본은?
일본에는 한때 도제식 훈련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직업적 숙련의 핵심이 도제였다. 조선업 같은 분야는 다 도제 체계로 기술을 숙련했다.
숙련 시스템으로서 일본의 도제 시스템은 훌륭했다. 그런데 1920~30년대에 가면, 이 시스템은 ‘착취’ 시스템으로 변질한다. 노동자의 의식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는 사업장 불만 세력의 핵심이 되어 버리는데, 그렇게 함께 도제 생활을 했던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사회적인 저항과 반란의 주체가 됐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겹쳤다. 그렇게 결국 도제 시스템은 파국을 맞는다.
그때부터 일본은 기업 내에 재교육 시스템, 고용한 뒤 그 기업에서 사내 교육으로 노동자를 숙련시키는 과정으로 정착했다.
시.스.템.이.다.
한국의 직업 훈련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도제식 직업 훈련 시스템과는 아예 아무런 접점이 없다. 만화가들에게 예전에 도제식 숙련 과정이 있었지만, 그걸 ‘시스템’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제 시스템이라고 하려면, 숙련된 훈련생이 마음대로 직장을 옮겨갈 수 있어야 그게 시스템이다. 핵심은 자격증을 획득하면 관련 업종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첫 번째다. 그리고 해당 업종은 당연히 그런 자격증을 취업 조건으로 해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업종이나 산별, 지역별로 조직된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다. 그게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도제 ‘시스템’은 한국에서는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해야 하고, 일본은 있었지만, 기업 내부에서 도제 시스템을 변형시켜서 흡수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실업학교 현장 실습
한국 실업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현장 실습을 나가는 건 도제식 직업 훈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도제가 아니다.
기업과의 연결점이 희박하다
기업이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처음부터 그 도제식 훈련 설계에 참여해서 그 구체적인 자격증, 그 기술을 가르치는 게 도제식 직업 훈련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실업계 교육은 그냥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친다는 거지, 기업의 구체적인 필요와 ‘연결점’이 아예 희박하다.
박근혜의 추억 ‘특성화 도제학교’
최근, 지난 박근혜 시절에 특히, 갑자기 스위스 도제식 직업 훈련 시스템을 높게 평가하면서, 왜냐하면 한국 청년이 학력은 높은데, 숙련도가 부족하다고 해서, 기업과 링크, 미스 매칭(수요-공급)을 교정하려는, 그런 노력이 있었다.
스위스 베른의 상공업직업학교에 직접 박근혜가 방문하기도 했다(2014년 1월).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구체화한 게 ‘특성화고 도제학교'(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다. 기업과 노조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구도가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계획하고 밀어붙였다. 2014년 434억 원의 예산을 썼고, 2016년에는 3525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법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출범한 근본 없는 정책이 성공할 리 없었다. 독일과 스위스 모델에 대한 피상적인 환상만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여된 정책을 밀어붙였다.
기업의 손쉬운 유혹 + 협상력 없는 학생 = 착취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보조금 같은 ‘당근’이 있긴 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을 꼭 고용해야 할 이유가 크지 않다. 채용 계획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디테일한 세팅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도제식 과정에 있는 학생을 한 1년~2년 동안 가장 취약한 분야, 기존에 노동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분야에 투여해서 ‘저비용으로 굴리는 게’ 학생 입장에서는 무당하고 악질적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손쉬운 활용 방식이다.
그런데 학생 입장에선? 아무것도 없다. 협상력도 없고, 일방적으로 이 과정을 필수적으로 견뎌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몰린다. 영화 [다음 소희]가 그런 이야기다.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어떠해야 할지도 모르고, 쉽게 다치고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교육청과 학교가 ‘취업률’ 타령만 하는 사이에 그렇게 스스로 학생은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학교는 왜 이 모양인가
학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평가다. 현장에 보내는 거다. 현장이 어렵다고 학생들이 하소연 해도, 어쨌든 거기 가서 견디라고 하는 것. 학생을 기업에 보내서 가장 위험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는 것. 취업 실습이라는 정책 디자인이 학생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게 정책적으로 디자인된 상태다.
그래서 독일과 스위스에는 노조가 지켜보고, 정부가 감시하고, 기업들이 서로 협력해서 일시적인 손해에도 불구 학생들을 기다려준다. 그렇게 믿어주고 투자한다. 우리나라 직업 실습에 그런 게 있나. 전혀 없다. 일방적이고 순응적인 착취 구조다.
