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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제안입니다. 한 칼에 매듭을 자르는 해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우선순위, 기회비용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문제 중심의 접근에서 해결 지향의 접근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으로 학교 폭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여는 글: 학폭의 함정, ‘더 글로리’를 넘어서
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내 새끼 운명을 건 전쟁”, 학폭위가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 ① 서른다섯 문동은의 복수와 열여덟 문동은의 고통, 무엇을 응원할 것인가.

“입 안 다물어? 니가 팔이 부러졌어, 다리가 부러졌어? 사지 멀쩡하게 잘도 돌아다니는데 뭐가 폭력이야? 뭐가 방관이야! 너 그 정도면 정신병자야, 알아? 친구끼리 한 대 때릴 수도 있는 거고!”

드라마 ‘더 글로리’(2022, 넷플릭스)에서 문동은 담임 교사 김종문이 한 말이다.

“선생님 아들도 친구들한테 한 대 맞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문동은은 김종문에게 항의하다 오히려 모질게 구타를 당한다.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없던 때라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합의로 끝났고(엄마가 합의금을 챙겨서 도망갔다.) 견디다 못해 자퇴를 하게 된다. 교사들은 문동은을 돕지 않았고 문동은의 친구들은 박연진 패거리의 눈치를 봤다. 문동은의 자퇴서에는 딱 한 줄, “부적응”이라고만 적혔다.

드라마가 아닌 2023년의 현실은 어떨까. 문동은이 학교에 신고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하고 학교장이 학폭위에 넘길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2주 이상의 진단서가 발급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거나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면 학교의 손을 떠나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 곧바로 학폭위로 가게 된다.

문제는 학폭위가 열리면 변호사들을 동원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진실 공방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그때까지 문동은과 박연진은 한 교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 학폭위에 소송까지 맞물리면 1년 이상 늘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학폭위? 변호사가 대신 싸워준다.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아들 사건의 경우 신체적 폭력은 전혀 없었지만 언어 폭력이 심각했다. “제주도에서 온 새끼는 빨갱이”라거나 “돼지는 가만히 있어”,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횟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냈다고 한다.

피해 학생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고 호소했지만 정순신 아들은 재심 청구와 징계 취소 소송을 거치면서 시간을 끌었다. 1차 학폭위에서 서면 사과와 전학 조처를 결정한 뒤 실제로 전학을 가기까지 11개월이 걸렸고 그 사이에 피해자는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순신 아들은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언어 폭력 정도로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거나 “본인의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내세워 소송을 치르는 동안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2년 가까이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고 결국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다.

문동은의 경우도 박연진과 전재준 등이 거물급 변호사들을 끌어들여 쌍방 폭행으로 몰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위 사건 가운데 퇴학까지 가는 비율은 0.2%, 전학도 4.5% 밖에 안 된다. 퇴학 처분을 받고도 행정 소송으로 끌고 가서 처분 취소를 받아낸 경우도 있다. 학폭위와 별개로 형사나 민사 고소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문동은이 변호사 없이 싸워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쌍방 폭행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순신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4·12 대책은 여론을 의식해 만든 땜질 처방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기간을 3일에서 7일로 늘리고 생활기록부 기록을 4년까지 보존하기로 했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처벌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처벌을 피하려는 방어 논리도 강해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부당한 공격이 쏟아지는 경우도 많다.

학폭위의 징계 조치는 다음 9단계로 이뤄진다.

  • 1호: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 2호: 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 3호: 학교에서의 봉사.
  • 4호: 사회 봉사.
  • 5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 6호: 출석 정지(정학).
  • 7호: 학급 교체.
  • 8호: 전학.
  • 9호: 퇴학.

모든 징계 조치가 일단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만 1호부터 3호까지는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고 4호와 5호는 졸업 이후 2년까지, 6호와 7호는 졸업 이후 4년까지 보존하지만 졸업 직전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다. 8호는 예외 없이 4년 동안 보존하고 9호는 영원히 남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박연진은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더라도 무난히 대학교에 진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대학에서 학폭 사실을 점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순신 아들은 2점이나 감점되고도 서울대에 합격했다. 모든 학교가 학교 폭력 가해자를 불합격 처리하는 상황도 아니고 박연진이 특정 대학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입시나 생활기록부 기재 여부가 별다른 압박이 안 됐을 수도 있다.

박연진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대학에 갈 것이고 문동은은 좌절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느냐는 힘의 대결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학폭위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문동은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박연진이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과연 이 시스템에서 문동은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박연진을 퇴출시키는 것으로 문동은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애초에 문동은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조금 더 넓게 들여다 보면 박연진 패거리도 처벌과 퇴출에 앞서 교육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연진 패거리의 퇴출이 아니라 이들의 폭주를 멈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무엇이 변화를 만들까. 우리는 학교 폭력의 해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현장의 전문가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교육부는 해마다 학교 폭력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 설문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1.7%까지 늘어났다. 심의 건수는 2만3602건에 이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 2019년부터 시작된 학교장 자체 해결 사안까지 포함하면 6만3041건으로 늘어난다.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성현석은 “엄벌주의를 강화하면 할수록 엄벌을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결국 얼마나 실력 있는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느냐의 대결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는 사건을 축소한다는 민원이 두려워 무조건 학폭위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누가 피해자냐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많다.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이해준은 “지금도 소송이 많은데 입시에 반영되면 소송이 더 늘어날 것이고 학폭위 시장의 최종 승자는 변호사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말 큰 문제는 교사가 학생을 보호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학생을 보호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해준은 “많은 부모들이 처리 절차와 결과에 집착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위기를 마주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해 학생의 처벌보다는 자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음 그림은 교육부가 해마다 실시하는 학교 폭력 실태 조사 결과다. 연간 2만3602건을 학교 폭력 사건을 심의했고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는 학생 비율이 1.7%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이 많았던 2020년과 2021년 학교 폭력 심의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2022년에 다시 크게 늘었다. 2019년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에 실제로 이를 반영하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학교장 종결 사건이 적지 않았고 비교적 가벼운 사건들이 집계되면서 통계적 착시를 불러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답변한 학생이 모두 5만3812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1.7%를 차지했는데 초등학생은 3.8%, 중학생은 0.9%, 고등학생은 0.3%로 나타났다. 언뜻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학교 폭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등학생이 상대적으로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고 학교 폭력의 강도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훨씬 심각하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실제로 피해 후 힘든 정도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는 21%가 “많이 힘들었다”고 답변한 반면, 이 비율이 중학교는 27%, 고등학교는 42%나 됐다.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답변이 30%였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21%였다. “이야기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가 17%, “더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서”도 14%나 됐다.

학교 폭력의 유형을 비율로 보면 언어 폭력이 41.8%, 신체 폭력이 14.6%를 차지한다. 신체 폭력은 줄어드는데 언어 폭력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 폭력은 오래된 문제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여전히 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거의 매일 폭력을 경험한다는 비율이 22%나 됐고 1주일에 1~2번이라는 비율도 26%나 됐다.

문화평론가 이승한은 한겨레 칼럼에서 “문동은의 아픔에 공감했다면, 지금 중요한 건 ‘가해자를 어떻게 사후적으로 처벌할 것인가’에서 그치는 논의가 아니라 ‘지금 발생하는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서른여섯 문동은의 복수를 응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있을 열여덟의 문동은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학교 폭력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열여덟 문동은을 절망에서 구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좀 더 정확한 질문이 필요할 때다.

바이라인.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건 이상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 취재를 한 뒤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취재 제안이나 제보, 도움 말씀을 환영합니다. 취재: 이정환, 민노씨. 기획 협력 : 김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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