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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의 해법]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 전 강원창조혁신센터장에게 듣는 지역 활성화 해법과 국가 R&D의 딜레마, 그리고 지역의 매력과 그 조건.

솔루션저널리즘 프로젝트

지역소멸의 해법

한종호 전 강원창조혁신센터장 인터뷰

‘지역소멸’이라는 표현은 일본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 [지방소멸]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주민으로는 공포스럽고,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충격요법식 표현이었죠. 하지만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더 큰 공포였습니다. 책에 앞서 일본 국토교통성은 [국토의 장기전망: 중간보고서] (2011)을 발표하면서 2050년 일본 전 국토의 60%에서 현재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감소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무거지로 변하는 지역은 20%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으니까요.

참고로 우리나라는 마스다 히로야의 방법론을 차용해 이상호(2016; 2018)가 ‘지방소멸위험지수’를 통해 한국의 지방소멸위험 정도를 분석한 바 있습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세~39세 여성 인구수 대비 65세 이상의 인구수’로 정의되고, 이 지수가 0.5 미만인 경우, 즉,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고령 인구 대비 절반 미만인 경우, 해당 지역을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합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22년 3월 기준 시군구의 약 절반(49.6%), 읍면동의 절반 이상(51.7%)이 소멸위험지역입니다.

이상호 외(2022.04.), 지방소열의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일자리 사례와 모델,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외(2022.04.), 지방소열의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일자리 사례와 모델,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외(2022.04.), 지방소열의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일자리 사례와 모델, 한국고용정보원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일본은 한국의 미래였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지역소멸’이라는 당면한 위기를 함께 고민하면서 동시에 ‘지역최적’이라는 대안을 발견하기 위해 지역과 공동체, 관계와 미래의 문제를 고민해온 분들을 만났고, 또 만날 예정입니다.

‘지금, 다시 시작’ 2023 지리산포럼 – 다시 지역에서 삶을 시작한다는 것: 보양토론 ‘로컬의 일, 돈, 주거, 문화, 교육’(더가능연구소 X 보양포럼) 발제와 토론을 주재하는 한종호 전 센터장의 모습. (지리산포럼, 2023. 9. 1. 사진 민노씨.)

한종호 현 소풍벤처스 파트너는 2015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초대 센터장으로 취임한 이래 제3대 센터장까지 7년간 강원도의 창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연합뉴스의 평가에 따르면, 한종호 전 센터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신기술 기반 융합 분야 창업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강원형 뉴딜 특화산업 발전에 이바지”했고, “서피비치, 칠성조선소, 감자밭 등 로컬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성장시켰”습니다. “강원피크닉투자조합과 강원청년창업펀드 1호 등 지역 기업을 위한 펀드를 조성하고, 초기 단계 기업에 적극적으로 직접 투자했”습니다.

‘지금, 다시 시작’이라는 표제를 건 2023 지리산포럼(2023. 8. 30~9.2.)에서 ‘보양포럼’ 일원으로 참석한 한종호 전 센터장을 만났습니다. 현장 인터뷰를 정리합니다.


민노: 감상적이만, 어떤 지역은 쿨하고, 어떤 지역은 심지어 인구가 많더라도 그렇지 못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최신 출생률은 0.70이라는 놀라운, 인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믿을 수 없는 수치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고요.

한종호 (전) 센터장께서는 강원에서 7년 동안 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일하셨는데요. 업무와 관련한 체험이든, 아니면 그런 공적 업무와는 상관 없이 개인적으로 느낀 일상적인 체험, 평소의 문제의식이든 지역소멸에 관한 생각을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자체들도 놀고 있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서 떠나고, 지역소멸이 화두가 된 거겠죠. 그렇다면 대체 뭘 잘못했길래? 무엇을 빠뜨렸길래? 그걸 먼저 짚어보는 게 순서일 것 같아요.

그동안에 지자체들이 해온 방식이요.

