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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색다른 진보 7.] 문민 통제 아래 군사력 강화가 군국주의? 우리도, 일본도 불안정한 국제 상황에 필요한 대응 중… 지나친 평화 낙관주의, 집권 세력에 대한 견제력만 잃는다. (⏰13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이번에 그와 나눈 인터뷰 주제는 ‘일본 군국주의의 허상’이다.

자민당 스캔들에도 ‘역대급’ 압승…“강한 나라” 열망.

— 올해 2월 8일 일본 중의원 선거가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올해 중의원 선거는 일본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자유민주당이 혼자서 465석 중에서 315석을 차지했다. 단독 과반은 물론 개헌선까지 돌파했다. 여기에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꾸리기로 한 일본유신회 의석을 더하면 무려 352석, 전체 의석의 76%다. 자유민주당이 혼자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여권이 야권과 이렇게 큰 격차를 벌린 적은 없었다. 장기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총리도 얻지 못한 결과다.🔖1.

반대로 일본의 혁신계, 우리나라 표현으로 진보 진영은 가장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2024년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의 중도 진보 정당인 입헌민주당은 148석을 얻으며 자유민주당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런데 올해 선거에서는 공명당과 합당해서 ‘중도개혁연합’을 꾸렸음에도 겨우 49석만 지킬 수 있었다. 이게 현재 제1야당의 의석 수다. 그 외에도 일본 공산당 의석은 8석에서 4석으로 줄었고,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사회민주당은 아예 원외로 내쫓겼다.

이제 일본 국회에서 자유민주당과 다카이치 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참의원(상원)뿐이다. 아직 참의원에서는 자유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참의원 권한에는 한계가 많은 데다가 야권 분열이 심해서, 다카이치를 어디까지 견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지난 11일 수상관저에서 경제 재정 자문 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수상관저 홈페이지.
— 다카이치 총리가 상당히 인기가 많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작년까지 자유민주당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당이라며 비판받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아베 전 총리 파벌과 통일교의 유착 논란도 있었고, 2021년에는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과 그 아내 ‘가와이 안리’가 2019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에게 2900만 엔에 달하는 돈을 뿌린 사실이 드러나서 둘 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2.

이런 문제가 이어지자 연립정부를 꾸리고 있던 공명당도 자유민주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기에 트럼프의 관세 장난과 물가 상승이 겹쳤다. 결국 2024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여소야대 상황에 처해야 했고, 2025년 9월까지 버티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서 사임해야 했다.

이런 혼란을 한순간에 정리한 것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총리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정치인이다.🔖3. 그래서 아베파의 후계자라고도 불린다. 이번에 당 총재와 총리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옛 아베파와 주류 보수층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어 1958년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범’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사진은 1961년 모습). 그의 손자 아베(1954-2022)는 야마가미 데쓰야에게 사제 총기로 암살당한다. 아베 신조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민당에서도 가장 ‘오른쪽’ 사나에. 그리고 드디어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물론 다카이치가 오직 아베 후광 덕에 인기를 얻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카이치는 일본 정계에서 기득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신선한 캐릭터다.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 자리를 세습받은 사람들과 다르게,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에는 오토바이와 헤비메탈을 즐겼다.🔖4. 다카이치가 쓰는 가방과 볼펜이 유행하는 등, ‘사나마니아’라는 팬덤 현상까지 나타났을 정도다. 다카이치가 젊을 때 가죽 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진이 일본에서 꽤 인기를 끈 모양이다.

게다가 아베가 밀어준 사람답게 정치 감각도 있다. 다카이치는 취임하자마자 대만이 공격받으면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자연히 중국은 발끈해 다카이치를 비난하며 희토류 수출까지 막았다.🔖5. 그런데 이런 중국의 반응은 오히려 일본인의 불타는 안보 불안감에 석탄을 던진 꼴이었다.🔖6. 자유민주당의 스캔들보다 나라의 생존이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다카이치는 이전부터 군사력 강화를 꾸준히 주장해 왔고, 총리로 취임한 후에도 방위비(우리말로 국방비)를 2027년까지 GDP 2%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2026년까지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국가와 경제 안보를 위해 ‘책임 있고 적극적인 재정’으로 대대적 산업 정책을 추진하는 계획도 발표했다.🔖7. 식품에 대한 소비세 인상도 2년 정도 미루기로 했다.🔖8.

“강하고 풍요로운 열도.”

다카이치 총리의 슬로건

신선한 인물이 당 주류로부터 지지받으며 모호하지 않은 화법으로 속 시원한 정책을 공약했다. 거기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도 얻었다.🔖9. 이것이 인기 비결이다.

중국을 지렛대로…“안보 불안감에 석탄 던졌다.”

— 다카이치 인기에 일본 혁신계는 어떻게 대응했나?

