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 인터뷰. “최근 택배업계 이슈는 대개 ‘쿠팡’이다” (⌚7분)
인트로: 어느 택배기사의 “소박한 바람”
“고객님들이 상품을 좀 나눠서 주문해 줬으면 좋겠다“는 전혜원의 책 [노동에 관해 말하지 않은 것들] (2021) 속 택배노동자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아주 오래 머물렀다. 나는 오래된 5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없는 곳에 산다.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도 꽤 오래 했었다. 그래서 더 그랬을 거다.
그 “소박한 바람”이 뭘 의미하는 건지 그 정확한 내용이 궁금했다. 그 책에 관한 짧은 서평을 쓰면서 그 의미를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었다. 아쉽게도 책 안에 있는 내용만으로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물론 맥락상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택배노조에 전화했고, 전화받은 분은 다시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려줄 사람에게 전화를 넘겼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이다.
간단한 질문은 택배노동자가 짊어진 물건들 속에 담긴 소비자의 편리와 혁신기업 쿠팡의 관리∙감독 기술 그리고 그 사이에 근로자 아닌 채로 노동하는 ‘특별한'(특수고용) 노동자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종종 인용하는 바흐친의 말처럼, 말에는 그 시작도 최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는 서로 이어져 있으며, 그 의미는 언젠가는 우리 삶 속으로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귀향하지 못한 채 타향에 머무는 의미가 그런 삶이 더 많을 거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민노 인터뷰
쿠팡 ‘클렌징’을 아십니까:
기준에 미달하면 깨끗하게 지워드립니다
질문 정리: 민노(인트로)
답변: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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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7월 9일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한선범(택배노조 정책국장)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인트로만 민노).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인터뷰이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왜 택배기사는 나눠서 주문하는 걸 선호할까?
그는 제한된 시간에 엄청난 물량을 소화해내는 사람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그는 “고객님들이 상품을 좀 나눠서 주문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바람을 남겼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 (전혜원, 2021) 중에서. 강조는 편집자.
‘상품을 나눠서 주문했으면 좋겠다’는 건 두 가지다. 우선 무겁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나 아파트 경우에는 많이 힘들다. 전혜원 기자 책이 나온 2021년이니까 그때는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증해 더 힘들었던 시기다.
다른 하나는 ‘합포장’ 이슈다. 포장 수수료가 800원이면 포장이 두 개면 1600원을 받는다. 그런데 두 개로 포장할 물건을 하나로 ‘합포장’하면 하나 포장한 가격인 800원밖에 못 받는다. 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번에 주문하면 택배기사가 한 번에 배송해서 더 편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눠서 주문하는 게 오히려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더 좋다. 돈도 더 받고, 덜 무겁고.

쿠팡 ‘클렌징’: 길게 강하게 냉혹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최근 택배업계 이슈는 대개는 ‘쿠팡’이다. 우선 쿠팡은 쉬는 날 없이 운영된다. 노동시간도 길고, 노동강도도 세다. 가령 새벽배송은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데, 7시 1분에 배송하면 수행률 미달이다. 수행률은 정확히 말하면 ‘제시간 배송률’로, 기준은 95%다. 4주 연속 배송률이 95%에 미달하면 그 배송 지역을 빼앗긴다. 이것도 기준이 완화한 거다. 사실상 택배기사를 자르는 효과가 있다.
그걸 “클렌징”이라고 부른다. 쿠팡이 직접 썼던 말이고, 지금은 현장 택배노동자 모두가 쓰는 용어가 됐다.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서 용어 자체가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자, ‘위탁구역조정협의’라고 바꿔 부른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정말 냉혹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관리하고, 그 기준에서 미달하면 ‘청소해 버리는’ 제도다.
계약기간 중에도 상시로 클렌징이 이뤄지니 택배노동자들은 ‘상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항의하면 쿠팡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들은 우리와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들을 해고할 수 없다. 우리는 대리점으로부터 구역을 회수했을 뿐이다. 해고를 이야기하려면 대리점에 가서 해라.”
구역을 빼앗아 수입을 ‘0원’으로 만들어 사실상 해고해 놓고 대리점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택배노동자는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 택배노동자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상시 고용불안’, 즉 ‘해고 위협’을 통해 종사자들을 ‘개처럼 뛰게 만드는’ 시스템이 쿠팡 계열사들의 본성이다. 최근 쿠팡 사무직 중심 노조가 출범했다(2025.06.17). 그 출범선언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회사는) ‘성과 평가’를 명분으로 직원들에게 최하위등급 비율을 강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고사직을 강요함으로써 고용안정성을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불안감을 조성해 왔다.”
쿠팡 사무직 노조 출범 선언문(2025.06.17) 중에서

