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사건 이후 모든 사회 이슈를 교권이 잡아먹은 느낌인데,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면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지난주 오송 지하차도 사고 때는 경찰이 왜 제때 출동을 안 했느냐, 그 이전에 왜 지하차도를 차단하지 않났느냐를 두고 책임 공방이 있었다. 예천에서는 해병대원이 무리한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관련해 일선의 소방관과 의료 종사자 등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 5월, “국민 여러분, 대피할 준비를 하시라”던 재난 문자 오발송 사태 때는 서울시와 행정안전부가 서로 절차대로 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결국 말단 공무원에게 책임이 전가될 거라는 얘기가 흉흉했다.
모두 다른 유형의 사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 물론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스템이 뒤로 숨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은 어디에 있는가.
정부 발표와 상당수 언론 보도를 보면 교권 붕괴를 교권과 학생 인권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데 사실 궁금한 건 이거다. 왜 학교 내 분쟁이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는가, 누가 봐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책임이 왜 개인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가. 학교라는 시스템은 어디에 있는가.
반복되는 수해 피해도 마찬가지다. 왜 경보가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중간에서 왜 그렇게 많은 혼선이 발생했을까. 효율성과 전문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업무 분담부터, 재난상황에 대비한 유휴인력을 갖추는 대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비상 대기 등으로 사람을 갈아넣는 시스템까지 고쳐야 할 부분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나오는 건 누구 책임이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해병대원 사망 사고는 또 어땠나. 구명조끼도 없이 비전문가를 구조작업에 투입했다. 일부 장병들은 허리까지 차는 물에 들어갔다고도 한다. 이것만 해도 시스템의 파탄을 묻고 최고 책임자의 책임을 따져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해병대 측은 “구명조끼 착용 등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는 걸 해명이랍시고 내놓았다. 시스템의 파탄을 심지어 변명거리로 썼다.
이태원 참사 당시 발로 뛰었던 소방관들과 의료 종사자들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던 일도 그렇다. 이러면 누가 나서서 일을 하겠느냐는 회의가 터져 나왔다. 정작 최고 책임자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변명으로 일관했고, 탄핵이 기각되어 업무에 복귀했다. 대통령실이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이라며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건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은 오히려 뒤로 숨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말단 공무원.
이태원 참사 이후 발표된 종합 대책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들이 대체로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스템을 운용할 사람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종합 대책이라는 게 그랬다. 사실 텍스트로 쓰여진 내용을 보면 나쁠 게 없지만, 이내 유명무실한 요식행위로 전락하곤 했다. 시스템만 만들어 놨지 시스템을 운용할 전문 인력은 없고, 뺑뺑이로 대충 말단 직원을 하나 담당자로 배치해 놓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은 존재만 할 뿐 사실상 멈춰 있다. 책임자조차 그 시스템을 모른다. 책임자는 말 그대로 사고가 생기면 그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해 존재한다. 시스템은 “사실 시스템이란 게 있었답니다”,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뒤로 숨어버린다. 이러니 아무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그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면 의미가 없다. 책임과 권한, 전문성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분배되어서야 그 어느 시스템이든 전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키워줘야 하고, 책임을 지웠으면 권한도 줘야 한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에는 당연히 조직의 시스템이 그 책임을 떠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행정 시스템은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전문성 없는 순환 보직과 책임만 지우고 권한은 없는 말단 공무원, 시스템이 파탄났음에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끝내버리는 방식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민원’도 같은 맥락이다. 무리한 민원을 관리할 시스템은 사실상 없고, 일단 민원이 들어온 이상 무조건 해결하라고 개인에게 강요한다. 당연히 사달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당신이 시스템 붕괴의 원인이다.
코로나19 때 온갖 진상들이 출몰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들은 무단 외출에 심부름, 온갖 비상식적인 요구로 격무에 신음하는 담당자들을 괴롭혔다. 담당자들에게 이런 진상을 무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만이라도 있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시스템이 책임을 회피하는 부분은 또 있다.
공무를 하다 보면 해석이 불분명한 일들이 생긴다.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긴 하겠지만, 문제는 공무는 법과 제도를 다루는 일이라는 거다. 분쟁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 일선에서 해석을 요청하면, 위에선 그냥 알아서 잘 판단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실제 그 판단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대답이다.
백 가지 문제가 있으면 백 가지 해결책이 필요한 법. 이 모든 문제가 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됐을 리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근간에 깔린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파탄이 난 이상, 그 어떤 원인 분석도, 해결책도 작동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해결책이 그저 요식행위로 끝나고 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