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칼럼] 공공이 개입한 청년안심주택이나 사회주택 입주자들까지도 보증금 못 받아 기자회견 여는 현실. 전세 그 자체가 사실은 진짜 문제. 이제는 미련을 버리자, 대안은 있다. (⏰21분)
전세 사태가 한풀 꺾인 듯도 하다. 사고 건수와 액수는 확실히 감소 추세다. 지난 8월19일엔 피해자들이 협동조합으로 뭉치고 ‘월세전환기금’을 확보해서 피해 복구에 성공한 사회주택 사례의 성과 공유회가 국회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엔 서울시 청년안심주택 등 공공과 영리기업이 협력해 지은 주택에서 사고가 이어졌다.
위의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성공 사례가 중앙일간지 1면에 실리던 날에는 공공 소유의 토지 위에 지어진 집에서 발생한 전세 피해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주택 입주민의 기자회견이 열려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민간주택 분야에서는 8월 말 이후 더 큰 해일이 몰려올 우려도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주택금융공사(HF)가 대출심사의 고삐를 더 세게 쥐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연쇄 부도 사태로 번질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공공이 내놓는 대책은 ‘보증보험 제도 강화’와 ‘미자격 임대사업자 퇴출’의 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급커브길을 그대로 두고 보험 가입만 의무화한다고 교통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니다. ‘보험 만능주의’를 넘어서서, 애초에 세상이 안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검증된 방법이 있다.

전세 사태는 진정 국면인가?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전세 ‘사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실제 올해 상반기에 사고로 ‘집계’된 건수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고, 사고 규모 역시 작년 대비 70% 이상 줄었다고 한다. 지난 3년간 폭증했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위변제(빚을 대신 갚고 그 권리를 넘겨받는 것) 액수도 이번 여름에 들어서는 드디어 줄어드는 추세다.
📌 HUG의 대위변제액 추이
2022년 1조1천726억 원에서 2023년 4조3천347억 원으로 폭증했던 HUG의 대위변제액은 2024년에도 4조4천896억 원으로 늘어났다가, 드디어 2025년 6월, 2022년 7월 이후 거의 3년 만에 처음으로 월 사고액이 1천억 원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민간이 아니라 공공이 개입한 공공-민간 협력 분야에서도 문제가 터져 나왔다. 안심하라는 이름의 청년안심주택과, 서울시(SH)가 소유한 토지 위에 건물을 지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서도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생긴 것이다.
주로 민간 토지주나 영리기업과 협력해서 공급하는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은 현재 14건의 사업지에서 3150호가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차규근 의원, 7월17일 기준 수치). 전체 청년안심주택 약 2만7천호 중 11% 정도가 보증금 사고의 위험이 높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8월로 넘어오면서 실제로 280호 이상의 주택에서 경매나 가압류 등으로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심각해졌다. 입주자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지난 20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채권의 성격상 선순위 임차인에 해당할 경우 서울시가 선지급-회수하고, 후순위 임차인의 경우 공공 매입 후에 해결하겠다고 한다.
한편 서울시는 9월까지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들은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사업자 징계’야 해야겠으나,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실제 임차인 보호나 안전한 주택의 공급보다는 ‘우리는 사업자에게 엄포를 놓았소’라는 알리바이, 또는 면피성 행정으로 끝날 수도 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는 더 미온적이다. 서울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놓고 몇 년째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사회주택협회와의 대화는 회피하다가, 피해 임차인들 5명이 기자회견을 열자 이제사 언론사의 문의에 조금씩 대답 정도를 하는 수준이다(8.22 기준).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사회주택도 전세 사고, 그 원인은?
청년안심주택은 2016년 ‘역세권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민간 소유 토지에 용적률과 향후 분양전환 조건에 혜택을 주겠다며 참여를 유도했다. 대신 시세 대비 85% 정도의 임대료에 10년의 거주기간을 보장하는 조건이었다. 사회주택이나 공동체주택에 비해서 가장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바꿔 말하면 가장 사업성이 좋았기에, 많은 영리기업이 몰려들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되었다.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공공이 토지를 저렴하게 빌려주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그 위에 집을 짓고 임대료로 건설비를 갚아 나가면, 시세 80% 수준의 임대료로 공급이 가능하다는 구상이었다. 공공성은 역세권 청년주택보다 높았지만, 바꿔 말하면 사업성이 떨어졌기에, 사업자들이 별로 신청하지 않았다. 나중에 조례를 바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아닌 일반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열었지만, 영리기업의 참여는 극히 저조했다.
