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도 미얀마도 아닌 곳에서, 매솟 르포 ②]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한국에서의 인연으로 S가 있는 ‘매솟’에 방문한 작가의 현장 기록. 총 8편. (⏳5분)
🌱 태국도 미얀마도 아닌 곳에서, 매솟 르포 (연재, 총8회)
1. 매솟 검문소, 보호받지 못한 낯섦을 느끼다
2. 매솟 난민촌 사람들: 여기에 있어도 되지만,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
매솟에 직접 오기 몇 달 전, 현지 방문 계획을 세우던 중 기사 하나를 봤다. 2025년 트럼프 정부 집권 이후 국외 원조를 중단하면서 맬라 캠프 내 의료시설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었다. 캠프를 방문한 기자는 창살 밖에서 난민에게 상황을 물었다. 난민촌 내부는 마치 존재해선 안 되는 곳처럼 철저히 통제받고 있었다.
“그간 국제구조위원회(IRC)가 의료지원을 맡았지만, 직원 축소와 지원비 대폭 삭감으로 인해 난민들은 각자도생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렸다. 무엇보다 응급서비스가 심각하다. 난민촌의 유일한 병원은 낡고 낙후해 전문 수술은 대도시 병원에서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그 비용조차 난민들의 얇은 주머니에서 해결해야 한다.”
— 「트럼프의 원조 중단, 날벼락 맞은 타이 맬라 난민촌」, 클레어 함 (재독 영화 PD 겸 프리랜서 기자)¹
기사 속 작은 도움은 엉성한 창살을 넘지 못했다. 큰 자본과 지원은 창살을 넘었지만, 국제 원조 축소 지시 앞에 무력화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트럼프 정부가 국외 원조를 대폭 삭감한 2025년, 태국 정부는 38개 국적 외국인을 대상으로 매솟 지역 통제 규범을 시행했다.² 매솟 방문 첫날, 검문소에서는 미얀마인에게 태국 ID를 발급할 것이냐는 물음이 오갔다. 사기 범죄 급증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것이 보호인지 통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민을 위해 움직이는 말타 센터
기사 속 캠프와 멀지 않은 이곳, 매솟은 밤사이 무섭도록 폭우가 몰아쳤다. 빗방울이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열매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폭우는 마치 오래된 옛날 일인 양 흔적 없이 맑았다. 아침 일찍 마중 나온 S는 매솟의 날씨는 비가 오거나 덥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S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아내 샤와 함께였는데, 샤는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신학 공부를 위해 한국에서 11개월간 머문 적이 있다는 샤는, 한국어는 잘 못하지만 말끝에 ‘요’를 붙이면 어떻게든 통하더라고 했다. 그 말에 모두가 잠시 현실을 잊고 웃었다. 그러나 이내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볍게 웃기에는 마주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번 방문지는 매타오(MAETAO) 클리닉이었다. 진료실과 입원실, 연구동을 갖춘 이 센터는 난민에게 무료로 의료를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넓은 진료 공간은 사람으로 빼곡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아기 우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고,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도 여럿이었다.
얼굴에 하얀 가루를 바른 이들도 눈에 띄게 많았다. 다나카(Thanaka), 피부 보호를 위해 나무껍질을 갈아 얼굴에 바르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이었다. 즉,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미얀마 사람이었다. S는 이곳이 소아와 성인을 가리지 않고 진료를 본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지, 병원 근처에는 노점상이 줄지어 늘어서 있을 정도였다.
“난민촌에 있는 난민들은 아프면 체류증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2~3일 정도 난민촌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난민촌에서 여기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60밧 정도입니다. 하지만 모든 난민이 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난민촌 밖에서 살고 있는 난민도 있는데, 그들은 검문소를 피해 다니는 차를 이용해야 하고 비용은 500밧 정도로 비쌉니다. 무료로 진료를 해줘도 교통비가 없어 치료받기 힘든 거예요.”
S의 설명이었다. 500밧은 한화로 약 23,000원(1밧 = 약 46원 기준)이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택시비다. 난민촌 밖에 사는 난민은 병원 한 번 가는 데 그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난민촌 안이 나은 것도 아니었다. 미국 정부의 국외 지원 축소는 의료에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 산하 인도주의 지원 전담 기관인 ‘인구·난민·이주민 담당국(PRM)’이 국외 지원을 중단한 여파로, 2026년 1월부터는 최대 취약 계층인 17%에게만 식량을 제공하고 나머지 83%에 대한 지원은 전액 중단될 예정이다.³ 치료를 받아도 식량난으로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 모두가 멈춘 것은 아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매타오 클리닉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재 홍콩과 일본 등 UN 아시아 지역 기구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적과 민족에 상관없이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미얀마 군부에 대항하는 반군 단체 역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S가 말을 덧붙였다.
“그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태국 정부 역시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상황입니다.”
난민과 닮은 이곳
태국은 1980년대부터 인도주의적 명목으로 난민 일부를 수용해왔다.⁴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000년대부터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2021년 미얀마 2차 쿠데타와 군사정권 수립 이후에는 비공식 묵인을 이어오고 있다. 난민은 계속 늘어, 현재 매솟 인구의 약 65%가 난민에 해당한다는 추산도 있다.⁵
실제로 매솟에서 워킹 비자를 가지고 일하는 미얀마인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식당 직원이 태국어를 하지 못해 메뉴판의 글자를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하는 장면도, 간판에 버마어가 적혀 있는 가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태국은 모국이 아니다. ‘여기에 있어도 되지만,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 비자가 연장되지 않으면 언제든 일을 멈춰야 하고, 생계를 위협받는다. 난민촌 안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다.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거나, 정부에 농장을 몰수당해 살아갈 곳이 사라졌다. 2024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시행한 인민군사복무법에 따라, 18세에서 35세 사이 남성과 18세에서 27세 사이 여성은 모국 땅을 밟는 순간 징집 명령을 받는다.⁶
그렇다면 그들에게 모국은 ‘여기에 있고 싶지만,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곳’이 아닐까. S의 이야기 속 매타오 클리닉의 존재도 그들과 닮아 보였다. 태국 정부도 존재를 알고, 운영도 된다. 하지만 지도에 검색해도 찾을 수 없다.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지만,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곳. 소외된 이들을 위해 여기에 있고 싶지만, 상황이 변한다면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곳.
다시 커다란 입구를 나서는 길, 아기 우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난민촌에서 태어났을 그 아이의 울음소리는 다른 어떤 아이의 울음소리와도 다르지 않았다. 있는 힘껏. 악에 받쳐. 어떻게든. 모든 단어가 어울릴 법한 그 울음소리에 약간의 안도와 불안이 뒤섞였다. 그 아이에게 ‘미래’란 도대체 무엇일까 싶었기에.

🔖 각주
¹ 클레어 함, 「트럼프의 원조 중단, 날벼락 맞은 타이 맬라 난민촌」
² 태국 매솟 38개 국적 통제 규범 | Bangkok Post / Khaosod English “Mae Sot” “38 nationalities” 2025
³ PRM 식량 지원 83% 중단 | Reuters / The Irrawaddy “PRM funding cut” “Mae La camp” 2025
⁴ 태국 난민 수용 역사 | UNHCR Thailand 공식 사이트: unhcr.org/th
⁵ 매솟 인구 중 난민 비율 | Irrawaddy / IRC 보고서 “Mae Sot population refugees percentage”
⁶ 미얀마 징집법 (2024년 2월) | Reuters, BBC Myanmar “Myanmar conscription law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