1번. 큰 공장, 큰 기업을 유치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왕창 따라오니까 인구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하나 있고요. 정부에서도 비슷한 걸 했죠. 노무현 정부 때 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했잖아요. 그런데 인구가 늘었는가 보면,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했는가 보면, 해결하지 못했잖아요?

2번. 그래도 해결이 안 되니까 지자체가 또 하고 있는 게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이제 돈을 뿌리는 거죠. 오면 돈 준다! 특히 청년들 오면 돈 준다는 지자체가 적잖았죠.”

한종호 소풍벤처스 파트너, 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민노: 돈 준다, 집 준다! (웃음)

한종호: 돈 준다, 집 준다, 뭐든지 준다. (웃음) 요즘은 워케이션(일+휴가)하게 해준다. 한 달 살게 해준다. 줄 수 있는 건 다 준다고 하죠. 그게 잘 먹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문제 1. 지자체장의 4년이라는 임기


민노: 감성적인 차원에서 ‘매력’,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밥벌이’, 이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하잖아요?

한종호: 맞아요. 바로 그 말에 답이 ‘딱’ 있는 거예요. 지역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매력이 없기 때문이고, 와서 먹고 살 비즈니스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 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논리적으로 그렇잖아요. 사람을 불러오거나 기업이나 기관을 유치하거나 돈을 뿌리거나…가 아니라! 지역의 매력을 높이거나 그 매력으로 지역에 온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주거나. 그래야 하잖아요? 거기에 집중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자체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요. 그게 단기간에 효과가 나오기 힘들어요. (= 눈에 보이는?) 네,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슬픈 현실의 문제이긴 한데요. (= 업적주의의 폐해라고 봐도 될까요?) 업적주의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단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는요. 무엇보다 단체장들이 4년마다 선거를 해야 하잖아요?

민노: 아, ‘그 기간 안에’ 내 업적을 만들어야 하고, 지역 주민들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해야겠네요.

한종호: 그렇죠. 최소한 단기 4년 안에 성과를 보여서 재선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 그게 있고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포스터(2010, 왼쪽),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포스터(2018, 오른쪽)

문제 2. 공무원 순환보직(1~2년) + 단년도 회계제도 = ‘인풋’ 강박


민노: 다른 원인은 또 뭐가 있을까요?

한종호: 지자체장 아래 있는 실무자들은 전부 순환근무를 해요. 그러니까 지방공무원들은 그 보직에서 1년 길어야 2년 근무해요. 그러니까 어떤 정책을 도입해서 그 정책이 효과가 나려면요. 최소한 몇 년은 돌아가야 해요.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어요. (= 시행착오도 있을 거고요.) 그렇죠. 시행착오도 있을 거고.

그런데 그 정책을 담당하는 지방공무원 입장에서는 자기가 그 보직에 있는 동안에는 그 결과가 안 나와. (옅은 웃음) 그러니까 그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웃풋'(결과)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인풋’으로만 평가받아요. (= 아!…)

그러니까 다들 인풋을 늘리는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예요. 그 사람들이 바보이거나 사악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지방공무원들과 이야기해 보면요, 그 사람들도 알아요. 결과 중심으로 일해야 하고, 긴 안목으로 사업을 해야 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장기적으로 뭘 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다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왜 안 듣겠어요?

하지만 당장 자기가 내일 출근해서 하는 일은요. 이번 달에 기공식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이번 달에 돈을 얼마나 뿌려서 몇 명한테 지원했다는 그 사실 자체예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지원해서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계속 돈을 주거나 기업을 유치하거나 하는 그것도 다 ‘인풋’이란 말이죠. 기업으로 뭔가 자원을 투입하는 거고요. 그런데 정착 투입 대비 산출이 어떤지는 아무도 챙기지 않아요.

민노: 아… 그런 잘 드러나지 않은 맥락이 있었군요.

한종호: 4년제 선출직 지방자치제도, 그다음에 공무원들의 1년 내지 2년 순환근무제도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게 우리나라 회계제도가 단년도 회계제도예요. 1년 단위로 모든 돈을 끊어요.

감사원은 세입·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사하여 대통령과 차년도국회에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헌법 제99조

민노: 그러면 그 1년에 모든 예산을 써야 한다는 건가요?

