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독일 AfD 등 ‘복지 민족주의’ 전략으로 득세···우리의 미래 될 수도.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5분)

최근 독일 총선에서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 정당 AfD(Alternative f 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가 20% 넘는 지지율로 사회민주당(16.4% 지지율로 3위)을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4년 전 총선에 비해 무려 2배를 득표했고 더구나 옛 동독 지역에서는 지지율 1위다. 국내외에서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다가 1933년 히틀러 나치당의 집권이 재현하는 모습을 이 시대에 목격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과 우려다.

알리스 바이델(Alice Elisabeth Weidel, 1979년생, 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

유럽 극우의 성공 키워드 ‘복지 민족주의’

어떤 배경과 이유로 저렇게 AfD가 쑥쑥 성장하는 걸까? 그 성공 비결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복지 민족주의(welfare nationalism) 또는 복지 쇼비니즘(welfare chauvinism)이다. 이미 서구의 정치 및 정책 분석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 개념은 복지 혜택을 유지 또는 강화하되 그것을 자국민에게만 제한하려는 정치적 입장을 표현한다.

복지 민족주의 정치를 지지하는 이들은 가난한 자국민들이다. 독일의 AfD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독 지역에서 가난한 토종 독일인들, 특히 청년층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민족연합(RN, Rassemblement National)은 가난한 토종 프랑스인들의 큰 환영을 받으면서 여론조사 1, 2위를 다투어 부유한 비백인 이민자들, 예컨대 음바페 같은 축구 선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마린 르펜(프랑스 민족연합 대표). 르펜 인스타그램. 2025.03.04.

스웨덴 민주당(SD)은 ‘가난한 토종 스웨덴인에게는 복지를, 난민과 이민자에게는 추방을’이라고 외치며 오늘날 집권 우파 연정을 좌지우지하는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이탈리아의 현 집권당인 이탈리아 형제당,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네덜란드 자유당(PVV)오스트리아 자유당(FPO) 역시 비슷하다.

나치와 파시스트당도 복지 예산 늘렸다

복지 민족주의가 날로 지지율을 확장해 나가는 배경에는 지난 수십 년간 득세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가난한 이들이 기댈 언덕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있다. 유럽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노동당들은 ‘제3의 길’ 노선을 걸으면서 복지국가 약화에 일조했고, 중도 보수 기독교-가톨릭 정당들 역시 ‘사회적 시장경제’보다는 ‘질서 자유주의’를 더욱 중시하면서 복지국가가 약화했다.

비정규직과 플랫폼노동 같은 불안정 노동이 급증했고 사회복지 혜택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2008년 이후 유럽의 금융-재정 위기로 복지자원이 더욱 부족해져서 하층민들의 생계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시작된 ‘아랍의 봄’에 이어 최근 수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유럽 각국으로 유입해 복지재원을 축내게 되니 하층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정서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복지 민족주의는 유럽연합(EU)과 충돌한다. 먼저 EU의 국가별 난민 할당제(의무적 난민 배정)로 인해 스웨덴과 독일, 이탈리아 등 EU 가입국은 국가 복지 예산 일부를 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에서 부딪친다. 또한 민족국가를 넘어 유럽 통합 연방국가를 지향하는 EU의 존재 자체가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반론적으로 복지 민족주의와 충돌한다. 독일의 AfD, 프랑스의 RN, 스웨덴의 SD,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은 모두 EU의 약화 또는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히틀러 나치당과 무솔리니 파시스트당은 복지 예산을 늘렸을까? 흔한 착각과 반대로 두 당 모두 가난한 자국민들을 위한 사회복지-일자리 사업을 크게 늘렸으며, 이를 위해 적자재정을 무릅쓰고 적극적 확장 재정에 나섰다. ‘케인스 없는 케인스주의’는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 정부뿐만 아니라 나치-파시스트 정권에서도 추진했다. “아리안족(독일) 또는 로마인의 후예(이탈리아)에게는 복지를, 타민족-타인종(슬라브족 포함)에게는 노예 지위를”이 나치-파시스트의 메시지였다. 대공황으로 실직과 굶주림, 파산에 직면한 자영업자와 농민, 노동자들은 이들의 집권을 반겼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히틀러와 그 조력자들.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그 악명 높은 괴벨스.

