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반도체 호황 오래 가지 않을 수도… 막연한 낙관론은 위험, 법인세부터 올리고 기금 확보해야.
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올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50조 원에 달한다.
양대 반도체 기업의 실적 호조로 인한 법인세와 주식 거래 활성화로 인한 증권거래세 수입을 포함하면, 올해 초과 세수 규모가 최대 20조 원에 육박한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초과 세수’, ‘초과 이윤 공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반도체 성장을 낙관하고 있는 김용범(청와대 정책실장)은 “AI 시대에 걸맞은 사회·노동 정책, 그리고 초과 세수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박상인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초과 세수 공유제 토론회’에서 “김용범 정책실장은 엄청난 낙관론을 피력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하다”며 “나중에 예측과 달랐을 땐 어떻게 할지 비상 대응이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박홍배, 기본소득당 용혜인, 사회민주당 한창민 등 의원들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노총이 개최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너무 앞서가고 있다. 정부·여당에서는 벌써부터 “이익을 국민과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삼전닉스의 초과 이윤에 별도 세금을 매기자, 정부가 주식을 받아 배당으로 돌려주자, 하청업체 기여분을 환수하자 등이 대표적이다.
- 박상인은 ‘초과 세수’ 용어부터 문제 삼았다. 초과 세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정부가 더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논의가 사라진다.
- “초과 세수라는 말은 기존 세율을 적용했는데도 일정 수준보다 더 걷혔다는 이야기인데, 오히려 정부가 세수를 더 많이 거둬야 한다는 논의를 없애버리는 잘못된 프레임이다.”
- ‘초과 이윤’이라는 말도 불필요한 논쟁만 부른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지대 같은 경우 비생산적인 초과 이윤이라 부를 수 있지만 혁신 기업의 성과를 부동산 지대와 동일하게 볼 순 없다.”
법인세율부터 올리자.
- 반도체 호황은 전략의 산물이 아니다. “AI 쇼크가 이렇게 올지 아무도 몰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태원 SK 회장이 금산분리 완화를 로비하는 등 누구도 오늘을 예상하지 못했다.”
- 더는 불필요한 논쟁 벌이지 말고, 당장 내년부터 법인세를 올리자는 게 박상인의 제안이다.
- 현 법인세 최고세율 24%. 구간을 하나 더 만들어 36%까지 올리자는 것이다.
- “누가 기여했는지 세부적으로 따질 것 없이 엄청난 이익을 올린 기업은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세금 더 깎아주는 법, 이게 맞나.
- 오는 8월 반도체 특별법이 시행된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대·중견기업의 세액 공제율이 15%에서 20%로 5%P 늘어난다.
- 박상인은 “너무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 주체를 못하는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더 깎아주는 법이 통과됐다”며 “정치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반도체 특별법을 고쳐서 20% 세액 공제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낙관론, 타당한지 따져보자.
- 반도체 호황은 계속될까. 낙관론 근거는 수요다. 낙관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한 AI 데이터 센터 수요가 늘고 있고, 메모리에 대한 장기 계약과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데이터 수요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 2030년 정도 되면 피지컬 AI 시대가 도래한다. 그러면 또 한 번의 수요가 폭발할 것이다.’
- 박상인은 회의적이다. LLM(대규모 언어 모델)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극단적으로 작동하는 ‘승자 독식 구조’다. 경쟁이 지속되는 동안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지만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수요가 급감한다. 패배한 사업자들이 가진 데이터센터가 중고로 쏟아지며 공급 과잉이 온다. “그 시점이 2028년인지 2029년인지 아무도 모른다.”
- 피지컬 AI(휴머노이드 로봇)가 빠르게 상용화하면 또 한 번 수요가 폭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상인은 여기에도 회의적이다. 텍스트·이미지로 학습하는 LLM과 달리 휴머노이드는 물리적 환경에서 학습한다. 오류 시 사람이 다치는 안전 문제, 노동 대체에 따른 사회적 반발까지 고려하면 2030년 상용화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
AI는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니다.
- 박상인은 한국이 겪고 있는 반도체 특수를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구조적으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곳은 애플, 구글, 메타 같은 플랫폼 사업자다. 여기에 부품을 납품하는 반도체 기업은 대체 가능하다.
-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높아질수록 대체 경쟁이 가속화한다. 중국산이 부상하고, 마이크론 같은 기존 기업이 생산을 늘리고, 일본의 라피더스(Rapidus)도 시장 진입을 노린다. 기존 사업자 수익률이 낮아지는 건 시간문제다.
- 기술 대체 가능성도 있다. 메모리를 적게 쓰는 알고리즘이 나오거나 메모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자가 등장하면 수요 구조가 바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끝없이 갈 거라는 예측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게 박상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나.
- 반도체 세수 증가는 일시적일 수 있다. 박상인은 지금 당장 분배하기보다 기금을 적립해 미래를 대비하라고 제언했다.
- 구조적 재정 수요가 이미 산적해 있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기초연금, 통합 돌봄·간병 문제까지 고령화 사회가 요구하는 재정 부담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세제 개편도 필요하다. 박상인은 금융투자소득세 즉각 도입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코스피(KOSPI) 4000이 되면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9000이다. 자산 양극화를 말로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 이익이 사회로 환류하도록 해야 한다.”
사막에 물 뿌리지 말고, 녹지 고민을.
- 박상인은 반도체 호황을 계기로 성과를 조금씩 나눠주자는 발상을 “사막에 물 뿌리기”에 비유했다. 사막에 물 찔끔 뿌린다고 녹지가 되지 않는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 문제에 정부나 정치권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를 반도체 호황으로 덮고 있다는 게 박상인의 문제 의식이다.
- “자산 양극화는 세금으로 교정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세금과 재분배 정책을 결합해야 한다. 반도체 말고는 살아남을 제조업이 안 보인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하는데, 반도체에서 돈 좀 벌었다고 1인당 몇만 원씩 나눠 가질 궁리만 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