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민트]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박사가 추천하는 ‘좋은 책’에 관한 조금 더 깊은 이야기
이 글은 아래 일곱 개의 기사로 나눠 발행했던 인터뷰를 모두 합친 통합본입니다. (편집자)
- 구성주의의 반격: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 편도체-공포 가설과 옴니제닉 모델
- 인간은 불완전하다
- 빅테크의 표정-감정 연구는 낭비인가
- 소리는 실재하는가, 감정은 실재하는가
- 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계
- 느낌을 측정할 수 있다면 (ft. 다윈과 스키너 비판)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노씨가 묻고, 이효석 박사가 답하다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는 슬로우뉴스와는 귀한 인연을 가진 분입니다. KAIST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양자 컴퓨터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에서는 오늘날 AI의 배경 기술 중 하나인 정보이론을 연구했습니다. 하버드 연구원 시절 시작한 외신 번역 미디어 ‘뉴스페퍼민트’를 10년 이상 운영하며, 과학 전반의 다양한 영역과 번역 및 저작권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귀국 후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하며 AI와 진화, 노화에도 깊은 관심과 고민을 하며 이와 관련한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독서 편력을 가진 이효석 대표가 추천한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는 ‘보통의 독자’를 대신해 책에 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묻고, 이효석 박사는 이에 관해 답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첫 번째 책은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입니다. 이 책은 저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이고요. 이효석 박사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책으로,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려고까지 했다고 하네요.
대화는 6월 초에 있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7차례에 걸쳐 나눠서 올립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감정이 신체 기관과 비슷하게 전문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일종의 정신 기관이며, 몇몇 유전자가 감정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생각연구소:2017. 중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 아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아이는 뇌 발달의 초기 시기에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특히 아이의 환경이 전전두 피질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곳의 뉴런들은 학습(즉 예측 오류 처리하기)과 통제에 특히 중요하다.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이 부위의 크기와 성능은 학교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기술과 연관이 있다. 영양 불량은 얇은 전전주 피질로 이어지고, 이것은 열등한 학교 성적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미졸업 같은 낮은 교육 수준은 다시 빈곤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인종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사회적 실재에서 뇌 배선의 물리적 실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마치 빈곤이 줄곧 유전자 탓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이 뜻밖에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예컨대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 The Blank Slate]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인보다 복지수당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사람은 ……. 비합리적인거나 편협한 자가 아니다. (조사 수치를 비교해보면) 이런 신념이 맞기 때문이다.” 핑커나 몇몇 다른 사람들은 많은 과학자가 고정관념을 부정확한 것으로 배척하는 이유가 평소에 정치적 공정성을 지키도록 들볶이기 때문에, 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괜히 겸손한 척하기 때문에, 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뒤죽박죽이 된 가정에 의해 편향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살펴본 것처럼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즉, 공식 복지 통계 수치가 맞는 까닭은 우리가 사회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과 관행을 통해 몇몇 집단의 의견을 제한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위축시키면서 다른 집단의 기회는 확장한다. 그러고는 고정관념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이 정확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실재와 관련할 때만 해당된다. 이 실재는 우리가 집단적 개념들을 가지고 먼저 창조한 것이다. 사람들은 당구대 위를 굴러다니며 서로 부딪히는 당구공들의 집합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신체 예산을 조절하고 개념과 사회적 실재를 함께 형성하는 뇌들의 집합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구성되고 서로의 결과가 결정되는 데 기여한다.
일부 독자는 이런 종류의 구성주의 세계관이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입장에서 전형적으로 과도한 동정심을 드러내는 진보주의 상아탑 학자의 견해라며 배척할지 모른다. 실제로 이 견해는 전통적인 정치 노선들을 가로지르고 있다. 당신이 문화에 의해 조형된다는 견해는 전형적으로 진보적인 것이다. 반면에 6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당신이 가진 개념이 궁극적으로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에 대해 당신이 넓은 의미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는 보수주의의 뿌리 깊은 생각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또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여기에는 덜 유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포함된다. 당신은 그들의 뇌 배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견해와 관련이 있다. 전통적인 아메리카 드림에 따르면,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구성적 견해에서도 당신이 당신 운명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환경의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당신이 속한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당신의 뇌 배선이 당신의 나중 의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의 의미: 구성주의의 반격
이효석: 저는 이 책을 하드 사이언스 분야에서 구성주의를 다시 되살리는 책으로 보았습니다. 20세기를 바라보는 한 가지 관점 중에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과학이 객관적 실재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과학적 개념이 사회적으로, 그러니까 과학자 집단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입니다. 전자는 실재론, 객관주의 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구성주의라 불리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관련이 있고요. 실제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후자는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가지는 입장이지요.
물론 과학 절대주의나 과학 맹신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이나 우생학이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민노: 우생학은 너무 악명 높죠.
이효석: 그렇죠. 문제가 있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구성주의에는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있습니다. 과학자가 받는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이 바로 실험 결과에 관해서는 겸허할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어떤 결과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과학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과학의 역사는 그런 자세와 관련된 행운이나 실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고 과학은 이를 밝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성주의는 객관적 진실을 부정하는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온 스티븐 핑커가 쓴 [빈 서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고 환경이 그 인간을 결정한다는 빈 서판 이론을 반박하는 책인데요. 그러니까 빈 서판 이론은 인간은 모두 평등한 빈 서판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이지요.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가진 특성의 아주 많은 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객관주의나 본질주의)이 보기엔 이들(포스트모던, 상대주의, 구성주의)이 하는 이야기가 현실과 다른 그냥 듣기 좋은 이야기처럼 들린 것이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념이 진실을 가린 것처럼도 보이고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이들은 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주장에 그리 귀를 기울이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물론 구성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또 학문의 영역에 따라 그 양상이나 진리의 무게추가 기우는 정도가 매우 다를 것도 같고요.
사실 ‘빈 서판’은 본성 대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과 그대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것이죠. 대체로 과학자들이 본성의 진영에 있었고요. 핑커는 20세기 내내 양육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세했지만, 과학적 증거는 그 반대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키 같은 경우에는 80% 이상 유전자를 통해 결정됩니다. 서로 다른 환경을 경험한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물론 그렇다고 양육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요. 실제로 구성주의 쪽에서도 과학에 근거한 새로운 반격들이 있었죠. 유전자의 경우에도 ‘후성 유전학'(에피제네틱스; Epigenetics)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정보인데,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켜지고, 어떤 유전자는 안 켜지게 만드는 것을 말하고요. 그 환경에 당연히 사회가 포함되고, 따라서 개인의 특성에 사회가 영향을 준다는 것, 곧 양육이 개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물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자주 언급되는 예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의 질병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가 성인이 된 뒤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사회나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들이 이제 다시 또 많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 역시 구성주의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상황에서 한때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감정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이 책이 나온 것이죠.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70년대 표정을 연구한 폴 에크먼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 표정 연구를 통해 모든 문화에는 동일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 책은 그걸 정면에서 반박하고요. 저도 이 책 앞부분인 1, 2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 것일지 갸우뚱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설득이 되었습니다.
폴 에크먼의 주장과 리사 펠드먼 배럿의 주장, 곧 감정은 지문처럼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주장과 감정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뇌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쁨과 슬픔과 같이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호르몬과 같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체가 있을뿐더러 심지어 사회를 가지지 않는 동물들에게도 다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이 책에선 사실 감정의 진화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데, 그래서 그 내용을 저자한테 질문하려고 했던 것이고요. 저자도 그 부분을 부정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뇌가 진화한 건 분명하니까 인간의 정신이나 감정도 진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지만, 유전자와 문화가 같이 진화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Gene-culture Co-evolutionary Theory)과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러면 기본적인 감정, 곧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거나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황을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나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감정은 분명히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존재할 것이거든요.
