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민생에는 5년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지방선거 이후 급변한 민심…일관된 목표와 장기적 설계로 위기 돌파해야. (이용갑/재능대학교 초빙교수) (⌚7분)
탄핵당한 직전 정부와 비교하면, 현 정부는 속도감 있게 국정을 밀어붙였다. 이런 상대평가 속에서 국민의 지지는 올해 6월 초까지 계속 올랐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코스피 지수가 이를 보여준다.
집권 1년 동안 정치적으로는 2024년 12·3 비상계엄(이른바 ‘12·3 내란’) 사태의 종식과 사법 개혁이 주요 주제였다. 정책적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5극 3특’(수도권·충청권·동남권·대경권·호남권 5개 초광역권과 강원·전북·제주 3개 특별자치도를 축으로 하는 균형 발전 전략)이 화두였다. 전 세계적인 AI(인공지능)와 데이터센터 열풍에 따른 AI 경제 활성화도 있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억제와 주식시장 활성화도 마찬가지다.
이제 절대평가의 시간
하지만 올해 6월 3일 지방선거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국민은 이제 현 정부를 절대평가로 바라본다. 정치적으로는 검찰의 공소 취소와 보완 수사권 폐지에 따른 치안 불안이 거론된다. 정책적으로는 부동산 세금, 청년 주거 문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기초자산 가격 변동을 2배 등으로 증폭해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와 주가 하락이 화두로 떠올랐다.
2024년 7월, 당시 야당 대표였던 현 대통령은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생을 챙기는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한 말이었다. 그 결과 먹사니즘, 민생, 실용은 현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현금 지급을 이어갔다. 지역화폐도 국고 지원을 받아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경제와 서민 경제가 살아난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민생을 챙기지 않는 정부는 없다. 정책에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정부도 없다. 실용은 성과를 내기 위한 태도일 뿐이다. 문제는 정책의 목표와 내용이다.

국정 철학은 무엇인가? 아무도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지난 1년, 정부의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 아무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5년 단임 대통령제 국가다. 5년마다 ‘무슨무슨 정부’라 부르며, 지난 정부와는 다른 새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약 2개월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진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비전, 목표, 전략, 국정 과제를 준비한다. 정부는 이 과제들을 5년 동안 관리한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 다음 날 곧바로 출범했다. 정부의 비전과 국정 과제를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대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약 두 달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국정 과제를 마련한 뒤에는 해산했다. 그 이후 국정 과제 관리는 상설 자문 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맡았다.
현 정부는 취임 후부터 광복절 전후까지 약 두 달간 ‘국정기획위원회’를 운영했다. 이 위원회는 국가 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그 아래 3대 국정 원칙과 5대 국정 목표를 두었다. 다시 그 아래 23개 추진 전략과 123개 국정 과제를 제시한 뒤 활동을 마쳤다.
‘실용과 성과’라는 국정 원칙,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 목표는 먹사니즘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소득·주거·의료·돌봄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하고 존중받는 사회, 그 안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사회. 이것이 ‘기본이 튼튼한 사회’의 목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가 운영 중이다. ‘국민행복 보장을 위한 기본사회 기본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문제는 국민이 이런 사정을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1년, 그리고 지금 추진 중인 정책들이 국정 기획 차원의 전략·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국가 비전 달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상황 논리, 정치적 이해관계, 추진 가능성 등 이른바 ‘그때그때 논리’가 앞선다는 인상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처음엔 소위 오른쪽 인사를 기용하며 ‘국민 통합’을 내세웠다. 지금은 지지 세력을 넓혀 ‘구조적 다수’를 구축하려 한다.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과반수가 같은 정당이다. 우호 세력까지 합치면 국회의원 약 5분의 3이 범여권이다. 하지만 ‘국민 통합’이든 ‘구조적 다수’든, 이는 직업 정치인들 사이의 정치공학적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정책 신뢰 녹이는 땜빵 정책의 무한 반복…
국민에게는 말 그대로 기본이 튼튼하고,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없애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주식시장 혼란을 키운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예탁금 상향 등 투자 조건이 강화됐다. 보유 주택 규모 중심에서 실거주 여부와 주택 가액 중심으로 바꾸려던 부동산 세제 개편은 후퇴했다. 기초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상자를 줄이고 저소득 수급자를 두텁게 지원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방식)형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 기존 수급 대상(하위 70%)은 그대로 유지하고, 저소득층 급여만 소폭 올리는 수준으로 후퇴했다.
정부는 이를 민의를 반영한 빠른 정책 전환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그때그때 정책 추진’의 사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2030 청년 세대를 위한 지원 정책도 살펴보자. 출생 때부터 부모의 양육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새로 제시됐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기존 출산·양육 지원을 재구성한 것에 가깝다. 이른바 ‘표지갈이 정책’이다. 자산 형성 종잣돈 마련과 취업 지원은 좋은 정책이다. 다만 기존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문제는 취업 지원을 넘어 고용 창출, 즉 청년이 취업할 일자리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적극적 일자리 창출 정책 논의는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원을 늘려 청년 채용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바 있다. 민간 기업의 청년 채용을 독려하는 방안도 있었다. 지금은 이런 논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청년 주거 지원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목돈이 없는 청년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다른 부작용도 있다. 무주택 4050 중장년 세대의 허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선의와 명분만으로 정책 효과가 담보되진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부 부처·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어떨까. 이 자체는 지난 20여 년간 추진돼 온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방향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최근 109개 공공기관 통폐합(전체 관리 대상 524개 중 109개를 줄여 415개로 정비하는 방안)이 발표됐다. 이것이 그동안 반복돼 온 ‘분리·신설 후 다시 통폐합’의 되돌이 순환이 아니라는 근거 제시와 설득이 필요하다.
전국 30개 지방 국립대학의 신입생 등록금 전액 무료(2027학년도부터 단계적 적용) 정책도 논란이다. 당사자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미 반값 등록금이 시행되고 있다. 대학 경쟁력과 무관하게 국립대라는 이유만으로 세금 특혜를 주는 셈이다. 교육, 지역 균형, 지역 경제 여러 차원에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득이 더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가 떠오른다. 그때도 선의와 대의명분을 앞세웠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나 중장기 효과 검토가 부족한 채로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을 각각 10% 이상씩 올렸다. 탈원전 정책도 비슷했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력 공급 중장기 계획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시행도 제대로 못 하고 논란만 키웠다.

