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이 글은 대형 참사를 조사하는 상설 재난조사기구 출범을 앞두고 다섯 가지의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평소에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제 생각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국회가 지난 2026년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곧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법에 따른 조직도 신설될 예정입니다. 제정된 생명안전기본법은 네 가지 내용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1. 안전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정의
  2. 국민생명안전위원회 설치와 생명안전종합계획 수립
  3.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와 재난사고 조사 ✔
  4. 재난피해자 지원

이 글은 그중 세 번째 항목인 ‘재난 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 책임자 처벌을 포기하면서까지 재난 조사를 할 수 있을까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자 처벌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사회운동을 통해 줄기차게 이어져 온 구호입니다.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깊고 넓게 뿌리내렸습니다. 그러나 진상규명이 검경의 수사가 아니라 “재난 조사”를 의미한다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현실과 이론에서 모두 불가능합니다.

재난 조사는 재난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석하는 작업입니다. 재난의 인과를 밝히기 위해서는 수많은 현장 관계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합니다. 처벌을 목적으로 조사한다면 조사 대상자는 정보를 감추게 됩니다.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라고 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재난 조사는 ‘수사 이전 독립적 기구의 선제적 조사’, ‘조사 내용의 수사기관 미제공’, ‘진술자에 대한 법적 책임 면제’를 원칙으로 삼습니다. 책임자 처벌보다 재발 방지에 무게를 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한마디로 술술 불면 살려는 드린다는 겁니다.

“살려는 드릴게” ‘신세계'(2013) 극 중 이중구의 대사. 현대 재난 조사 방법론은 진실을 확보하는 대가로 피조사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전략을 채택한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과 진실을 현실에서 모두 성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편집자)

지난 8월 24일 생명안전동행 · 국회 생명안전포럼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함께 주최한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보았는데, 이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가 있어 보입니다. 재난 피해자와 유가족이 책임자 면책을 전제로 한 재난 조사를 주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러한 논의가 업계 내부 담론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우리가 주구장창 써먹었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책임자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구호는 앞으로의 모든 참사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편리하고 효과 좋은 슬로건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습니다.

감정적 분노를 가라앉히고 재난 조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면책을 전제로 재난 조사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도출된 조사 결과가 과연 피해자와 사회에 온전히 납득될 수 있느냐는 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역사적 사례를 들어보자면, 도쿄 재판을 지켜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누구도 확실하게 명령하고 전달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이뤄진 태평양 전쟁의 배경에 일본 관료제의 ‘무책임의 체계(無責任の体系)’📌가 있다고 분석하거나, 아이히만 재판을 방청한 한나 아렌트가 기계적으로 집행된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악의 평범성’과 같은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결론이 도출될 때 피해자나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두 사례는 재난 조사가 아닌 잘 알려진 정치철학 연구인데, 재난 조사가 이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시도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제가 두 논지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책임의 체계’는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 체제를 분석하며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아래 세 가지가 주요 특징이다.

• 시키는 대로 했다며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는 ‘중심의 부재’
• 거대 관료제와 조직 논리 속에서 개인 책임을 증발시키는 ‘구조적 익명성’
• 구조적 무책임 속에서 거대 범죄와 비극을 반복하는 ‘반성 없는 사회’ (편집자)

또한, 챌린저호 폭발사고을 연구하여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 개념을 제시한 다이앤 본의 주장처럼 재난 조사는 국가나 사회 그리고 재난 현장의 사이에 있는 ‘조직'(이 경우는 NASA)이라는 중범위 수준의 이론적 분석에 무게를 둡니다.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이륙 73초 만에 폭발하여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CC0.

한국의 재난 조사는 상설 조사 기구 법제화까지 관철한 피해자와 사회운동의 공로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세 차례의 세월호 조사는 피해자와 진보 진영이 검경의 수사를 믿을 수 없기에, ‘우리가 저들보다 확실하게 수사하겠다’라는 마음이 모여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사 시작 자체가 누가 나쁜 놈인지, 어떻게 나쁜 짓을 했는지 찾는 게 과제였습니다. 그저 수사의 대체제였고 조사의 본래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그랬던 우리가 책임자 처벌이라는 편리한 담론을 포기하지 않고 방향 전환을 진심으로 바라는지 의구심이 남습니다. 이게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별거 없습니다. 지금처럼 정치적 판단과 당파적 입장에 따라 어떤 재난은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어떤 재난은 침묵하고, 어떤 재난은 조사 결과를 믿고 기다리자는 선택적 정의가 계속되는 겁니다.

둘. 재난조사기구가 위인설관(爲人設官)📌이 되지는 않겠지요

지난 8월 토론회를 보면 새로이 만들어지는 재난 조사 기구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게 되는지에 대해 모두의 관심이 모인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 내부에서 어떤 수준으로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 바깥에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지난 2년간의 조사 기구에서 일했던 저의 체험에 비춰 몇 가지 우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 위인설관(爲人設官): 특정한 사람을 앉히기 위해 원래는 필요 없는 관직이나 자리를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 (편집자)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026년 8월 28일(금)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사진: 4.16 연대.
재난 조사에서 인권 운동가의 참여가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19조는 상설재난조사기구의 조사위원의 자격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중 ②항 6호는 “국가인권위원회 또는 인권 관련 단체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좁은 집단을 지칭하고 있는데, 법조문 전체에서 너무 도드라져 보이는 대목입니다.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항목이 아니길 바랍니다.

