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은 24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4년 동안 미국에 210억 달러, 한화로 약 3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현대는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화답했다.

현대차의 대미 행보를 두고 정부를 대신해 민간 기업이 관세 장벽 완화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평가하지만, 국내 산업 기반 시설의 공동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관세 채찍’을 마구 휘두르며 전 세계 제조업 일자리를 빨아들이고 있다. 4월 본격화할 트럼프 발 보편 관세에 ‘한국GM 철수설’이 불거지는 등 국내 제조업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다.

민주당 의원 김태년이 발의한 ‘전략 산업 국내 투자·생산 촉진 세제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내에서 반도체, 2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등 국가 전략 산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김태년은 지난해에 반도체 산업에 100조 원 규모의 정책 금융을 지원하는 ‘K-칩스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당 경제안보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년을 24일 오후 국회에서 만났다. 트럼프 발 자국 우선주의 블랙홀에 허우적대는 대한민국 산업을 진단했다. 유력 대선 후보 이재명(민주당 대표)이 26일 선거법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민주당의 집권 플랜, 특히 경제 정책에 이목이 쏠린다. ‘정책통 5선’ 김태년은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전략 산업에 국가 지원,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다.

— 지난 7일 전략산업촉진 세제 도입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해 국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법이다. 발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바이든 정부 때는 자국에 생산·제조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 칩스법(CHIPS Act) 등의 당근으로 유인했다면, 트럼프 정부는 같은 일을 채찍을 들고 하고 있다. 우리 수출, 투자, 내수 모두 부족하고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 산업 제조 기반이 위태로울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국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전략 산업에는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국가전략기술 개발 비용 공제나 투자 세액 공제 같은 정책이 있다. 그럼에도 이 법안이 필요한 이유는?

“그동안 ‘미래 투자’ 관점에서 기술 투자·개발에 대한 조세 지원에 주력했는데, 정책의 즉각적 효과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를테면, 반도체 산업은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막대하지만 지원 정책 효과는 빠르다. 하지만 2차 전지나 디스플레이는 정책 효과가 늦다. 투자하고 수익을 거두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이 경우 생산 기간 동안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생산 세액 공제가 필요하다. 2035년까지 한시법으로 만들었다. 투자 세액 공제와 생산 세액 공제를 양자 택일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중복으로 지원이 이뤄지진 않는다. 아울러 세액 공제는 완제품의 원가를 떨어뜨리는데, 그만큼 소비자들이 이익을 본다.”

법안 만들 때 국내 기업의 애로 사항을 경청했을 텐데, 기업들은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

“외국은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산업에 엄청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우리도 여기에 대응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자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전력, 용수, 폐수 처리 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 있어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정책으로 국내 생산 시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도 하고 해외의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이전시킨다. 생산 시설이 중요한 이유는 공급망을 형성할 수 있어서다.

공급망 형성은 중국 제조업이 강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세계 공장 역할을 하면서 세계 유수의 제조 시설이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중국에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생산 시설을 중심으로 소재, 부품, 장비 공급망이 형성되며 중국의 제조업 굴기가 성공할 수 있었다. 반대로 첨단 산업 핵심 시설이 나라 밖으로 이전하면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가 깨지는 것이다.”

감세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공급망 투자, 때를 놓치면 안 된다.

— 결국 사업소득세와 법인세를 공제해 주는 내용이다. 감세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법인세는 세수 결손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기업에 대한 감세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 않나?

“투자나 생산 세액 공제 모두 법인세를 공제하는 것으로 표면적으로야 감세가 맞다. 하지만 우리 미래와 직결돼 있는 전략 산업 지원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일괄 감세 정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감세라고 다 같은 감세가 아니고 증세라고 다 같은 증세가 아니다. 사업 종목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세금을 깎는 감세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무분별한 감세 정책은 세수 여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복지 정책을 위축시킨다. 우리 미래를 결정할 첨단 전략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국가 차원의 투자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일괄적 법인세 감세엔 분명히 반대한다.”

