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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 칼럼] 다문화, 이주노동자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 일주일 남짓 이어진 대통령의 말과 글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국민 안에 ‘국경’을 세운 대통령의 기준. (⏳10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되고, 전부 다 송금해 버리니까.”

이재명(대통령), 2026.10.27. 국무회의.
2026년도 제46회 국무회의. 2026.10.27. 청와대.

10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농업 인력난을 이야기하다 이렇게 말했다. 이튿날 대통령은 에펨코리아의 게시물을 엑스에 공유하며 다문화가족 우대가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했고, 글 끝에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29일에는 “내국인 가정에 대한 역차별”을 말했고, 30일에는 공정성은 양의 다과와 무관하다고 썼다. 그리고 그 글을 “더 깊이 있고 많은 토론을 기대합니다”라는 말로 맺었다.

나흘 동안 나는 이 말들에 응답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네 편 올렸다. 다시 읽어 보니 대통령의 말과 글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었다. 하나의 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 선은 처음에는 국경에 있었고, 나흘 사이 국적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 글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청한 토론에 대한 개인적 응답이다. 먼저 대통령의 기준 위에서 그 말들을 끝까지 따져 보고, 그다음 그 기준 자체를 묻고자 한다.

국경에서 쓸모를 재다

27일의 발언은 국적에 따라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를 따졌다. 이주노동자는 번 돈을 본국으로 보내니 보탬이 덜 된다는 것이다. 비판이 일자 대통령은 ‘크게’라는 부사가 빠졌다며 한 언론에 사과를 요구했고, 내국인 노동자와 견준 ‘비교화법’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부사 하나를 넣는다고 한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국적으로 갈라 등급을 매긴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의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에서 외국인의 소득 대비 송금액 비중은 26%이고, 생활비와 주거비가 각각 37%와 12%다. 체류 자격별로 보면 차이가 크다. 같은 조사에서 고용허가제 노동자 같은 비전문취업자는 절반을 넘고, 한국일보는 농촌 계절 인력만 보면 70%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반면 정착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가진 외국인은 10%가 안 된다. 머무는 기간이 짧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을수록 송금 비율은 올라간다. 송금 비율을 정하는 것은 국적이 아니라 체류 조건이다.

정부도 이것을 안다.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를 숙련공으로 키우지 못하고 1년 쓰다 버리는 방식이 문제라고 짚었다. 정부는 4월 사업장 이동 제한을 풀겠다는 방향을 밝혔고, 법무부는 8월 광역형 비자를 개편하며 가족 동반과 지역 정착을 답으로 내놓았다. 대통령의 말은 자기 정부가 내린 결론과 어긋나 있다. 국가가 머물지 못하게 해 놓고, 머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도움이 덜 되는 사람이라 했다.

연출된 사진입니다. 게티이미지.

국적 안쪽으로 들어온 잣대

하루 뒤 그 잣대는 국적 안쪽으로 들어왔다. 대통령이 공유한 게시물은 서울형 안심 산후조리원 입소 순위에서 다문화가족 산모가 국가유공자 산모와 같은 2순위라는 데 분개하는 글이었다. 대통령은 “다문화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넘어 우대까지 할 필요성이 큰 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대통령이 따진 대상은 국적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정한 다문화가족은 결혼이민자나 귀화한 사람이 한국 국민과 이룬 가족이다. 그 배우자는 한국 국민이고, 아이는 태어나면서 한국 국민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29일부터 이들을 ‘내국인 가정’과 나란히 놓았다. 30일 글에서만 이 말이 네 번 나온다. ‘내국인 가정’은 법에 없는 말이다. 가르는 기준은 국적이 아니라 출신이다. 이 말은 외국에서 온 어머니 한 사람을 이유로 가족 전체를 ‘내국인 가정’의 바깥에 세운다. 대통령은 국민 안에 국경을 세웠다.