한종호: 쓰는 돈에 관한 내년도 예산을 승인권을 국회(“차년도국회”)가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공무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작년에 당신들이 승인해 준 예산으로 이렇게 잘 써서 성과를 냈다고 해야 하는 거죠.

민노: 어쨌든 준 돈은 다 써야 하겠군요.

한종호: 당연히 써야 하고, 그다음에 그게 성과까지 있어야 해요. (= 아, 쓰는 건 물론이고, 성과까지요?) 1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업은 정부가 1년 단위로 성과를 증명해서 내년도 예산을 의회에서 승인받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구조예요.

민노: 아주 중요한 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1년 안에 성과를 낸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국가 R&D… 성공과 혁신의 그 기묘한 함수 관계


한종호: 불가능하죠. 어떤 정부에서는 A라는 예산을 줄이고, 어떤 정부에서는 B라는 예산을 줄이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A라는 사업, 혹은 B라는 사업은 그 사업의 성격상 단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일 수 있잖아요? (= 네, 좀 더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1년 단위로 예산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사업마저도 ‘거품’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사업이 어떻게 성공하겠어요? 실패가 훨씬 더 많아야 정상인데, 우리나라 국가 사업 성공률은 굉장히 높아요. 가령 우리나라 국가 R&D 사업 성공률은 90%를 넘죠.

민노: 굉장히 높은 거 아닌가요?

한종호: 그럴 수밖에 없는 게요. 교수, 박사들이 그 사업에 실패하잖아요? 그럼 내년에 예산을 못받아요. 그래서 기를 쓰고 성공하게 만들어요.

민노: (…)

한 해 20조 원이 넘는 국가 R&D 사업! 성공률은 90%가 넘는데, 사업화는 겨우 20%에 불과하다는 2019년 KBS 보도. KBS 뉴스 갈무리.

한종호: 기술성숙도 혹은 기술준비수준이라고 ‘TRL'(TRL: Technology Readiness Level)이라는 게 있어요. 가령 컵라면 만드는 기술을 예를 들어볼게요. 그 기술 수준이 1부터 10까지 있다고 쳐봐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컵라면 기술성숙도가 5점 정도 된다고 했을 때 시장을 바꾸는 획기적인 기술이라면 기술성숙도를 8점 정도로는 높여야겠죠. 가령 갑자기 전기가 나온다. 아이폰이 나온다. 그러면 해당 상품시장의 기술성숙도(TRL)가 갑작스럽게 굉장히 높아져서 그 기술을 구현한 제품은 시장을 휩쓸게 되는 거죠. 그러면 우리나라 교수, 박사들이 국가 사업으로 그런 혁신 기술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교수, 박사들이 R&D 계획서를 쓸 때 그 TRL 목표를 한 6점 정도로 맞춰요. 왜? 그래야 실패할 확률이 낮으니까. 사업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그 대신에 시장을 선도하거나 기술을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지는 거죠.

민노: 네, 기술 혁신이나 시장 선도… 그 가능성은 작아지겠네요.

한종호: 그래도 한 8점을 연구개발해야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데,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건데, 실패하는 게 두려우니까 한 6점짜리로 보고서, 계획서를 써요.

민노: 그래야 내년에도 안 짤리니까…

한종호: 그렇죠. 7점짜리, 그건 그 다음에 할게. 8점짜리? 그건 그 다음에 할게… 그렇게 모두 ‘안전빵’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정부를 대상으로 그런 보고서, 계획서를 써주는 브로커들이 600개가 넘게 있어요.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R&D 카르텔’이라고 언급한 게 타깃이 이런 브로커들인 거죠.

민노: 아, 그럼 정부의 ‘R&D 카르텔’이 아주 근거가 없는 지적은 아니었네요.