민노: 그렇겠죠
이효석: 이게 정동(Affec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에도 있죠. 정동에서 보면 유인성(베일런스; Valence; “유쾌부터 불쾌까지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기초적인 느낌. 정동의 한 속성”), 이게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좋고 싫음에 관한 개략적 기준이예요. 그 다음에 흥분의 정도로 2차원으로 정동이 나뉘어져 있고요.
그 두 가지 기준(좋고 싫음, 흥분과 평온) 안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적당히 좋으면서 적당히 흥분되는데 이때 만약 주변 상황이 이러저러할 경우 문화권에 따라서 그 감정을 어떤 이름의 감정으로 분리해서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요. 저도 거기에는 동의합니다.
그 다음에 감정 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 “감정 경험과 지각을 섬세하게 또는 거칠게 구성하는 능력”)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해상도라는 게 좀 더 직관적인 번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핵심은, 우리가 어릴 때는 어색하다든지 민망하다든지 겸연쩍다, 이런 감정을 모르잖아요. 동아시아에서는 체면이 중요하니까 그런 개념들이 있는 거고요. 그런 세부적인 감정들은 특정 문화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좋고 나쁨, 흥분과 고요함 이런 것들은 보편적으로 문화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로 구성주의의 반격이라는 말을 쓰고 싶고요. 그리고 그 반격이 구성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과학자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굉장히 성공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고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동아시아: 2019)라는 책인데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만큼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이 책은 진화 자체에서 구성주의적 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진화론에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진화론의 주요 기작으로 자연선택만이 중시되었는데, 이는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혹은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개체군 내에서 증가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생존에 명백하게 불리한 데도 그저 암컷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발달한 형질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아니면 핸디캡 이론이라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고요. 핸디캡 이론은 꼬리가 큰데도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다른 생존 능력이 매우 강할 거라는 신호를 암컷에게 준다는 이론이고요. 그런데 그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이론이죠. 그렇게 강한 생존 능력을 가진 개체 중에 꼬리가 작으면 더 잘 살아남겠죠.
자연 선택이 아니라, 암컷의 선호에 따라서 형질이 선택되는 것을 성 선택이라고 하는데 지난 100년 동안 무시되어 온 성 선택을 [아름다움의 진화]는 살려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전의 진화는 센 놈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거였고, 사실 기본적으로 이 말은 맞는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암컷의 변덕, 혹은 그저 우연에 의해서도 선호가 만들어지고 그런 요소들이 생물의 다양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요.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와 대립을 넘어서
민노: 이효석 박사께서는 구성주의와 본질주의의 대립에서 본인은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거나 어느 쪽이 더 약점이 있다거나 하는 가치판단이나 경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효석: 그 부분과 관련해, 책 마지막에 저자는 그동안 양측이 상대방의 허점을 과장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민노: 그렇죠. 상대방 이론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그것을 과장해서 때리는 걸 했죠.
이효석: 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확신을 버리고, 의심을 함양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회의적인 태도다. 당신의 경험은 실재를 열어 보이는 창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뇌는 당신의 신체 예산에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세계를 모형화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당신은 이 모형을 실재로서 경험한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경험이 마치 실에 꿴 구슬처럼 별개의 정신 상태가 연달아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신의 뇌 활동은 핵심 내인성 신경망들(Intrinsic network; “우리가 별다른 일도 하지 않는데 작동하면서 예측을 내놓는 모든 신경망) 전체에 걸쳐 연속성을 지닌다. 당신의 경험은 두개골 밖의 세계가 촉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예측과 수정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 형성된다. 역석적이게도 우리의 뇌가 창조한 마음이 뇌를 오해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3장 ‘뇌가 창조한 마음 뇌를 오해한 마음’ 중 ‘확실성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제가 [스켑틱: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마이클 셔머, 이효석 옮김, 바다: 2020)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회의주의가 바로 과학의 기본입니다. 곧, 어느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생각을 지지하되, 언제든지 그 생각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염두에 두는 것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 상당수는 객관적 실재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성주의를 약간은 비토하고, 거부하는 입장이 많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민노: 과학자 다수는 구성주의에 반감 갖고 있을 것이다?
이효석: 위에서 빈 서판을 이야기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바램과 무관하게 실험 결과가 나오면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구성주의에서는 평등과 같은 가치가 객관적 실재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 곧 자연이라는 심판관을 부정하는 태도를 적어도 하드 사이언스를 하는 과학자들은 과학 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보았을 듯합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과학자들은 편도체가 손상된 사람들이 공포를 경험하고 지각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SM’이라고 불린 여성의 사례였다. 이 여성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서서히 편도체가 소멸되는 우르바흐-비테(Urbach-Wiethe)병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SM의 정신 상태는 건강해 보였으며 지능도 정상이었지만, 실험실에서 그가 공포에 대해 보인 반응은 무척 이상해 보였다. 과학자들은 그에게 [샤이닝]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공포영화를 보여주기도 했고, 살아 있는 뱀이나 거미를 곁에 놓기도 했으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흉가로 그를 데려가기도 했지만, 그는 별다른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 중략…)
전반적으로 볼 때 SM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의 손상된 편도체가 그 이유인 것처럼 보였다. 과학자들은 이 증거와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편도체가 뇌의 공포 중추(fear centre)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던 중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은 SM이 몸의 자세로 표현된 공포를 볼 수 있으며 목소리로 전달된 공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이산화탄소가 다량 함유된 공기를 들이마시면 SM이 커다란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정상 수준의 산소가 결핍되자 SM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이렇게 SM은 몇몇 조건에서는 편도체 없이도 분명하게 공포를 느끼거나 지각할 수 있었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 중 ‘뇌를 분석해 감정 읽기’, 2017. 중에서
편도체-공포중추 가설과 옴니제닉 모델
민노: 보통의 독자를 대신해서 궁금한 걸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편도체-공포 중추 가설은 깨진 건가요?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특정 신체 부위가 있나요, 없나요? 리사 교수는 없다는 거잖아요. 편도체 가설은 깨졌다고 리사 팰드먼은 말하고 있는데요.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호평을 받고 있는 그의 책 [감정적인 뇌; Emotional Brain]에서 공포 학습이라는 견해를 일반화시켰고, 이제 쥐를 언급할 때는 ‘공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면 르두는 보기 드물게 지적 용기를 가진 과학자다. 르두는 이른바 공포 학습을 다룬 논물을 수백 편 발표하고, 뇌의 공포 기초인 편도체를 다룬 인기 있는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 증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그의 수정된 견해에 따르면, 꼼짝 않는 것은 위험에 처한 동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생존 행동이다. 그의 고전적 실험은 공포와 같은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가 꼼짝 않는 행동을 통제하는 생존 회로라고 부르는 것을 보여준다. 르두의 이론 변화는 마음과 뇌의 새로운 과학적 혁명의 또 다른 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감정 이론으로 나아가게 한다.”
리사 팰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2장 동물도 화를 내는가?, ‘꼼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 추론 오류’, 2017. 중에서
이효석: 잘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최근에 조지프 르두(Joseph E. LeDoux)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은 이렇습니다.
뇌는 전체적으로 작동하는 게 맞아요. 그렇지만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역할을 한다고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뇌의 특정 부위를 다쳤을 때 말을 잘 못하게 되기도 하고, 또 특정 부위 뇌 세포가 죽으면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거나. 이런 것도 분명히 사실이에요.
