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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규범에 어긋나는 표기는 아스테리스크(*별표)를 하고, 갈색으로 표시합니다. 현행 규범에 맞는 표기는 파란색으로 표시합니다. (필자)

– 이 글은 ‘한글 맞춤법 최대의 난제, 사이시옷을 없앨 때가 됐다와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편집자)

사이시옷은 발음 문제다


사이시옷 문제는 알고 보면 발음 문제다. 사실 모든 표기 문제는 발음 문제다. 글자는 결국 말을 담는 그릇일 뿐이니까. 그래서 한글 맞춤법은 들머리 제1항부터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말을 사람마다 제각기 달리 발음한다면, 적을 때도 제각기 달리 적게 될 것이다. 그러니 ‘소리’, 즉 표준 발음이 없으면 맞춤법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사이시옷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표기다. 사이시옷이 없다면 우리는 때때로 ‘표기된 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대로’ 읽어야 한다. 언제 예사소리로 읽어야 하고 언제 된소리로 읽어야 하는지 배워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사이시옷이 없다면 물건을 간직해두는 곳간(庫間)과 두 다리 사이 사타구니를 뜻하는 고간(股間)의 표기가 같아진다. 그러면 “지민이는 고간에 손을 (끼웠다/들이밀었다)”라는 글을 읽을 때 용언이 ‘끼웠다’인지 ‘들이밀었다’인지를 확인하기 전에는 ‘고간’을 /고깐/으로 읽어야 하는지 /고간/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뒤의 음절을 된소리로 발음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사이시옷의 역할이다. 물론 사이시옷이 언제나 된소리만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빗물(/빈물/)에서와 같이 /ㄴ/이 덧나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예삿일(/예산닐/)에서처럼 /ㄴㄴ/이 덧나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된소리이든 /ㄴ/이나 /ㄴㄴ/ 소리이든 사이시옷은 발음의 변화를 표현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빗물.

사이시옷은 결국 표준발음 문제다


실제로 사이시옷 표기가 헷갈린다고 하는 낱말 가운데는 표준 발음이 없거나, 통용되는 발음이 표준 발음과 멀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막냇동생’, ‘막냇삼촌’의 경우 표준발음이 /망내똥생/, /망내쌈촌/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이다. 표준발음이 /망내동생/, /망내삼촌/이라면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고 *막내동생, *막내삼촌이라고 적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이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이 사례의 경우 나만 해도 /망내동생/, /망내삼촌/이라고 하지 표준 발음법대로 발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시옷이 어색한 것이다.

결국 이 문제의 적지 않은 수는 사이시옷의 문제가 아니라 표준발음의 문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표준발음의 ‘부재’ 또는 ‘변화’에 따른 문제다. 거꾸로 촛불, 햇볕, 바닷가, 텃새와 같이 언중 사이에 발음의 혼동이 없는 낱말에서 사이시옷을 빼고 *초불, *해볕, *바다가, *터새라고 적자고 하면 사이시옷 표기를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촛불.

발음 이야기 조금 더… ‘닭’의 경우


발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사이시옷과는 무관하지만, 어린 시절에 배워야 하는 낱말 중에 꽤 복잡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닭’의 경우도 표준 발음 때문에 저렇게 받침이 난해하게 표기될 수밖에 없었다. ‘닭’ 뒤에 조사를 붙여 닭이, 닭을, 닭만, 닭도를 읽어보면 표준발음대로는 /달기/, /달글/, /당만/, /닥또/라고 읽힌다. 뒤에 홀소리가 오면 ㄹ과 ㄱ을 모두 소리 내고, 뒤에 닿소리가 오면 ㄹ을 생략하고 ㄱ만 소리가 나는 셈이다. 그래서 받침은 ㄺ이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뒤에 홀소리가 오든 닿소리가 오든 ㄹ을 생략하고 ㄱ만 소리 내는 사례도 많다. 적지 않은 수의 언중이 /다기/, /다글/, /당만/, /닥또/라고 발음한다. 사실 나도 때로는 별다른 인식 없이 그렇게 발음한다. 만약 이 발음이 표준 발음으로 인정된다면 표기법을 바꿔 닭이 아니라 *닥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ㄹ을 굳이 적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기법의 변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15세기에는 ‘닭’의 표기가 훨씬 더 복잡했다. ‘닭때’ 곧 유시(酉時·오후 5~7시)를 훈민정음해례본 합자해에서는 ‘ㄷㆍㅩ ㅵㅐ’라고 적고 있다.

훈민정음해례본 합자해

사이시옷, 없애기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자


나는 사이시옷을 모두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발음 조건에다가, 합성어를 이루는 말이 고유어냐 외래어냐 한자어냐를 따지게 돼 있는데 이 원칙을 차라리 폐기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기실 사이시옷 표기가 헷갈린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유어와 한자어를 굳이 구분해서 쓰도록 규정했기 때문인 것이다.

사이시옷은 합성어에만 쓰이는데, 그중에서도 고유어+고유어 또는 고유어+한자어(한자어+고유어)인 경우만 쓴다. 그런데 사실 어떤 말이 고유어이냐 한자어이냐를 따지는 게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찻잔(茶盞)은 한자어+한자어로 볼 수 있는데도 사이시옷이 들어갔는데, 차를 한자어가 아니라 고유어로 봤기 때문이다.

