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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전혜원, 2021)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에 관해. (⏳2분)

나는 쿠팡 사용자다. 나는 그 사실이 좀 부끄럽다. 쿠팡은 국민기업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이들이 이용하지만, 동시에 소위 ‘블랙기업’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문제가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전혜원의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2021) 중엔 쿠팡 이야기도 있다. 그 쿠팡에 관한 이야기 중에 쿠팡은 정직원 중 개발자 비중이 50%가 넘는 ‘IT회사’라는 지적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건 그게 아니라 이 말이었다.

“‘고객님들이 상품을 좀 나눠서 주문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 (전혜원, 2021) 중에서

어느 쿠팡 택배기사의 말이다. 택배 기사는 포장 단위별로 수수료를 받는다. 즉, 포장이 나뉘면, 각각 수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합포장’으로 묶이면 물건만 늘고 수수료는 늘지 않는다. 무거운 건 ‘덤’이다. 되도록 나눠서 주문하자. 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때로 사람은 바위가 아니라 모래알로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정돈된 체계적인 정보와 그저 삶 그 자체에서 나온 에피소딕한 기억이 잘 섞여 있다. 좋은 책이 그렇듯 그 두 가지는 결국 궁극에서 만난다. 가령, 기회가 닿을 때마다 추천하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와 같은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2025)와 같은 책에서 지식으로서의 정보와 일화적 기억은 서로 별개가 아니며, 지혜와 삶은 서로에게 담겨 있는 그릇이자 그 내용이다.

이 책은 체험과 지식이 하나로 융합하고 체화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성실한 저널리스트의 질문과 문제의식이 책의 사이사이에 잘 투영돼 있다. 물론 어떤 챕터는 상대적으로 좀 아쉽고, 어떤 장은 상대적으로 더 흥미롭기도 하다. 이 책은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약간 비례에 가까운 겸손함으로 고백하기도 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역동적인 열정을 발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배우는 사람의 탐구가 담겨 있다. 다만, 책의 결론은, 개인적으로 아쉽다. 그 내용은 수긍이 가지만, 그 결론에 이끌리는 과정이 앞서 책에서 이야기한 것들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기보다는 뭔가 급조해서 ‘붙여 넣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노동의 다양하고 생생한 현장들을 둘러보고, 물어보며, 한국 노동의 쟁점들을 고민한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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