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칼럼] 2024년 12월19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대법원이 접근권(이동권)을 ‘기본권’으로 확인했습니다. 휠체어 경사로 등 설치 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다면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이 판결의 의미와 이후 과제를 살펴봅니다. (⌚8분)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누군가에게 경사로와 계단은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와도 같다.

2024년 12월 19일, 나를 전율케 한 뉴스

1층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있다. 모두의 1층이라는 공익 프로젝트도 있다. 한 사람의 생활사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크고 작은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불과 2센티미터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2022다289051, 차별구제청구등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선고(2024. 12. 19.) 중에서
역사적인 판결문을 낭독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약 23분. 직접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유튜브).

19일 뉴스에 나온 이 문구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무의가 해온 프로젝트명 ‘모두의 1층’이 여기 기재됐다고?

이 시적인 문구는 장애인단체의 호소문이 아니다. 2024년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 일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장애인 당사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국가가 장애인 접근성을 14년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으니,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는 취지다.

역사적인 판결을 끌어낸 소송의 원고와 대리인들.

법이 자유를 따라가지 못하면 고통이 된다

휠체어를 타는 딸을 뒀고, 이 소송의 원고대리인 공익법단체 두루와 함께 접근성 확대 프로젝트 ’모두의1층’을 진행했던 내게 이 판결문의 의미는 각별하다.

내 딸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학교에서 나오면 온통 턱이었다. 턱 있는 가게가 대부분이라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을 수도, 편의점에 들어갈 수도, 학원에 다닐 수도 없었다. 친구 관계는 학교 밖에선 단절되기 십상이었다. 금세 깨달음이 왔다. 내 딸이 친구를 사귀려면, 사회생활이란 게 있으려면 우선 1층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야겠구나. 그런데 그 자유를 법이 따라가지 못하면 현실의 고통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와 우리 딸. 벌써 이렇게나 컸다.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에서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을 시행령으로 정했는데, 매장의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300㎡(약 90평) 이상으로 정해놓은 걸 알게 됐다. 90평? 동네에서 그 정도 규모의 가게는 거의 없는데?

정작 편의증진법 본문 취지를 시행령이 무력화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본문에는 ‘장애인에게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써놨는데, 시행령에서는 ‘(그런데 점주들이 부담되니까) 바닥 면적 90평 이상 되는 상점에만 경사로를 놓을 것’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법 자체가 잘못 끼워진 단추 같았다.

더군다나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 (1998년) 10년 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부터 시행됐는데도 편의증진법 시행령은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국가 상대 소송 후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2022년부터는 그 기준이 50㎡(약 15평)로 강화됐다지만 그나마도 신축, 개축, 증축된 경우에만 해당했다. 이렇게 법이 적극적인 접근성 보장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보니 현장 적용도 더디다. 지난 4월 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 조사에 따르면 법적 의무가 있는 곳조차도 10곳 중 1곳은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의는 이것이다. 편의증진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점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바닥 면적 규정을 적용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국가가 14년간이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이번에 대법원이 받아들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의 책임까지 인정했다.

이번 판결과 판결 과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두루 한상원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의미를 뽑아 보았다.

1.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 대상에 올랐다

법원 홈페이지를 보면 공개 변론 대상 사건은 “사회 각층의 이해가 충돌하는 중요한 사건,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고 정의돼 있다. 대법원이 접근성 소송을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판결문엔 숫자로도 나와 있다. 2006년 당시 체인화 소매점(편의점 등) 중 경사로 등의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 시설은 0.1%에 불과했다. 법이 만들어지고 접근성이 향상됐을까? 2019년 통계를 보면 이 비중은 1.8%로 찔끔 늘어난 데 불과했다. ‘바닥 면적 300㎡’ 규정이 접근권 보장에는 턱없이 비현실적이었음을 방증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공개 변론 때 한 질의를 보자:

“70%정도 (접근할 수 있는 비중을) 갖춰 놓고 시행령을 내렸다면 동등한 (접근성) 보장이 됐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법적으로 접근성을 갖춰야 할 곳의 비중이) 3%? 5%? 이 정도 비중으로는 (장애인 등 이동 약자 국민의) 동등한 권리가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조희대 대법원장
금지만 안내하지 말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안내해 주면 좋지 않을까요? ©EBS

2. “매장 대신 온라인 쇼핑해라?” 편의 넘은 ‘권리’를 인정하다

공개 변론에서 피고인 국가 측 변호인들은 매장 접근권이 떨어지는 현실에 대해 “활동 지원인과 매장에 갈 때 도움을 받거나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오경미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휠체어 이용자들의 주장은) 직접 매장에 가서 머리를 깎고 쇼핑하고 금융 계약을 체결하고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는 데 20년째 그렇게 못했다는 것 아닌가. 이런 권리가 온라인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에 놀랐다.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경미 대법관.
공개 변론에서 발언하는 오경미 대법관. 대한민국 대법원(유튜브) 캡처.

아이는 지하철을 타면 “힘든데, 집에 있지 왜 굳이 나와서 돌아다니냐?”는 비아냥이나 “장애인콜택시를 타지 왜 굳이 지하철을 타냐?”는 식의 동정인지 혐오인지 분간이 안 가는 발언을 종종 듣는다. 판결문에서 오경미 신숙희 대법관이 쓴 ‘보충 의견’은 이런 답답한 말들에 내포된 차별을 시원하게 깨부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장애인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점 외에 소규모 소매점에서도 물건 구매의 편의를 추가로 누릴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턱이나 계단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상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권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 질문을 던진다.”

