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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솟 르포 ⑧]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한국에서의 인연으로 S가 있는 ‘매솟’에 방문한 작가의 현장 기록. 총 8편. (⏳6분)

매솟은 정확히 말하면 ‘난민촌’ 구역이 아니다. 난민촌이란 전쟁∙박해∙재난 등을 피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집단 거주 시설로, 유엔난민기구(UNHCR) 또는 해당 국가 정부∙NGO 등이 설치∙운영한다. 매솟에서 봐 온 난민 마을은 대부분 비공식 정착지(Informal Settlement), 즉 공식 등록 없이 자생적으로 형성된 거주지에 해당한다.

가령, B빌리지도 공식 등록 없이 자생적으로 형성된 비공식 정착지에 해당한다. 태국은 1951년 난민협약 미서명국으로, 공식 캠프 외 지역에 거주하는 미얀마 출신 난민 상당수가 법적 보호 없이 비공식 정착지에 머물고 있다.

마지막 일정은 매라(Mae La) 난민캠프 방문이었다. 매솟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 태국 딱(Tak)주 팝프라(Phop Phra) 지역에 위치한 매라에 있는 난민캠프는 1984년 설립되어 태국 내 난민캠프 중 최대 규모로, 수용 인원 약 3만~5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난민캠프다.

매라(Mae La) 난민캠프는 태국 내 9개 공식 난민캠프 중 최대 규모다. 최대 거주 인원은 2000년대 중반 약 5만 명 이상을 기록했으며, 현재는 약 3만~4만 명 수준으로 집계된다.

검문소, 검문소, 검문소

사실 매라 난민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최근 들어 난민캠프 내 외부인 출입 제한이 강화됐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난민 보호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태국 정부가 캠프 내부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렸다.

난민캠프 내 납치∙인신매매∙사기 범죄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서의 인신매매 문제는 국제기구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버스에 올랐다.

매라 캠프로 가는 버스 시간표. 매 시간마다 버스가 있다. 2026.6.28. 매솟.

밴을 개조한 듯한 빨간색 차량에 올라타 1시간 반을 달렸다. 캠프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들이쳤고, 고르지 않은 도로 탓에 허리가 아파왔다. 버스가 멈춘 곳은 매라 지역 입구, 검문소였다. 검문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여권을 건넸다. 군인이 무언가 물었고, S가 대신 대답했다. 다행히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검문소를 통과했다. S는 방금 오간 대화를 설명해줬다.

“군인이 어디로 가는지 묻더라고요. 매타(Mae Tha)로 간다고 대답했어요. 매라에서 30분은 더 가야 하는 버스 종점인데, 매라로 간다고 했으면 아마 보내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 일대가 다 난민촌이니까요.”

메라캠프로 가는 버스. 약 10인승이지만 바깥에 매달려 가는 사람도 있다. 2026.6.28. 매솟.

실제로 우리는 매타를 들른 뒤 다시 매라로 향했다. 매타에 S의 고향 친구가 있어 겸사겸사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S의 말은 완전한 거짓이 아니었다. 매라에서 매타로 넘어가는 경계에도 검문소가 있었고, S의 비자와 우리 여권을 확인했다. 분명한 건, 매라를 벗어나기 위해 양쪽으로 검문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창살 밖에서 본 매라 난민캠프

매주 월요일이면 매라 난민캠프는 커다란 시장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7일장과 같은 월요 시장이다. S는 외부인의 왕래가 비교적 많은 월요일을 골라 캠프 입장을 시도했다. 입구는 훤히 열려있고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하지만 그 앞에는 검문소가 자리잡아 있었다. S는 여권을 검문소에 맡기면 출입을 허가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당당히 검문소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곧 돌아온 S의 말은 “안 된다”였다.

이미 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S는 여기까지 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는지, 캠프 내 리더 그룹에 연락을 돌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리더 그룹에 속하는 여성이 나와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실패. 다시 기다림. 이번에는 경찰이라는 남성이 왔다. 캠프 내부 리더와 가깝게 움직이는 사람인 듯했다. 그는 자신 있게 검문소 앞으로 나아가 군인과 대화를 시작했다.

