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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중학교 영어교사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김헌용 위원장이 전하는 ‘조금은 다른 교권 침해’. 그리고 교권 정립을 위한 제언.


교권 침해를 두고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7월 18일에 발생한 서울서이초등학교 초등교사 사망 사건에 이어 작년에 있었던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자녀 특수교사 아동학대 고소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무분별한 민원 제기가 문제가 됐다. 최근에는 교육부 사무관 출신의 학부모가 자녀를 ‘왕의 DNA가 있는 아이’라고 지칭하고 담임의 직위해제에 이르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학부모의 도를 넘는 교권 침해 문제가 교육계의 최대 시급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서이초 사건, 주호민 씨 논란에 이어 ‘왕의 DNA’ 논란까지 연이어 터졌다.

교사들도 이례적으로 광장으로 나왔다.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7월 22일부터 매주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광화문에 모여 진상규명과 교권 침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8월 12일에 있었던 4차 집회에서는 6개 교원단체가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4대 요구사항을 공동결의문의 형태로 발표하기도 했다. 서이초 교사 추모로 시작된 교사들의 자발적 행렬은 이제 교권 침해라는 의제의 핵심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교사를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하고 우리 모두가 더 나은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전국의 장애인 교원으로 구성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하 장교조)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교사 중 한 명으로서, 그리고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부터 비장애인 교원보다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교원 중 한 명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안전하고 인권 친화적인 학교 현장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장애, 비장애를 떠나 더욱 안전한 학교 현장을 만들자는 전국 교사들의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광장에 모인 교사들의 요구는 실로 정당하다.

조금은 다른 교권 침해


그럼에도 작금의 교권 침해 실태와 교육계의 요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분명 모두가 맞는 말을 하고 있고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광장에 나가지 못했다.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뭉친 어떤 단단한 것이 ‘아직은 아니야.’라고 내 귀에 속삭인다. 내면에서는 이런 말도 들려온다. ‘거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라고. 아마도 이 머뭇거림은 내가 지난 교직 기간 중 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차별과 배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김헌용 제공.

나는 14년 차 교사이다. 나에게도 교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재 여론을 달구고 있는 교권 침해 양상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 교감을 경유한 교권 침해였기 때문이다.

2010년에 임용된 후 나는 다양한 수업을 담당했다. 매해 다른 학년을 맡았고 수준별 수업이 시행되던 때에는 학업 성취도가 최상인 반부터 최하인 반까지 모두 맡아 보았다. 2015년에 자유학기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주제 선택 과목도 내가 즐겨 담당하는 수업 중 하나가 되었다.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흥미 위주의 수업을 개설해 교육과정을 직접 구성하고 학생들의 수강 신청을 받아 운영하는 식이었다.

동아리도 다양하게 운영해 봤다. 점자반에서부터 밴드반, 영어 오디오북청취반, 영자신문반까지… 어떤 수업을 맡든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학생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어느 해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는 ‘장애’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다양한 선생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3년 내리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1학년 수업만을 전담한 시기가 있었다. 보통 담당 수업은 같은 교과 동료들과 협의하여 결정하는데 이 때는 동료와 협의하여 수업 배정표를 가져가도 번번히 교감 선생님이 퇴짜를 놓았다. 내가 2학년이나 3학년을 담당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감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배려’였다. 일반적으로 저학년 학생들의 수업과 생활지도가 수월한데 이 점을 강조하며 내가 2학년이나 3학년을 담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줄 테니 시간표를 다시 짜 오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그리 결정하니 다른 영어과 선생님들도 별 수가 없었다. 애써 시간표를 맞추었는데 다시 처음부터 짜야 하는 수고가 반복되었다.

추후에 밝혀진 사실은 당시 교감이 학부모회장과 모종의 구두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교사에게 고학년 수업을 맡기지 않겠다는 약속. 이유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고입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에게 나의 장애가 불이익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 때문이었으리라. 교감이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은 결코 배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제였다.