지난해 반도체특별법 등 칩스 3을 발의했다. 타 의원들의 반도체 특별법과 김태년의 칩스3은 무엇이 다른가?

“다른 의원들 법안이 단일한 것이라면, 칩스 3법은 ‘반도체 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조특법), ‘산업은행법 개정안’(산은법)이 하나의 패키지다. 지금 기업 투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 구축이다. 워낙 큰돈이 들어가는 데다 갈등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국가가 책임을 지고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게 반도체 특별법 골자다.

대만 TSMC 반도체 공장이 있는 일본의 구마모토는 2년 반 만에 공장이 완공됐는데, 우리 용인 반도체 특구는 2019년 용지 선정 후 지금도 조성 중이다. 조특법은 반도체 산업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 세제 지원을 늘리고 강화하는 내용이다. 산은법은 30조 원에 묶여 있는 산은 법정 자본금을 40조 원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산은 법정 자본금이 10조 원 늘어날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에 저리로 100조 원 규모의 정책 금융을 지원할 수 있다. 앞단의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부터 뒷단의 패키징(Packaging·반도체 칩을 포장하는 과정)까지 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충분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라 매우 큰 효과가 있다.”

52시간 논란은 국민의힘의 프레임 비틀기, 본질 아니다.

반도체 특별법 관련 기업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52시간 예외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나?

“22대 국회에 들어서서 제1호 법안으로 칩스 3법을 준비하며 기업, 협회, 지방 정부, 학계 인사를 다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이 과정에 ‘주 52시간’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지난해 11월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기자 질문 : 주 52시간 요구는 어디서 비롯했나?)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전하면 특정 기업을 지적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삼성이 제기한 것은 맞다. 삼성은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엔비디아(NVIDIA) 납품이 늦어지면서 여러 위기 요인이 제기됐고, CEO가 새로 교체되면서 주 52시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에서는 이 이슈에 일체 말이 없었다.”

반도체 산업에 주 52시간 제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찬반을 떠나, 정부가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반도체 연구·개발직에 한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조치를 시행했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주장했던 쪽 요구가 해소된 것이다. 이런 행정 지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바라던 바가 해소됐는데도 법 통과에는 미적거리고 있다. 애초 주 52시간를 꺼낸 목적이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쟁용 아니었나 싶다. 관련 법안을 내놨던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런 당 입장에 불만이 크다. 이제는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당 의원이 늘었기 때문에 법 통과는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일부 노동단체들은 반도체 특별법 자체를 재벌 특혜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물론 기업이 수혜를 입을 수 있지만 칩스 3법은 특구 지원법으로서 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특구에 입주하는 기업이 대기업만 있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도 있다. 팹리스(반도체 생산 라인이 없는 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기업들은 규모가 크지 않다. 또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설계부터 완성,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포함한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고 강화하는 법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찬성 뜻을 비치면서 노동 시간 이슈가 커졌다.

“이슈를 키웠다기보다 쟁점으로 부각된 만큼 대표가 직접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 사회 정책 결정 과정에는 토론이 많이 필요하다. 주 52시간 적용 찬반 토론을 통해 산업계와 노동계가 쟁점을 좁힐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의원 김태년이 24일 오후 국회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태년 의원실.