토지-건물 지분이 분리된 임대주택에 대한 최초의 시도이다 보니,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이런 저런 우여곡절도 거쳤다. 공사비 조달 관련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은행 입장에서는 토지지분이 없는 사업자는 담보력이 부족한 사업자다. 남의 땅에 집을 짓는다니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 이에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HUG가 건축비 대출에 보증을 서주었으나,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시중의 은행 담당자는 공공기관의 협약이나 보증과는 상관없이 ‘토지지분 없는 사업자에겐 건설비 대출도 없다’는 소신(?)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착공에 대한 기약이야 있든 말든, 서울시는 사업자에게 토지임대료를 성실하게 부과했다.
안 그래도 가시밭길을 헤치며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내딛던 사회주택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법이 바뀌어, 2021년부터 모든 임대 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된 것이다. 물론 사회주택 사업자들도 당연히 보증보험에 가입하려 했다. 그런데 HUG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 대해서는 보험 가입을 거절했다. 역시 또, 토지주와 건물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토지주’가 공공이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건만.

모든 건물은 회색이고 가치가 감가상각하며 언젠가 철거하는 것이고, 오르는 것은 오직 저 푸르른 토지의 가치니까, 토지주가 건물에 대한 매입 확약을 해줘야 보증보험 가입을 받아주겠다는 HUG의 입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토지주인 서울시(SH)는 토지임대료는 받아갈 지언정, 그 위에 지어진 건물까지 책임지는 것은 공기업법 위반 또는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행안부와 감사원의 유권해석을 받아보겠다는 와중에, 시간만 흘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사업자의 자금 사정도 어려워졌다. 시공사가 부실공사 끝에 도망가 버려서, 새로 시공사를 구해 공사를 진행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주택 분야의 기본 리스크 중 하나인 ‘시공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 못한 책임도 결국 사업자 몫이긴 하다) 결국 집은 여전히 보증보험 미가입 상태고, 그러니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 채, 기존 세입자의 계약만료 시점이 다가오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계속 흘렀다. 결국 작년부터 미반환 사태는 현실화 되었다.
💡 참고.
같은 서울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어도, 토지주가 SH가 아니라 ‘토지 지원 리츠’인 경우에는 HUG도 보증보험 가입을 승인해 줬다. 이는 형식적으로 ‘공기업’이 아닌 ‘리츠(부동산투자회사)’인 경우에는 매입 확약이 가능했고, 내용상으로는 리츠가 HUG와 SH가 2:1의 비율로 출자해서 설립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건물주와 토지주가 달랐지만, 그 토지에는 HUG의 지분도 있었기에, 보증보험 가입을 거부할 명분도 약했고, 리츠는 공기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매입확약이 쉬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도 처음부터 가능했던 건 아니었다. 같은 HUG 안에서도, 전세금 보증보험 취급부서와 사회주택의 토지 지분을 가진 부서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처음엔 이 둘 사이에도 협조가 안되어 보증보험 가입이 쉽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사비 대출 보증을 서준 HUG 부서가 건물에 가등기를 걸고 (대출 보증을 서줬으니, 안전장치로!), 입주자에게 전세대출을 해줬던 부서는 (건물에 가등기가 걸렸으니) ‘위험한 건물’이 되었다며 세입자의 전세대출 연장을 안 해주게 될 뻔한 적도 있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 헤쳐온 지뢰밭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지면 관계상 일단 여기까지만.

케르베로스의 개(지옥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를 원망하며 2021.9.30. 그림. Ⓒ최경호
청년안심주택에서의 사고는 사업장마다 원인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기도 전세 의존, 그리고 시세차익 의존 구조가 문제의 근원이다. 심지어 어떤 곳은 전세금으로 초기 공사비를 다 못 갚는 정도가 아니라, 10년간의 의무 임대 기간에도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그럼, 사업자는 왜 하느냐, 10년 후 충분한 시세차익을 남기며 주택을 분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용적률 특혜와 같은 인센티브가 제공되기에 영리기업들이 줄을 서서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공사비도 다 상환하지 못한 채 입주자를 받고, 10년의 의무임대기간에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적자가 쌓이는 이런 구조가 과연 안전할까? 아무리 자금력이 좀 더 있는 토지주나 중소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해도 말이다. 몇몇 사례엔 세계정세 급변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이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10년이라는 기간은 아무 일이 없길 바라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전세 보증금을 받아다 빚갚는데 다 써버린 여기에도, 애초에 전세 사고의 위험은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전세다
물론 문제가 일어난 주택의 사업자가 아무런 과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자가 영리기업이든, 사회적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입주자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을 고이 통장에 모셔놓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 터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증금을 고이 모셔두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1998년 조사에 따르면 73.7%의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받아다가 다른 데 투자하는 데 썼다. 10%의 임대인들은 살림에 보태 썼다. 세입자에게 언제든 돌려줄 수 있도록 은행에 고이 모셔둔 사람은 9.5%밖에 안 되었다. (지금은 더 줄었을 것만 같다.)

