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인터뷰] 교육평론가 이범, “맛집 줄서기가 문제? 맛집 늘리는 게 핵심… 객관식으로 대입 치르는 나라 많지 않아.” (⏰12분)
교육평론가 이범(55)은 지난달 31일 민주당 초청으로 국회에서 강연을 했다.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 교육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범은 재정을 투입해 대학 교육 품질을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고 했다. 재정 투입에 따른 교육의 질이 대학 격차를 만든다. 그 격차가 굳어지면 학벌이 된다. 학벌은 경쟁의 원인이 아니라 대학 격차의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980~1990년대 개교한 포스텍(포항공대), 카이스트(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및 비교적 최근 개교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가 재정이 투입된 국립대다. 유력한 졸업생의 수와 사회적 명성은 국내 유수의 대학보다 떨어지지만 단시간에 최상위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이게 왜 중요한가.
-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6000만 원이다. 연세대·고려대(연고대)는 4000만 원,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서성한)가 3000만 원 내외다. 중앙대가 2000만 원 수준이다. 최상위 대학 간에도 격차가 엄청나다. 학생들이 교육비를 많이 쓰는 대학을 선호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 지역 거점 국립대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키워보자는 게 이범의 생각이다. 우리는 평준화하면 입학 제도의 평준화만 떠올린다. 이범은 대학 교육 품질의 평준화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입학 제도의 평준화가 목표라고 해도 교육 품질의 평준화가 전제돼야 한다.
- 우리 교육계는 ‘한 줄 세우기’에 학을 뗀다. 수능은 학생에게 점수를 매기는 나쁜 시험이며, 시험이 아닌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범은 “맛집에 한 줄로 서든 여러 줄로 서든, 줄 서는 고통이 사라지느냐”고 반문했다. “맛집을 여러 개 만드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 계획 구멍’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라는 허상.
4일 서울 명동 슬로우뉴스 사무실에서 이범을 만났다. 집권 플랜을 짜고 있는 민주당은 ‘1세대 스타 강사’ 출신 교육 전문가에게 무슨 말을 들었고, 듣고자 했을까. 이범과 나눈 인터뷰와 국회 강연 내용을 종합하여 아래 일문일답을 구성했다.
— ‘학벌’이 교육 경쟁의 원인이 아니라 대학 재정 격차의 결과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학벌이라고 하면 특정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즉 동문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네트워크를 의미할 것이다. 학벌 때문에 특정 대학을 선택한다는 말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포항공대, 카이스트, 한예종이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자. 유력한 졸업생이나 사회적 명성도 없던 이들 대학에 ‘학벌’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상위 대학이 됐다. 국가의 적극적 재정 투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울산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한전공대도 마찬가지다. 입시 전문가들은 4곳의 작은 공대가 연고대와 서성한 중간에 있다고 평가한다. 졸업생도, 명성도 없었지만, 재정 투입에 따른 교육의 질이 대학 격차를 만들었다. 격차가 굳어지면 학벌이 되는 것이다.”
— 각 대학이 한 해 학생 1인에게 교육비를 얼마나 투입하는지 비교·분석한 것으로 안다. 이게 왜 중요한가?
“대학이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연구비를 제외한 교수 인건비, 프로그램 운영비, 도서 구입비 등을 산출한 것이다.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6000만 원이다. 연고대는 4000만 원, 서성한이 3000만 원 내외로 쓴다. 중앙대가 2000만 원 수준이다. 중앙대가 아래에 있는 대학 같지만 상위 5~7% 성적이어야 들어갈 수 있는 상위 대학이다. 하지만 중앙대도 서울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최상위권에서도 대학 간 격차가 엄청난 것이다. 자본을 투자하면 교육 품질에 격차가 생긴다.”
— ‘서울대 폐지론’, ‘서울대 학벌 공유론’(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서울대 10개 만들기’ 가운데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지지한 이유와도 연결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내놓은 구상이다. 상향 평준화의 연장선상에서 지지했다. 서울대 못지 않게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 규모로 봤을 때 세계 10위권 나라지만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는 하위권이다. 세계 대학 평가를 보면, 100위권 중 우리나라 대학은 2개뿐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 소멸을 막고 대입 경쟁을 완화한다는 의미에서 정치 의제화도 가능하다.