오경미 신숙희 대법관 보충의견.

3.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대법원판결이 났으니 끝일까? 접근권 보장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우선 편의시설 설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편의증진법이 추가로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판결문에도 “피고는 법 개정을 통해 기존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해서도 단계적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해 장애인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란 의견이 부가되어 있다.

지난 12월 10~14일에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모두의 1층X서울 프로젝트 성과 공유 전시회에 설치된 12분의 1 경사의 경사로를 휠체어를 타고 한 여성이 체험하고 있다.

법적인 변화는 현장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경사로 설치에 적합하지 않게 이미 세팅되어 버린 물리적 건축적 환경과 인식 개선은 더 큰 과제다. 2023년 ‘모두의1층’ 성수동 프로젝트에서 경사로 설치를 설득하기 위해 만난 점주들에게선 “경사로가 뭐예요?”라고 되묻거나 “보행자가 걷다가 부딪혀 민원이 들어올까 봐 싫다” “우리 집은 장애인이 안 온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반면 경사로를 놓고 싶지만, 구청 건축과에서 경사로의 도로 점용 허가를 내기가 귀찮다든지,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몰라서 놓기 힘들다는 점주도 있었다.

외부 ‘태클’도 다양하다. 2023년 모두의1층 성수동에서 만났던 여러 음식점은 “건물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건드릴 수가 없다”며 건물주 눈치를 봤다. 올해 서울시와 함께했던 ‘모두의1층X서울’프로젝트에서는 건축사무소가 직접 140명의 점주를 만나고 45개의 맞춤형 경사로를 설치했지만, 현실적으로 더 다양한 태클을 만났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접 협조 요청을 했음에도 점포가 입점한 건물 상인회가 반대한다든지, 국유지라서 도로 점용허가 과정이 거의 불가능해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다양한 현장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접근 솔루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의 1층.org

대법원판결로 인해 당분간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하는 경사로 사업이나,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경사로 설치 사업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어떤 매장이든 새로 시작하면 자비로 당연히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 참고로, 자가 경사로 설치와 장애 고객맞이 에티켓을 정리해 놓은, 2024년 모두의1층X서울을 통해 펴낸 ‘경사로 길라잡이’가 있다.

궁극적으로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땐 경사로 설치가 아니라 되도록 아예 단차가 없는 ‘무단차 설계’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동권∙접근권’은 기본권, 지자체∙건축업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

‘모두의 1층’ 사업을 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법 조항을 들이미는 건 가장 쉬운 솔루션이지만 법만으로 현장의 접근성 확대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와 도로를 오가는 보행자 사이에서 각종 허가를 내고 경사로 지원사업을 하는 지자체가 중요한 매개체로 역할할 수 있다. 지난해 경사로 설치 조례를 도입한 서울 성동구와 용산구 등의 사례문래동 창작촌 소형 매장에 다매장 도로점용허가를 최초로 구현한 서울시와 영등포구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모두의 1층X서울 성과공유 전시회에 전시된 “경사로 설치에 실패한 매장과 그 이유”. 모두의1층X서울 팀에 있는 브라이트건축사사무소가 140여개 매장을 일일이 다니며 맞춤 경사로를 설치했다. 사진 사단법인 무의.

건축학계와 건축업계는 지속 가능한 맞춤형 경사로 설치를 비롯해 접근성 확대와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서울시 사업을 하면서 프랜차이즈 등 여러 점포를 가진 업체들의 적극적 참여는 접근성 확대에 큰 임팩트를 가져왔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하더라도 소매점 운영 기업들은 향후 접근성 확대 법령 강화를 고려해 선도적으로 법적 기준보다 더 나은 접근성 정책을 내부적으로 도입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조치들은 단순히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당사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 사회가 투명 인간의 도시는 아닌지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 투명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은 투과 능력 유무에 따라 장애 여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받는다면 어디나 갈 수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2022다289051, 차별구제청구등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선고(2024. 12. 19.)
휠체어가 편하면 모두에게 편하다. 모두의1층X서울 시민캠페인 영상 중 캡처. 사진 무의(유튜브).

휠체어 타는 내 딸의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턱없는 세상. 휠체어 이용자의 가족뿐이 아니라, 유아차를 끄는 부모뿐 아니라, 몸이 불편한 부모를 모시는 자녀만 ‘모두의 1층’을 꿈꾸라는 법은 없다. 카트를 끌어야 하는 카페 아르바이트카페 알바 조카나 쇼핑몰 배달 기사 삼촌, 캐리어를 끌고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탐험자들에게 ‘모두의 1층’, 더 나아가 2층, 3층, 4층을 보장하는 게 당연해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편리하도록 ‘문턱’을 없애고,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하면 모두에게 이롭다.

관련 글

3 댓글

  1. ‘2024년 1월 19일, 나를 전율케 한 뉴스’
    -> 요 소제목에서 ‘1월’을 ’12월’로 수정해 주세요.

  2. Mink 님께

    이런이런, 날짜 표시에 오타가 있었네요. ㅜ.ㅜ;;
    알려주신 댓글을 뒤늦게 확인해서 정정이 늦어졌습니다.
    오기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귀한 댓글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고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