사글셋방의 사글세는 한자어 삭월세(朔月貰)에서 나온 말인데 어원에서 멀어져 ‘사글세’로 굳어졌다고 보고 고유어 취급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사글세방이 아니라 사글셋방이 된다. 한자에 익숙지 않은 세대는 꼭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헷갈릴 거리가 많다. 귤(橘), 사과(沙果), 포도(葡萄)가 한자어인 줄 아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안 들어가는 사례를 많이 접하고 나면 도대체 언제는 써야 하고 언제는 쓰지 말아야 할지 혼동이 되는 것이다.

귤(橘), 사과(沙果), 포도(葡萄)가 한자어인 줄 알고 계셨습니까?

왜 한자어끼리의 합성어엔 사이시옷 못 쓰게 했을까?


한자어+한자어의 결합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딱 여섯 가지 예외가 있는데 바로 앞서 예로 든 곳간(庫間)과,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다. 당혹스러운 것은 정확히 저 형태만 예외라서 셋방은 돼도 *월셋방은 안 되고, 찻간은 돼도 *기찻간은 안 된다는 것이다.

왜 한자어끼리의 합성어는 사이시옷 표기를 쓰지 못하도록 했을까? 흔히 원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다시 한글 맞춤법 1항을 끝까지 보자.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어법에 맞도록 함’에서 ‘원래의 형태’를 드러낸다는 원칙이 도출된다.

단순히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면 꽃이, 꽃만, 꽃밭을 각기 *꼬치, *꼰만, *꼳받라고 적어야 할 것이지만 이래서야 도리어 이해하기 어려우니 ‘꽃’이라는 원형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자어에 사이시옷을 넣으면 원형이 무너지는 것인지 의문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한자어+고유어의 합성어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사례가 많으므로 그렇다면 원형을 보존한다는 원칙은 이미 무너진 것이 되니 모순이다. 실제로는 제삿날이나 횟집을 두고 한자어의 원형이 보존되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횟집.

맞춤법 목적? 결국 한자어끼리 합성어도 사이시옷 넣는 게 낫다


언중이 쉽게 익히고 서로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맞춤법의 목적이라면, 한자어끼리의 합성어에도 가급적 사이시옷을 채용하는 편이 낫다. 가령 대가(代價)는 원래 사이시옷이 없이 쓰는 게 맞는데, 언중 상당수가 *댓가라고 적을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횟집 메뉴판에서 시가(時價)라는 표기를 거의 볼 수 없고 열이면 열 *싯가라고 적혀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단 6개밖에 없다는 예외 중 하나인 셋방은 되고 *월셋방은 안 되는 모순도 해결된다. “맥줏집에서 맥주잔에 술을 따랐다”와 같은 혼란스러운 표기도 해결된다.

한자어끼리도 사이시옷을 쓰면 인사과(人事課)*인삿과가 돼야 하고 총무과(總務課) *총뭇과가 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사이시옷은 실질 형태소끼리의 결합인 합성어에서만 쓰고 접두사·접미사와의 결합인 파생어에서는 쓰지 않는다. 인사과, 총무과 할 때의 -과(課)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붙지 않는다.

다만 내과(內科), 외과(外科), 치과(齒科)에서의 과(科)는 접미사가 아니라서 *냇과, *욋과, *칫과로 써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 병원의 진료과목을 뜻하는 말을 예외로 처리하거나, 과(科)를 접미사로 보도록 사전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 지금은 도로명주소의 ‘-길’ 앞에는 사이시옷을 안 쓰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 경우도 된소리 발음이 나는 경우에는 쓰는 쪽으로 통일하는 것이 표기상의 혼동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합성어와 명사구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막냇삼촌은 합성어이므로 사이시옷이 들어가지만, 막내 고모나 막내 이모는 합성어가 아니라 명사구이므로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고 띄어 쓴다. 어디까지가 합성어이고 어디서부터 명사구인지는 사실 대다수가 직관으로 알기 어렵다. 다소 과격하다 할 수 있지만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더라도 합성어로 취급할 수 있고 발음상의 변화도 생긴다면 사이시옷을 쓰도록 하는 편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맥줏집’에서 ‘맥주잔’에 술을 따랐다.

북한은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내가 느낀 바로는, 북한 텍스트가 생각대로 읽히지 않는 답답함이 있을 때 그 원인 중 절반 이상이 사이시옷의 부재였다. 사이시옷을 폐지하면 한국(남한)어 텍스트를 읽을 때도 비슷한 답답함이 유발될 것이다. 반면 두음법칙 부재의 경우는 노력(努力)과 로력(勞力)의 구분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북한은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이시옷을 쓸 때 어감이 더 아름답다


어감이란 사람마다 달라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이시옷이 있는 편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개나리길보다는 *개나릿길이 더 산뜻해 보인다. *순대국보다는 순댓국이 더 먹음직스러워보인다. *피대를 세우며 외치는 소리보다는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소리가 더 우렁차 보인다. *뒤도보다는 뒷도(윷판에서 이른바 백도)가 더 안타까워 보인다.

‘핏대’를 세운 외침이 더 우렁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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