기업을 지방에 내려보낼 방법이 있나? 법인세를 20년 면제해줄 건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대학이라면 해볼 만하다. 정부가 대규모 투자하여 지역 거점별로 1개 정도의 대학을 집중 육성하고 치열하게 대학 간 경쟁을 시켜 글로벌 순위를 높이는 것이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외국 학생을 유인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재정 투자를 통해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이 정책의 골든타임은 2030년대 중반까지다. 그 이후부터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급속도로 감소한다. 현재 40만 명 규모인 대입 가능 자원이 2030년대 중반이 지나면 20만 명대 중반으로 떨어진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고 때를 놓치면 거점 대학 육성은 영영 불가능하다.”

—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의 국공립대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립대를 하나의 대학 네트워크로 통합한다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수직 서열화한 대학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진보 진영이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왜 비현실적이라 보는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과학기술대, 거점 국립대 등을 합쳐 정원이 3만 5000명인 가칭 ‘통합 한국대’를 만든다고 해보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서울 소재 사립대도 네트워크에 편입시키겠다는 구상이지만 연고대를 강제로 끌어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율적 대학 운영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위헌 소송에 걸릴 것이다. 연고대가 그대로 존재하는 가운데, 통합 한국대가 학생을 캠퍼스 배정할 때 누구를 서울 캠퍼스에 보내야 하나? 방법은 추첨뿐인데, 서울 캠퍼스에 배정될 확률은 대략 10%다. 동문 네트워크가 제대로 연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통합 국립대를 갈 건지, 연고대를 갈 건지 선택한다면 연고대로 쏠릴 수밖에 없다.
서울대 교육비는 학생 1인당 6000만 원인데, 지역 거점 국립대는 2200만 원 수준이다. 똑같이 입학했는데 운이 좋은 누구는 6000만 원짜리 교육을 받고, 운 나쁜 누구는 2200만 원짜리 교육을 받는다? 설사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이룬다 해도 지역 거점 국립대에 엄청난 투자를 하여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학벌로 인한 입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학벌을 공유하자는 발상이지만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책과 문헌을 보면, 재정이나 예산에 대한 계획은 빠져 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서울 강남 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 등 국내 상위 대학의 지역별 비례 선발 제도를 제안했다. “대학에서 지방 학생을 80% 뽑으면 수도권 집중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였다. 어떻게 평가하나?
“경쟁을 완화하는 정책은 아니고, 경쟁을 구획화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명문대로 가는 병목은 그대로 둔 채 병목으로 진입하는 통로에 지역별로 칸막이를 치는 것이다. 내신 위주로 뽑으면, 이를 테면 대치동 학교 상위 4% 학생에게 1등급을 주고 지역 소재 학교 상위 4% 학생에게 같은 1등급을 줄 때의 효과는 경쟁의 구획화다. 이창용 총재가 말한 게 내신 위주 선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역별로 경쟁을 구획화하는 정책이지 경쟁 강도를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더 토론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며 거점 대학 육성도 병행해야 한다.”

선진국은 줄 세우기 안 한다고? ‘대입 미신’에 빠진 한국.
— 진보 교육감이 등장했던 2010년 ‘경쟁 없는 교육’이 유행했다. 특히 핀란드 교육이 모범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칼럼에 “핀란드 대학은 지원자를 한 줄로 세워 성적 순으로 선발한다”고 알리며 ‘대입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신 성적 반영률을 높이고, 대입 시험(수능) 비중을 낮추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정성적 평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육계의 고정관념을 비판했다.
“정량 평가보다 정성 평가가 우월하다거나 대입 시험보다는 내신 평가가 낫다는 생각은 진보와 보수 교육계의 교집합이다. 시험이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건데, 미국식 대입 제도에서 비롯한 사고다. 미국 입학사정관제같은 경우 양쪽 모두가 공유했던 가치 아닌가. 세계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나라는 거의 없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유럽의 많은 나라는 성적 순으로 뽑는다. 핀란드는 내신도 반영하지 않는다. 물론 논술과 서술 평가 성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미국식 제도가 세계 표준은 아닌 것이다.” (편집자 주 : 입학사정관제는 학교 성적뿐 아니라 특별 활동, 재능,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인터뷰 등 다양한 요소로 학생을 선발하는 미국 입시 제도로 대한민국 입시 제도인 학생부 종합 전형의 기원이다.)
— 학부모들은 학생부 종합 전형(학종)이 도리어 과도한 사교육과 스펙 경쟁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많은 이들이 수능 같은 ‘한 줄 세우기’ 시험보다 학종이나 입학사정관제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부담의 총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철인 5종 경기를 하는 것보다 철인 10종 경기를 할 때 더 힘들고, 누구에게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 내신, 수능만 하는 게 아니라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하고 논문도 쓰면 좋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까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거다. 사교육 업계는 어떤 입시 제도든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다.