일단 힘을 합쳤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공명당과 합당해서 ‘중도개혁연합’을 꾸렸다. 당 이름처럼,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 보수 노선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중도 세력끼리 뭉치자는 취지였다. 입헌민주당은 일본 최대 노동조직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일명 ‘렌고’로부터 지지받고 있었고, 공명당은 불교 세력인 창가학회로부터 지지받고 있었다. 이론상으론 둘이 힘을 합치면 상당한 지지세를 꾸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런데 합당 과정에 잡음이 많았다. 공명당과 합치기 위해, 입헌민주당 지도부는 탈원전 같은 진보 의제를 잠시 내려놔야 했다. 비례대표 우선순위도 공명당 사람들에게 많이 양보했다. 이 때문에 혁신계 지지층이 돌아서버렸다. 게다가 의회 해산으로 열린 선거인 만큼 선거 운동 기간이 2주 정도였던지라 합당은 했는데 선거 연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야당인 국민민주당이나 공산당과의 연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급조된 세력은 자유민주당의 압도적 동원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선거 전략도 문제였다. 중도개혁연합은 자유민주당의 스캔들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다카이치가 부부 별성 제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여성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스캔들에 대한 공격만 눈에 띄었을 뿐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중국 압박 탓에 나라 생존이 중요해졌는데, 혁신계는 낡은 평화주의를 고집했다. 경제 문제에서도 소비세 폐지 외에는 마땅한 공약이 없었다. 자유민주당이 복지 확대에 무관심한 정당도 아니었고, 다카이치가 진작부터 적극적 재정 같은 이슈를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반여성, 안티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프레임도 ‘일본 최초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 앞에서 무력했다.🔖10.

다카이치 총리의 계획적 기습 공격에, 혁신계가 무력하게 무너진 것이다.

총리 관저에 들어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위키미디어 공용. 2025.09.
— 한국 진보 언론은 다카이치 총리의 당선을 두고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는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 다카이치 총리 이전부터 일본은 꾸준히 군사력을 강화해 왔고, 최근에는 무기 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이 정말 군국주의화하고 있나?

처음 군국주의(Militarism)라는 말이 정치 용어로 자리잡은 곳은 1860년대 프로이센인 것으로 보인다.🔖11. 당시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대육군(Grande Armée)으로부터 크게 감명받았다. 이름에 어울리게, 나폴레옹의 대육군은 애국심과 혁명적 열정으로 무장한 국민으로 이뤄진 거대한 군대였다. 나폴레옹은 대다수 남성에게 사상과 무기를 함께 쥐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줬고, 프로이센 전쟁성과 군부는 그런 나폴레옹식 군대를 본받으려 했다.

이를 위해 프로이센은 의무 공립 교육을 통해 규율과 상명하복 같은 군사적 가치를 가르쳤다. 전쟁과 군인을 찬양하는 행사들을 열었고, 전쟁을 예습하는 보드게임까지 유통시켰다. 이렇게 군대가 거대해지는 만큼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도 강해졌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 바로 군국주의였다.

즉, 원래 군국주의는 군대가 문민 통제에서 벗어나 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민간과 군대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군사적 덕목과 전쟁 대비가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등극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29년『국제 사회 과학 백과사전』에 군국주의에 관한 최초의 항목을 작성한 로렌스 레드웨이는 군국주의를 전쟁을 가치 있게 여기고 국가와 사회에서 군대에 우위성을 부여하는 교의로 정의함으로써 그 현상의 제도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을 모두 포착했다.”

로저 치커링, 미국 조지타운대학 역사학자.

지금도 비슷한 말로 통하기는 하지만, 학자나 학계마다 구체적 기준이 다르다. 문민 통제가 무너지고 사회 전반이 군대에 종속되는 것이 군국주의인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종속인가를 두고 의견이 다른 듯하다. 자유나 사회주의 같은 다른 정치 개념들이 그렇듯, 군국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합의된 정의는 없다. 모든 현대 국가는 어느정도 군사화해 있기 마련이라, 그 정도가 국가 안보를 지키는 데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선 ‘과잉 군사화’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학자도 있다. 물론 어느 수준부터 과한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은 없다.🔖12.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의 군사력 강화를 비난하기 위해 군국주의라는 말을 너무 편하게 꺼내든다. 장애인 예산이 부족한 것을 나치의 장애인 말살과 같은 선상에 두거나, 진보 정치인의 위선이나 공상적 정책에 비판적인 것을 극우화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극우, 파시즘, 혐오주의, 군국주의는 진보가 상대방을 공격할 때 편하게 꺼내는 단어로 전락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슬로건. 사진=자유민주당 페이스북.

비무장 평화주의도, 팽창적 군국주의도 원치 않는다.