쿠팡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런 식의 시스템을 만든다. 자본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될 때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를 세계는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충분히 체험했다. 그래서 법으로 노동3권도 보장하고 해고 제한도 하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뉴 딜’은 댐 건설계약이 아니라 ‘노조 인정’, ‘노동3권 보장’ 계약이었다. 쿠팡은 역사의 시계를 1930년대로 돌리고 있다. 쿠팡은 소비자에게는 싸고 편한 서비스일 수 있지만, 일하는 종사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시스템이다.
작년(2024년) 정슬기(당시 41세)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정슬기는 심야 로켓배송 노동자였다. 담당자 지시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하는 업무 대화 내용은 기사 제목의 일부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정슬기 사건 이후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참여해 이 문제를 주목했고, 쿠팡은 처음으로 유족에게 사과하고 합의했다.
정슬기의 죽음 이후 “클렌징”은 사라졌을까. 택배노조와 쿠팡 그리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이 참여해 논의해 ‘상생 협약’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결국 4주 연속 배송률 95% 미만으로 그 조건을 완화하는 것에 그쳤다. ‘클렌징’이라는 노동 통제 방식의 골격은 그대로 남았다. 협약이라고는 했지만, 결국은 힘의 논리다.
쿠팡이 이렇게 일하니, CJ와 다른 택배사들도 이를 따라하려 한다. 새벽배송, 장시간노동, 클렌징 같은 반칙이 승리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교대도 없는 야간노동, 세계 어디에도 없다
쿠팡에서 특히 문제 되는 건 ‘연속적인 고정 야간노동’이다. 이 노동은 ‘교대’가 없는 야간노동이다. 노동계 일반에서 생각하는 ‘교대’가 있는 야간노동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논문에서 ‘교대’를 전제로 한 야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통계를 수없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교대도 존재하지 않는 야간 노동은 전 세계에 없는 형태의 노동이다. 이런 야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불문가지다.
야간 노동뿐 아니다. 다회전 배송도 문제다. 통상 택배업계에서는 오후 12시~1시경 그날 배송할 물건을 싣고 자기 구역을 한 바퀴 돌며 업무를 마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쿠팡은 그걸 2회전, 새벽배송의 경우에는 3회전을 한다.
이럴 경우 택배노동자는 배송지와 캠프를 2~3회 왕복해야 한다. 배송지와 캠프가 가까우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편도 3~40분 거리다. 자연스럽게 노동 시간이 늘어나고,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 출근할 때 휴대폰을 집에 놓고 왔는데, 사무실에 도착한 뒤 알게되어 다시 가지러 집에 갔다가 왔다고 생각해 보자. 택배기사들은 2회전 배송을 하면 그런 기분을 느낀다. 다시 말하지만, 쿠팡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고려가 전혀 없다.
쿠팡은 내가 느끼기에도 소비자에게는 싸고 편한 서비스일 수 있지만, 회사 내부 구성원에게는 너무 혹독하게 내모는 것 같다.

