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성장에 기여 못하고 불평등 확산하는 한국 금융시스템 , 그 해법은? (김용기 /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 아주대 교수) (⏳5분)

금융시스템은 금융 및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고 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경제제도 중 하나이다. 금융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금융 거래가 이뤄지는 금융시장
  • 금융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기관
  • 금융 거래를 지원하고 감시하는 금융 하부구조(금융 인프라)

금융시스템은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자금 이전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금융 및 실물거래를 활성화하고 개인 후생 및 기업 이윤의 증대를 통해 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성장에 기여 못하고 불평등 확산하는 한국 금융시스템

하지만 2025년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이러한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그동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규모를 확장했지만, 성장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자산 불평등을 확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사는 역대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향유하고 개개 금융사의 건전성은 제고되었는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가장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돕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금융시스템 내 금융자산은 매우 비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기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생산과 투자, 고용, 구매 등 기업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자금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부문은 비생산적이라 할 수 있는데, 비생산적인 부문이라 해서 모두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계대출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개인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에 기여하는 금융은 사회적으로 유용하다. 하지만 소유권 거래와 관련된 부문에 투입되는 자금은 비생산적이다. 아파트를 짓는 데 처음 들어가는 자금은 생산적이다. 건축자재를 구입하고, 건설노동자 임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대출은 GDP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생산적인 소유권의 이전이다.

상장이나 신주발행 시 주식매입 대금은 생산적이지만, 2차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의 소유권 이전을 돕는 금융은 그 거래가 자주 일어나고 거래 규모가 커지더라도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물론 유통시장이 있기 때문에 발행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금융자산 규모는 커진다. 금융기관 간 거래, 파생상품 발행과 판매가 계속되면 실물자산 증가와 관계 없이 금융자산 규모는 확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만 가계부채 늘어

문제는 현재 금융의 대부분이 실물 생산자본의 확충을 위해 사용되기보다 소유권 이전 거래에 따른 이득을 노리는 데 동원된다는 점이다. 총금융자산 크기로 보면 금융의 규모가 2024년 3분기 말 현재 무려 2경 6015조 원에 달한다. GDP의 10.8배나 된다. 1975년 말 금융자산은 27.5조 원으로 당시 GDP 대비 2.62배였다. 금융자산의 증가가 실물경제 성장보다 훨씬 빨랐다.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2180조 원과 2300조 원의 금융자산이 증가했다. 왜 팬데믹 기간 중 수도권 주택 가격이 2~3배 폭등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나라에서 자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 금융기구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사용되는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가 결국 금융위기를 야기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하고, 자산 불균형을 확대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비중이 높았던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줄였다.

그런데 한국은 예외였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08년 이후에도 계속 상승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16년 전후로 미국을 앞지르게 된다.


최근 들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다소 하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연도 개편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기준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함에 따라 100.4%에서 93.5%로 6.9%p 낮아졌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새로운 기준연도에 따르더라도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가장 높다.

주택담보대출 중심 비생산적 금융시스템

한국 금융의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은 2025년 한국경제에 두 가지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 극심한 자산 불균형이다. 가계부채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다시 말해 금융자산의 증가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부문으로 집중됨에 따라 특정 지역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2020년 이전에 강남지역 아파트를 샀는지’ 여부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짓게 되었다.


둘째는 가계소득 대비 부채원리금 상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처분가능소득이 줄고 국내 소비를 위축시켜 저성장을 가져온다. 1천만 명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비생산적인 금융시스템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적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부 후반기였던 2015년과 2016년에 가계부채는 각각 110조 원, 123조 원이 증가했다 (아래 표 참조). 전년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은 각각 11.5%, 11.6%를 기록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의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 시절 가계부채 증가율은 이전 보수정부 시절에 비해 낮았다. 하지만 팬데믹이 발생했던 2020년과 2021년에 미국 연준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자금 공급에 따라 국내에도 엄청난 양의 유동성이 몰려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저금리와 낮은 소비에 따른 저축 여력까지 겹쳐 돈이 부동산으로 몰림에 따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낳았다. 보수정부는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금융회사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았고, 민주개혁정부는 금융의 생산적 기능을 확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민간은행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적 이익추구(자산의 확대와 막대한 이자이익의 창출)에 대한 공공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절의 관치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공 통제의 강화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은행이 로펌에 거액 자문료 지급하는 이유

은행은 영업이익의 절반을 판매비 및 관리비로 사용하면서 거액의 광고비와 자문료 집행을 통해 금융산업의 사익 추구에 유리한 여론과 법률적·제도적 환경을 조성한다. 사외이사, 자문위원 위촉을 통해 학계와도 강력한 ‘친 민간 금융사’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법무법인에는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한다. 국내 1개 금융지주사가 특정 1개 대형 로펌에 지급하는 자문료가 연 2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스템의 핵심 요소인 금융인프라(감독과 규제 포함)를 운영하는 ‘모피아’(과거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는 금융산업이 추구해야 할 적절한 생산적 중개기능의 필요성과 민간 금융사의 사적 이익 극대화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금융 관료 집단(+금융감독원 출신자)의 은퇴 후 고수입 보장’이란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은행을 억압(financial repression)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개발목표를 추구하며 자신의 집단적 이익을 관철시켰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사의 사적 이익에 편승(regulatory capture)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 결과가 금융시스템의 비생산적 작동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총자산은 2024년 9월 말 현재 2420조 9천억 원이다. 2023년 명목 GDP 2236조 3천억 원의 108%에 달한다. 4개 은행의 자기자본금은 128조 4046억원에 불과하다. 자기자본금 대비 19배에 달하는 대출(신용창출)을 하고,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으로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린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생산적 기능 강화와 이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을 통제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과 불균형 완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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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2236억 3천억 원을 2236조 3천억 원 으로 수정부탁드립니다~ 다른 이에게 공유하고 싶은데 기사의 신뢰도 문제가 있는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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