19세기 유럽 착취 도제 = 21세기 한국 취업 실습
19세기까지 유럽에서도 노동 착취로서의 도제 제도가 있었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특성화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가장 나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국과 미국도 실패했다. 이수 완료율이 낮고, 프로그램 끝나고 나서도 취업률이 낮다. 명확한 실패다. 그런데 한국은 어떨까. 현장 실습 이수 완료율은 아주 높다. 그런데 취업률은 별론으로 학생이 죽고, 다친다. 착취적 성격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화와 직업 교육
세계화 엘리트와 비엘리트 격차 메울 대안
세계화로 인해 대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세계화를 주도하는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격차도 그만큼 커진다. 그게 세계화의 기본적인 문제 상황이다.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폴 콜리어가 생각하기에 지역의 학교와 기업들이 서로 협력해서 스위스와 독일의 도제식 직업 훈련 같은 전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좋은 대안이다.
엘리트 교육과 비엘리트 교육의 격차, 이들의 소득 격차와 이들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교육의 단절을 메울 수 있는 아주 좋은 대안이 된다. 교육의 포커스를 바꾸는 거다. 콜리어가 좀 이 부분을 모호하게 서술한 측면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기업 내 교육 시스템에 지역 노동자가 인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교육과 숙련 과정에 관한 서술이 좀 더 디테일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다소 세계화의 수혜를 받는 엘리트 비판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
중도 좌파의 판타지… 북유럽은?
스위스와 독일의 도제식 직업 훈련은 중도 좌파의 판타지 같은 느낌도 있다(웃음).
북유럽은 공공교육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교과서 중심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 개인 상황, 일자리 상황에서 아주 실천적인 교육을 하고, 실용적으로 교육한다. 그게 교육의 핵심 철학이다. 공공 교육 강화와 실용성 강화가 결합한 형태다. 그런 정책 원칙으로 숙련노동 조달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맨 위에 노사정이 있다. 그게 중요하다.
엘리트 교육? 넓게 열린 잔혹한 문
우선 독일과 스위스에서 대학 교육은 아주 싸다. 예전에는 거의 돈을 안 내는 정도였다. 그리고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해서 다 가는 게 아니다. 스위스 예를 들면, 중학교 때부터 길이 갈려요. 물론 교차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흔하지는 않다. 크게 보면 두 가지로 길이 갈려 있는 셈이다.
하나의 큰 길이 도제로 가는 길이고, 나머지 하나가 대학으로 가는 길이다. 대학은 일단 입학은 아주 쉽다. 그런데 대학 교과 과정이나 졸업은 그 반대다. 인기 학과에서는 학년마다 50% 유급은 흔한 일이다. 끝까지 남아서 졸업하는 비율이 20%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국가에서 돈을 대신 내고 문호를 크게 열어놨지만, 굉장히 혹독하게 운영한다. 일반적으로 대학 가는 코스가 도제식 직업 훈련 코스보다 더 가혹하다는 인식이 있다.
대졸자 A와 고졸자 B, 별 차이 없다
끝으로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대학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한 대졸자 A, 도제 시스템에서 은행에 취업한 창구 직원 고졸자 B. 창구 뒤에 있는 대졸자 A와 창구 앞에 있는 고졸자 B의 월급이 결국 별 차이가 없다. 고졸자 B는 20살 초반에 대졸자 A는 20대 중반에 입사했겠지. 그러니까 경력 등을 고려하면 월급 차이가 별로 없다.
물론 A가 월급이 많이 올라가긴 하지만, B도 마이스터가 되면, 월급이 아주 좋다. 공장 마이스터급이라면 연봉이 통상 2억은 넘는다. 자신의 기술이나 숙련도에 따라서 월급이 괜찮다. 대학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늘긴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 보면, 도제 과정을 통과한 고졸자도 꽤 많다. 그리고 고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도제 과정을 통해 마이스터(명장)로 가는 업그레이드 과정이 있다.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사회적 긴장은 거의 없다. 개개인이 소통하는 차원에서도 학력 차이가 장애가 되는 경우는, 내 경험에 한정한다면, 본 적 없다.
흥미로운 기사 잘 읽었어요!
잘 읽고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