자녀가 장애인 선생님에게 영어 수업을 듣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을 학부모회장도 야속했지만, 배제 조치를 하면서 배려라고 강변한 교감에게는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 그간의 관계도 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내 딴에 별도로 항의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받은 차별은 기억에 아로새겼다. 이런 차별의 기억들은 추후에 내가 다른 장애인 교사들과 노동조합 출범을 준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학교 내에 만연한 장애인 교원에 대한 교권 침해


장교조가 설립되고 전국의 장애인 교원들을 만나 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이 모두 한두 번씩은 있었다. 특정 학년 수업 강요는 물론 다른 교사와의 협력 수업을 강요받은 사례, 몇 년 연속 담임을 희망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담임에서 배제되고 도리어 선배 교사로부터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훈계를 들은 사례, 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장애를 이유로 아예 강의 시수 자체를 배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학부모 말만 들은 동료교사에게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사례도 있었고 학생으로부터 장애를 이용한 악질적 교권 침해를 당했으나 ‘아이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라며 가벼운 교육으로 넘어간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직·간접적 교권 침해는 안 그래도 열악한 환경과 인식 속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교원을 철저한 고립으로 내몬다. 소위 ‘경증’이라고 불리는 눈에 띄지 않는 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있는 장애인 편의지원에서는 배제되고 학교 구성원으로부터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교사’ 또는 ‘까탈스러운 교사’로 인식되어 동료와 학생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 경우 심하게는 우울증과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장기간 휴직에 들어가기도 한다. 교사로서의 권위와 자존감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제시되는 교권 침해 예방 대책들을 보면 장애인 교원의 교권 침해까지 해결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외부로부터의 악성 민원을 차단하는 것은 좋지만, 많은 장애인 교원은 이미 내부에서 교권 침해에 시달려왔다. 외부에서 오는 악성 민원과 장애인 교원을 향한 내부의 교권 침해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 다를뿐 똑같은 인식과 태도를 공유한다.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으며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교사들이라고 해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참에 학교 내 교권에 대한 원칙을 수립했으면 한다. 교육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있어 교사의 권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되며 타인의 인격은 짓밟을 수 없고 교사의 고유 권한은 누구라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 그래서 학교라는 공간에 교권 침해가 아예 발디딜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 접근을 원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교사 스스로 먼저 지켜야 한다. 장애인 교원이라고 다르게 대한다든지 하는 예외 없이 모두에게 지켜야 한다. 교사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외부로 내보이는 청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인 교원, 교권 보호의 시금석


교권에 대한 원칙을 수립하는 일은 제도 개선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과업이다. 하지만 학교가 다시 권위를 세우고 질적으로 변화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장애인 교원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다. 장애인 교원은 교사들 가운데 가장 주변화된 존재다. 이들은 교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학교라는 조직에서 인권 감수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의 의견 속에 중요한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교권 침해 사례를 끌어 와서 그걸 전부인 양하는 인식으론 문제의 본질에 다달을 수 없다. 근시안에 사로잡히면 임시방편만 양산하고 도리어 장기적으로는 교사의 부담만 더 가중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교사에게 촘촘한 지원을 약속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를 분리하려는 듯한 방안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교권 침해 사례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교사와 학부모 간 신뢰가 저하되어 교사의 권위가 더욱 약화할 수 있다.

증상만 없애려고 하면 근본적 치료가 요원하다. 일부 학부모들을 악마화해도 소용 없다. 공격성이 있는 학생들을 격리하는 방법도 단기책일 뿐이다. 어느 조직이나 과도하게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다. 교권이 무너진 건 내부부터였다. 학교에서 먼저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학교가 스스로 교사의 교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교권을 인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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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보호하려면 학교 권위도 함께 다시 세워야