설령 은행에 돈을 쌓아 놓고 있어도, 소위 ‘Full전세’라면 문제는 여전하다. 전세금을 넣어 놓고 받는 이자 만으로는 세금, 유지보수비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동안은 어떻게 버텼는가? ‘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올려받아서 버텼다. 1억 보증금의 세입자가 나가면 다음 사람에게는 보증금을 5백이든 천이든 더 받아서 메꾸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면? 그렇게 되면 현 전셋값보다 다음 전셋값이 낮아지는 ‘역전세’의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제 뒷사람의 돈을 받아도 앞사람을 내보내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주택 매매가격이 현재 전셋값보다도 낮아지는 ‘깡통전세’가 되면,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빼 줄 수 없게 된다. 사기, 즉 ‘처음부터 악의적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경우’는 아닐지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다세대·다가구 주택에서 벌어지면, 이제 한 세입자의 피해가 옆으로 번지게 된다. 계약만료일이 다가오는 모든 세입자마다 순차적으로 보증금을 못 받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다. 걱정이 되어 모두 일시에 나가겠다고 하면, 비교적 문제가 없던 은행도 망하게 되는 ‘뱅크런’과 같은 상황이 주택에서도 벌어질 수도 있다.
월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전세에서는 결국 추가 진입자가 없으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 숙명이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 후순위자에게 돈 받아서 선순위자에게 배당해주는 방식, 그래서 더 이상 가입자가 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이하는 시스템. 바로 다단계 사기다. 그리하여, “애초부터 전세는 마치 ‘폰지사기’와 같이 지속불가능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최경호, 2024, ‘어쩌면, 사회주택’ 28쪽)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역시, 첫 입주자가 가져다 주는 목돈으로 초기 공사비를 상환하는 전세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금융’ 차원에서 전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토지’ 문제만 공공이 책임지고, 운영자는 건물만 지으면 저렴한 임대료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오류와 한계를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은 2017년 서울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이었던 필자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박원순 시정의 책임이었다면, 2021년 이후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는데도 HUG와 책임 떠넘기기로 시간을 보낸 책임은 오세훈 시정에 있다. 그 사이에도 토지임대료는 꼬박꼬박 받아갔으면서 말이다. 물론 한국사회주택협회도, 필자도, 결과적으로는 서울시와 HUG를 설득해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사실 피해 임차인 입장에서는 지금 말하는, 공급자 금융이니, 토지임대부니 하는 복잡한 말이 의미가 없다. 그냥 계약 만료시 보증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를 임대인이 이행하지 못하면 피해자가 될 뿐이다. 그게 사고 때문이든, 사기 때문이든, 임차인 입장에서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지자체나 중앙정부나 보증기관이나 사회주택협회나, 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책임을 통감한다.
시한폭탄이 더 있는 건 아닌가? 인질은 구할 수 있는가?
시세보다 보증금이 높으면 사기냐 아니냐 하는 사인 간의 관계를 넘어, 거시 경제 차원에서도,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의 부채에 포함해 관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합당하다.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아서 우리네 전세 시장의 거품이 커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금융 당국이 8월 말부터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대출의 합이 주택 가격의 90%를 넘으면 전세 보증에 가입시켜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미래의 더 큰 파국을 막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긴 하다.
그렇다. 그동안 전세를 임대인의 부채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문제가 이렇게 커졌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보증보험 취급 기관이 대위변제로 망하지 말란 법도 없을 지경이다. HUG나 HF가 쓰러지면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막아야 한다. 그런데!
위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사례처럼, ① 현재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집인데, ② 어느 날 갑자기 임대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게 되면 ③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게 되고 ④ 현 세입자의 계약이 만료되어도 보증금 반환을 못 하게 되며 ⑤ 현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 설정을 하거나,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을 하게 되면 (그로서는 당연한 권리이다) ⑥ 다시 더 이상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③)이 심해지며, ⑦ 현재 살고 있는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피해가 더 확산하게 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건 임대인이 투기꾼인지, 선량한 동네 이웃인지, 청년안심주택인지, 사회주택인지, 동네 빌라인지와 무관하게 벌어질 일이다. ③과 ④ 사이의 문제, 즉 ‘현재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없는 상황’에서 다음 세입자를 빨리 못구하게 되면, 언제라도 누구에게도 터지는 폭탄인 것이다.