굳어 있던 군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경찰이라는 남성도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앞선 시도보다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나 남성이 전한 결과 역시 “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였다. S는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우리는 괜찮다고 연신 말했다. 결국 S는 그 자리에서 오토바이 세 대를 빌렸다. 철창 밖에서라도 캠프를 둘러보자는 뜻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캠프 내부를 들여다봤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이 늘어서 있었고, 부지도 꽤 넓어 보였다.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언덕 중턱에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서 있기도 했다.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 길 폭이 양팔을 펼친 것보다 좁았던 것과 달리, 매라 난민캠프에는 앞마당이 있는 집도 있다고 일행이 말했다.

일행은 2007년 매라 캠프를 방문한 적이 있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에서 의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식량마저 부족해 아무 풀이나 삶아 죽처럼 먹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매라는 구역마다 검문소가 있어 이동조차 통제되고 있었다. 공간이 넓다고 해서 ‘제대로 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 사진은 매타 지역이지만, 매타지역 또한 국경 지대로 미얀마 사람이 많아 난민촌 내 건물 형식은 비슷하다. 2026.6.29. 매타

흐린 날이었다. S의 걱정이 너무 쌓인 탓인지 비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비까지 맞아 머리와 몸이 흠뻑 젖었다. 이 모든 게 S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기에, 불편하거나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난민캠프를 바라보는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찍은 매라캠프 내부. 정글지역이 많다. 2026.6.29. 매라캠프 부근.

그런데 비현실적인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는 캠프 한쪽에 위치한 개구멍 앞에서 멈췄다. 성인 한 명이 드나들기 충분한 크기였다. 그야말로 유혹의 구간. 그러나 어디선가, 정말 놀랍게도 군인이 나타났다. 정식 입구도, 검문소도 없는 곳이었는데. 그들은 다시 여권을 요구했고 우리 사진까지 찍었다. 매솟에 들어선 이후부터 우리가 어딜 다니는지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적을 태국 정부는 달가워하지 않을 터였다.

결국 우리는 개구멍 앞 벤치에 앉아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매솟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군인이 강압적으로 굴지는 않았지만, 버스가 올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렀다. 개구멍 안쪽으로 집 한 채가 보였는데, B빌리지에서 본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부지가 넓어서인지 마루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더위를 식히듯 개 한 마리가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경적 소리와 함께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렇게 매라 지역을 벗어났다. 물론, 벗어나는 길에도 검문소가 있었다. 군인들은 우리가 이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하듯,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번호판과 함께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 왔었다는 지워지지 않는 행적을 남기는 동시에, 다시는 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신호 같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6시간 30분동안 버스를 이용해 도착한 치앙마이. 매솟을 벗어나는 버스에서도 검문소에서 사진에 찍혔다. 2026.6.30. 치앙마이.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는 ‘인간’

로힝야 난민촌은 건물이 극도로 밀집되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터조차 없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수용된 탓에 수도조차 시간을 정해 이용해야 하며, 물이 나오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펌프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Cox’s Bazar)의 로힝야 난민촌은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집결지로, 극도의 과밀 거주와 열악한 위생 환경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건물이 가건물이고 밀집되어 있다 보니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가 극심하다. 난민촌 화재 피해. 밀집된 가건물 구조로 인해 난민촌에서는 대형 화재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2021년 3월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촌에서 발생한 화재로 약 4만 5천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런 현실은 매라 난민캠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난민은 점점 늘고 있다.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내전이 심화되면서 국내외 난민·실향민 수가 급증했다. UNHCR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얀마 관련 강제 실향민은 200만 명을 넘어섰다. 매라 캠프는 로힝야 난민촌보다 부지가 넓을지 몰라도 과밀 거주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대나무와 목재로 지어진 건물은 화재에 취약하고, 실제로 대형 화재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난민들에게서 집마저 앗아갔다. 상하수도 시설 부족, 우기의 침수·오염 문제도 이어지고 있으며, 2025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해외 원조 대폭 삭감 조치로 USAID를 통해 지원받던 태국 내 난민캠프의 식량·의료 서비스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미국 해외 원조 축소의 영향, WFP(세계식량계획)와 IRC(국제구조위원회) 등 주요 지원 기관의 운영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러나 이 모두 보고서와 수치로 전달된 내용이다. 직접 경험한 것은 철창 밖에서 바라본 것과 출입통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매솟에서 접한 정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공식 캠프는 일부 보호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이동을 제한한다. 캠프 밖은 자유롭지만 보호받지 못한다. 이 딜레마 속에서 난민들은 매일 선택을 강요받는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난민은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방치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국가가 사라지고 인간만 남는 현실에서, 사회는 그런 것은 ‘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질문이 난민의 발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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