제 생각에 조사 위원으로서 필요한 전문성은 인권 운동의 경험이나 감수성보다는 다른 학문적 전문성이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재난 조사는 앞서 다이앤 본의 주장을 언급했듯이 재난에 이르게 된 조직과 사회의 문제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를 제외한다면, 관료조직, 기업조직을 분석할 수 있는 행정학, 경영학, 사회학, 정치학 같은 분야의 전문가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심리학, 행동경제학, 인류학, 철학, 윤리학들도 재난 분석에 기여할 것 같습니다.

8월 토론회에서 이동규(동아대 재난관리학과)가 제시하듯이 재난 이후 대응에는 원인 규명, 책임 규명, 피해 회복이라는 세 트랙이 진행되는데 인권 운동의 경험과 지식은 재난 조사보다는 피해 회복과 지원 활동에 걸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이견이나 반론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이동규(동아대 교수)의 발제 모습.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026년 8월 28일(금)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사진: 4.16 연대.
파견 공무원의 역할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를 비롯해 재난 조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심을 두는 많은 분들이 파견 공무원 중심으로 재난조사기구를 구성하는 데 우려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료제 경험과 실무력이 없고, 공공 마인드가 약한 운동권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 위주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그랬습니다. 조사관 대부분은 국가 공무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 없이 자신의 감정과 격양된 정의감을 내세웠습니다. 조사 기간 내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비교적 가벼운 일화를 꺼내보면, 사참위 초기에 부서를 초월한 실무진 모임이 정기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자기들이 만든 자료를 윗선에서 결재 안 해줄 경우 어떤 불법적인 경로로 외부에 뿌리면 되는지를 논의하고 있더군요.

살다 보면 그런 일탈행위는 얼마든 있을 수 있습니다. 신기한 건 그런 일을 처음 본 사람까지 낀 스무 명 넘는 자리에서 “전원위에서 채택 안 해도 국회에 몰래 주면 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분들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운동을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나랏밥 먹는 동안만은 그에 맞는 윤리와 절차 안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참위는 “아무리 그래도, 공무원은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며 이를 제어하고 충고해 줄 파공(파견 공무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사진은 ‘응답하라 1994’ 한 장면. “공무원이 그라믄 안 돼~”라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 (편집자)
피조사기관의 파견 공무원을 적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사 대상이 되는 기관의 공무원이 파견 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이들을 너무 적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든 싫든 이들이 주는 의견은 조사기관이 조사 대상의 의견과 정서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창구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들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을지라도 이들이 조사 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면 조사 내용과 논리도 매우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년 보장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참위는 조직으로서 신상필벌이 없었습니다. 그런 걸로 외부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일을 못하거나 비위가 있다고 해서 페널티를 주지 않았고 일을 잘한다고 인센티브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사무처는 무력했습니다. 그 결과 조사관 상당수가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무시하거나 자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사참위는 한시적 기구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일하는 분들이 정년 보장까지 된다면 어떻게 조직이 굴러갈지 걱정됩니다.

8월 토론회에서 박진 이태원 특조위 사무처장이 조사기구에 오래 근무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반드시 썩게 된다고 경고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저는 아서 클라크의 말📌을 전유(專有)해 “고도로 발달한 운동권은 브로커와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만들어질 조사기구는 필요한 수준의 긴장과 균형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름답고 정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래야 조직이 조금이라도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 “고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아서 C. 클라크, SF 작가)

셋. 독립성의 강조가 또 하나의 선관위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조사기관이 피조사기관의 입장이나 압박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사기관이 아무런 견제나 제어를 받지 않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일했던 사참위는 4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어떠한 외부 기관의 감사와 견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상급자들은 실무자들을 지휘하지 못하고 외부의 감시와 견제도 없으며, 감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구조였습니다. 당연히 별별 해괴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재난 조사 기구는 충분한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돈과 권력만 주고 재량의 범위를 제한해 주지 않으면 폭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 사례가 선관위입니다.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정년 보장받고 행복 충만하게 일해 온 조직이 얼마나 썩게 되는지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충분히 보았습니다. 수많은 희생 끝에 만들어진 기구가 또 하나의 선관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독립성만 강조되어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일하면 거기 계신 분들은 따순 밥 먹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만한 조직 운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재난과 위험에 노출된 국민들입니다.

노태악(당시 선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모습. KTV 갈무리.

넷. 피해자 중심주의가 조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지는 않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재난 조사는 피해자가 중심이 된 사회운동의 성과입니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이 추동한 그 의사에 반하는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논의되기 매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열심히 황무지 개간을 마친 개척민에게, 앞으로 농사는 다른 사람이 할 테니 나가달라고 하면 그들이 순순히 물러나길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2014년 이후 들어선 재난 조사 기구 대부분에 피해자와 유가족은 강한 참여 의지를 드러내고, 실제로 조직 구성과 조사 방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향과 흐름을 재난 조사의 ‘피해자 중심주의’로 부르고자 합니다.

