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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모두의 성장’이 ‘모두’의 것이 되려면, 성장의 성과도 전환의 비용도 함께 나눠야 한다. (우석진 /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9분)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실질성장률을 3.0%로 전망했고, 명목성장률은 반도체 가격 상승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두 자릿수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7월 전망에서 한국의 성장률을 4월보다 0.7%포인트 높여 2.6%로 제시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0%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중동발 에너지 충격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성장세를 견인할 것으로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실질성장률을 2.6%, 명목성장률을 10.4%로 전망했다. 이는 2002년(11.0%) 이후 24년 만에 명목성장률이 두 자릿수로 상승하는 셈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대 저성장을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제의 외형적 지표는 분명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는 올해 한국경제 실질성장률을 2.6%, 명목성장률을 10.4%로 전망했다. 정부도 올해 실질성장률을 3.0%로 전망하는 등 한국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산업통산부.

두 자리 성장률 기대감 높지만…

성장세를 이끄는 힘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다. 7월 수출은 989억 달러로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고, 반도체 수출도 두 달 연속 400억 달러대를 이어갔다. 이번 교역조건 개선은 과거처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보다는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수출물가 상승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기업이익과 국민소득, 세수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과거에도 교역조건 개선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었다. 수출 호조가 내수 회복으로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 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수출 지표만큼 빠르게 좋아지지 않고 있다. 통상 수출이 늘면 수출대금 유입으로 환율이 안정되고, 기업이익 증가는 임금과 배당을 통해 가계소득과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 수출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기업은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설비투자와 고용도 확대한다.

이렇게 수출 증가가 기업의 투자와 고용, 가계의 소비로 연결되면서 성장의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경로가 곳곳에서 막혀 있거나, 작동하더라도 과거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데 있다.

성장의 온기는 왜 퍼지지 않는가

수출기업의 이익은 급증했지만 원화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 확대가 지속적으로 달러 수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송금하지 않거나, 송금한 뒤에도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경향도 환율 상승에 기여한다. 

한국은행도 거주자의 해외증권 투자와 수출대금의 환전 지연을 원화 약세의 주요 국내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기에 한·미 무역협정에 따른 대미 투자가 연간 최대 200억 달러의 추가 달러 유출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환율에 부담을 준다. 결국 기록적인 무역흑자에도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에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서, 수출 증가가 환율 안정과 가계의 구매력 개선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약해지고 있다.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협력업체의 납품단가와 임금 인상, 자영업자의 매출 확대,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경로도 약해졌다. 최근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은 이러한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사는 총파업 직전에 합의했지만,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DS부문)에는 최대 6억 원의 성과급이 지급된 반면 비반도체 사업부(DX부문)에는 추가 성과급 없이 약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만 지급되면서, 같은 회사 안에서조차 실적과 보상의 격차가 100배 수준으로 커졌다.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한 기업 내에서도 다른 사업부로 이어지지 않는 등,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 노동시장 전체로 성장의 온기가 확산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크다. 사진은 산업통상부.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한 기업의 다른 사업부에도 충분히 퍼지지 않는 상황에서,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 노동시장 전체로 확산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수출과 기업이익은 빠르게 늘지만 생활 현장의 소득과 고용은 뒤따르지 못하는 것, 이것이 거시경제지표와 민생 사이의 간극이 커지는 이유다.

반도체와 첨단 AI 산업의 성과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기업 임직원들은 높은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있고, 이에 더해 정부는 해당 산업에 대규모 재정·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반도체·피지컬 AI(로봇·자율주행차 등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데이터센터 분야의 3대 메가프로젝트에도 대규모 재정 투입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속도전을 강조하며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줄이려 하고 있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는 사업 초기부터 평가전담반과 패스트트랙이 가동돼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신속하게 진행됐다.

유권자인 국민은 언젠가 ‘그 성장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산업은 발전하고 국가경제는 성장하며 거시지표도 좋아지는데, 정작 자신의 소득과 일자리, 주거와 생활비 부담은 왜 나아지지 않는지 따져 묻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반도체 중심의 성장정책이 국민적 지지를 오래 유지하려면 성장의 성과가 임금과 고용, 지역경제와 세수, 공공서비스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실제 삶에서 확인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라도 그 정책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속하기 어렵다.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방법…버핏 룰과 대만 사례

대만은 성장의 성과를 국민에게 환원한 사례로 꼽힌다.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호황과 기업이익 증가에 힘입어 세수가 예상을 크게 웃돌자, 대만 정부는 초과 세수의 일부를 현금 지급과 민생 지원에 활용한 바 있다.  ©위키미디어

기업 차원의 이익이 협력업체와 노동자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세제를 통한 개인 소득 재분배가 그 공백을 메우는 또 다른 경로가 될 수도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자신보다 비서가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부유층 증세를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1년 7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당시 미국 대통령)와 이야기를 나눈 워런 버핏(왼쪽). 퍼블릭 도메인.

이러한 문제의식은 백만장자가 일반 근로자보다 낮은 실효세율(각종 공제를 반영해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자는 이른바 ‘버핏 룰’로 발전했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얻은 사람이 그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재분배는 성공한 기업과 개인을 벌주는 장치가 아니다. 성장의 성과를 사회 전체와 나누어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성장 체제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다.