챙길 것과 할 일이 많아지면 스트레스가 커지고, 그러다 보면 ‘미리 출발해야 한다, 스타트를 일찍 끊어야 유리하다’는 사교육 마케팅에 귀를 열고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한 줄 세우기는 경쟁과 획일화를 유발한다’, ‘여러 줄 세우기를 하면 경쟁이 완화한다’ 이런 말이 믿음에서 비롯한 착각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맛집은 서울대 아닌가. 맛집에 한 줄로 서든 여러 줄로 서든, 줄 서는 고통이 사라지나? 맛집을 여러 개 만드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 유럽 대학은 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는데도 입시 경쟁은 우리보다 덜 치열하다. 무엇이 다르다고 보나?
“특정 대학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크지 않다. 달리 이야기하면, 이 대학이나 저 대학이나 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우리는 ‘평준화’하면 입학 제도의 평준화만 떠올린다. 유럽 특징은 대학의 평준화다. 연방제 국가인 독일은 주별로 거점 대학을 육성했다. 수십 개의 거점 대학 수준에 큰 차이 없다. (기자 : 박정희 독재 시절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됐다. 이때도 고교 재정에 손을 댄 것인가?)
우리는 흔히 박정희가 뺑뺑이를 돌려 고등학교 배정을 했다는 것만 아는데, 사학의 재정적 토대를 균등화하려 했다. 재정이 불균등하면 평준화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립 고등학교까지 다 긁어 모은 다음 강제로 정부 의존형 사립 학교로 바꾸었다. 부실한 사학 연금을 정비해 공무원 연금과 비슷한 지위로 끌어올렸다. 당시 박정희 청와대에 근무했던 분에게 들은 얘기론 대학 평준화도 계획에 있었다. 충남 연기군 일대로 천도를 기획하며 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의 절반을 끌고 간다는 복안이 있었고, 실제 연구도 했다는 것이다. 독재자였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입시, 사교육만 웃는다.
— “한국이 객관식 대입 시험의 영향력이 제일 큰 나라”라고 했다.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도 수능에 논술·서술형 평가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명암이 모두 있다. 논술과 서술형으로 가는 방향은 교육적으로는 바람직하다. 객관식으로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나? 객관식은 정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것만 물어보는 것일 뿐 생각을 묻지 않는다. 수능이 논리를 묻지 않는 이상한 시험인 이유다. 선진국 중 대입 시험이 객관식인 나라는 찾기 힘들다.
미국이 있지만 대입과 고등학교 수업을 분리한 특수 체제다. 유럽에서는 스웨덴 대입 시험이 객관식으로 출제되지만 미국처럼 고교 교육과 분리되어 있다. 한국이 객관식 대입 시험의 영향력이 제일 큰 나라다. 굉장히 안타깝지만 논·서술형으로 바꾸는 건, 사교육 업계에 큰 떡밥을 주는 것밖에 안 될 수도 있다. 딜레마가 있는 거다. 사교육 업계는 모든 변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논·서술형 도입은 매우 매력적인 마케팅 계기가 될 것이다.”
— 그렇게 보면 우리 교육과 입시 제도는 미국식도 아니고, 유럽식도 아니다.
“미국은 객관식 대입 시험인 SAT나 ACT가 있지만, 이 시험은 고등학교 교육과 분리되어 있어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쉽게 말하면, 미국은 학교에서 SAT 문제집을 안 풀어준다. 우리와 차이점이다. 유럽은 대입 시험 문항 자체가 논·서술형으로 자기 논리를 보여줘야 한다. 바람직한 대안은 갑작스레 수능을 없애기보다는, 미국식으로 가든지 유럽식으로 가든지 확실한 교육 방향을 정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시도할 간 큰 정치 세력이 없을 것이다. 사교육이 폭증할 우려가 있어서다.
일례로 ‘수능 문제집을 학교에서 풀어주지 않겠다’며 미국식으로 가면 다음날 메가스터디 주가는 폭등할 것이다. 유럽처럼 논술형으로 시험 문제를 내겠다고 해도 사교육 시장이 들끓을 것이다. 진정한 미국식 입시나 유럽식 입시를 할 수 없는 거다. 학생 선발 제도는 앞길이 보이지 않고 진퇴양난이지만, 더 거시적인 문제, 대학 간 불평등 만큼은 개선해야 한다.”