한종호: 다 실체는 있어요. 교수들도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나라 국가 회계제도가 불신의 구조예요. 불신의 구조. 불신을 전제로 ‘얘가 실패할지도 몰라’, ‘얘가 돈을 빼먹을지도 몰라’ 계속 견제만 하고, 1년 단위로 성과만 내라고 하고, 성과가 검증되면 그래 알았어, 또 한 번 가 봐, 한 번 더 가 봐… 이런 식이라는 거죠.

민노: 아…

한종호: 그냥 맡기고, 너 5년간 이거 가지고 네가 한번 세상을 바꿔 봐! 이런 돈은 우리나라에는 없어요.

민노: 그런 돈이 나중에는 정말 큰 일을 만들 수 있는 종잣돈이 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패스트 머니와 슬로우 머니


한종호: 패스트 머니와 슬로우 머니가 있어요. 패스트 머니는, 가령 삼각김밥이나 햄버거 같은 거죠. 먹기엔 편하고 좋아요. 빨리 먹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건강에는 좋지 않죠. 건강을 생각하면 삼각김밥, 햄버거 대신에 우리나라 자연의 흐름에 맞게 생산된 제철과일과 재료로 만든 슬로우 푸드를 먹어야 건강에 좋은 거잖아요.

민노: 뉴스도 패스트뉴스와 슬로우뉴스가 있죠. 패스트뉴스는 당장은 눈길을 끌지만, (마음) 건강에 좋지 않고요. (웃음)

한종호: 우리나라는 모든 지원금이나 보조금이 다 패스트 머니예요. 심지어 기업들도 기업 문화가 단기 성과를 내는 것만 좋아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잘 안 해요. 민간에서도 패스트 머니 천지죠. 그러니까 효과가 잘 안 나. 그러니까 또 패스트 머니를 투입해. 악순환이죠.

민노: ….

한종호: 그래서 나는 슬로우 머니, 슬로우 금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역에서 뭔가 바꿔보겠다는 청년들을, 그게 누구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 아이디어가 설령 좀 엉뚱하고 황당해 보여도 계속하면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각자의 취향도 중요해요. 그러니까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를 만든다고 칩시다. 지역 브랜드 맥주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맥주라는 게 다들 취향이 다양하잖아요. 누구는 에일 맥주가 좋고, 누구는 라거 맥주가 좋고 그 안에서도 또 다양하게 취향이 나뉘잖아요. 그러면 그런 다양한 취향들을 다 인정해줘야 맥주 문화가 풍성해지는 거잖아요.

민노: 변주들이 많아야죠.

한종호. 그래요. 변주들이 많아져야죠. 그래야 맥주 문화가 풍성해지는 거지. 그러려면 각자에게 기회를 줘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지자체들이요, 여기는 ##이니까 ##맥주, 여기는 @@이니까 @@맥주. 그런 식으로 단일한 걸 좋아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기회의 플랫폼이 아주 좁고, 그 결정권이 시장(마켓)에 있는 게 아니라 공무원에 있죠.

우리가 어느 지방이든 가보면 무슨 설치물들, 조형물들이 많잖아요. 그것들을 보면 재밌는 것들도 많은데요. 대부분 그 최종 결정을 단체장이 하죠. 그러니까 밑으로부터 개개인의 취향이 모아져서 어떤 시장이 어떤 결정이 최종적으로 결과지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다양한 개인들에게 그들의 다양한 역량에 기회가 주어지고, 그 다양한 실험들 속에서 점점 더 좋은 게 나오면서 그 지역의 다양성이 저절로 생겨나는, 그런 다양성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게 매력이잖아요.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매력’.

민노: 그렇죠. 그런 게 매력이죠.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십니까…

매력의 조건: 지역 인구, 다다익선 vs. 최적의 인구


한종호: 그런 매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보다는 자꾸 하향식으로, 그냥 정해진 걸 집행하는 구조, 그것도 단기간에 계속 그런 구조를 반복하는 악순환 속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역에 매력이 없고, 그래서 사람이 살기 싫고, 또 지역에 따라서는 너무 구태의연한 ‘구린’ 관습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떠나고, 그런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민노: 아까 중간에 떠올랐던 질문인데요. 그렇다면, ‘패스트 머니’와 ‘순환보직’의 제도적, 구조적 문제는 별론으로, 각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나 계획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보시는 건가요?