거래의 달인 트럼프, 약점 잡히면 못 이긴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자국 일방주의 통상 정책,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상상 이상의 규모와 속도로 압박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현실화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바이든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당근을 통해 이행했다면, 트럼프는 채찍을 들겠다는 것이다. 윤석열식 이념 외교는 애당초 시대착오적이었다. 민주주의 가치 동맹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거래만 있을 뿐이다. 자유무역주의 시스템하에서 수출로 먹고살던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다. 이게 현실인데 또 어쩌겠나? 현실을 인정하고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트럼프 1기를 경험했다.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민주당 정부는 트럼프 1기뿐 아니라 사드 배치 후 중국의 경제 보복, 일본의 수출 규제 등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또한 민주당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마련한 전략들이 있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기반으로 경제 안보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급망과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국가전략산업 육성 전략 등을 조합함으로써 대전환의 복합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극복의 힘은 ‘국가 파워’에서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 동력으로 출범한 정부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빛나는 민주주의에 경의를 표했다. 지금 내란과 탄핵 국면인 가운데, 대한민국은 여전히 확고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다시 인정받아야 한다. 트럼프 정부 핵심은 거래이고,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통상 이슈는 이슈대로 대응하되 우리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지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중일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한중 의원연맹 회장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지만 기업들은 중국 기업의 저가 수출 공세에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중국과의 통상·외교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중국은 필연적으로 협력하면서도 경쟁해야 하는 국가다. 산업 구조 면에서 우리와 매우 비슷해졌다. 여러 굴기를 통해 중국 기업들이 치고 올라왔다. 중국은 엄청난 공급망을 갖고 있는 최대 시장이다. 우리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윤석열 정부의 탈(脫)중국 정책으로는 국익을 실현할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잃으면 기업 미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더욱 트럼프의 경우 민주주의 가치 외교는 안중에 없다.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각국이 치열하게 생존 경쟁에 나설 것이다. 기업만으로, 정부만으론 몰아치는 폭풍우를 뚫지 못한다. 기업, 정부, 국회를 망라한 고도의 협력 체계, 국가 총력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낙수효과 말고 혁신을 통한 포용 성장, 진보-보수 망라한다.

민주당이 경제 성장을 말하고 기업 지원을 밝히면 우클릭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우클릭 평가에 동의하는가?

“지금까지 성장을 추구하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나? 국민의힘 계열이든, 민주당 계열 정부든 한 번도 성장을 등한시한 적 없다. 다만 어떤 성장이냐가 중요하다. 국민의힘 계열은 4대강 같은 대규모 국책 사업을 벌이거나 낙수효과에 기댔다면, 민주당 계열 정부는 ‘혁신’을 통한 성장을 강조했다. 그다음은 ‘포용’을 통한 성장이다. 성장 과실을 일부가 다 가져가 버리고 대다수는 못 먹게 되면 양극화는 악화할 것이고 성장 동력은 사라진다. 나아가 성장 기반은 ‘공정’이어야 한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의 국가 운영 전략은 공정에 기반한 혁신과 포용 성장이다.”

—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당이라는 이재명 대표 발언이 갑론을박이다.

“그런 개념 규정이 사회 과학자들에겐 중요할지 몰라도 국가를 운영하거나 정책을 입안하는 정당 입장에서 얼마나 유용하고 실효적일지 의문이다. 민주당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의원 면면도 중도 진보부터 중도 보수까지 다양하다. 정책도 중도 진보적 정책부터 중도 보수적 정책까지 망라하고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진보와 보수 모두를 수용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대신 양극단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이 파시즘 양상을 띤 극우로 가 버렸다. 매우 좋지 못한 신호다. 우리 정치로서도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 유연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경쟁 체제가 발전적인데 한 축을 맡고 있는 정당이 극우화하고 있다. 정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합리적 보수와 극우로 분화할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다.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이 교체됐고 실제 성장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나?

“가처분 소득이 있어야 소비가 가능하다. 소비를 진작해야 내수가 활성화하고 경제가 성장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원칙이다. ILO(국제노동기구), IMF(국제통화기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모두 소득 정책 추진을 권고해 왔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분명했다. 임금 소득 격차가 완화했고 지니계수가 개선됐다. 다만, 정책 추진 과정에 코로나19와 저금리라는 큰 장벽을 맞닥뜨렸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각 국가는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은 재정을 투입해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했다. 그 과정에 세계 유동성 과잉이 뒤따랐고 시중에 돈이 많아지니 부동산 자산 가격이 치솟았다. 다른 나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산 소득 격차를 줄이지 못한 것은 대단히 뼈 아프다. 그러나 소득 격차를 완화했다는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K-엔비디아 펀드, 황당한 아이디어 아니다.

