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 필드] 어떤 역사에 관해서는 이야기해도 되지만, 어떤 역사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 경계는 누가 설정하는가. 역사와의 대화마저 검열하는 어떤 억압적 목소리에 대하여. (⏳4분)
역사가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할 때, 논쟁은 종종 작품이 무엇을 어떻게 재현했는지를 넘어선다. 특정한 사건을 왜 다시 꺼내는지, 왜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묻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이런 질문에는 이미 하나의 경계가 설정돼 있다.
어떤 역사에 관해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도 되지만, 어떤 역사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경계다. 역사 재현을 둘러싼 백래시는 그 경계를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백래시는 사회적 변화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억제하거나 되돌리려는 반발을 뜻한다.
닥터X, 인간의 고통마저 검열하려는 태도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5·18 에피소드는 이를 보여준다. 작품은 당시 총상을 입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 온 가상의 환자를 통해 국가 폭력의 후유증을 의료 서사에 연결했다. 이후 방영 중단 청원이 제기됐고, 출연 배우에게 정치적 낙인을 찍는 공격도 이어졌다. 작품의 구성과 완성도를 평가하는 차원을 넘어, 해당 역사를 다룬 행위와 작품에 참여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반발이 확장된 것이다.
의학 드라마에서 이런 역사를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환자의 몸에서 사회적 맥락을 지우도록 요구한다. 인간의 몸에는 노동환경과 빈곤, 차별과 전쟁, 국가 폭력이 남긴 흔적이 존재한다. 5·18 피해자의 치료를 다루는 이야기는 역사적 폭력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묻는다. 그 서사가 설득력 있게 구성됐는지는 비평할 수 있다. 하지만 소재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한다면, 의학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의 고통부터 제한하게 된다.

서울의 봄, 역사적 통로마저 차단하려는 압력
영화 ‘서울의 봄’을 둘러싼 반발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2023년 일부 보수 단체는 단체관람을 진행한 학교 앞에서 시위하고 학교장을 고발했다. 영화에 허구적 인물과 극적 각색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검토할 대상이다.
전두환 일당의 군사 반란에 대항한 장태완 등의 진압 시도와 실패,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다 숨진 김오랑 소령의 죽음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다만, 영화의 주인공인 이태신은 실제 인물인 장태완의 불같은 성정과 비교하면 아주 침착하고 절제된 성격으로 묘사된다. 거기에 더해 광화문 대치 과정과 주요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영화적 해석’이 담긴 창작이다.
그러나 개별 장면의 허구성을 근거로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의 관람까지 막으려 한다면, 각색에 대한 비판은 사람들이 역사에 접근하는 통로를 제한하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암살자(들), 영화적 책임과 그 책임을 묻는 방식
‘암살자(들)’은 여기에 또 다른 쟁점을 더한다. 영화는 1974년 육영수 피격 사건에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한다. 극 중 중앙정보부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는 가설 등이 역사 왜곡 논란을 불렀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등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작품 속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 사건의 재현과 확인되지 않은 배후 가설의 극화를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따라서 ‘암살자(들)’에 대한 비판을 모두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로 묶을 수는 없다. 영화적 상상력이 근거 없는 의혹에 사실처럼 보이는 힘을 부여하는지, 실존 인물과 유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따져야 한다. 창작물이라는 설명만으로 이러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동시에 그 책임을 묻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 논란은 출연 배우의 광고에 대한 항의와 개인을 향한 비난으로 번졌고, 제작사는 참석자의 안전을 이유로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 비판이 참여자의 일상과 활동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면, 작품을 공개적으로 검토할 공간부터 줄어든다.

생산적 논쟁이냐, 억압적 검열이냐
세 작품을 둘러싼 논쟁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국가 폭력을 다루는 일과 사건의 배후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는 일에는 서로 다른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사례들을 함께 살펴볼 이유는 반발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근거를 논하는 데서 벗어나 방영과 상영의 중단을 요구하고, 출연자의 정치적 성향을 심문하며, 작품 참여에 불이익을 가하려는 방식이다. 이런 압력은 이후의 창작자에게도 어떤 역사를 다루면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 학습시킨다. 제작 현장에서 논쟁적인 소재를 미리 피하기 시작한다면, 공식적인 금지 없이도 자기검열은 작동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역사를 감정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국가 폭력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통증과 상실로 구체화되고, 군사 반란이라는 용어는 인물들의 선택과 책임으로 다가온다. 기록으로 접했을 때 멀게 느껴졌던 사건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힘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품에는 책임이 필요하고, 동시에 그 사실을 이야기할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감정적 설득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작품을 금지할 수도 없으며, 관객을 감동시켰다는 이유로 역사적 근거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도 없다.

정답을 강요하는 순간 대화도 멈춘다
언론은 이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고증 오류에 대한 지적, 역사적 가설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 특정 사건을 아예 다루지 말라는 요구를 모두 ‘정치색 논란’으로 묶으면 논쟁의 핵심이 사라진다. 이미 확인된 사실과 근거 없는 부정을 동등한 의견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창작인지, 어떤 비판에 근거가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 공격이 개인을 향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반발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문제점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재현을 둘러싼 갈등에서 지켜야 할 것은 사실에 대한 책임과 질문할 자유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작품은 고증과 해석, 재현의 윤리에 관해 비판받아야 한다. 관객 역시 작품을 거부하거나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특정 역사를 화면에서 지우고 창작에 참여한 사람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계속 논의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 논의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끝이 없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하는 대화다. 만약 우리가 답을 확정하기 위해 드라마와 영화에 침묵을 강요한다면 우리와 역사 사이의 대화도 그 순간 멈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