이제 인정해야 한다. 집값이 오를 때만 작동하는 ‘전세’를 주거 사다리라고만 여기고 우리가 거기에 의존해 온 동안, 한국 사회에 폭탄이 깊숙이 심어졌다. 그리고 현재의 세입자들은 이 폭탄의 인질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서울시나 정부가 한다는 이야기가, ‘부채비율 축소해서 보증보험에 가입해라’, ‘가입하지 않으면 임대 사업자 등록을 말소하겠다’는 것에 머무른다면, 그걸로 공공이 할 일은 다 한 것인가? 폭탄은 해제될까? 인질은 구해질까? 이 폭탄의 해제는 지자체의 ‘임대 사업자 감독부서’에 맡겨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심지어 중앙정부의 국토부에만 맡겨서 될 일도 아닐 것 같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보증보험에 가입한다고 국민이든 정부든 일이 끝난게 아니다. 실제로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도 냈는데, 피해를 입은 이가 지급 신청을 하면불허 결정이 나는 경우, 즉 보증기관이 대위변제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 보증기관 입장도 이해가 간다. 대위변제 후 회수율도 2023년 14%에서 올해 많이 늘어난 게 35% 수준이라니 말이다.
그러니 설령 대위변제에 나선다 한들, 당장 임차인이야 한숨 돌리겠고 지자체나 국토부의 전세 담당 부처는 민원 부담을 덜겠지만, 공공기관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손실은 결국 국민 전체의 피해로 전가된다. 이게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일일까? 그냥 탄탄주택협동조합처럼, 전세를 월세로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데.
‘원인 제공자가 집 팔아 갚으면 된다’고 팔짱 끼고 볼 일도 아니다
몇백 호짜리 청년안심주택이나 공공의 토지 위에 지은 사회주택을 누가 사겠는가. 설령 누가 산다고 해도, 그 역시 대출을 받아서 사야 하는 형편이라면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은 그런 사람에게 누가 집사라고 대출을 해주겠는가.
자신의 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집을 팔아서라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 것은 당위론적으로 옳다. 그러나 안 팔린다. 갚을 낮춘다고 해서 팔리는 상황이 아니다. 전셋값 이하로 주택 가격을 낮추면 매도인이 오히려 매수인에게 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은 임대인이 내 줄 돈이 없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있는 집이라면, 매수인으로서는 현재 들어있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에 대한 채무도 함께 인수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집값은 낮춰도 채무 이하로 낮추는 것은 현실에서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가.
예컨대 전에는 매매가격 11억짜리 열 세대 원룸 건물에 10명의 세입자가 1억씩 보증금 내고 들어와서 살고 있었다고 쳐보자. 전세금 총액은 10억이다. 이런 집을 누군가 매매가격과 전세금의 차이인 1억 원만 ‘갭’으로 주고 사는 것이 ‘갭투자’였다. 그러다 집값이 내려가서 갭이 0인 상태가 된 채로 어찌어찌 버텼다고 치자. (이 와중에 이걸 누군가 갭 0원을 주고 무자본 갭투자를 또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이 집의 시세가 9억이 되어 깡통전세가 되었다면?
시세가 9억이니 이걸 10억에 내놓으면 당연히 아무도 안 산다. 그럼 싸게 내놓으면 될까? 그래서 9억에 내놓으면 팔릴까? 새로운 인수자는 9억짜리 자산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전세보증금(채무 10억)도 인수해야 한다. 그러니 주택 매도인에게 오히려 1억 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도 안 팔리면 집값을 8억으로 낮추면 될까? 그럼, 이번엔 매수인에게 매도인이 2억 원을 얹어줘야 팔릴까 말까 할 것이다. 그런데 매도인이 1억이나 2억 원을 내줄 돈이 있었으면 진작에 보증금을 빼주는 데 보탰겠지, 이 사달이 났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경매에 참여하는 피해 임차인은 자신의 보증금 가격을 써내게 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한다)

배임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이런 집은 공공이 일단 인수하고, 매도인에게 받아야 했을 1억에 대해서 훗날 받아내려 노력하는 방법은 있겠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은폐된 재산이라도 찾지 않은 다음에야, 실제 받아낼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산을 은닉하고 먹고 튀려는 진짜 사기꾼들은 물론 잡아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주택정책이 아니라 범죄 수사의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신축 주택이나 미분양 주택, 현재 세입자가 없는 빈 주택이라면, ‘안 팔리면 더 값을 낮춰서 내놓으라’고 압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전세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라면, 그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다.
