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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 [임대용 물량 공급이 줄어들어도 임차인에게 문제가 없다]는 말을 뒤집으면?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는 것도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 모두의 주거권을 위해서는 다주택자 집 팔게 만들기 외에도 계약 갱신권 확대나 공공주택 공급 등의 적극적인 시장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

문제 의식.

  • 다주택자들이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으면, 임대용 주택 공급이 줄어들어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 이에 대한 반론으로, 임차인들 중에 집을 사는 사람들 덕분에 임차 수요도 줄었으니 임대용 주택 공급이 줄어도 문제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 아래 왼쪽 그래프에서 보면, 공급곡선과 수요곡선 모두 왼쪽으로 이동하니, 새로운 균형가격 E1=기존가격 E0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매매 시장은요?

  • 임대료가 오르지 않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는 논리라면, 매매 가격도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 매매 공급이 늘어났어도 (임차 시장에서 매매 시장으로 넘어온 수요자들 덕분에) 매매 수요도 함께 증가했으니 말입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에서, 공급도 수요도 모두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균형가격 E1=기존가격 E0 이 되는 경우입니다. 자가소유율(거래량)은 늘어나겠지요. 그래도 집값은 안 내려가는 상황입니다.
  •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주장 1. 다주택자의 보유주택이 매물로 나오면 공급이 늘어 집값이 내려간다.

  • 신축 공급은 시간이 걸리니, 다주택자 보유물량을 매물로 나오게 하는게 빠르다, 그렇게 해서 집값을 낮추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 아래 그래프에서, 매매 공급 0에서 매매 공급 1로 공급이 늘어나면, 기존의 E0 보다 가격이 낮아진 곳에 새로운 균형점 E’이 생긴다는 개념입니다.

주장 2. 다주택자를 압박하면 임대 물량이 줄어서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간다.

  • 이 주장을 수요-공급 그래프에서 보면 아래의 임차 공급 0에서 임차 공급 1로 공급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경우입니다.
  • 그렇게 되면 균형점은 E0에서 E’로 이동해서, 거래량이 줄고 가격은 올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세입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논리죠.
  • 이 주장을 하는 분들 중에는 정말 세입자 형편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은근히 다주택자 편을 들기 위해서 그러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사람 머리 속에 들어가볼 수는 없고요, 어쨌든 세입자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 그래서 그냥 다주택자를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른바 다주택 방임주의입니다.
  • 그래서 세입자 보호 조치를 병행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주장 3. 아니다, 세입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

  • 이준구 교수님이나 이광수 대표님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외에도 다주택 방임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분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 이 주장의 핵심 근거는, 임차인들 중에 내집마련을 해서 1주택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임차 공급이 줄어든 만큼 임차 수요도 감소하여 괜찮다는 겁니다.
  • 수요 공급 곡선으로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급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한 만큼 (임차 공급 1← 임차 공급 0) 수요곡선도 왼쪽의 점선으로 이동해서 (임차 수요 1← 임차 수요 0) 균형이 유지된다는 것이지요. 균형점이 (수요가 불변일 때의 E’가 아니라) E1으로 간다는 겁니다. 총량적으로는 균형이 유지되니 집이 모자라거나 가격이 비싸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 저는 이게 장기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하위시장의 메커니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택시장은 지역별, 점유 형태별 하위시장으로 구성돼있고, 장기적으로는 (임차 시장의 수요가 매매 시장의 수요로 넘어 오는 등)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각각 별도로 작동합니다.
  • 하지만 설령 이 논리가 맞아도 문제는 남습니다. 임차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니 임차시장에 문제가 없다면, 매매시장은 어떻게 된다는 걸까요?

주장 4. “그럼 다시, 매매 시장은요?”

  •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 놓으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집값 하락론의 근거는 매매 수요가 불변일 때 가능합니다.
  • 그런데 임차 시장에서 매매 시장으로 넘어오는 실수요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공급만 증가하는게 아니라, 수요도 매매 수요 0 → 매매 수요 1로 증가하고, 새 균형점은 E1에 생깁니다. 가격은 기존 가격 그대로입니다.
  • 매매 수요로 안 넘어오면 집값이 내려간다고요? 아니 매매 공급을 위해서 기존 세입자를 쫓아냈지 않습니까? 그 세입자들은 어디로 갑니까?
  • 결국, 자가소유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그건 그거대로 평가할 일이고) 가격에는 별 변동이 없어집니다. 임차시장에 영향이 없다는 논리라면, 매매시장에도 영향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보유세 정상화나, 양도세 유예 종료에 찬성합니다.
  • 세금은 조세정의의 원칙에 따라 걷고, 그 재원으로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 많이 짓고, 해당 지역의 발전에도 쓰고, 균형발전을 위해 다른 지역에도 배부하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투기꾼들의 기대수익률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세금을 올리거나 해서 다주택자들을 압박하여 매물이 나와도 세입자에겐 피해가 없을 것이고, 공급이 늘어나서 집값이 안정된다는 주장이 뭔가 이상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 세입자용 주택은 줄어드는데 마냥 공급이 늘어났다고만 한다면 마치 세입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아서도 불만이지만, 매매 시장에도 과연 생각하시는 그 가격 안정효과가 있겠냐는 겁니다.

만약 집값이 안정된다면?

