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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젠지 사회주의’가 사라진 ‘하수도 사회주의’를 미국에서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까? 2018 샌더스 열풍를 거쳐 맘다니,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른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그리고 위스콘신의 프란체스카 홍까지. (⌚7분)

사회주의의 불모지 미국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온 민주사회주의 진영(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이하 DSA)이 지난해 11월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을 계기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잇따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맘다니 돌풍 이후

올해 5월 연방하원의원을 뽑는 펜실베이니아주 경선에서 크리스 랩이 DSA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승리한 데 이어, 콜로라도주에서도 DSA 소속 신인 멀라트 키로스가 15선 중진 다이애나 디게트 하원의원을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특히 버니 샌더스 이후 민주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 민주사회주의 진영 정치인은 대안정치를 넘어 미국 정치의 주류로 당당히 진입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DSA의 대부격. 사진은 2016년 당시 모습. 버니 샌더스 Gage Skidmore, Bernie Sanders, CC BY SA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2026.02. 페이스북.
조란 맘다니(인스타그램). 2025.11.04.

그동안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20세기 초 독일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의 저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따르면 미국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싹트고 꽃피우기에 척박한 땅이다.

1776년 독립 이후 전통으로 이어져 온 프런티어 정신은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를 정착시켰고, 유럽식 봉건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역사, 광대한 자연과 경제적 풍요, 노동자 계급 내부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 그리고 누구나 언제든 자영농이 될 수 있다는 안정감이 겹치며 노동자 계급 중심의 사회주의가 발붙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의 매카시즘(공산주의자로 몰아 정적을 탄압한 정치적 광풍)까지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젠지 사회주의(Gen-Z Socialism)의 등장

이들 민주사회주의 계열 정치인이 미국 정치판에서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극우 성향에 대한 반발을 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한쪽 이념이나 체제가 극단으로 흐르면 사회가 반작용을 일으켜 균형을 찾아간다는 칼 폴라니의 ‘이중 운동(double movement)’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 반작용이 곧바로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사회주의 계열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공화당 지지자 못지않게 민주당 주류 세력의 현학적 태도와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에 그럴듯한 대의만 내세우지 말고, 당장 우리 집 아이들 보육비와 교육비, 의료비 걱정 없이 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청구서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에게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나 거대한 사회적 대의를 설파하는 것은 부당함을 넘어 사람을 약 올리는 일일 것이다.

이들 민주사회주의 진영 정치인의 정치적 원동력이자 가장 든든한 우군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자유로운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다. 최초의 디지털 원주민인 이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가치를 중시하고, 수평적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 젊은 세대가 사회주의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란 맘다니(인스타그램).

2025년 카토연구소(자유지상주의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의 조사에서 18~29세 미국인의 62%가 ‘사회주의’에 호의적이라고 응답했다. 2021년 갤럽 조사에서 18~34세 미국인 중 자본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47%에 그친 것과 대조된다. 자본주의 심장부의 젊은이들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호의적이라는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26년 6월6일치)도 이런 젊은 세대의 흐름을 ‘젠지 사회주의’라 이름 붙이고 특집으로 다뤘다.

물론 이들이 중앙계획 경제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원리로 하는 전통적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사회주의의 기본 개념과 원리, 투쟁의 역사와는 별개로 ‘더 나은 삶’을 뜻하는 느슨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 있다. 기존 주류 정당이 청년의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위선적인 모습마저 보이자,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인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발맞춰 민주사회주의 진영 정치인들도 거대한 사회적 대의보다는 당장 유권자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내세워 여론조사와 각종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다.

하수도 사회주의(Sewer Socialism)의 부활

흔히 정통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관계를 버터와 마가린에 비유하곤 한다. 고소하고 풍미 있는 버터(사회주의)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대용품으로 값싼 마가린(사회민주주의)을 산다는, 다소 비하적인 표현이다. 원리적으로는 맞는 비유이지만, 실제 무산대중(無産大衆·재산 없는 노동자와 서민층)이 원하는 것은 피안(彼岸)의 최고급 버터가 아니라 당장 오늘 우리 가족 식탁에 오를 마가린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압도적 힘 앞에서 사회주의의 이념적 지향을 정치 민주주의의 힘으로 풀어내며 대중의 실질적 삶의 개선을 목표로 삼은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권 강화와 사회보장제도 확충을 통해 20세기 후반 복지사회를 이끌었다. 정치학자 셰리 버먼이 20세기의 진정한 승자는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사회민주주의였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한편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위스콘신주 밀워키시를 중심으로 실용적 사회주의 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위스콘신 사회당은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나 혁명 이론 대신 상하수도 정비, 공중보건 확대, 공공주택 공급 같은 공공서비스 확충과 정부 부정부패 척결 같은 사회 개혁에 주력했다.