저는 재난 조사에서 피해자 참여가 강조됨을 우려합니다.

실제 조사는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것도 조사할 수 있고 피해자가 원치 않는 결론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토론회에서 박진 사무처장이 조사 기구의 독립성에는 피해자로부터의 독립도 들어가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한 데 동의합니다.

‘조사 기구의 독립성에는 피해자로부터의 독립도 포함된다’는 의견을 밝힌 박진.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토론회. 2026년 8월 28일(금)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사진: 4.16 연대.

실제로 세월호 재난 조사가 외인설이라는 저렴한 음모론에 휘둘린 데는 피해자와 유가족의 영향이나 묵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피해자들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피해자라는 실존적 위치 자체가 음모론을 선호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난에는 음모론이 반드시 등장합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큰 고통에는 그에 걸맞은 거대하고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쪽 방향을 선호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시련을 견디는 힘입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것이 종교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재난을 견디는 종교적 믿음은 때론 음모론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인지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바꾸어 낼 수는 없습니다.

의사의 진단에 가족과 보호자가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독학으로 의학을 배운다고 해도 진단에는 의사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 가족이 듣고 싶은 진단을 내밀어서는 안 됩니다. 웹툰 송곳의 대사를 인용하면, “병원에서 가장 크게 우는 사람은 가족이지만 환자를 고치는 건 냉정한 의사입니다.”

송곳 (2013, 최규석)

또한 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가 피해자단체에 선공개되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재난 조사의 목적은 이후의 사고 예방에 무게를 두는 것이지 피해자 달래기는 아니라 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피해자의 참여는 별도의 트랙에서 논의되길 바랍니다.

다섯. 보수 정부나 나쁜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재난 조사 기구는 특정 정치 진영의 성과물이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재난 조사가 정치적 도구화되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조직이 마비되고, 조직이 윗선의 낙하산 인사에 저항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향후 한국의 재난 조사와 조사 기구는 보수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최대강령주의(maximalism)📌를 경계해야 합니다.

📌 최대강령주의(Maximalism)는 타협이나 단계적 접근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목적이나 요구를 양보 없이 최대한으로 관철하려는 정치적·사회적 태도나 사상을 뜻한다. (편집자)

개떡 같은 사람이 위정자가 되어 개떡 같은 사람들을 낙하산 태워 보내도 조직과 활동이 망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누구도 건들 수 없도록 법과 시행령으로 튼튼한 성벽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를 시행령으로 무너뜨리고 그 경험을 받아들인 사참위가 법을 빽빽하게 만들어 시행령의 영역을 극단적으로 없앤 게 대표 사례입니다. 그러나 저는 법으로 구축한 만리장성이 유효하다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스스로 만든 법의 성벽에 갇혀 제대로 일하지 못한 사참위가 그랬고요.

박근혜(당시 대통령)가 세월호 참사 7시간 후 중대본에 방문해 말한 첫마디. 당시 YTN 보도 캡처.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적 쟁점화를 피하고, 재난 조사와 안전 담론에 보수도 동의할 만한 가치와 내용을 담아내는 방향입니다. 법과 제도,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 보수도 참여시켜야 합니다. 쉽게 말해 진보 보수 누가 집권해도 쉽게 부술 수 없도록 공범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특정 재난은 주목받고 특정 재난은 외면받는 지금의 세태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재난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왔습니다. 이 사안에 뛰어든 분들 중 지난 역사를 반성하는 분들이 계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있었던 최악의 행태는 박래군·송경용 씨가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지명자를 “안전과 재난 방지에 기여한 바가 많으니 성평등부 장관 지명을 지지한다”는 공동 입장을 낸 사태입니다. 이런 행위는 대중에게 생명과 안전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이 결국 ‘꽌시’📌로 돌아가는 그렇고 그런 업계라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 꽌시(关系, 관시): ‘관계’를 뜻하는 중국어이지만, 실제로는 혈연·지연·학연 등을 바탕으로 맺어진 중국 특유의 사적이고 지속적인 인맥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편집자)

물론 그간 좋은 관계를 맺어온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입각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안부 장관도 아니고 성평등부 장관입니다. 그분들이 나한테 잘해줬으니 다른 데서 뭘 하든 밀어주어야 한다는 로맨틱한 관념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이 같은 행위들이 쌓였기에 재난과 안전에 대한 사회 운동이 정치 도구화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겁니다. 업계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준 위성정당 의원에 보은하고 싶으면 개인의 입장을 내는 것 정도가 타당하다 봅니다. 송 씨와 박 씨 두 분이 부부도 아니고 공동 입장을 내서 ‘업계의 입장’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입니다.

끝으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없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그동안 사회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진정한 사회주의처럼 들립니다. 쉽게 말하면 진정한 사랑, 더 쉽게 말하면 맛있는 반찬과 뭐가 다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진상규명 또는 재난 조사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외 사례를 제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수준의 처참한 말들로 우리 수준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모자라거나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아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가 있다면 데이터를 보강하고 각자의 주장을 단단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자” (옥토, 2016)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