이에 반해 1929년 대공황 발발 시 사회민주당(독일, 오스트리아)과 노동당(영국)은 ‘대공황으로 향후 세수가 줄어들 거’라는 이유로 긴축재정에 나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일자리 예산을 축소해 버렸다. 1929년 영국 노동당의 맥도널드 수상 집권 시 재무장관 스노우든이 그랬고, 같은 시기 바이마르 공화국 연립정부에 참여한 독일 사회민주당의 힐퍼딩이 그랬다. 이들 모두 케인스가 반대한 균형재정론에 입각한 긴축재정에 나섰다.

이들 정당을 하층민이 외면하니 선거에서 나치당과 보수당에 연이어 패배한 것이 당연했다. 대공황 시기에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확장 재정과 함께 복지국가를 개시한 좌파 정당은 스웨덴의 사회민주당뿐이었다. 한손 총리와 재무장관 비그포르스가 그 성공을 이끌었으며, 그 후 그 당은 수십 년간의 연속 집권으로 북유럽 복지국가 구축을 이뤄낸다.

그 실패한 긴축재정 정책이 2010년대 대불황 시기에 재현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발발 이후 2010~2017년 유럽에서 전개된 재정-금융 위기 시기에 유럽의 노동당-사회민주당들은 EU와 유로존(유로화)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그런데 EU 집행위원회와 유럽 중앙은행은 확장 재정보다 긴축재정에 나섰다. 그래야만 유로화 가치가 안정된다는 명분으로.

‘브라만 좌파’ 정당으로 바뀐 진보 정당들

대불황에 이어 긴축재정으로 성장률 격차가 심해지니 EU 가맹국들 사이에 국가 간-민족 간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또한 각 가맹국 내부에서도 계급 간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더구나 유럽화(세계화의 일종) 그 자체가 자국어와 자민족 문화밖에 모르는 저학력-저소득의 노동자계급보다는 다국어와 다문화에 익숙한 고학력-고소득의 상위 중산층의 소득과 일자리에 더욱 유리했다. 탈민족,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저학력-저소득 계층보다는 고학력-고소득 계층에 잘 어울렸던 것이다. 그것을 추진한 유럽의 노동당-사회민주당들이 토마 피케티가 말한 ‘브라만 좌파’ 정당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실망한 가난한 자국민 유권자들은 이들 정당에 대한 지지를 연이어 철회했다. 그 결과 프랑스 사회당은 10년 전만 해도 집권당이었는데 요즘은 지지율 5% 안팎의 소수 정당이 되었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지지율 16%의 제3당으로 추락했다. 또한 불과 몇 달 전 집권한 영국 노동당은 요즘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했다. ‘브라만 좌파’ 정당들의 지지율이 추락하는데 반비례하여 ‘복지 민족주의’를 내건 극우파 정당들의 지지율은 치솟고 있다.

2022년 9월 스웨덴 선거는 북유럽 복지국가 스웨덴의 현대사에서 획을 긋는 분기점이었다. 처음으로 극우파 성향의 스웨덴민주당(SD)이 집권 연정을 사실상(de facto) 좌지우지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SD는 토종 스웨덴인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되 대신 외국인 난민과 이민은 엄격하게 제한·배제하고 추방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동 출신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배척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복지 쇼비니즘 요소 역시 강하게 보인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나라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 역시 밑바닥의 저학력-저소득 계층보다는 고학력-고소득의 도시 중산층 특히 수도권 상위 중산층을 자신의 사회적, 문화적 기반으로 삼는 ‘브라만 좌파’ 정당으로 변하고 있다.

브라만 좌파의 길을 걸어온 유럽의 진보 정당들이 복지 민족주의 정치의 성장 앞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당세가 급격히 줄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우리나라 진보 역시 복지국가와 민족국가,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깊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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