사실 이것도 어떻게 볼 수 있느냐 하면 아까 유전자에 관해 언급한 것처럼 특정 유전자가 특정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특정 유전자 하나, 가령 혈우병 같은 게 대표적인 거고요. 그래서 옛날에는 키를 크게 하는 유전자 하나,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유전자 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거죠. 왜냐하면 인간의 특성이라는 게 정말 너무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실제로 봤더니 키에는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1천 개 이상 있고요. 하지만 어떤 유전자는 단 하나가 없을 때에도 어떤 병을 일으키기도 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유전자는 서로 연결돼서 어떤 특성을 하나를 만들어내거든요. 그걸 옴니제닉 모델(omnigenic model)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그래야 말이 되죠. 왜냐하면 인간의 유전자 수가 약 2만~3만 개 정도인데 인간에게 발현되는 특성은 우리가 구분하기에 따라 훨씬 더 많으니까요. 뇌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뇌의 기능이라는 것도 정말 나누기만 하면 무궁무진하잖아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뇌를 예측 모델이라는 형태로 설명합니다.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고, 계속 들어오는 외부 감각 신호를 바탕으로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 이 신호들이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지를 판단해서 예측하는거죠. 고통도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고요. 즉, 뇌의 특정한 한 부위가 고통을 담당한다기보다 외부 신호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고통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니 뇌의 모든 부위가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할머니 뉴런 처럼 뉴런 하나가 특정한 기억에 연결된다는 이론도 있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신체의 운동을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기능에 뇌의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닐 거고요. 적어도 리사 교수가 이야기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감정은 뇌의 여러 기능을 다 필요로 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뇌가 예측 모델이라는 것은 다른 뇌 과학 책에도 나오고, 실제 현실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노: 첫 질문이었던 편도체 가설로 다시 돌아가면요.
이효석: 네, 그러니까 저는 그 편도체 가설도 리사 펠드먼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뇌의 신경이 회로를 구성한다고 말하니, 여러 신경들이 다양한 형태로 연결 되어 있을 수 있고, 어떤 특정 부위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겠죠. 왜냐하면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뇌의 특정 부위를 다쳤을 때 특정 기능을 못하게 되는 그런 현상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민노: 다만, 그걸 단적으로 그 특정 부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거는 또 오류다는 거죠?
이효석: 그렇죠.
참고하면 좋은 글:
- BRIC, 편도체가 없으면 정말로 ‘겁없는 사람’이 될까? (2013. 2. 6.)
- Nature, Researchers scare ‘fearless’ patients (2013. 2. 3.)
- EBS, 위대한 수업, 조지프 르두 – 공포의 뇌과학 3강 ‘편도체의 진실’ (2021)
- 뉴스페퍼민트, 만약 모든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2017. 7. 5.)
- 2023년 최신 기사를 기준으로 하면 키를 결정하는 유전자는 뼈와 뼈를 이어주는 연골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되고, 노라 렌탈 연구팀은 연골세포 성숙 과정에서 145개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1만 2000개의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 다만 이 최신 연구로도 키 차이가 생기는 원인의 40% 정도만 설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참조: 동아사이언스)
인간은 불완전하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뇌가 단순히 통각을 지각하고 표상하면, 보란 듯이 당신이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통의 내부 작용은 예측성 뇌에서 더 복잡하다. 고통은 신체적 손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험일 뿐만 아니라 뇌가 손상이 임박했음을 예측할 때 일어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뇌의 다른 모든 감각 체계가 그러하듯이 만약 통각이 예측에 의해 작용한다면 당신은 ‘고통’ 개념을 사용하는 더 기본적인 부분에서 고통 사례를 구성한다. 내 견해로는 고통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병원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는다고 상상해보라. 이전에 주사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뇌는 살갗을 뚫고 들어올 바늘에 대해 예측함으로써 ‘고통’ 사례를 구성한다. 당신은 바늘이 팔에 닿기 전에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 당신의 예측이 신체로부터 온 실제 통각 입력(바늘 주사)에 의해 수정되어 예측 오류가 처리되면, 당신은 통각 감각을 범주화하고 이것을 의미있게 만든다. 주사 맞을 때 경험하는 고통은 실제로 당신의 뇌에 있다.
두 가지 관찰이 나의 예측 기반 고통 설명을 뒷받침한다. 주사 맞기 직전처럼 고통을 예기할 때는 통각을 처리하는 뇌의 부위가 이것들의 활동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당신은 고통을 시뮬레이션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이 현상을 노시보(nocebo) 효과라 한다. 아마도 당신은 대응 관계에 있는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더 익숙할 것이다. (…중략…) 플라시보와 노시보는 통각을 처리하는 뇌 부위의 화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0장 ‘뇌의 잘못된 예측이 내 몸을 망친다’ 중 ‘잘려 나간 팔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유’, 2017, 중에서
민노: 어쨌든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구성주의의 반격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야, 이런 건 독자에게 참 좋았겠구나, 나 같은 과학자가 아니라도.’ 그런 면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이효석: 이 책에서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정신적 고통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리사 교수님이 이야기하듯, 본질주의적 사고에서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구분됩니다. 아무래도 신체적 고통은 어떤 물리적 상태 변화와 관계있고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사회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신체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오랜 시간 동안 정신적 피해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고요. 하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 정신적 고통이 실제 병의 원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때문에 모욕이라든지 괴롭힘 같은 것이 최근에야 법적인 영역으로 포섭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리사 펠드먼은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다른 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자연현상이 많은데 플라시보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효과가 없는 약인데 그 약에 대한 신뢰 만으로 병이 낫는 현상이고요. 이 책의 접근 방식, 곧 뇌가 예측모델이라는 설명이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까, 리사 교수님의 설명처럼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실제 물리적 피해나 고통 신경의 신호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뇌의 예측에 좌우되는 것처럼, 어떤 약이 그 약의 성분과 무관하게 뇌로 하여금 인간이 가진 어느 정도의 자기치유 능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한편으로,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감각이 완벽하지 않다는 연구가 매우 많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요. 어떤 면에서 완벽하지 않는가 하면, 인간의 감각이나 기억이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고요.
미각이라든지 후각 가령, 와인 같은 거요. 이건 실험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인데, 와인 전문가들이 1970년대에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은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미국 와인을 무시했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소믈리에들이 모여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게된 일이 있었는데 구별을 못한 거죠. 인간의 감각은 이 책에서 말하는 정동 실재론(Affective realism; “내가 보거나 듣거나 기타 방식으로 지각하는 것이 내수용에 따라 좌우되는 현상”, 내수용: “신체의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기분에 따라 외부 세상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거죠.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책에서도 비슷한 예가 나오는데 태극기 부대들이 데모할 때와 젊은 사람들이 데모할 때, 사실 같은 행위인데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그들의 폭력성을 다르게 판단하는 거죠.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 객관적일 수 있는 감각 정보까지도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이헌 현상이 리사 펠드먼의 프레임으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실험인데 높은 곳에서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했더니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것도 있죠.
민노: 비슷한 에피소드를 책에서 리사 펠드먼이 언급하죠. 학교 친구한테 애정을 느꼈는데 알고보니까 감기였다.
이효석: 그렇죠.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사실 그게 현실이고 실제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고요. 그런 것들을 이 책이 잘 설명하고 있지요.
민노: 저는 이 책이 좋았던 이유가 감정적으로 굉장히 좀 힘들 때가 많았어요. 물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겠죠.
이효석: 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민노: 저는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효석: 그거 너무 좋은 거죠.
민노: 그러니까 위로가 됐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세상을 사는 어떤 작은 지혜 같은 것들이 뇌 과학의 이야기고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운동 끝나면 마사지도 좀 하라고 조언하잖아요. 자기 딸 얘기도 하고, 남편 얘기도 하고, 자기 데이트했던 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이야기를 굉장히 잘 끌고 가는 느낌이라서 이야기로서도 되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효석: 맞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민노: 그런데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이에요? 가령, 무인도에 책 5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효석: 예전에 좋았던 책을 다시 읽으면 아주 좋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는 새로운 책들 가져갈 것 같아요. 사실 최근에 읽고 저도 굉장히 위로가 된 책이 하나 있는데요.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2022)이라는 책입니다. 도파민에 대해 설명하는 흔한 뇌 과학 책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도 훌륭하고요. 읽은지는 한 7~8년 됐는데 이 책도 아주 좋고요. 시대를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책입니다. [도파민네이션]도 그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빅테크의 표정-감정 연구는 낭비인가
오늘날 있지도 않은 감정의 실체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망각 때문에 그만큼 더 가난해진 셈이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감정을 인식하겠다는 목표 아래 얼굴 사진을 분석한다. 애플은 최근에 인공지능 기법을 사용해 표정에서 감정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이모션트(Emotient)라는 신생 기업을 인수했다.