지금도 비슷한 걱정이 든다. 호남·영남·충청에 수백조 원 규모의 AI 투자와 데이터센터 건설이 추진된다. 100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조성된다. 반도체·AI·데이터센터 호황에 발맞춘 미래지향적 투자 전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산업들은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오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지금의 계획이 호황기의 장밋빛 청사진에 그치지 않을지 걱정된다.
5년 단임 너머 ‘그 다음’을 설계해야 할 숙명
5년 단임 대통령제에는 숙명이 있다. 효과가 2~3년 뒤에나 나타나는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오래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정책은 중장기 정책 추진의 좋은 예다. 이후 여러 정부를 거치며 확대됐다. 아동 분야는 임신·출산 지원, 양육·아동수당, 유치원·보육시설 통합, 초등학교 늘봄교실, 지역아동센터로 넓어졌다. 노인 분야는 노인 일자리 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 맞춤형 돌봄, 통합 돌봄, 기초연금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국가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다음 정부의 정책 추진까지 고려한 중장기 설계가 필요하다. 동시에 5년 단임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도 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이 대표적 사례다. 2025년 3월, 국회를 통과했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의 모수 개혁이었다.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3%로 올랐다. 몇 년간 논의한 개혁안을 합의해 입법했다.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사법 개혁은 다르다. 지난 1년, 야당의 반대에도 정치적 결단으로 추진됐다. 이제는 정책 효과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수정하고 보완하며,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5년 단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성공은 다음 정부에서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협상했다. 그다음 정부가 이를 체결했다. 다음 정부가 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이어갈 때, 지금 정부의 정책은 제대로 효과를 낸다. 반대로 다음 정부가 정책을 본질적으로 뒤집으면, 효과는 단편적으로만 확인될 뿐이다.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워진다.

민생 문제 해결은 5년 안에 끝나지 않는다
다음 정부까지 정책을 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같은 정당 출신 정치인의 재집권, 이른바 정권 재창출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그런 사례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을 입법화하고, 시행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노무현 정부에서 입법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됐다. 최근 사례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포괄적 시범 사업이 시작된 돌봄 통합 지원 사업은 지난 정부(윤석열 정부)에서 대상자를 노인 중심으로 좁혀 시범 사업을 이어갔다. 이후 입법을 거쳐, 현 정부 들어 올해 3월 27일 통합 돌봄 지원 사업으로 시행됐다.
어떤 방식이든 마찬가지다. 구조적 다수라는 직업 정치인 간 정치공학적 관계 설정으로는 안 된다. 국민의 요구를 수렴한 민생 정책 설계가 먼저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정부까지 과제를 이어 줄 국민 통합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법적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민생 문제 해결은 5년 안에 끝나지 않는다. 여러 정부에 걸쳐 시도되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공학보다 미래 전략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짧은 호흡이 아니라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제시한 국정 비전과 전략, 국정 과제에 기반한 단계별 추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