한종호: 네, 방향성이 잘못된 거죠.

민노: 그럼 시스템의 문제라는 건가요?

한종호: 그렇죠. 일단 시스템의 문제가 하나 있는 거고요. 그런데 그건 사실 헌법 99조를 바꾸지 않는 한은 고치기 쉽지 않은 거고, 제가 그 문제로 개헌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그건 너무 황당할 수 있으니까. (웃음) 나는 현재의 제도를 그대로 놓고라도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거죠.

민노: 그렇다면 그런 다양한 실험들을 지켜봐 주는 문화, 그런 방향성 속에서… 우리는 지금 지역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인구 감소라는 관점에서 그런 ‘슬로우 머니’의 방법론으로 실패한 실험들을 바라보고 응원하는 지자체의 역량, 그런 철학과 방법론이 깃든 사업들로 지역의 인구 감소를 좀 늦출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종호: 음, 인구의 문제는… 첫 번째, 인구 감소를 두려워해야만 할 문제일까? 인구 감소는 반드시 나쁜 건가? 그 문제의식 하나. 그리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야만 하는 건가? 이것은 어떤 문제와 결합해 있느냐면요, 그러면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만 하는 건가? 이런 문제의식을 품고 있어요.

민노: 흥미롭고, 도전적인 질문이네요.

균형의 문제: 인구는 줄어드는데, 확장형 계획만 세우는 지자체


한종호: 인구가 늘어야 한다는 건 인구가 경제, 생산과 소비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잖아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토지, 노동, 자본, 전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요소. (웃음)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81)부터 2023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계속 성장의 기억만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성장하지 않는 경제는 뭔가 실패하는 거고, 뭔가 정지된 거고, 나쁜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요. 그런데요. 한편으로 그 성장으로 인해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잃었단 말이죠.

민노: 잃은 것도 참 많죠. 성취한 것도 많지만…

한종호: 많은 부를 성취했지만, 예를 들어 공동체가 파괴되고, 빈부 격차가 커지고,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그래서 나는 다시 ‘따뜻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이 정도의 부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놓쳤던 건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성장도 중요하지만, 균형도 필요하다. 그 균형 중 하나가 지방과 중앙의 조화에요.

그러니까 모든 게 중앙집중, 중앙집권적으로 모든 생산 요소를 오로지 수도권으로만 집중시켰던 이 시스템이 균형을 찾으려면 지방의 가치가 새롭게 떠올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그건 뭐냐면, 계속 성장하려면 요소를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경제를 키워야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나는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마이크로 경제, 균형 잡힌 마이크로 경제, 그래서 로컬에서 생산하는 원물을 그 로컬에서 소비하고, 그 로컬 경제를 돌리는 머니가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꼭 로컬 화폐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이 스스로 자족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어떤 시스템을 만들면, 각각의 지역들이 자족적이면서 균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서 국가 전체적으로도 꽤 균형 있는 경제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마이크로한 경제, 균형 잡힌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인구, 그게 어느 정도인가는 물론 따져봐야 하는데요. 인구가 줄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요.

민노: 최적의 인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현실적인 최적의 인구.

한종호: 우리는 자꾸 10년 전보다 줄었다고 걱정하잖아요. 예를 들면요. A라는 지방 도시가 있다고 쳐봐요. 거기 인구가 30만 명 정도라면, A시 시장에 출마한 후보들은 항상 이구동성으로 ’50만 A시를 만들겠습니다!’라고 공약을 해요. 그러면 인구 50만 명인 도시 단체장 후보들은 뭐라고 하느냐면, 인구 100만 도시를 만들겠다고 해.

서울, 인천, 경기를 빼고 대한민국 모든 단체장들은 선거에서 더 큰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요. 그리고 유권자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성장 공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후보들에게 표를 던져. 그러니까 그렇게 공약을 내겠죠.