몇몇 회사에서는 표정에서 감정을 탐지하는 프로그램을 구글 글래스에 적용해 자폐아를 돕는 장치를 개발 중이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정에서 투표 선호도를 읽어낸다는 이른바 신경정치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업가와 과학자가 여전히 본질주의에 몰두하는 동안 감정에 관한 가장 긴급한 몇몇 물음은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고, 중요한 물음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견해’ 중 ‘심리학을 어지럽힌 행동주의’,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책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가 애플이나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빅테크들이 표정-감정 인식 연구를 위해 지금 헛돈 쓰는 것일 수도 있어, 이렇게 비판적으로 리사 교수는 말하고 있는데요.
이효석: 저는 이 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제가 조금 관심 있는 부분이라 어느 정도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표정으로 감정을 판단하는 문제의 경우, 우리가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어떤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이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는 알 수 있거든요. 그건 우리가 가진 상식이죠. 물론 이 책에 아주 인상적인 사진이 나옵니다. 약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책이 주는 놀라움을 나중에 책을 읽을 때 온전히 느끼고 싶으신 분은 이번 문단을 건너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불안하면 다음 문단(링크)으로 건너뛰세요.
이효석: 책 초반에 한 흑인 여성이 어떤 극단적인 흥분 상태로 괴성을 지르는 표정을 찍은 사진(위 책 사진 참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을지를 맞추어 보라고 말하지요. 분명 사진만으로는 이게 어떤 공포나 분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찍은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 사진은 바로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인 세레나 윌리암스가 자기 언니 비너스 윌리암스를 이긴 다음에 기쁨의 괴성을 지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만으로는 그녀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표정이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떤 객관적으로 드러난 상태만으로 감정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 책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아주 좋은 사진이라 생각하고요.
빅테크의 표정-감정 연구는 낭비가 아니다
이효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의 높은 확률로 상대의 감정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화할때 우리는 상대가 내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그 이야기를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주제를 꺼낸지를 판단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민노: 10개 중에 7개나 8개 정도 확률로 저 표정은 저런 감정에서 나온 표정일 거야라고 알 수도 있겠지만, 잘못 인식한 나머지 2~3개의 표정도 중요할 수 있잖아요.
이효석: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어떤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한 일반적인 반응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V에 카메라를 달아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서 광고나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겠죠. 책에 나오듯이 선거철이라면 정치인이 화면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표정)을 통해 그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을 예측할 수도 있고요.
스마트폰의 경우 훨씬 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면에 카메라가 있고 이 카메라가 우리 얼굴을 항상 보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보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모든 컨텐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측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표정 데이터를 사용하는 일을 우리가 허락해야겠지요. 어쨌든 그런 방식의 감정 연구는 당연히 의미가 있을 것 같고요.
물론 리사 펠드먼의 말처럼 같은 표정이나 반응에 대해서도 문화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책에 나오듯, 보스톤 테러 사건 범인인 체첸계 미국인 테러리스트(조하르 차르나예프)는 자기 문화권(이슬람 수니파)에서는 무표정하게 담담하게 있는 행동이 남자다운 행동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던 건데 미국의 배심원들은 이 테러리스트가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민노: 네, 책에서 그런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죠.
메타버스 캐릭터가 ‘선글라스’ 많이 끼는 이유
이효석: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VR의 경우 메타버스 안에서 돌아다니면 캐릭터의 눈에 선글라스를 끼도록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눈을 드러낼 경우 상대방의 시선 방향을 우리가 어색하게 느끼게 되거든요. 그리고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도 만들고요. 또 지금 상황에 맞는 표정이 나타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지금 애플이나 메타(페이스북)가 준비하고 있는 게 VR기기 안쪽에 카메라를 두고 눈을 촬영하는 겁니다. 그 카메라가 눈과 눈 주변 근육을 보고 이 사람 표정이 메타버스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어서 더 사실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아직 입 모양을 카메라로 찍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입 까지 찍으면 표정을 더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겠죠.
여기에 목소리의 톤이나 대화 내용까지 어떤 식으로 학습한다면 더 완벽한 감정 파악도 가능하겠고요. 그때도 냉소적인 표현과 진짜 칭찬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메타버스에서 표정과 감정은 충분히 연구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민노: 그러면, 이 책에서는 빅테크가 표정 연구하는 것에 관해서는 리사 교수가 좀 과장했을까요. 아니면 너무 거칠게 서술했을까요. 돈 낭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썼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이효석: 약간 그렇네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기술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리사 교수가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런 기술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이고요.
민노: 이게 제한적으로나마 의미가 있고 상업적인 효용성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약점이 있기 때문에 100% 효용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과장이다?
이효석: 아, 네 그 정도.
감정은 17세기 발명품?
감정에 대한 대다수 과학적 연구는 미국식 개념과 미국식 감정 단어를 사용해 번역되어 영어로 수행되었다. 저명한 언어학자 안나 비에르츠비카(Anna Wierzbicka)에 따르면 영어는 감정의 과학이 갇힌 개념적 교도소였다. “감정에 관한 영어 용어들은 민속적인 분류체계이지 문화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분석틀이 아니다. 혐오, 공포, 수치심 같은 영어 단어가 마치 인간의 보편적인 개념이나 근본적인 심리적 실재를 밝히는 단서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명백하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
사태를 더욱 제국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감정 단어가 20세기 영어에서 가져온 것이며 일부는 매우 현대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감정(emotion)이라는 개념 자체도 17세기의 발명품이다. 그 전에는 학자들이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는 ‘열정’(passion), ‘정취’(sentiment) 등의 개념을 사용했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중 ‘일곱 색깔 무지개와 여섯 색깔 무지개’,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감정이라는 개념 자체도 17세기의 발명품이다.” 이런 표현까지 나오는데요.
이효석: 세네카가 쓴 [화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거든요.
민노: 세네카는 굉장히 옛날 사람이잖아요.
이효석: 네, 2천 년 전이죠. 그러니까 이 화(분노)라는 거는 아까 제가 말했던 어떤 개략적인 긍정, 부정 이 수준에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 당연히 17세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거고요. 리사가 얘기한 17세기의 발명품이라는 건, 좀 더 풍부한 여러 감정들, 그러니까 책에서 ‘적소’(niche)라고 이야기하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행동 양식이나 느낌을 감정이라는 것으로 분류하고 이를 특별하게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일 수는 있겠죠.
아기의 패턴 학습
페이 쉬와 그의 학생들은 이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생후 10개월 된 아기들에게 물체를 보여주면서 물체마다 ‘욱’, ‘닥’ 같은 무의미의 이름을 부여했다. 제시된 물체는 개 모양의 장난감, 물고기 모양의 장난감, 여러 색의 구슬이 달린 원기둥, 고무 꽃이 달린 직사각형 물체 등이 포함되어 있고, 서로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물체마다 종소리, 달가닥거리는 소리 같은 잡음을 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아기들은 패턴을 학습했다. 상이한 물체에 걸쳐 똑같은 무의미의 이름을 들은 아기는 물체의 모양과 상관없이 이런 물체가 똑같은 잡음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두 물체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잡음을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기가 단어의 소리를 바탕으로 물체가 똑같은 잡음을 낼지 아닐지를 예측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외양을 넘어서는 패턴의 학습이기 때문이다. 단어는 아기로 하여금 상이한 것들을 등가로 표상하도록 자극함으로써 목표에 기초한 개념의 형성을 촉진한다. 실제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아기는 단어 없이 물리적 유사성으로 정의된 개념보다 단어를 제시했을 때 목표에 기초한 개념을 더 잘 학습한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5장 ‘개념과 단어의 통계학’ 중 ‘창조적 통계학자들’,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아기들이 패턴 학습을 한다고 지적하잖아요. AI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AI도 인간처럼 패턴 학습을 하는 건가요?