30일 대통령은 한국일보 기사 하나를 공유했다. 6월 문을 연 서울형 안심 산후조리원에서 9월 말까지 이용을 마친 산모 361명 가운데 다문화가족 산모는 10명 남짓, 2.7%였다. 예약이 확정된 산모 가운데 1·2순위를 모두 합해도 25%가 안 되고, 일반 산모인 4순위가 약 30%를 차지했다. 기사가 전한 순위별 지원액으로 셈하면 다문화가족 산모가 일반 산모보다 더 받는 지원은 125만 원이었다. 다문화에 밀려 산후조리를 못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동상시장을 찾은 외국인들. 노동자도 있고 결혼이주여성도 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제공.

“양의 다과와 무관”하다는 말

대통령은 이 숫자를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공정성은 양의 다과와 무관”하다고 했다. 숫자를 받아들이고도 결론을 그대로 두려면 다른 근거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두 가지를 내놓았다.

하나는 다문화가정을 “예외 없이” 우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 출신 전문직 종사자와 결혼한 경우 등” 어렵지 않은 가정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산후조리원 우선 이용의 근거인 모자보건법 시행령 별표 2의2는 다문화가족의 산모를 포함해 아홉 범주를 들고, 이 가운데 소득을 따지는 범주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하나뿐이다. 어렵지 않은 가정은 국가유공자 가족에도, 장애인의 배우자에도, 셋째를 낳은 산모에도 있다. 소득을 따지지 않는 여덟 범주 모두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을 대통령은 다문화가족에게만 던졌다.

다른 하나는 “가난이 문제라면 가난한 내국인 가정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령은 처음부터 가난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가난은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라는 범주가 맡고, 나머지 범주는 예우나 특별한 조건을 이유로 정해졌다. 가난만 따지자는 말을 아홉 범주 가운데 다문화가족에게만 적용한다면, 그것을 공정의 원칙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세운 기준으로 보아도 결론은 달라진다. 대통령은 다문화가족 지원의 목적이 다문화가정의 특성에서 오는 불리함을 메워 동등해지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산후조리야말로 그런 영역이다. 한국에서 산후조리는 오랫동안 친정어머니가 맡아 온 일이다. 법무부는 결혼이민자가 출산과 양육을 도울 친정 부모를 불러올 수 있도록 방문동거 자격을 따로 두고 있다.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은 본국 가족을 초청한 경험이 많았고, 앞으로 초청하겠다는 응답도 많았다. 산후조리를 도울 사람을 국경 너머에서 불러와야 하는 사정이 제도와 조사에 함께 담겨 있다. 그런 산모에게 산후조리원 우선 이용은 대통령이 말한 동등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대통령이 내세운 숫자로도, 대통령이 근거로 든 시행령으로도, 대통령이 세운 동등성의 원칙으로도 이 말들은 성립하지 않는다.

연출된 사진입니다. 게티이미지.

‘그들도 국민이다’라는 반박

여기까지가 대통령의 기준 위에서 할 수 있는 반박이다. 나도 페이스북 글에서 그렇게 썼다. 다문화가정의 배우자도 아이도 국민이라고. 대통령의 말을 무너뜨리는 데는 이 반박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 반박은 대통령의 전제를 받아들인다. 보호받을 자격의 기준이 국민이라는 전제다.

이 전제에서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나흘의 출발점이었던 이주노동자다. 그들에게는 “그들도 국민”이라는 반박을 쓸 수 없다. 다음은 결혼이민자 본인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국민이지만, 산후조리원에 누운 산모는 아직 국민이 아닐 수 있다. 행정안전부 외국인주민현황을 바탕으로 한 여성가족부 집계로 2021년 결혼이민자와 귀화자 38만여 명 가운데 국적을 얻지 않은 결혼이민자가 21만 명, 절반을 넘는다.

전제 안에 들어간 사람도 온전히 들어간 것이 아니다. “가족이 국민이니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여성을 한국인 아이를 낳은 사람으로서만 보호한다. 국민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자리가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리다.

니라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는 『젠더와 민족』에서 ‘한 핏줄’의 신화 위에 선 민족은 출생으로 구성원을 들이고,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을 밀어낸다고 분석했다. 그 경계를 몸으로 재생산하고 표시하는 일은 여성에게 맡겨진다. 결혼이주여성은 이 두 역할을 한 몸에 떠안는다. 한국인 아이를 낳아 줄 사람으로 기대받으면서, 동시에 그 가족을 ‘다문화’로 표시하는 사람이 된다.