— 여·야 모두 국가 전략 산업 지원 정책은 쏟아내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 양극화를 완화할 복지 정책은 무엇인지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비어 있는 재정 지출과 복지 영역에 관한 민주당의 그랜드플랜은 없는가?

“윤석열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 정책 때문에 세수와 재정 여력이 매우 약화한 것은 사실이다. 차기 정부는 고스란히 부담을 안고 출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일괄 감세 정책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국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게 기본 사회 모토라고 생각한다. 보건, 의료, 환경, 교육, 주택 영역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것, 그게 민주당 비전이다.”

이 대표가 ‘K-엔비디아 지분 공유론을 띄웠다가 공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장면을 보고 2004년 초선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연기금의 주식 투자와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추진하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연기금 사회주의’라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은 15% 수익률을 올리며 국부를 창출했다. 국민에게 돌아갈 연기금이 늘어난 것이다.

TSMC도 대만 정부가 48%를 출자한 기업이다. 약 2800억 원을 투입했다. 이후 증자 과정을 거치며 정부 지분이 6.8%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시가총액으로 보면 그래도 91조 원 규모다. 주가 상승뿐 아니라 오랜 시간 배당도 지급했을 것이다. 이익이 날 때마다 받았던 배당도 국민 수익으로 돌아가지 않았겠나? K-엔비디아 이야기도 민관이 거액을 투자하여 수익을 창출해 보자는 것이다. 포스코와 KT도 국민 기업으로 성장한 뒤 민영화한 기업이다.”

균형재정은 미신,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국가 비전 만들 때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새 정부는 초거대 여당으로 출범한다. 경제 및 산업 법안 가운데 무엇이 가장 먼저 논의돼야 하고 통과돼야 하나?

“우선 반도체 특별법 등 국가 첨단 전략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법안을 속도 있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시적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참여정부 때는 복지 강화를 위해 재원 대책을 구상하고, 재원을 만들기 위해 장기 성장 전략을 짰다. ‘비전 2030’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6년이었는데도 2030년 미래를 논의했다.

문재인 정부도 혁신적포용국가 미래비전 2045, K-뉴딜정책, 즉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완화하는 국가 균형 뉴딜, 대전환 시기의 디지털 뉴딜, 포용성을 강화하는 휴먼 뉴딜 등 중장기 전략을 만들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장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빠른 속도로 국가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성공의 관건이다.”

— 윤석열 정부 몰락은 감세와 균형 재정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했다. 정부, 특히 기재부는 균형 재정에 강박이 있는 듯하다. 국회 기재위원으로서 기재부의 균형 재정 의지를 어떻게 보나?

“균형 재정과 관련해 거의 종교화하고 있다. 신자가 찬송가 부르듯 하는데, 나는 균형 재정은 미신이라고 본다. 지금 균형 재정이 실현됐나? 지난해 30조, 지지난해 57조, 총 87조 원 구멍이 났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 운영 전략이 없고 능력도 없다. 기재부는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곳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 있지만 필요할 때는 돈을 써야 한다. 지금도 ‘균형 재정, 건전 재정’ 노래만 부른다면 현실 인식이 왜곡된 것이다. 기재부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법안을 준비하며 내가 만나 본 경제 주체들은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골목상권 자영업, 가릴 거 없다. 모두 죽겠다고 한다. 돈을 써야 한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김태년이 꿈꾸는 대한민국 미래 청사진은 무엇인가?

공정하고 포용적이며 혁신이 지속 가능한 사회다. 과거에 안주했던 기업은 하나같이 다 도태됐다. 과거 100대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이 몇 개인가? 사양 기업은 있지만 사양 산업은 없다. 어떤 산업이든 혁신이 이뤄지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 에너지를 통한 성장 과실은 공정한 원칙에 따라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 국민이라면 돈 없고, 빽 없고, 권력 없어서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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