이효석: 네, 우선 AI라는 게 기본적으로 패턴을 찾는 것이고요. 사실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것 자체는 통계나 기계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있었고요. 어떤 수준의 패턴이냐가 중요할텐데, 최근 딥러닝 기반의 AI는 이미지나 소리와 같은 예전에는 잘 다루지 못했던 복잡한 패턴을 아주 잘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성능을 보이게 된 거고요.
그런 놀라운 성능의 이유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 딥러닝 기술이 인간 뇌의 뉴런을 흉내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뇌의 입장에서는 시각 신호나 청각 신호가 그저 어떤 전기 신호로 들어오는 것인데, 예를 들어 고양이를 매우 잘 구별하거든요. 고양이 모습의 패턴을 잘 구별해낸다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AI도 인간처럼 패턴 학습을 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본문의 예는 장난감의 모양과 소리, 그리고 장난감의 이름을 아기들이 묶어서 패턴 학습을 하더라, 곧, 같은 이름의 장난감들은 같은 소리를 낼 것이라고 아기들도 예측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초기의 딥러닝과 사람의 뇌 사이에 차이가 많았죠. 예를 들어, 아이는 고양이 몇 마리만 만져봐도 아니면 실제로 보지도 않고, 그냥 영상으로만 봐도 고양이를 알잖아요. 그런데 AI는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고양이 사진 몇 만 장을 학습시켜야만 했죠. 그래서 인간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나오는 ‘퓨샷 러닝’(few-shot learning)이라는 기술은 고양이 사진을 몇 장 안 넣어도, 물론 그 그전에 고양이가 아니라 개에 관해서 학습을 많이 해놓으면, 사실 개랑 고양이는 다른 점도 많지만, 비슷한 점도 훨씬 많잖아요. 그렇게 고양이 사진을 예전처럼 몇 만 장이 아니라 아주 적게 몇백 장 몇십 장만 가지고도 고양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기술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 걸 보면 인간 아기의 뇌 안에 기본적인 인간의 형태라든지 동물의 형태라든지 이런 지식이 들어 있다고 하면 그거랑 AI랑 좀 비슷하지 않느냐는 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리는 실재하는가, 감정은 실재하는가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난 것인가? 철학자들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수도 없이 던진 이 케케묵은 물음은 인간의 경험에 관해, 그리고 특히 우리가 어떻게 감정을 경험하고 지각하는지에 관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이 수수께기에 대한 상식적인 답변은 “예”다. 당연히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난다. 만약 당신과 내가 당시에 그 숲을 걷고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나무가 쩍 갈라지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 몸통이 땅바닥에 쿵하고 부딪히는 굉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이 소리가 났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에 대한 과학적 답변은 “아니오”다. 나무가 쓰러진다고 해서 그 자체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쓰러지면 공기와 지면에 진동이 일어날 뿐이다. 이 진동이 소리가 되려면, 이것을 받아들여 변환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즉 뇌에 연결된 귀가 있어야 한다. 포유동물의 귀라면 이 일을 훌륭히 해낼 것이다. 공기 압력의 변화가 외이로 수집되어 고막에 집중되면 중이에서 진동이 산출된다. 이 진동으로 내이 안의 유체가 움직이면, 그곳의 섬모를 통해 압력 변화가 뇌에서 받아들이는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이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소리도 없으며 오직 공기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7장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2017, 중에서
민노: 이 책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지는 나무와 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죠. 인간의 시각적 가시 범위에 관해서도 이어서 말하고요. 감정도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마치 화폐와 같은 사회적 실재라고 말합니다. 소리도 물리적 실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포유동물의 청음기관과 뇌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고 책에서는 설명하는데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말 소리는 객관적으로 없습니까? 리사 교수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겁니까?
이효석: 그건 정말 많이 나오는 얘기거든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소리가 과연 존재하는가. 그런데 저는 이게 번역의 문제, 혹은 해당 언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영어 ‘사운드’를 한글 ‘소리’로 번역해서 생기는 문제 같고요. 저는 한글의 ‘소리’라는 개념에서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나무가 떨어졌을 때 생기는 공기 움직임도 소리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 같아요. 하지만 영어에서 ‘사운드’는 그걸 듣는 누군가가 있어야, 그 공기의 움직임을 사운드라고 표현하는 모양이고요.
민노: 그러면 그 부분 서술은 과장된 서술인가요? 어떻게 평가하세요?
이효석: 그 부분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책 뒤에서 동물의 감정 얘기할 때도 나오지만, 마치 대화가 두 사람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처럼, 감정이라는 것도 사회 안에서 정의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저도 동의하고요.
민노: 그렇죠. 집단지향성(Collective intentionality;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점에 대한 특정 집단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 얘기도 나오고,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점에 대한 특정 집단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 이것은 언어를 통해 공유된다.”) 얘기도 나오고, 언어와의 결합도 중요하다고 말하죠.
이효석: 감정이라는 개념 자체나 아니면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인식하고 하는 것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거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은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정하죠.
민노: 제가 질문드린 건 그런 것보다는요. 이 책이 잘못 번역될 수도 있고, 제가 이 책을 잘 못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독자는 그냥 이렇게 읽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소리라는 게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없는 거야? 감정도 결국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구성해 내는 거야? 결국, 감정도 없는 거야? 이럴 수 있잖아요. 소리라는 건 가청기관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어떤 포유 동물의 어떤 전유물이야? 감정이라는 것도 인간만의 어떤 전유물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이효석: 네, 그게 바로 이 책의 핵심인데요. 결국은 소리라는 것 자체가. 음. 일단 그전에 모든 단어, 모든 개념이 어떻게 보면 언어를 통해서 정의되잖아요? 물론 정의 자체가 바뀌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정의에 사용되는 단어, 개념들 역시 다시 언어이고, 그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용 방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요.
물어보신 내용으로 돌아가서, 그럼 소리라는 게 물리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이나 동물이 없는 숲에서는 없는 것이냐가 질문인데, 그런 상황에서 물리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기의 진동을 소리가 아닌 걸로 어떤 사회는 정의할 수도 있겠죠, 그 사회의 약속으로.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 한국어 단어인 ‘소리’ 개념에서는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 숲에서 나는 물리적, 객관적 공기의 진동도 다 소리에 속하지 않나하고 저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민노: 그 숲에 가청기관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없더라도?
이효석: 없더라도.
민노: 공기 진동, 움직임만으로 저건 ‘소리’라고 해석을 해야 된다라는 거죠.
이효석: 저는 한국어에서 소리라는 개념이 아우르는 범위가 그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물리적 객관적 공기의 진동을 들을 때 그것이 사운드(Sound)가 되는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이렇게 논쟁이 되는 걸로 봐서는… 정도의 의견입니다.
사운드 ≠ 소리
민노: 그럼 리사 교수의 그 부분 설명은 상대주의를 좀 옹호하거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과장되게 인용됐다고 보시는 거예요
이효석: 아니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이건 영어 문화권에서는 그 예가 적절할 수 있는데, 이 쪽으로 번역이 되면서는 그 예가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단어에 의미 차이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예를 그동안 사람들이 깊게 생각 안했는데 자꾸 이런 예를 생각하게 되면서 한글 ‘소리’도 듣는 주체가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으로 바뀔지도 모르고요.
민노: 그럼 영어 ‘사운드’와 한글 ‘소리’ 는 달라요?
이효석: 음… 이거는 굉장히 핵심적인 문제들을 자꾸 물어 보시는데요. 사실은 또 그에 답할 수 있는 유명한 명제가 있기도 하지요. 훔볼트가 지적한 것처럼 두 언어 사이에 완전하게 서로 동일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은 평생을 통해 모어(母語)에 의해 제어되며, 모어는 실제로 인간을 대신한다.”