이 기대는 국가가 직접 만든 것이다. 2006년부터 지방정부들은 조례를 만들어 농촌 비혼 남성이 이주 여성과 결혼하면 중개 수수료를 포함한 결혼 비용을 지원했다. 2007년 한 해에만 60개 지자체가 이 사업에 28억 5천만 원을 썼다(서울신문 2011년 11월 4일 보도).

매매혼을 부추기고 이주 여성을 가사와 육아를 떠맡을 사람으로 본다는 비판 끝에, 국가인권위원회 집계로 2025년 4월까지 25개 지자체가 조례를 폐지했거나 그해 상반기 안에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강원 인제군 의회는 그해 6월 폐지안을 부결했다. 국가는 이 여성들을 국민의 아내와 어머니로 불러들였고, 이제 그 가족을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따로 떼어 놓는다.

그렇다면 국민이 되면 경계는 사라지는가.

연출된 사진입니다. 게티이미지.

국적으로도 닫히지 않는 국경

미국이 그 물음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25년 1월 20일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내려, 부모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인 아이에게만 출생 시민권을 주려 했다.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시민이 된다는 원칙 대신 부모가 누구냐를 기준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부모가 누구냐로 아이의 자리를 정한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출신으로 가족의 자리를 정하는 한국의 말과 짝을 이룬다.

국적을 얻은 사람도 안전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전한 내부 지침에 따라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은 매달 100~200건의 시민권 박탈 사건을 법무부로 넘기게 되었고, 법무부는 2026회계연도에 250건 이상의 박탈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2018년 법무부 자료로 전한 바로는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1건이던 일이다. 

경계는 길거리에도 그어졌다. 2025년 9월 미국 대법원은 인종, 언어, 직업, 장소를 근거로 사람을 붙잡는 단속을 막던 하급심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170명이 넘는 미국 시민이 이민 단속에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시민인지 아닌지를 외모로 먼저 의심받는 순간, 국경은 출입국 심사대가 아니라 일상 곳곳에 그어진다. 유발-데이비스와 동료들은 이를 ‘일상의 국경 만들기’라고 불렀다. 복지 창구와 어린이집 대기 명단, 산후조리원 순위표도 그런 곳이 될 수 있다.

물론 두 나라는 같지 않다. 하나는 강제력이다. 미국에서는 구금과 추방, 시민권 박탈이 작동했고, 한국은 아직 말과 복지 지원의 단계에 있다. 다른 하나는 견제다. 미국 대법원은 2026년 6월 30일 출생 시민권 행정명령이 수정헌법 14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경계를 넓히려는 권력을 헌법과 법원이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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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정책이 되는 길

한국에서는 그런 견제가 어디에 있는가. 지난 나흘의 경로를 보면 답은 밝지 않다. 이 제도에 대한 불만은 그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았다. 그러나 그 불만이 국정의 의제가 된 것은 대통령이 게시물을 공유한 뒤였다. 공유 다음 날 청와대 인구정책비서관은 모자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커뮤니티의 불만이 하루 만에 정부의 검토 과제가 되었다.

대통령은 30일 글에서 극우의 빌미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논란이 될 만한 우대는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지적은 “누가 지적했는지를 차치하고” 따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공유한 에펨코리아 게시물 아래에서는 다문화가족을 하층민이라 부르는 댓글이 추천을 받고 있었다. 일베와 함께 극우 성향으로 꼽히는 커뮤니티다.

극우의 빌미를 줄이자면서, 극우 커뮤니티에서 나온 지적은 출처를 묻지 말자는 것이다. 혐오가 문제 삼는 제도를 거둬들여 혐오를 막겠다는 생각은 혐오에게 정책의 기준을 넘겨주는 일이다. 빌미는 하나를 없애면 다음 것이 생긴다. 대통령은 이미 어린이집 입소 순위를 꺼냈다.