아쉬운 건 교육계에 제대로 된 리더가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교육부 장관이 학생 인권 조례 탓을 하더니 그다음엔 시도교육감협의회 대표가 나서서 교육계는 할 일을 다 하고 있으니 이제 나머지는 국회가 처리하라며 공을 국회로 넘겼다. 공을 국회로 넘기는 건 교원단체도 똑같다. 6개 교원단체들이 모여서 ‘국회는 응답하라’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자칫 문제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리더들만이 아니다. 학교 내에는 교권 침해 말고는 사회 의제에 대한 논의도 없다. 학교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현대활 것인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교육 과정에 녹여낼 것인지, 기후변화에 학교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와 같은 거시적 담론에 대해서 교사들은 침묵한다. 아니, 침묵을 강요당한다. 디지털 전환이 중요하다면서 4차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유행어만 쫓아다녔지 스스로 기술을 교육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사용 방안을 스스로 만들어 본 적도 없고 그러한 역할을 제안받아 본 적도 없다.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침묵을 강요당한다.

거시적인 비전이 없다는 얘기는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방향이 없으니 방법도 스스로 찾지 못한다. 남이 정해준 대로, 법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만날 신고만 당한다. 학교에 있는 수많은 위원회와 법정 의무교육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외부로부터 강제되다 보니 모두 형식적으로만 운영된다.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만 맡겨두고 그게 교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좀 둘러 보자. 이제 어느 분야이든 개인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동의 비전과 그에 따른 실행 계획이다. 교육계 내에서 먼저 비전을 생성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만 보더라도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교육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러한 진지한 질문에 대해서 교사와 교장,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이 함께 공동의 비전을 만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교원단체들끼리도 모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공동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내부적으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사회에도 큰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잃었던 교권을 되찾아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교사와 학교의 권위를 함께 세우는 방법


아래는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교권, 나아가 학교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방향이다.

  • 학교의 거버넌스를 세워야 한다.교장의 리더십을 세워주고 사일로 현상 등 병폐로 찌든 학교의 조직 문화와 소통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 교사들이 학교 내 인권, 다양성, 포용성 등 사회적 가치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인식은 현실을 만든다. 교사의 인식이 시대에 뒤떨어지면 교육의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 학교에서 권장되는 언행과 용납되지 않는 언행에 관하여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이 규칙, 저 규칙 덕지덕지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권장하고 반대로 남의 인격을 짓밟는 행동은 무관용으로 대하는 21세기형 교육인권 헌장을 만들어야 한다.
  • 개별 교사가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학생, 학부모와의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수습하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학교의 가치와 방향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소통 노력을 해야 한다.
  • 학교가 환경 보호와 기후 정의에 앞장서야 한다. 말로만 그치는 환경교육이 아니라 진짜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 학교가 기술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이니 AI 디지털교과서니 유행어를 따라가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거버넌스와 사회적 가치와 환경보호를 뒷받침하고 진짜 학습을 돕는 기술이 좋은 기술이다.
  • 위 여섯 가지 학교 정상화 방향을 추진하면서 그에 필요한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자원을 끌어 써야 한다. 피상적인 요구부터 하고 보는 게 아니라 교권 회복 및 학교 권위 회복 로드맵을 먼저 만들고 이를 위해 수단으로서 제도 개선, 규정 개정, 예산 수립의 요구 목록을 정리하여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권위는 저절로 생긴다. 이제 교사나 학부모 개별 사안보다는 학교의 권위까지 세우는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갔으면 한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본질적 고민을 해야 한다. 교육이란 게 그만큼 복잡해지기도 했다.

이것은 명확하게 학교의 문제


일개 교사인 내가 이런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논의가 넓어지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에 다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장애인 교원은 과거나 현재처럼 미래에도 계속해서 차별과 교권 침해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게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둥 시스템의 문제라는 둥 추상화할 생각은 없다. 이건 명확히 학교의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이 이야기해야 한다. 학교가 바뀜으로써 사회에도 좋은 변화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 또한 교육기관인 학교의 역할 아니겠는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다. 교사들이 접힌 날개를 펴고 이젠 높이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창립 4주년 기념 조합원대회 (2023. 7. 22.) 단체 기념 촬영. 장교조 제공.

알림.

이 글은 김헌용 교사 개인의 의견이며 신명중학교나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의 공식 의견이 아닙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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