— 일본이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징병제도 다시 도입할지 모른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철저히 문민 통제 원칙 아래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위대는 구 일본 육군이나 프로이센군처럼 국회를 압도하는 권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학생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도 않다. 다카이치가 추진하는 GDP 대비 2% 수준의 방위비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방비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재무장은 폴란드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산 무기를 수입하면서 유럽 최강의 육군을 양성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보가 위태로우니, 그에 맞춰서 대응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내각총리대신, 그 밖의 국무대신은 문민이어야 한다.”

일본국 헌법 제5장 제66조.

일본인이 전쟁을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 군사적 덕목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고 볼 근거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치학자 폴 미드폴드가 지적하듯, 전후 일본의 여론은 혁신계의 비무장 평화주의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극우의 팽창적 군국주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 때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자위대 ‘비전투 인력’을 파병하려고 했을 뿐인데도, 일본인 과반이 격렬히 반대해서 무산됐다.🔖13. 일본인은 자위대가 너무 많은 역할을 맡기를 바라지 않고, 해외 전쟁에 엮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14.

일본에서 1990년대까지 제1야당 자리를 지킨 곳은 지금 사회민주당의 전신인 사회당인데, 사회당이 단독 집권에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비무장 평화주의였다. 정작 사회당 지지층도 비무장 평화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는데, 당 지도부가 여론을 외면하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일본의 여론은 줄곧 스스로를 지킬 만큼의 무력은 갖추되, 철저한 문민 통제 아래에서 적의 공격을 막는 데에만 집중하기를 바라는 ‘방어적 현실주의’에 가까웠다.🔖15.

물론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야 일본에게 당한 것이 많으니, 일본이 강해지는 상황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친밀한 동맹이 아닌 이웃 나라가 군사력을 키운다는 것은 언제나 껄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껄끄러움을 군국주의라는 과장된 단어로 표현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과장된 단어는 과장된 시점에서 거짓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와 유신시대에 꽤나 가혹한 군국주의를 직접 겪어봤다. 그런 우리나라가 군국주의라는 말을 가볍게 쓴다면, 역사적 고통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워지지 않을까.

현대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군국주의라면, 과거 우리나라가 겪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만약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군국주의라면,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도 군국주의자다. 핵잠수함 건조까지 허락받은 이재명 대통령도 군국주의자 의혹을 피할 수 없다. 국가 안보를 신경쓰는 모두가 군국주의자라면, 오직 무장을 해제하고 맨몸으로 평화를 외치는 유토피아주의자만 군국주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한쪽이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해서 알아서 항구적 평화가 찾아 온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일본은 무모한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지 않다. 불안정한 국제 상황 속에서 필요한 대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

— 일본 혁신계가 비무장 평화주의 때문에 항상 발목잡혔다고 했는데, 한국의 진보 정당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일본인은 오랫동안 안보 불안을 느껴 왔다. 2022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홋카이도에서는 주민이 대피하고 대중교통이 멈춰섰다. 미사일이 홋카이도 상공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일본인에게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일상에서 체감하는 위협이다.🔖16.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대국화가 일본인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 3월 요미우리 신문과 일본국제문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70%가 군사력 강화에 찬성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찬성률이 80% 이상이었다.🔖17.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혁신계는 마땅한 대책 없이 자위대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군사력 강화에 반대했다. 그나마 자위대 해산을 공약하던 때보다 온건화해 이 정도다.

한국의 군소 진보 정당도 일본 혁신계 정당과 비슷한 모습이다.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 부르고, 힘을 통한 평화를 몽상이라고 깎아내린다. ‘무기를 내리고 대화로!’가 한국 진보의 평화주의 기조를 가장 잘 표현하는 구호가 아닐까.🔖18. 그러나 자국민도 대화로 설득하지 못하면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자국민부터 설득해 제1야당 자리까지는 스스로 쟁취해야 그나마 평화주의에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과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지난 1월 14일 나라현 호류지에서 열린 친교 행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수상관저 홈페이지.

힘 없으면 낄 수 없는 국제 정치 현실 속에서.

— 평화주의는 이상적이지만, 대중이 느끼는 안보 불안을 과소평가하는 면이 있다. 대안을 제시해야 불안이 해소될 텐데….

사람은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한 조상의 후손이다.🔖19. 수풀이 바스락거린다. 맹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이럴 때 없다고 단정하면 어떻게 될까. 정말 없으면 다행이지만 있다면 목숨이 위험하다. 반면 맹수가 있다고 간주하고 미리 도망치면 어떻게 될까. 없으면 괜히 힘을 뺀 셈이지만, 정말 있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안전 면에서 합리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화재 예방을 위해 소화기를 배치해 두는 것이고, 밤길에 등 뒤에 누군가 있으면 빨리 걷는 것이다.