훔볼트
- 어떤 A라는 인간과 B라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는 사유로부터 독립해 있지만, 동시에 사유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훔볼트는 외교관으로서 직접 다수 외국어를 체험하면서 그 비교 연구를 통해 민족마다 고유한 사고방식이 각각의 언어에 새겨져 있고, 그것이 역으로 그 언어에 속한 개인의 사고를 제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개정증보판 중 발췌)
- 인간이 언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인간이 생각하는 범위와 한계를 지배한다. 가령, 열대 지방에 야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50~60가지인데 그것을 총괄하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언어가 있고, 빛깔에 관해선 200가지가 넘는 명칭을 가지고 있어서 식물 명칭은 단 네 개뿐인 언어도 있다. 어떤 객관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가 없는 인간은 그 대상에 관해서는 사유할 수 없다는 게 훔볼트의 생각이다. (참조: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철학사39’ 빌헬름 훔볼트 중 발췌)
민노: 아, 완벽하게 서로 매칭되는 단어는 없다.
이효석: 네. 어쨌든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감정이라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이 역시 상대방이 있어야 그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두 사람이 공유하는 어떤 문화 안에서 존재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고요. 그러니까 아무도 듣지 않는 숲의 소리라는 비유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민노: 이효석 박사 말씀을 듣고 있으니 진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네요. 이 박사께서 어려운 책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설명을 듣고 보니까 좀 어느 정도, 정확히는 아니어도, 아 이런 맥락들에서 어려운 책이라고 말씀하셨구나 싶네요.
이효석: 네.
뇌, 이야기 만들어 내는 기계
“바로 지금, 당신이 ‘사과’라는 단어를 읽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뇌는 마치 사과가 실제로 앞에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과거에 보았고 맛보았던 사과에 관한 지식들을 조합하여 당신의 감각과 운동 부위에 있는 뉴런들의 점화 방식을 바꿈으로써 당신의 머릿속에서 ‘사과’라는 개념의 한 사례를 구성한다. 당신의 뇌가 감각과 운동 뉴런을 사용해 눈앞에 있지도 않은 사과를 꾸며내는 것이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심장 박동만큼이나 빠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2장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설계한다’,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이효석: 뇌가 ‘예측 기계’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뇌에 관한 최신 해석이고요. 또 동시에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이것도 리사 교수도 말하고 있지만, 뇌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는 기계거든요.
민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계요?
이효석: 예전에 뉴스페퍼민트를 같이 하는 유혜영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꿈을 꾸는데 늑대한테 쫓기는 꿈이었데요. 그때 약간 몸도 안 좋고 해서 막 땀을 흘리면서 쫓기고 있었는데 늑대에게 따라잡히는 바로 그 순간, 남편인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님이 자기를 깨웠대요. 그때 “혜영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깨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게, 어떻게 자기가 늑대에게 따라 잡히는 그 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남편이 자기를 깨웠는지 신기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그 당시에 이런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아니고 아마 다른 이유로, 지금 이 책의 표현으로는 내수용(“신체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 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에 의해서 몸이 좋지 않아서 땀을 흘리면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때 송 편집장님이 부인의 몸이 안 좋아 보이니까 유교수님을 깨운건데, 그때 몸이 흔들리면서 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땀을 흘리면서 몸이 흔들리니까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런 답을 드린 적이 있죠. 늑대한테 쫓겨서 도망가고 있었고, 늑대한테 딱 잡히면서 몸이 흔들린 거다라는 꿈을 만들어냈을 거라는 거죠.
민노: 그러니까 순서가 순서가 바뀐 거다.
이효석: 그렇죠. 그런데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이런 거거든요.
민노: 꿈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러면 꿈은 시간적으로는 아주 찰나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효석: 뭐 그런 꿈도 있고, 아닌 꿈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많은 꿈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영화 ‘인셉션’을 보면 꿈에서는 뇌의 활동이 빨라져서 시간이 20배 더 느리게 가는 것으로 나오죠. 한가지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최근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강의를 하는데요. 과학자가 보는 세상이나 자기계발에 관해 이야기하는거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요.
그런데 제 강의를 들은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병원에서 의식을 잃었던 사람의 유체이탈 경험담이 많지 않느냐고. 자기가 병실 위에서 육체와 분리되어 밑을 바라보고 있고, 의사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대화를 하고, 그런 걸 지켜보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느냐고 물어보신 거죠.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을 듣고 바로 얘기했죠. 그건 아마 그 사람이 깨어날때, 그런 기억을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하고요.
민노: 깨어나는 비몽사몽인 순간, 그 경계에 있을 때?
이효석: 그렇죠. 아마 그 사람도 예전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겠죠. 영혼이 올라가서 이렇게 자기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죠.
민노: 그런데 강의를 하고 계신 건가요? 어떤 내용으로 강의하시나요?
이효석: 그냥 흔한 자기계발인데, 쉽게 말해서 하지 말라는 것들, TV나 유튜브, 게임, 술이나 담배 이런게 있고, 동물이나 음악 같은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등이고요. 그런데 하지 말라고만 하면 설득력이 없으니까 왜 그런지를 좀 과학적으로. 인간이라는게 어떤 존재인부터 시작해서 과학적 세계관 등등을 바탕으로.
민노: 오늘은 잠을 푹 자고 싶었는데, 잠을 못잤네요.
이효석: 수면도 제가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고요. 우선 체중과 수면은 커다란 공통점이 있어요. 두 가지 다 일상, 삶의 순간순간에 큰 영향을 주는데, 또,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다시 이 두 가지에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수면의 경우, 기본적으로 카페인, 술, 스트레스 세 가지를 줄이는 것이 좋고요. 가능하면 없애면 가장 좋죠.
그리고 수면위생이라고 해서 침실 환경을 수면에 맞게 바꾸는 것이 중요하고요. 낮은 온도가 중요하고 새벽에 깨지 않고 싶으면, 암막 커튼도 좋고요. 화장실때문에 깬다면 자기 전에 물을 덜 마시는것과 방광근육을 단련시키는 것도 필요하고요. 휴대폰을 침실에 가져가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민노: 저는 휴대폰에 그렇게 의존적인 편은 아닙니다.
이효석: 그건 아주 좋네요. 요즘 사람들이 제일 제일 어려워하는 거죠.
민노: 그럼에도 저 역시도 휴대폰은 이미 신체화가 됐죠. 없으면 이게 무슨 진짜 팔이 하나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죠. 강한 건 아니지만, 내 신체 일부분이 어디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에요.
이효석: 정확합니다. 그런 연구들이 많이 있죠.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두기만 해도 사람의 신경이 분산되는 걸 보인 그런 연구요.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을때 제가 어떤 속도로 읽고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는데요.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어렵지 않은 책이라면 1분에 한 페이지 이상 읽어야 되거든요? 물론 책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요. 제가 최근에 발견한 것이, 핸드폰을 책상 위에 둔 경우랑 가방에서 꺼내지 않은 경우랑 차이가 크더라고요.
여담: 용어 번역상의 아쉬움
민노: 제가 이 책을 좋아해서 세 번째 읽었는데요. 정확히는 전자책 TTS로 세 번째 들었죠. 운동하거나 산책하면서. 아무래도 이효석 박사처럼 배경 지식이 있는 게 아니니까 들을 때마다 새롭긴 한데, 들을 때마다 용어들이 헷갈리더라고요. 특히 ‘내수용’이라는 용어는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헷갈리더라고요. 정동(Affe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이나 ‘감정 입자도’도 그렇고요.
이효석: 맞습니다. 저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번역자 잘못이라기보다는요. 기존에 이미 그런 용어를 쓰고 있더라고요. 일단 정동은 심리학에서 원래 쓰는 있는 용어고요. 아마 내수용도 제가 알기로 이 책에서 처음 쓴 것 같지는 않고요.
민노: 저는 그래도 좀 번역의 묘를 살릴 수 있지 않나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이미 다른 분야에서 쓰고 있는 용어라고 하더라도 너무 비직관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이 강해서요. 계속 걸리더라고요. 또 계속 반복적으로 쓰이잖아요.