하수구 사회주의.

이 실용 노선은 ‘혁명적 대의는 저버린 채 그저 하수도나 정비한다’는 조롱 섞인 뜻에서 하수도 사회주의(Sewer Socialism)로 불렸지만, 정작 이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이런 밀워키 사회주의 전통은 프랭크 자이들러가 밀워키 시장 임기를 마친 1960년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최근 부상하는 민주사회주의 진영이 이 전통을 직접 계승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이들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맘다니 뉴욕시장 역시 후보 시절 임대료 동결, 공공주택 확대, 무상 보육, 시내버스 무상화 같은 공공서비스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맘다니는 선거 초반 지지율 1%대의 무명 사회주의 후보에서 출발해, 실생활에 맞춘 공약과 청년층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뉴욕시장 당선이라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특히 그는 기존의 전통적 홍보 전략 대신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 실시간 질의응답(Q&A)으로 청년층과 밀착 소통했고, 청년층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로 그의 메시지를 퍼 나르며 화답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이유

미국의 민주사회주의 계열 정치인들은 독자 정당을 결성하는 대신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진입 전략(entryism)을 택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가 워낙 강고해서 제3의 독립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낮은 득표율로도 의회 진출이 가능하지만, 단순다수대표제(First-Past-The-Post)를 채택한 미국 선거에서는 제3당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제도 덕에 당내 비주류나 외부 인사도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해 후보가 될 수 있어, 굳이 제3당을 창당할 유인이 떨어진다.

여기에 지금도 회자되는 2000년 대선 당시 녹색당 후보의 ‘스포일러 효과’가 제3당 참여를 주저하게 만든다. 민주당의 앨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팽팽히 맞섰던 2000년 대선에서 랄프 네이더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불과 0.01%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린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앨 고어가 차지해 대통령이 됐을 것이고, 이후 미국과 세계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녹색당 후보 본인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진보 진영의 표 잠식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진 것이 현실적으로 인정되는 만큼 여전히 대표적인 스포일러 효과 사례로 꼽힌다. 민주사회주의 진영의 민주당 진입 전략은 이런 점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앨 고어. 미국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부시가 팽팽히 맞섰으나 불과 0.01%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린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부시가 차지하면서 고어는 석패했다. 사진은 2008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회 마지막 날 연설. 위키미디어 공용.

프란체스카 홍의 도전과 좌절

독자 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통해 기성 정치 질서에 진입하려는 민주사회주의 진영의 전략은 적어도 최근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제도적 현실에 맞는 현실적 경로를 찾은 셈이지만, 이 전략의 가능성만큼이나 한계도 분명하다. 위스콘신 주의회 하원의원인 프란체스카 홍의 도전과 좌절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 양면성이 잘 드러난다.

한국계 이민자 2세인 프란체스카 홍은 민주당의 위스콘신 주지사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데이비드 크롤리 후보에게 0.48%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경선 막판까지 두 자릿수 이상의 우위를 보였던 그로서는 매우 아쉬운 결과이지만,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싱글맘이자 전직 셰프 출신인 그는 무상 보육과 의료비 지원, 최저임금 인상,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며 민주당 경선 초반 분위기를 압도했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런 급진적 성향이 본선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꺾으려면 중도층과 무당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였다.

프란체스카 홍.

민주당 경선에서 프란체스카 홍이 막판 역전을 허용한 데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민주사회주의 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이 등을 돌린 것도 뼈아픈 패인으로 꼽힌다. 진영의 대부 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탈환하는 데 전념하기 위해 주(州) 단위 선거는 따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공식 발언 이면에는 그의 이상주의적 공약으로는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의구심이 있었으리라는 분석이다.

11월 중간선거, 정치꾼 아닌 정치가 선출될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중도를 좇을 것인가, 원칙대로 개혁을 밀어붙일 것인가는 개혁을 표방하는 모든 정당이 마주하는 딜레마다. 선거에서 이겨야 개혁 정책을 펼 수 있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개혁적 공약을 접고 중도층에 어필해야 하는 모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이렇게 중도층과 무당파의 눈치를 보다 보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 기술만 남게 된다. 결국 현실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고, 그 균형점을 자신의 신념 체계로 이끌어 가느냐는 전적으로 정치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 역량이야말로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치꾼(politician)’과 ‘정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가(statesman)’를 가르는 차이일 것이다. 민주사회주의 진영 정치인 가운데 이런 역량을 발휘해 현실에 발 딛은 개혁 노선에 충실한 정치가가 나올 수 있을까. 우리가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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