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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도, 영장도 없이 국가가 내 위치를 추적한다면? 나의 중요한 권리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5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는 이태원 일대에 있었던 약 1만 명의 위치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했습니다. 수집의 근거가 된 감염병예방법 제76조의2에는 누구를 감염의심자로 볼지, 어떤 정보까지 추적할지, 과도한 사생활 침해는 없는지 제어할 수 있는 보호장치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해당 법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조항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여부가 있는지 심사하지 않은 채,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광범위한 개인정보 침해를 묵인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해 박경신(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이 비평했습니다.

‘적법절차 원칙’ 검토하지 않은 헌재

지난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이태원의 특정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이태원 일대에 있던 1만여 명의 사람들을 감염의심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위치를 동의 없이 확인한 국가행위 및 이를 가능케 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감염병예방법’) 제76조의2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때 감염자들의 자발적인 정보제공을 토대로 한 방역활동이 감염자들의 허위진술로 어려움을 겪자 감염자의 80% 이상이 5인의 수퍼전염자로부터 감염되었고 이중 4인이 자신의 동선에 대해 허위진술을 함 (대한감염학회 메르스백서 25쪽)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감염자 또는 감염의심자에 대해서 동의 없이 위치추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해당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COVID-19에 대한 전면적인 동의 없는 동선 추적이 이루어졌다.

2020년 5월 당시 뉴스 보도.

문제는 누구까지를 감염의심자로 볼 것인지, 감염의심자의 어떤 정보까지 추적할 것인지, 과도한 사생활의 비밀 침해는 없는지를 제어하는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은 위의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헌재는 ‘감염병예방이라는 공익을 위해 정당한 조치였고 법률이었다’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사생활의 비밀이 국가감시에 의해 제한될 때 특별히 적용되어야 하는 적법절차의 원칙, 즉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내용적으로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검토를 하지 않아 반쪽짜리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헌재는 다음과 같은 판시를 통해 적법절차의 원칙에 따른 검토를 회피하였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과 중첩되는 범위에서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이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 침해 여부에 관하여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헌재 2016.12.29. 2015헌바196 등 참조).

헌법재판소 2024. 4. 25. 2020헌마1028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하나만 봐서는 부족한 이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모든 개인정보에 적용되는 권리인데, 개인정보는 식별할 수 있는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의미한다. 즉, 은밀하게 보호되지 않는 정보도 보호대상이 된다. 바로 이렇게 적용범위가 넓기 때문에 예외도 많이 있고 공익에 따른 정당화도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우선 헌법상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다른 기본권들처럼 과잉금지원칙만 준수하면 국가가 자유롭게 제한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법률상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살펴보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수집 및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아래와 같이 여럿 존재한다.

① 개인정보처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그 수집 목적의 범위에서 이용할 수 있다.

  1.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
  2.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3.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4. 정보주체와 체결한 계약을 이행하거나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보주체의 요청에 따른 조치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5. 명백히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6.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 이 경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한다.
  7. 공중위생 등 공공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긴급히 필요한 경우

결정적으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영장주의와 같은 명료한 절차적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더욱 엄격하게 보호가 되는데, 왜냐하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은밀하게 유지되던 정보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때, 즉 압수 수색을 할 때는 반드시 ‘검사가 신청하고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③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영장 없이는 안 된다고 했던 헌재

그런데 과거 전투경찰순경에 대한 징계처분으로 영창을 규정하고 있는 ‘구 전투경찰대 설치법’이 헌법 제12조 제1항의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 5인의 헌법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다: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신체를 구속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구속이 형사절차에 의한 것이든, 행정절차에 의한 것이든 신체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헌법 제12조의 ‘체포·구속’은 모든 형태의 공권력행사기관이 행하는 ‘체포’ 또는 ‘구속’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한 바 있다. 따라서 행정기관이 체포·구속의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헌법 제12조 제3항의 영장주의가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행정작용의 특성상 영장주의를 고수하다가는 도저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영장주의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

2016. 3. 31. 2013헌바190.

즉, 형사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직업적 징계라는 행정처분의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신체구속이 이루어질 때는 헌법 제12조 제3항의 영장요건이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사생활의 비밀이라는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그 기본권 침해가 형사절차에 의한 것이든, 행정절차에 의한 것이든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기관이 위치정보 취득행위를 함에 있어서 영장주의 적용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형사책임 묻기 위해 이용될 가능성 큰데, 영장 필요 없다?

행정조사(行政調査)란 행정기관이 사인(私人)으로부터 행정상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수입하기 위하여 행하는 일체의 작용을 말하며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서 압수 또는 수색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만, 긴급한 상황 등에서 영장 발부를 기다린다면 행정조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영장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소수설에 있어서도 행정조사에 대한 영장주의의 적용 여부는 행정조사의 성격, 조사의 필요성, 기타의 권익보호제도의 존재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 견해에서는 행정조사가 실질적으로 형사책임추급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영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박균성, 행정법론(上)제18판, 박영사, 2019, 559-561쪽 정종섭 교수는 정신질환자의 장기적인 강제수용과 같이 개인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제한을 받는 경우에는 행정상 즉시강제에도 영장이 요구된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정종섭, 「헌법학원론」, 제12판, 박영사, 2018, 537면

특히 우리나라 감염병예방법은 형사책임의 포착을 주 업무로 하는 경찰이 위치정보 취득의 매개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면서 위치정보가 형사책임추급에 남용될 위험이 크다. 더욱이 자신의 동선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감염병예방법상 범죄로 규정된 이상 위치정보 취득행위와 범죄수사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더욱더 영장주의의 필요성은 명확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통신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위치추적을 하는 방식으로 확진자 동선추적을 꾸준히 시행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정도뿐이다. 이스라엘은 한시적으로만 시행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슬로바키아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판정(2020.5.20.)을 내렸다. 슬로바키아 헌재는 권한남용의 여지가 있다며 이에 대한 보호절차가 없다고 하였는데 바로 영장 즉 무차별적인 동선추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역이라는 공익과 사생활의 비밀이라는 사익을 저울질하는 독립적인 공직자의 판단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사조차 않은 헌재, ‘사생활의 비밀’ 침해는 엄격히 심사해야

물론 영장주의가 적용된다고 해서 반드시 무영장 동선추적이 위헌이라는 뜻이 아니다. 영장주의가 적용되더라도 여러 법익의 경합에 따라 영장의 부재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는 아예 영장주의에 따른 심사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이번 사건 개인정보의 특수성, 즉 기지국접속정보는 통신사와 이용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은밀한 정보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진 후 다양한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법적 구제가 개인정보보호법 또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심사로 포섭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사생활의 비밀과 무관한 모든 개인정보에 적용되면서 애당초 이익형량을 통해서 항상 제한될 것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규범이다. 사생활의 비밀은 영장주의 등의 고유한 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는 규범이다. 관련 정보가 은밀하게 보호되는 정보인 경우 전자로 후자를 대신해서는 아니 된다. 후자의 엄격한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인권과 정의는 대단한 게 아니라 일단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데에서 시작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257번째 이야기

– 코로나19 관련 동의 없는 이태원 기지국 접속자 정보수집 사건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
– 헌법재판소 이종석(재판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재판관
– 2024.04.15. 2020헌마1028 [결정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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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참여연대에 후원 안해도 죄책감이 안되게 만드는 좋은 사유의 글.

    씹선비의 나라를 만드는 좋은 사례.

    사유는 깊을수록 좋지만.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글들은 브레히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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