  • 실제로 집값이 안정된다면 그건 어떤 상황일까요?
  • 첫째, 그건 매매수요로 전환되지 못한 임차수요, 즉 현재 집에서는 쫓겨나지만 내 집 마련은 하지 못하는 임차인들의 희생 덕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상황은 아닙니다.)
  • 둘째, 아니면 다주택자들의 매물 때문이 아니라 신축 분양주택의 순증 물량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만 기댄다면 주거 불안정 문제를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 개선]이라는 구조적 해법 보다는 [각자 알아서 내 집 마련해서 해결하라]는 각자도생주의에서 머무를 우려가 있습니다.
  • 셋째, 또는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의 물량이 늘어나도 됩니다. 다주택자들의 집에서 나온 세입자들이 매매 수요로 바로 넘어오지 않는 경우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내집마련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입자들이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에서 마음편히 지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세입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내집 마련하기도 편한 사회]라고 제가 부르짖는 이유입니다. 실제 주거복지 선진국들의 통계가 그렇고요.
  • 네덜란드와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의 자가보유율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기도 합니다. 이 나라들은 사회 주택의 비중이 높지요. (각각 약 30%, 25%, 20% 수준) 복지국가는 자가소유율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세입자 주거권이 보장되는 나라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사회주택의 경쟁상대는 ‘자가 주택’이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입니다.

우리도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을 늘립시다.

  • 이러면 평생 월세거지로 살라는 거냐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다주택자 분들이 그러시면 솔직히 좀 웃깁니다. 세입자의 내집 마련을 돕기위해 그러는게 아니라, 임대시장에서 경쟁상대가 생기는 것이 싫으셔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 넷째, 자산시장의 논리가 공간시장에도 투영된 경우일 것입니다. 금리 변동 등이 예입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전세가격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택시장 상황 때문에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즉 금리는 주택 시장의 종속변수가 되기 힘듭니다. 오히려 주택 시장이 금리의 종속변수에 가깝습니다. 혹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 서울의 집값은 위성도시보다는 도쿄나 LA나 런던의 집값의 영향을 더 받기도 합니다. 사실 고가 주택들이나 매력적 입지의 경우에는 이 측면의 영향력이 가장 클 것 같긴 합니다.
  • 다섯째, 독과점 해소로 인한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시장이나 재화의 성질이 달라져서 생기는 효과입니다.
  • 위의 넷째와 다섯째는 단순히 수요-공급 총량의 균형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바꿔 말하면, 임차 시장에서도 단순히 수요-공급의 균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총량 균형에 문제가 없으니 임대 시장에 영향이 없을 거라고 무사태평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주택 규제만으로 안 됩니다.

  • 우리 모두가 아프게 겪고 있는 전세 사태의 원인을 떠올려 봅시다.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사기꾼 몇명의 일탈 때문만이 아닌, 사회적, 구조적 재난이었습니다. 전세보증금으로 초기 주택 공급비용을 충당하고, 다음 세입자에게 계속 폭탄돌리기를 하던 것이 경기하강기에 터진 것입니다.
  • 이 구조적 피해는 그냥 총량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줄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빌라나 원룸, 오피스텔 등은 매매수요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져도 팔리지 않고 → 가격이 더 떨어지고 → 깡통 전세가 되고 →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해지고 → 후속세입자가 안들어오고 →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겪었고, 전세보증금 규모가 높게 유지되면서 집값이 잡히면 미래에도 겪을 일입니다.
  • 첫째, 전세보증금의 규모를 축소해야 합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 피해 방지 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을 위한 매매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도 그래야 합니다. 전세는 집값이 올라야만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동시에 집값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주가 아무리 탐욕을 내려놓고 집값을 낮춰 내놓고 싶어도, 그 집에 들어있는 전세보증금 이하로는 집값이 낮아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그 집을 사려 하지 않는 깡통전세의 단계로 진입합니다)
  • 둘째, 보증보험 가입 조건 같은 ‘채찍’과 함께, ‘당근’도 필요합니다. 반전세로 전환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임대인에게는, 예컨대 2%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전월세전환율은 2.5%를 적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중 전월세전환율이 5%쯤 되니, 세입자 입장에서도 시중 월세의 반값 수준이면 부담이 덜어질 것입니다. (자세한 이유와 해법에 대한 이야기는 “전세에서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를 봐주십시오)
  • 셋째, 매각하고 싶은데 안 팔린다는 분들을 위해서는 일명 공공 갭투자도 고려해봅시다. 지금도 매입 임대주택 제도가 있습니다만, 이를 좀 더 확대하는 겁니다. 공공은 갭만 지불하면 되니 돈이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현재 세입자의 주거권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현 세입자가 나가는 시점에 매수 희망자가 있으면 팔 수도 있을 것이고, 계속 공공주택으로 운영해도 됩니다. (물론 제도 악용의 소지는 면밀히 따져봐야겠어서 아직 자신있게 주장은 못하고 있습니다)
  • 넷째, 세수 확보나 매물 증가가 목적이 아니라 투기꾼들의 기대수익률을 떨어트리는게 목적이라면, 세금만이 아니라 임대료 쪽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세입자의 편익을 생각한다면 세금 보다는 표준임대료 제도가 직접적인 효과는 더 클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보유세나 양도세 정상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컵에 뚜껑을 씌워야 합니다.

  • 현재는 컵에 물이 가득차 있는데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조금만 흔들리면 물이 넘칠 것입니다.
  • 뚜껑을 씌워야 안전합니다. 그런데 컵 용량과 물의 양이 같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분들이 있고, 뚜껑 씌우라고 간섭하지도 말고, 자리도 옮기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 이러다가 컵에서 물이 넘칠텐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다가 낭패를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 더 걱정은 물을 쏟고 나서 이제는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뚜껑을 씌워서 목 마른 분들에게 안전하게 물을 가져다 드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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