민노: 규모를 키우고, 시설을 늘리고, 인프라를 확장하고…

최적의 전략, 최선의 전략… 일본의 ‘뉴 노멀’ 콤팩트시티


한종호: 그래서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느냐면요. 모든 지자체들이 인구가 줄고 있는데, 도시 계획은 다 확장형이에요. 신도시를 개발하고,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거기에 산업단지를 넣고, 아파트를 짓고… 축소 전략은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어요.

그런데 일본만 해도 이제 인구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콤팩트시티 전략, 축소지향적인 도시계획을 시도하고 있어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지역 도시들이 듬성듬성해져서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수단도 도입해야 하고, 사회적 비용도 늘잖아요. 병원이 너무 멀어지고, 편의시설도 멀어지니까 사람도 병원도 은행도 가까이 있는 콤팩트시티를 만들자는 게 일본은 ‘새로운 노멀’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더 키워, 여전히…

민노: 많은 부분에서 일본은 우리의 미래였죠.

한종호: 일본은 이미 지난 30년 동안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인구가 줄어도 상관 없다가 아니라, 가령 지방에 있는 A시는 현재 도시 규모로 볼 때 몇 명 정도면 자족적인 도시로 운영할 수 있을까. 거꾸로 현재 A시 인구가 30만 명이니까 자족적인 시스템을 갖추려면 이런저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도야마시(富山市)가 지향하는 콤팩트시티”(위 일본어 제목의 뜻). 위 캡처 이미지는 도야마시의 콤팩트시티 전략을 담은 문건 표지다. 도야마시의 인구는 약 40만 명 정도. 참고 링크.

한종호: 그런데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자족적인 도시가 운영되고, 콤팩트시티가 만들어지면요. 그 도시는 정말 살만할 거 잖아요. 어딜 가도 좋은 미용실이 있고,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고, 향긋한 빵집이 있고, 멋진 카페와 영화관이 있고… 특별한 날 애인이나 와이프와 함께 프랑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는 도시… 그런 도시가 지금 우리나라 지방 도시에 얼마나 있을까요. 멋진 프랑스 요리를 먹으려면 ‘밖으로’ ‘서울로’ ‘부산으로’ 가야 하는 도시들이 더 많을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멋진 매력이 편의가 다 있는 도시가 되면, 작더라도, 그 도시 참 멋있네, 살기 좋겠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올 거 아니에요. (= 그렇겠네요. 조금씩이라도 늘어나겠네요.) 최소한 아이를 낳고 싶고, 떠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민노: 이제 어느덧 결론이네요.

한종호: 자, 그러니까 매력이 있으면서 자족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그런 도시를 만드는 게 이제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로컬 창업자,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싶은 거에요. 요새 말로 ‘로컬, 로컬’ 하니까 나는 로컬 창업자, 로컬 크리에에터를 어떤 역할로 보느냐면요. 바로 그 지역의 자족성을 유지하는데 ‘빵구’난 부분들을 그 친구들이 메워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요. 나는 내 스타일의 헤어샵을 하고 싶은데 서울에는 그런 곳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지방 A시에 가면 내 스타일의 헤어샵을 할 수 있어, 그러면 그 친구는 서울에서만큼 돈을 벌 수는 없을 지도 모르지만, A시에 와서 자신만의 헤어샵을 차릴 수 있잖아요. 서울에선 불가능했던 자기 개성이 있는 사업 영역을 확보할 수 있고, A시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일종의 혜택을 주는 거잖아요. 서울에서는 흔하지만 A시에서는 그런 스타일의 헤어샵은 그곳뿐일 테니까. (웃음)

‘도야마 스타일’, 도야마시 제공.

민노: 끝으로 질문 하나만 더요. 희망의 샘플. 다른 곳에 복제 가능한 샘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샘플을 발견한 적은 없었나요.

한종호: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실험은 진행되고 있는데, 아! 이거구나! 하는 모델은 아직 없어요. 그런 게 있었으면 왜 내가 얘기하지 않았겠어요? (웃음)


지리산포럼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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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저도 언젠가는 서울살이 청산하고 로컬 생활 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저를 위해서라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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