이효석: 그렇죠. ‘내수용 감각’이라고 다 써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니면 ‘내적 체감’ 이런 식으로 약간 풀어서 설명하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수용이라고만 해서 자주 쓰니까요. 수출용 / 내수용 이런 단어도 떠오르고요. 그런데 저도 책을 한 번 번역해 보니까 이 책 번역자도 참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용어 번역에 좀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 번역하기도 힘드니까요. 왜냐하면 번역이 정말 좋지 않은 책들도 많거든요.
민노: 네, 그렇긴 하죠. 책 맨 뒤에 있는 용어 설명에서 내수용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냐면요. “신체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 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이 용어 설명조차도 너무 함축적이라서요. 너무 불친절하죠. ‘내수용 신경망’에 관한 설명도 “내수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부의 집합”이라는 건데 이런 설명은 뭐 정말 하나마나한 설명 같아요.
이효석: 네, 그렇죠. 저는 이 책 뒤에 있는 용어 해설을 그냥 원래 책에 있는 건지 아니면 추가해서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넣은 건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물론 책을 읽을 때 이런 별도의 용어 설명이 도움이 된다 자체가 좀 문제지만요.
민노: 배경 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를 위해 교양서로 쓰여진 책이니까 좀 어려운 말, 낯선 용어는 책 맨 뒤에 죽 따로 설명할 게 아니라 해당 표현이 나오는 부분에 박스 해설로 넣거나 그랬으면 좋겠어요. 괄호 설명으로 계속 익숙해질 때까지 환기도 해주고요. 일종의 교통안내 표지처럼, 여기 지금 울퉁불퉁한 길이니까 조심해야 돼, 이렇게요. 그런 친절한 장치들이 조금 한두 개라도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왜냐하면 다른 내용은 그런 용어들을 빼놓고는 다른 서술들은 이해가 굉장히 쉽거든요. 서술 자체도 뭐랄까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친절하고, 평안한 문체죠. 그런데 용어의 문턱이 약간 있는 것 같아요.
이효석: 어쨌든 어려운 책인 건 사실입니다.
민노: 저는 교양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꼈어요. 내용 자체도 과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가설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분야, 가령 책 후반부에서는 법률에 미치는 영향를 분석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신체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들에 관해 친절하게 제안하고 있기도 하고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감정도 스트레스도 그것이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구성하는 것이다. 이 가설 같습니다.
이효석: 그렇죠
민노: 감정이 법률 혹은 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법조계, 특히 판사나 배심원의 일반적인 선입견을 다루는 부분, 남성 피고인과 여성 피고인을 다르게 취급하는 관습적 차별도, 아주 새로운 이야긴 아니지만, 감정이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는 점에서 과학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감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책의 내용이 저에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효석: 실제로 이제 책에서 계속 얘기하지만 그러니까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여러 면에서 다르죠.
민노: 네, 다르긴 하죠. 생물학적으로 후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이효석: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사회가 받아들이면서 그게 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요.
민노: 그렇죠. 그것조차도 또 사회적인 실재일 수 있고요.
이효석: 예 그렇습니다.
느낌을 측정할 수 있다면 (ft. 다윈과 스키너 비판)
우리가 검사한 사람들은 모두 ‘화난’, ‘슬픈’, ‘겁에 질린’ 같은 동일한 감정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지만, 그 의미가 언제나 동일하지는 않았다. 몇몇 피험자는 이런 단어를 사용해 매우 섬세한 구별을 했다. 예컨대 그들은 슬픔과 공포를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또 다른 피험자들은 ‘슬픈’, ‘겁에 질린’, ‘불안한’, ‘우울한’ 같은 단어들을 뭉뚱그려서 ‘기분이 더럽다’는 의미로(조금 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불쾌감이 든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행복, 평온, 자부심 같은 유쾌한 감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700명 이상의 미국 피험자를 검사한 결과 우리는 자신의 감정 경험을 구별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장 ‘감정의 지문을 찾아서’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실내 장식 전문가라면 파란색의 다섯 가지 색조를, 하늘색, 코발트색, 군청색, 감청색, 청록색을 구별하고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내 남편이라면 그것을 모두 파란색이라고 부를 것이다. 내 학생들과 나는 감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것을 감정 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 감정 경험과 지각을 섬세하게 또는 거칠게 구성하는 능력)라고 불렀다. 감정 입자도의 발견은 감정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감정의 정의… 느낌을 측정할 수 있을까
민노: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을 드릴게요. 이 책에서 한계로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논리적인 약점이나 한계 혹은 아쉬움이 있었다면요.
이효석: 아까 드린 말씀과 좀 비슷한데 저는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인, 감정에는 물리적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본질적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결국 해상도(= 책 속 ‘감정 입자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감정에 관한 정의(定義; definition) 문제인데요.
그러니까 감정이 객관적인 실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책은 말하지만, 기쁨이나 슬픔, 이런 것들, 해상도가 아주 낮은 수준에서는 도파민이든 엔도르핀이든 아니면 코르티졸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든 노르아드레날린이든, 이런 걸 통해서 어느 정도의 객관적 실체가 존재하고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도파민(dopamine): 동물에 존재하는 아민의 하나로 머릿골 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에 중요한 구실.
엔도르핀(endorphin): 포유류의 뇌 및 뇌하수체에서 추출되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코르티졸(cortisol):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하나. 항염증 작용이 있어 각종 염증성ㆍ알레르기 질환 따위에 이용.
노르아드레날린 (noradrenalin): 교감 신경 계통의 신경 전달 작용을 하는 부신 속질에서 아드레날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
책에서는 이런 걸 정동(affect; “가장 단순한 느낌. 유쾌와 불쾌 및 평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 곧 느낌 수준의 것이고 감정의 재료가 되지만, 감정 자체는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데, 그 경계가 과연 명확할까 하는 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리사 교수는 정동은 감정이 아니며, 감정은 정동을 재료로 사회적 실재로 뇌에서 인식되는 것을 감정이라 부르자라고 정의함으로써 감정이 구성된다는 것을 보인 게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민노: “해당도가 아주 낮은 수준에서라도 도파민 등의 물질을 통해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정동’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걸 정동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효석: 사실 본질주의적 입장에서는(1편을 참조할 것 -편집자) 감정, 혹은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분 아니면 행복과 고통을 물리적,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5년 전 [호모데우스] (2017)의 서평에서 공리주의 뇌 과학적 완성을 살짝 언급한 부분이 바로 그 내용인데요.
“자유주의의 여러 문제가, 이들이 명백하게 과학의 발전에 따라 더욱 드러나고 부각되고 있는 것임에도, 이 공리주의의 문제는 과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분법을 연속적인 변수로 만드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며, 사실상 전문 영역이다. 정신적 만족과 피해를 양화(quantize; 양자화; 연속적인 양을 이산적인 물리양으로 만드는 것. 편집자)하기 위해서는 최신 뇌 과학 기술 곧, 호르몬의 양, 뇌 신경의 흥분 정도, 뇌 신경의 구조적 특성 등을 이용해 어떤 척도(measure)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이효석, 어느 인공지능 과학자가 읽은 [호모데우스] 중에서
그러니까, 그때 이야기한 정신적 만족과 피해가 바로 행복과 고통이고, 이를 양화하는 방법으로 역시 물리적 객관적 실체인 호르몬의 양, 뇌 신경의 흥분 정도, 뇌의 구조를 생각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리사 교수가 말하듯, 우리가 똑같은 자극에 대해서도 자신의 인식 혹은 예측에 따라 이를 고통으로 느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니, 이런 접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또 본질주의의 입장에서는, 뇌가 어떻게 예측할 것인지가 결국은 뇌의 과거 경험에 기반한 것이고, 그 경험이 바로 지금 뇌 신경의 연결 형태에 녹아 있으므로 이를 파악해서 뇌의 예측 자체를, 비록 아주 어렵더라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고요.