수풀이 흔들린다면 그 뒤에 토끼 있을 거로 보고 안심하기보다는 호랑이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대비해야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국가 안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안전하지 않다. 당장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 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종량제 봉투조차 구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북쪽과 서쪽에는 핵무기와 백만 대군을 가진 호전적 세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군 병력은 인구 감소와 함께 10년 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낙관적인 사람 뿐일 것이다. 실제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 다수가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20.

되도록 대화로 갈등을 해결해 보려는 것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쪽이 불합리하다. 정작 자신들도 그 만일의 사태를 위해 무기를 쌓아두고 있지 않은가. 힘이 없으면 대화 테이블에 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개항기에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자면서 그 교훈을 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민주 국가에서 국민 불안감에 대응하지 않는 정당이 표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일본 공산당 등 혁신계가 평화주의 때문에 자유민주당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 진보 정당도 평화주의를 고집하는 한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 참고문헌

1. 衆議院・参議院 選挙の歴史 | NHK選挙WEB
2. Kawai drops appeal, accepts prison sentence for vote-buying | The Asahi Shimbun: Breaking News, Japan News and Analysis
3. Robert J. Pekkanen, et al, Japan Decides 2021: The Japanese General Election, Palgrave Macmillan, 2022. https://link.springer.com/book/10.1007/978-3-031-11324-6
4. Nicholas Szechenyi, et al, Sanae Takaichi: Japan’s Likely New Leader,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 2025. https://www.csis.org/analysis/sanae-takaichi-japans-likely-new-leader
5. Enrico D’Ambrogio, Japan: Takaichi Sanae secures a landslide victory, European Parliamentary Research Service, 2026. https://www.europarl.europa.eu/thinktank/en/document/EPRS_BRI(2026)782667
6. Philip Luck, et al, Takaichi Landslide Shows Limits of Chinese Economic Coercion, CSIS, 2026. https://www.csis.org/analysis/takaichi-landslide-shows-limits-chinese-economic-coercion
7. Enrico D’Ambrogio, Japan: Takaichi Sanae secures a landslide victory, European Parliamentary Research Service, 2026. https://www.europarl.europa.eu/thinktank/en/document/EPRS_BRI(2026)782667
8. Mireya Solís, et al, Japan’s thunderbolt election: Takaichi resets politics, economics, and diplomacy, Brookings Institution, 2026. https://www.brookings.edu/articles/japans-thunderbolt-election-takaichi-resets-politics-economics-and-diplomacy/
9. Peter Chai, et al, Descriptive and Substantive Representation: The Case of Japan’s First Female Prime Minister, The Asia Pacific Journal | Japan Focus 24, 2024. https://apjjf.org/2026/4/chai-crabtree
10. Mireya Solís, et al, Japan’s thunderbolt election: Takaichi resets politics, economics, and diplomacy, Brookings Institution, 2026. https://www.brookings.edu/articles/japans-thunderbolt-election-takaichi-resets-politics-economics-and-diplomacy/
11. Roger Chickering, War, society, and culture, 1850–1914: the rise of militarism, The Cambridge History of War Volume 4, 2012.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abs/cambridge-history-of-war/war-society-and-culture-18501914/BF703DA2B72E2A4C07B84E478F1E65C5
12. Marcus Schulzke, Necessary and surplus militarisation: Rethinking civil-military interactions and their consequences, EJIS, 2017.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european-journal-of-international-security/article/abs/necessary-and-surplus-militarisation-rethinking-civilmilitary-interactions-and-their-consequences/EEF2551DB240571AE3FE41EA53D39B5A
13. Paul Midford, Rethinking Japanese Public Opinion and Security: From Pacifism to Realism?,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https://www.sup.org/books/politics/rethinking-japanese-public-opinion-and-security
14. Andrew L. Oros, Japan’s Security Renaissance: New Policies and Politics for the Twenty-First Centur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https://cup.columbia.edu/book/japans-security-renaissance/9780231542593/
15. Paul Midford, Rethinking Japanese Public Opinion and Security: From Pacifism to Realism?,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https://www.sup.org/books/politics/rethinking-japanese-public-opinion-and-security
16. ‘Duck and cover’: in Japan, North Korean missile alerts are becoming a fact of life | Japan | The Guardian North Korea fires missile over Japan prompting warnings for residents to shelter | Japan | The Guardian
17. 日米同盟を信頼…読売新聞・日本国際問題研究所 共同世論調査 : 読売新聞
18. 무기를 내리고 대화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여연대 – 평화군축센터
19. 랜돌프 M. 네스, 이기적 감정, 안진이 옮김, 길벗, 2020.
20. 국민 82%는 “북한 비호감”…75%는 “안보 불안” | KBS 뉴스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392 국회미래연구원 – 외교안보전략연구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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