대만은 성장의 성과를 국민에게 환원한 사례를 보여준다.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호황과 기업이익 증가에 힘입어 세수가 예상을 크게 웃돌자, 대만 정부는 초과 세수의 일부를 현금 지급과 민생 지원에 활용했다. 2023년에는 2022년 발생한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국민 1인당 6,000대만달러, 당시 환율로 약 25만 원을 지급했다. 2025년에도 4년 연속 이어진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1인당 1만 대만달러(약 46만 원)를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실제 지급은 그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초과 세수를 모두 현금으로 나눠준 것도 아니다. 일부는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고 노동보험과 건강보험 재정을 보강하는 데 투입했다. 현금 지급이라는 방식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따랐지만, 사회보험 재정 보강 등 구조적 지원과 병행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첨단산업의 호황으로 늘어난 재정 여력을 국민의 생활비와 사회보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사용함으로써, 산업의 성과가 국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대만 신주시에 있는 TSMC R&D 센터. 위키미디어 공용.

노동력 부족과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동시 위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닥칠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인구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3,738만 명에서 2040년 약 2,850만 명으로 감소한다. 불과 20년 만에 약 900만 명의 노동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고민이 일자리 부족이었다면, 앞으로는 노동력 부족과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아직 ‘일자리 대재앙(jobs apocalypse)’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노동 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고객상담과 번역, 초급 사무직, 주니어 개발자처럼 반복적인 인지 업무가 많은 분야에서는 채용 축소와 업무 대체가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업무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임금 상승이 둔화되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일부 기업이 인공지능을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인건비를 줄여 확보한 재원을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AI 인프라에 다시 투입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드는데 특정 직종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노동력 부족과 일자리 대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역설적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게티이미지.

결국, 핵심은 인공지능을 사람을 대체하는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사용할 것인지, 노동자의 역량과 생산성을 높이는 보완재로 활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동시에 대규모 구조적 실업 가능성에 대비해 고용보험과 직업훈련, 소득보장 제도를 보완해, 노동소득에는 무겁고 자본과 자동화 설비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조세체계도 재검토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편익은 기업과 자본에 집중되는데 전환의 비용은 노동자에게 떠넘긴다면,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정규 임금노동자가 보험료를 내고 실업과 노후의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2025년 기준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91.8%, 국민연금 가입률은 87.9%에 이르지만, 비정규직은 각각 53.7%와 37.1%에 그친다.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처럼 전통적인 임금·고용관계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의 감소는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는 기반을 약화시키고, 비정형 노동의 증가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을 늘린다.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보험을 기존의 고용관계에만 묶어 둔다면 사회안전망의 재정 기반과 보장 범위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미래대응기금…기술 전환의 이익과 비용 함께 나눠야

노동시장의 충격은 이제 막 첫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청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다. 올해 6월 청년(15~29세) 고용률은 43.9%로 전년 동월보다 1.7%포인트 하락했다. 이로써 청년 고용률은 2024년 5월 이후 2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교육을 마쳐도 첫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기업은 신입을 채용해 훈련하기보다 즉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량과 산업 현장의 수요는 어긋나 있으며,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높은 주거비 때문에 소득을 자산으로 축적하기 어렵다. 결국 부모 세대의 주택과 금융자산 보유 여부가 청년의 출발선을 좌우하면서, 노동시장 격차가 세대 간 자산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새로 설치될 미래대응기금(2026년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청년·지방·교육·성장동력 4대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신설이 추진되는 기금)은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기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의 성장’이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됐지만, 실제 논의에서는 ‘모두의 AI’와 같은 기술 보급 정책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된 점은 아쉽다.

모든 국민이 AI 에이전트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며, 설령 각자 자신의 AI 에이전트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만으로 모두의 성장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모두의 성장은 반도체 공장을 더 짓고 AI 모델을 더 많이 개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첨단산업의 성과가 일자리와 소득, 교육과 주거, 사회안전망의 개선으로 이어져 국민의 삶을 실제로 바꿀 때 비로소 완성된다.

미래대응기금에는 첨단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통로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미래 위험에 대응하는 장치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AI 전환 과정에서는 산업과 직무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대규모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잃거나 직무 자체가 사라지는 사람에게는 전직·이직 교육을 제공하고, 훈련 기간에는 충분한 실업급여와 소득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게티이미지.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도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사회보험과 직업훈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산업 현장과 연결된 교육과 첫 경력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의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함께 묶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이 기업의 설비투자만 지원한다면 그것은 산업기금에 불과하다. 기술 전환의 이익과 비용을 함께 나누는 장치가 될 때 비로소 이름에 걸맞은 미래대응기금이 될 수 있다.

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성장의 과실이 국민 대다수에게 돌아가는 경로를 만드는 일이다. 두 자릿수 명목성장률이 거시경제지표에만 머물지 않고 임금과 일자리, 주거 안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질 때 국민은 비로소 성장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재정이 해야 할 일은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와 동시에, 그 전환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는 것이다. 산업의 미래와 노동자의 미래를 함께 책임질 때 ‘모두의 성장’은 구호를 넘어 현실이 된다.

지난 7월,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청년·지방·교육·성장동력 4대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논의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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