비판에 답하는 방식도 나흘 내내 한 방향이었다. 이주노동자 발언에는 언론의 왜곡과 비교화법이, 다문화가족 발언에는 진영주의와 “오인”이 해명으로 돌아왔다. 30일에는 소수자 보호를 내세워 시정을 막는 주장이 오히려 다문화가정을 공격에 노출시킨다고 썼다. 그러나 대통령은 누가 그런 주장을 폈는지 밝히지 않았다. 내가 본 비판은 사실관계와 출신으로 가정을 가르는 말을 향했다. 그러는 동안 사실은 한 번도 바로잡히지 않았고,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는 대통령의 글 어디에도 인용되지 않았다.

이 경계가 제도로 들어가는 길은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이다. 국회의 의결 없이 정부가 고칠 수 있다. 미국에서 법원이 멈춰 세운 일을 한국에서는 정부가 혼자 결정할 수 있다. 지켜볼 곳은 한 줄이다. 시행령 별표 2의2의 “다문화가족의 산모”라는 한 줄이다. 아홉 범주 전체에 소득 기준을 새로 두는 개정이라면 출신에 따른 구분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한 줄만 지우거나 이 한 줄에만 소득 조건을 붙인다면, 출신으로 가정을 가르는 구분이 법령에 들어간다. 영유아보육법이 수급자와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과 함께 맞벌이 가구의 영유아까지 1순위로 둔 어린이집 입소 순위에서 다문화가족만 따로 조정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경고는 기우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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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국적이 경계를 끝내 주지 못한다면, 기준은 국적이 될 수 없다. 유발-데이비스는 『젠더와 민족』에서 핏줄이 아니라 함께 나눌 미래로 구성원이 되는 길을 짚었고, 이민과 국적 취득을 거치며 경계가 국경 안에서도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시민은 국가가 자격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앞날을 정하는 데 참여하는 사람이다.

한국 헌법재판소도 2011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다룬 결정(2007헌마1083)에서, 인간의 권리로 볼 수 있는 기본권은 외국인도 누린다고 했다. 그 제한을 합헌으로 두면서도 인정한 원칙이다.

기준을 바꾸면 질문이 바뀐다. 누가 국민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에서 함께 살고 일하고 아이를 낳고 있는가.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거두는 계절노동자, 조선소 하청에서 용접하는 노동자, 친정 없이 산후조리원에 누운 산모, 그 산모가 낳은 아이는 모두 이 질문 안에 있다. 이들은 국민이 되어야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 세계를 함께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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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화월딩(peace worlding)’이라 부르는 관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어지는 것이다. 국경이 출입국 심사대에서만이 아니라 산후조리원 순위표에서도 만들어진다면, 세계 역시 비닐하우스와 조선소와 산후조리원에서 날마다 만들어진다.

누가 국민인가를 묻는 대신 누가 이 세계를 짓고 있는가를 물으면, 결혼이주여성은 보호의 대상이기 전에 이 세계를 함께 짓는 사람이다. 그 일에는 마찰이 따른다. 언어가 다르고 기대가 어긋나고 가족 안에서도 출신이 문제가 된다. ‘평화월딩’은 그 마찰을 없애거나 덮자는 말이 아니다. 마찰을 견디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자리가 평화라는 말이다.

할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산모들이 순위를 다투게 만드는 것은 공공산후조리원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순위를 다시 짜기보다 조리원을 늘려야 한다. 정착의 길은 골라 뽑은 인재에게만 열지 말고 계절노동자와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도 넓혀야 한다. 유엔 9대 핵심 인권조약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비준하지 않은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의 비준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길의 제도적 이름이다.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2024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차별을 겪은 결혼이민자와 귀화자의 80.7%는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유발-데이비스는 『젠더와 민족』의 마지막 장에서 ‘횡단의 정치’를 제안했다. 각자 자기 경험에 뿌리를 두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의 입장으로 옮겨 가 대화하는 연대다. 평화월딩이 묻는 것도 결국 이것이다. 그 배움은 국경 밖이 아니라 국경 안쪽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은 28일 지지를 거두겠다는 한 이용자에게 답하며 “모든 국민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은 모든 공직자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썼다. 대통령이 청한 토론에 나는 그 말로 답한다. 그 책임이 닿아야 할 곳은 국민이라는 울타리 안이 아니다. 친정 없이 산후조리원에 누운 그 산모에게, 그가 낳은 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 한 밭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닿아야 한다.

우분투재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분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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