— 유럽은 학생들이 직업 교육으로 많이 빠진다고 들었다. 대학은 가지만, 우리가 말하는 전문대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엔 실업계 고등학교 인기가 상당했고, 일부 공고는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의 직업 교육과 직업계고에 대한 생각은?
“우리나라 일반고가 황폐화한 건 특목고, 자사고 때문이 아니다. 인문계 적성이 안 맞는 학생이 일반고로 많이 오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인문계는 영어로 아카데믹 스쿨(Academic School)이다. 아카데믹과 적성이 맞는 인구가 80%라는 게 말이 되는가. 특목고와 자사고를 합쳐봐야 전국 중학교 졸업생의 5% 정도 밖에 안 된다.
중학교 한 반이 20명이라고 했을 때 평균적으로 한 명이 특목고에 가는 것이다. 한 명이 떠났다고 일반고 수업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일반고에서 교실 붕괴 현상이 나타난다고 난리 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정원이 점점 줄고 일반고 문턱이 낮아지면서 예전 같으면 인문계고에 들어오지 못했을 아이들이 점점 더 인문계고에 들어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유급 제도가 폐지되어 출석 일수만 채워도 졸업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인문계에 적응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서 잠만 자게 된다.
고등학생 중에 직업 교육을 받는 비율이 OECD 평균 45%인데 우리나라는 18%다. 위탁 교육을 합쳐도 21%에 그친다. 1980년엔 45%였다가 2000년 36%, 2020년 18%로 줄었다. 반면 선진 국가들은 중학교까지만 의무 교육이고, 그 이후엔 직업 교육과 인문계로 나뉜다. 네덜란드가 중학교 때부터 분화가 시작되고 독일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갈 때부터 분화를 시켜 너무 빠르다는 비판도 받는다. 우리나라 진보 교육계의 아킬레스 건은 직업 교육이다. 실업계 직업 교육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무하다.”
— 직업 교육이 부실한 까닭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직업계 교육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실습도 많이 해야 하니까 일반고 교육보다 돈이 많이 든다. 돈은 많이 드는데 인기가 없으니 교육계가 등한시해 왔다. 또 다른 배경으로 미국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직업계 고등학교가 거의 없다. 일반고에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선택 과목을 운영하는 정도다. 시수가 많지도 않다. 직업 교육에서 미국은 후진국이다. 관료든, 학자든, 정치인이든 교육 정책의 리더급 인사 대다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학 박사 학위를 외국에서 받아온 사람 가운데 미국 비율이 80%다. 미국식 대입 제도 선호, 직업 교육 홀대는 진보와 보수 교육계가 교집합을 이룬 영역이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 중 직업 교육 학위를 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 전수 조사를 한번 해볼 생각이다.”

논술 첨삭까지 하는 AI, 교육 격차 해소할까.
— 윤석열 정부가 국정 핵심 과제로 추진한 AI 디지털 교과서가 희망 학교에 한해 단계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혼선을 겪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첫 단추부터 잘못 꼈다. 수업은 교사 특성과 노하우가 녹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구를 도입해 재구조화하는 건 매우 어렵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이다. 수업이 ‘학’(學)이면 숙제는 ‘습’(習)일 텐데, 습 영역에서 AI를 활용하는 정책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지식이나 기능을 전수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AI가 “너 두 자릿수 곱셈을 못하는구나. 이렇게 해봐”라고 튜터링할 수 있다. 학교 선생님이 과외처럼 개별적으로 문제를 풀어주는 게 쉽지 않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성과에 쫓겼던 것 같다. AI가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배포되면 활용 여부는 교사의 재량이다. 그러나 AI 교과서라면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AI 교과서를 쓰게 하여 단기 성과를 낼 목적으로 판단했던 게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AI가 교육 자료라는 걸 명시하고 숙제 형태로 활용했다면 학생들이 AI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효율을 높였을 것 같다.”
— AI가 학생들의 격차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국어는 양이고 수학은 시간이고 영어는 돈이다. 영어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말하기가 그렇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AI가 매일같이 영어로 축구 이야기를 하며 흥미를 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와 문장 수준을 높이고, 다시 피드백을 주고받고. 공교육으로는 불가능했던 영어 말하기를 AI 튜터로 키울 수 있는 거다.