물론 행복이나 고통보다 훨씬 더 세밀한 수준의 감정은 리사 펠드먼 교수님의 말처럼 그냥 문화에 의해서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경우, 호르몬의 양처럼 물리적,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수치가 있어도 사람마다 같은 감정에 대해 그 수치가 다 다를 수도 있고요. 사실 미묘한 감정이라는 것은 마치 언어처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다윈 비판에 관하여
다윈의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은 생물학이 현대 과학으로 발전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기폭제가 되었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은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멋진 표현처럼 “본질주의의 마비 작용”으로부터 생물학을 해방시킨 점이었다. 그러나 감정에 관해 다윈이 13년 후에 발표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질주의로 가득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혁신적인 업접을 내다 버리고 다시 본질주의의 마비 작용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였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 ‘우리는 다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아, 하나 더. 책에서 리사 교수가 찰스 다윈 얘기를 물고 늘어지잖아요. 다윈이 [종의 기원] (1859)이라는 기념비적 책을 출판한지 13년 뒤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1872)을 쓰는데 그 책을 보면 곤충도 감정이 있고, 벌레도 감정이 있다는 식으로 썼다면서 조롱에 가까운 방식으로 묘사하고, 다윈을 (본질주의로부터 생물학을 해방시킨 다윈이 다시 본질주의로 회귀했다고) 비판하는데요.
이효석: 곤충의 예를 들면, 곤충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있을 거에요. 예를 들어 먹이를 쫓고 포식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 같은 행동 말이죠. 먹이를 쫓는 게 좋아서 쫓는지 아니면 그냥 본능에 쫓는지는 상관이 없고요. 도망칠 때도 마찬가지죠. 바퀴벌레는 불을 켜면 빛을 피해 도망가잖아요. 그렇게 도망가게 만드는 어떤 호르몬과 같은 물질이 있고, 불쾌감이든 거부감이든 무언가가 있겠죠. 그러니까 모든 생명체는 그런 게 존재할 거라는 얘기고요.
물론 이걸 확장하면, 로봇 청소기가 배터리가 부족할때 다시 충전기로 돌아가서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부족할 때 불쾌감을 느끼고 충전할 때 쾌감을 느끼느냐 하는 문제로 돌아가는데, 그건 우리 상식상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요. 즉, 느낌이나 감정은 어느 정도 복잡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야 생기는 것으로 우리가 정의할 수도 있고요.
리사 교수는 동물이나 곤충이 감정을 가지지 않는 이유로 감정에 필요한 세 가지 개념 곧, 내수용, 개념, 사회적 실재가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동물이나 곤충은 일단 사회적 실재가 존재하지 않고, 또 언어가 존재하지 않으니, 내수용에 의한 정동만 존재할 거라고 얘기를 하죠. 다윈은 그걸 일종의 감정이라고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한 거고요. 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은 해상도, 혹은 감정의 정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겁니다.
내수용(Interoception): 신체의 기관, 조직, 호르몬, 면역체계 등에서 유래하는 감각이 뇌에서 표상되는 것.
개념(Concept): 특정 목적에 비추어 비슷한 것으로 취급되는 사례 집합(범주 참조).
범주(Category): 특정 목적에 비추어 비슷한 것들로 취급되는 사례 집합. 전통적 이해에 따르면 범주는 세계에 존재하고, 개념은 이런 범주의 정신적 표상으로 간주된다(개념 참조).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점에 대한 특정 집단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 이것은 언어를 통해 공유된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주요 용어 해설’,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그럼 정동을 감정으로 볼 거냐 말 거냐 정도가 쟁점이지 정동이기 때문에 곤충은 감정이 없다거나 찰스 다윈이 되게 좀 삐끗했다고 리사 교수가 얘기하는 거는 좀 과하다는 느낌이라는 건가요?
이효석: 네, 그렇습니다. 결국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죠. 감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 가의 문제라는 것요…
행동주의 비판에 관하여
그들은 신체와 뇌에서 감정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앞뒤로 일어나는 것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감정의 원인이 되는 사태와 감정에 뒤이어 나타나는 신체 반응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중간에 두개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거기에는 신경 쓰지 말자! 이렇게 해서 심리학의 역사상 최악의 시기라 할 행동주의(behaviorism)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시기에 감정은 생존을 위한 행동, 즉 집합적으로 ‘4F’라 불리는 싸움(fighting), 도망(fleeing), 섭취(feeding), 교미(fucking)로 재정의되었다. 행동주의자에게 ‘행복’은 미소 짓기와 같았고, ‘슬픔’은 울음이었으며, ‘공포’는 얼어 붙어 꼼짝 않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해서 감정의 지문을 찾는 골치 아픈 문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재정의를 통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중 ’심리학을 어지럽힌 행동주의’, 생각연구소: 2017. 중에서
민노: 리사 교수는 책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을 반어법을 사용해 조롱조로 공격하던데요. 소제목 중 하나가 “심리학을 어지럽힌 행동주의”일 정도니까요.
이효석: 예, 그렇죠. 저는 그 정도로 행동주의를 비판할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행동이라는 게 어쨌든 뇌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서 나온 거잖아요. 결과로 나오니까 측정이 가능하고요.
과학에는 어떤 현상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 시작 상태와 끝 상태를 가지고 그 현상을 설명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모두 잘 아시는 고교 물리에도 그런 예가 나오는데요. 처음 배우는 힘과 운동이 어떤 현상을 시간을 기준으로 매 상태를 설명하는 방법이라면, 그 다음 배우는 일과 에너지가 바로 시작 상태와 끝 상태만을 가지고 그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책상 위의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 힘과 운동에서는 등가속도 운동으로 매 순간 연필의 속도를 구하지만, 일과 에너지에서는 에너지 보존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연필이 책상 위에 있을 때의 위치 에너지가 연필이 추락할 때 운동 에너지로 바뀌는 것으로 보고 그 시점의 연필의 속도를 구하게 되죠.
행동주의도 마치 에너지 보존처럼, 시작 상태와 끝 상태를 가지고 생명체를 설명하려 한 시도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어떤 설명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이 당연히 있습니다.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곧 더 잘 예측하는 설명이 좋은 설명이지요. 그런 면에서 행동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고요. 이는 그 중간 단계인 뇌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겠죠.
이것도 위에서 저희가 쓴 표현인 해상도로도 설명이 가능하고요. 즉, 바퀴벌레처럼 단순한 곤충이라면 행동주의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겠죠. 빛을 보면 도망간다. 이런 식으로요. 로봇 청소기는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행동주의적 접근만으로 로봇청소기 내부의 알고리듬을 아마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행동의 복잡성도 어떤 생명의 기준이 될 수 있겠네요. 물론 로봇청소기가 집의 구조를 파악하고 돌아다니는 방법을 보면 매우 놀랍긴 합니다.
민노: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당시로는 의미가 있었다?
이효석: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민노: 지금은 어때요? 지금 관점, 지금 기준으로 행동주의 심리학을 평가하면 어때요?
이효석: 제가 그걸 평가할 수 있을 위치는 아닌것 같고요. 파블로프의 실험 같은 건 훌륭한 실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외부 조건만을 조절해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까지 나아가니까요.
민노: 그런 위험성이 있겠네요.
이효석: 그래서 아기한테 강한 빛이나 큰 소리로 자극을 줬던 그런 실험이 있었다고 하고요. 그건 마치 아주 복잡한 기계를 단순한 방법으로 다루려고 한 시도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케이스를 때리면 버그가 잡힌다, 그런 수준의. 물론 가전제품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 때려보는 건 충분히 의미있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민노: 그럼 지금은 행동주의가 완전히 극복됐다고 봐야 되는 건가요? 어떤가요?
이효석: 네, 그것도 제가 답하기는 쉽지 않네요.
민노: 그건 제가 한번 좀 찾아봐야겠네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효석: 제가 조금 더 명확하게 딱 정리해서 말씀드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민노: 아니요,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명쾌하게 답변을 주실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좀 머뭇거리고, 고민하시고 쉽게 얘기를 못하시는 부분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습니다.
이효석: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충격을 받았고 제 생각을 많이 바꿨고, 이 분 리사 교수를 존경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