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나온 판결. 275] 참사에 대한 책임, 법정에서의 무죄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자 형사 1심 판결을 오민애 변호사가 비평합니다. (⏳5분)
오늘(12/21)은 이태원참사 특조위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송기춘 위원장은 출범 100일을 앞두고 특조위의 조사 대상에 “한계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법원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로 기소된 이들에 대한 1심 선고 후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이임재(전 용산경찰서장)는 유죄를, 김광호(전 서울지방경찰청장)와 박희영(용산구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김광호 · 박희영의 ‘무죄’ 판결문에는 공통으로 ‘대규모 압사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모든 관련 정보를 보고 받는 서울경찰청장의 권한과 책임은 이태원 참사 앞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요. 게다가, 구체적 법적 증거가 확인되지 않으니, 지자체엔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은 재난 상황에서 지자체와 경찰·소방 등의 유기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2심에서 바로잡혀야 할 1심 판결의 한계와 문제점들, 오민애 변호사(민변 이태원 참사 TF 단장)가 비평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이하 ‘이태원 참사’라고 함)의 주요 책임자 중 용산경찰서장(이임재), 서울지방경찰청장(김광호), 용산구청장(박희영)에 대한 형사재판 1심 판결 선고가 있었다. 이들의 주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즉 각자의 지위에서 재난 대비, 임박, 발생 직후 단계에서 업무상 주의의무가 존재하고,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상의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주의의무의 내용과 예견가능성, 회피가능성,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은 달랐고 그 결과 이임재는 유죄, 박희영과 김광호는 무죄였다. 왜 이들의 유무죄 판단은 달랐을까.
이임재 유죄 vs. 김광호 무죄: ‘예견가능성’ 인정 여부
한줄로 요약하면,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권한이 강할수록 책임과 멀어진다고 법원은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광호(무죄)의 경우
경찰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 경찰법, 경찰관직무집행법 및 관련 매뉴얼에 따라 사회재난 대응 의무를 부담하고, 각급 경찰 지휘부의 권한과 의무는 구체화하여 있다. 김광호는 당시 서울청장으로서 서울청의 정보과를 비롯한 관련 부서로부터 핼러윈데이 대응계획을 보고받고, 용산경찰서의 핼러윈데이 종합 치안 대책, 용산경찰서장의 문자를 통해 이태원 상황에 관한 사전 정보를 공유받고 이에 관한 대응과 관리를 지시할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보고 내용과 기존의 매뉴얼, 과거 업무 경험만으로는 대규모 인파가 집중할 것은 예상할 수는 있었으나 ‘다중 운집으로 인한 대규모 압사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가 해제된 첫해이고, 이전부터 핼러윈데이 인파 운집에 대한 대비가 있었던 만큼 규모와 무관하게 다중 운집으로 인한 사상의 피해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고 이를 예방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러나 법원은 대규모 압사 사고라는 결과를 두고 ‘이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사후적인 판단을 통해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청장으로서 일반적인 관리감독책임은 있지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의 위반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서울 지역 경찰력의 운용과 배치에 관한 최종 결정권자이자 관련 정보를 모두 보고받고 지휘하는 김광호의 권한과 책임이 이태원 참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현장에서 멀수록 책임 또한 멀어진다는 시그널을 법원은 남겼다. 검찰은 김광호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지만, 무죄가 선고되었고, 검찰의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임재(유죄)의 경우
반면 이임재의 경우, 용산서장이자 경찰로서 관련 법령과 매뉴얼에 따른 주의의무를 인정하면서, 구체적으로 ‘경사진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군중이 밀집되어 보행자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거나 넘어지며 서로 압박해 생명, 신체 등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규모와 무관하게 다중 운집으로 인한 인명의 사망 또는 부상을 예방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다하지 않아 사상의 피해가 발생한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규모 압사 사고라는 결과에 대한 예견을 요구했던 김광호 판결과는 달랐다. 인파 운집에 따른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제거할 의무가 있음에도, 핼러윈데이 관련 혼잡경비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을 용인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하거나 이를 점검하지 않은 책임도 확인하였다.
참사 발생 임박 시점에 여러 차례 112 신고가 있었고 해당 정보를 여러 무전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필요한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고, (당일 집회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집회 관리를 마친 21시 05분경부터는 이태원 상황에 집중하고 대응했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후 대응 지시와 상급 기관(서울청)에 대한 보고 또한 지연되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검찰은 이임재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금고 3년을 선고했고, 검찰과 이임재 모두 항소하여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박희영 무죄: 관련 법령 미비, 지자체 책임 회피의 근거가 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재판은 인파 운집으로 인한 사고 발생을 대비할 지자체의 의무에 관한 법적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가 주요한 쟁점이 되었다.
‘다중운집인파사고’는 참사 당시 적용되던 재난안전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회재난’에 포함되지 않았고(참사 이후 개정되어 반영됨), ‘인파 사고’를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에 반영할 법적 근거도 찾기 어려우며,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예방, 대응조치를 마련할 지자체의 의무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 대비 단계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보았다. 인파 운집 자체는 예견했더라도 안전대책을 세울 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임박 단계에서도 다중 운집 압사 사고에 관한 예견가능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지자체장이나 유관 공무원이 재난안전법상 현장을 방문하거나 용산구 CCTV 관제센터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을 법적 근거도 없었다. 법원은 참사 발생 직후 용산구청 당직실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고, 발생 사실을 인지한 시점에는 이미 인명피해가 발생해 있었으므로 그 이후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과 사상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상의 피해 결과를 기준으로 ‘재난’ 여부를 정할 수 없고, 규모와 무관하게 다중 운집으로 인한 사망 또는 부상의 피해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를 예방할 의무가 지자체에도 있다고 봐야 한다. 용산구청은 관할구역인 이태원 일대에서 매년 핼러윈데이 행사가 대규모로 진행되었고 참사 발생 열흘 전 이태원 지구촌 축제의 진행으로 인파 운집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참사 발생 직후의 미흡한 대응이 참사 규모를 확대한 원인이 되었을 수 있음에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자체에 면죄부를 준 1심 판결은, 재난 상황에서 지자체, 경찰, 소방 등 관련 기능의 유기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각 사건은 모두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고, 1심 판단의 한계와 문제점이 바로잡히기를 바라면서, 항소심 과정에서도 유가족, 피해자분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275번째 이야기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자(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형사 1심 판결
※ 함께 기소된 관계자들에 관한 부분은 생략함.
⚖️ 박희영 용산구청장 :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배성중(재판장), 김병일, 백송이 2024.9.30. 선고 2023고합26
⚖️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배성중(재판장), 김병일, 백송이 2024.9.30 선고 2023고합25
⚖️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권성수(재판장), 박진옥, 이준엽 2024.10.17. 선고 2024고합31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