택배기사의 계약 구조
한국의 택배기사 규모를 대량 7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참고, ’21년 통계는 5.4만 명, 편집자), ‘쿠팡친구'(정규직 기준) 1천5백여 명, CJ 정규직 5백여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특수고용 노동자'(이른바 ‘특고’)다. 그러니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택배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다.
택배업계 고용 구조는 다음과 같다. (화주는 쿠팡∙네이버쇼핑∙G마켓 등의 오픈마켓과 홈쇼핑.)
- A. 택배사(원청): 쿠팡, CJ대한통운, 한진, 롯데(이상 쿠팡∙CJ대한통운 2강, 한진∙롯데 2약) 등. B와 계약.
- B. 택배 대리점(하청): 각 지역에서 택배사에서 할당받은 각 지역에서 물건을 최종적으로 배송하는 업무. A∙B와 각각 계약.
- C. 택배기사(특수고용 노동자): 대리점이 할당한 각 지역(가령, 서울 아무개동 1번지)에서 최종 배송 업무. B와 계약.
가령 CJ대한통운이 대리점과 서울 논현동 배송을 계약하고, 대리점은 택배노동자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논현동 1~10번지를 배정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위 극소수 정규직 택배노동자를 제외하면 대다수 택배기사는 각 대리점과 계약한다.
누가 나의 사용자인가? 두 번 거부당한 노란봉투법
그런데 이런 ‘특고’ 형태의 고용에서는 필연적으로 ‘누가 나의 사용자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원청 택배사가 나의 사용자인가? 아니면 대리점이 사용자인가?
그런데 대리점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원청은 모든 권한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을 지배하고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택배노조는 CJ를 상대로 한 사용자 확인 소송 중이고, 현재 대법원까지 올랐다. 이번 대법원 결정을 모두 목 빼고 바라보고 있는 판국이다.

이 문제는 노조법 2∙3조 개정(소위 ‘노란봉투법’)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는 아니다. 하지만 노조법상 노조 결성권은 인정받게 됐다. 그리고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대법원판결을 통해 (CJ대한통운과 같은) 원청과의 단체교섭권이 인정되면, 이 판결의 여파는 다른 많은 택배사와 택배노동자에게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판결이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CJ대한통운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단체교섭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부 시절에 계속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년연장과 노란봉투법 통과를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은 택배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고,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걸 핵심 내용으로 한다. 상법 다음은 노란봉투법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가 바뀐 만큼 기대를 걸고 있긴 하다.
대리점연합회와 단체협약, 그 의미
택배기사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돼 있어 노사협상을 할 수 없다. 이번에도 CJ대한통운 본사가 아니라 하청업체 연합체 성격인 대리점 연합회가 대상이었다. 그래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그 형식이 대리점연합회와의 단체협약이지만, 원청이 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향후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현재 틀에 원청을 포함한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출산휴가와 경조 휴가를 보장받는 외에 연차라고 할 수 있는 ‘특별휴가’ 3일이 이번 협약을 통해 보장됐다. 사측이 ‘연차’라는 표현을 극히 꺼려해서 ‘특별휴가’라는 표현으로 정리됐다. 유급 교육시간, 유급 조합활동시간도 보장받았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계속됐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차별 해소를 위한 첫발을 뗐다고 평가한다.

‘4.5일’ 논의 속 근로자에 택배기사도 있을까
대통령은 대선 기간 주4.5일 근무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언급하더라. 생각했다, 저 공약 속에 대통령은 “근로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저 ‘근로자’에 우리 위탁 택배기사도 들어가는 걸까?
택배기사가 싸워서 얻어낸 건 4.5일도 아니고, 5일 근무도 아니다. 6일 60시간, 우리가 싸워서 얻어낸 게 주 6일 60시간이다. 그래서 우리 목표는 4.5일 같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주 5일만 일하고 싶다는 거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근로자” 속에는 우리 택배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근로자”라는 말 속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그 근로자만을 지칭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다. 원청과의 단체교섭권도 아직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대법원 계류 중). 우리가 원하는 건 주 5일 동안 일하고, 남들처럼 일주일에 이틀은 쉬는 삶이다. 그리고 그렇게 업무 시간을 ‘정상화’하면서 기존에 6일 동안 일한 만큼 벌이가 줄지 않는 거다. 만약에 5일 동안 일했을 때 벌 수 있는 돈이 확 깍여버리면 그런 제도는 의미가 없다.
개인적인 바람? 재무 상태가 좀 개선되면 좋겠다(웃음). 딸도 잘 자라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