비단 영어뿐일까. 엄마가 베트남인인 다문화 가정에서는 보통 베트남어 발화자가 엄마 혼자이기 때문에 아이가 초보적 수준의 베트남어 밖에 익힐 수 없지만, AI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중 언어 구사자를 만들 수 있다. 효율은 높이면서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논술형 평가와 관련해서도 AI는 여러 도움을 줄 수 있다. 논술을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채점한다. 학생 입장에서 논술은 개별적 피드백이 꼭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잘 설계하면 첨삭까지 해주는 AI가 등장할 것이다. AI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격차를 줄일 것이다.”

이범은 누구?
- 1969년 서울 출생. 경기과학고 졸업. 서울대 자연대 분자생물학과 졸업.
- 메가스터디 공동창업자. 국내 최고의 수능 과학 탐구 ‘1타 강사’ 출신.
- 2003년 1타 강사 시절 은퇴. 이후 교육평론가, 정책전문가 활동.
- 곽노현 교육감 시절 서울시 교육청 정책보좌관.
- 2014년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현 민주연구원) 부원장.
- 2017년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싱크탱크 ‘국민성장’서 고교 체계 개편 담당.
-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과정. 네 아이 아빠.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지방 소멸은 어쩔 수 없는 것. 지방자치제로 인해 지방은 토호들의 천국이 되어버렸고 똑똑한 사람들은 거기에 진저리를 치며 수도권으로 떠난 것.
학벌 욕망에 편승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역 소멸을 앞당길 것이다.
거점국립대 외에
나머지 지역국립대와 사립대를 적으로 돌리는 패착 정책이 될 것이다.
일부 교수들의 제안을
지난해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받은
거점 국립대를 집중육성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학벌 서열 최정점 대학에 가고 싶다는 욕망에 기대는 나쁜 정책이다.
서울대는 (불행이지만) 돈벌이가 좋은 직장과 사회의 상층부에 들어가
성공한 사람임을 보장받는 욕망의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서울대를 10개 더 만들면,
서울대라는 욕망의 문이 10개 더 열리는 것이고,
이를 반기는 부류는 9개 거점대와 그 구성원들 뿐이다.
(같은 급이 9개 더 늘어나기에 서울대 구성원조차 반대 할 것이고,
나머지 지역 국립대와 지역사립대를 적으로 돌릴 것이다.)
우리사회 고등교육 위기를 해결하는 핵심 과제중 하나는,
고착된 대학 서열화로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이미 인생의 성공여부가 크게 갈리는
학벌의 폐혜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학벌을 완화하는 것이 이니라
지금의 학벌 체제를 더욱 확대 강화하게 될 것이다.
서울대, 수도권대 중심의 학벌 체제에 9개 거점대가 편입되어
기존 학벌 정점대학과 9개 거점대의 학벌은 완화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지역 국립대, 지역 사립대와는
학벌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고등교육 재정은 형편없이 적다.
(https://omn.kr/1o2ia)
해방이후 70년 넘게 국가가 고등교육 책임을 방기한 결과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어차피 고등교육 재정 확대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https://omn.kr/1oa36)
왜 9개 거점대만을 위해 혈세를 쓰겠다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점대를 집중육성할 경우
나머지 국립대가 반발할 우려가 있기에
지역 국립대 지원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사기를 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시작되는 순간
지역 국립대는 거점 국립대로 급속히 흡수통합 될 것인데
지역 국립대가 다 없어지고 난 뒤에 지원하겠다?
2022년까지 지난 20년간
거점대는 지역 국립대(7개)를 흡수통합해
가뜩이나 적은 국립대는 계속 줄어들었다.
(https://omn.kr/1nzkj)
지금도
거점대학의 지역 국립대 흡수통폐합은 진행되고 있다.
부산대가 부산교대를
강원대가 강릉원주대를
충북대가 교통대를 흡수 통합하고 있다.
고등교육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가의 고등교육 책임도 확대하기 위해
국립대 전체를 집중 육성할 고민을 왜 안하는 것인가?
9개 거점대를 집중 지원하고
나머지 지역 국립대는 차차 지원 방안을 만들겠다는 방식은
결국 거점대 지원만 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대를 죽이고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정책만 펼치는
윤석열 정권의 (글로컬, 라이즈 등) 잘못된 고등교육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지역에서 대학의 폐교는 지역 경제를 붕괴시켜
지역 소멸을 앞당길 것이 뻔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국립대 폐교로
지역 균형발전까지 허무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학벌을 조장하고
지역 소멸을 앞당길
‘서울대 10개 만들기’ 망령을 되살려 내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