자, 이렇게 보면, 지금은 ‘먼저 집값을 잡으면 전셋값이 내려가는 상황’이 아니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값이 따라 오른다고 볼 때는, 내릴 때도 그런 순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장기적으로야 그럴 수 있겠지만, 당면한 현실에서는 순서를 반대로 봐야 한다. 전세 규모 자체를 먼저 축소해야 집값도 잡을 수 있다.
폭탄 해체 방법: 누가 되었든, ‘전세의 질서 있는 월세화’
지겹게 반복하지만, 이 문제는 임대인이 ‘탐욕스러운’ 영리기업이냐 ‘영세한’ 사회적기업이냐와 무관한 문제다. 생계형 임대인이냐, 기업형 임대법인이냐와도 상관없다. 전세를 이대로 둔다면, 언제든 어디선가는 터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물론 탐욕이나 영세함은 그 자체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어떤 기사들은 마치 사회주택이 영세한 비영리사업자에게 운영을 맡겨서 문제라는 식으로 쓰고 있다. 실상은, 오히려 사회주택은 협회가 나서서 SPC를 설립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거나, 탄탄주택협동조합처럼 함께 치유한 경우라도 있다. 사고는 오히려 영리사업자들과 생계형 임대인의 영역에서 더 크게 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영리 분야에서 사고가 더 크고 많으니 ‘탐욕스러운’ 영리 분야는 주택공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전세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전세 보증금의 규모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물론이고, 그래야 은행도 살고 LH도 HUG도 HF도 살고 주택 위의 거시 경제도 산다. 그리고 이는 ‘전세 보증금 안 낮추면 보증보험 가입 안 시켜준다’는 채찍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전세금 규모를 줄일 방법이 필요하다. 실제 사례가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탄탄주택협동조합’이 보여줬다
2023년 5월, 동탄 지역의 전세 피해자 21명과 사회주택 관계자 7명이 모여 만든 탄탄주택협동조합은 피해자들의 주택을 인수한 뒤 2년간 약 18.5억 원의 ‘월세전환기금’을 조달하여, 주택의 보증금을 최우선 변제금 이하로 낮추고, 돌려준 보증금만큼은 월세로 전환하였다.
전환 시점에 따라 주택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약 4.8%의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한 셈인데, 이렇게 생긴 월세 수익은 평균 2.65% 이자율로 조달한 월세전환기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 유지보수비, 관리비와 각종 수수료 및 세금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새 물가도 올라 현재의 임대료는 대략 주변 시세의 80% 수준이라니, 입주자의 월세 부담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임대 사업을 펼치면서도 피해자의 보증금을 회복하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협동조합의 원리, 출자금 처리 방식 등의 이야기는 생략한다면, 이 모델의 핵심은 ‘월세전환기금’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최우선 변제금’ 이하 수준으로 낮추어 보증보험 가입 의무에서도 벗어나고, 월세 수익을 창출했다는 점이다. 임대법인으로서 협동조합은 보증보험료를 아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월세 수익을 통해 최초 피해액 보전을 위한 치유 기금도 적립할 수 있게 됐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혹시 협동조합에 무슨 일이 생겨서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도 자신의 보증금이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전세금을 대출받아 냈던 세입자는 기존의 대출이자와 탄탄주택협동조합에 내는 월세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서 월세 전환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오히려 돌려 받은 돈으로 기존 대출금도 갚고 ‘전세금 미반환 걱정’에서 벗어났다는 만족이 훨씬 컸다고 한다. 당시 특별법 제정도 불투명한 시점에서 협동조합 방식은 신속하고 편리하며 마음 놓을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개인이 그냥 주택을 인수하는 경우에 비해서도 뚜렷한 장점을 보여준다. 직접 소유권을 이전받을 경우에는 취·등록세도 내고, 전세 대출금은 바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재산인 보증금은 못 돌려받고 서류상 소유권만 넘겨 받은 세입자에게 그럴 돈이 어디 있는가. 또 나중에 정말 사고 싶은 집을 사려고 할 때, 원하는 시점에 이 집이 팔린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니 해당 주택에서 계속 살면서, 취·등록세도 내지 않고, 기존의 전세 대출금은 반환받은 보증금으로 조기 상환하고, 원하는 때 퇴거도 할 수 있고, 나중에 원하는 집에 분양을 신청할 수 있는 무주택자 자격도 유지되었다. 이 모델을 적절히 보완하여 일반 시장에도 적용하면 된다.
‘월세전환기금’이 바로 ‘장기저리 공급자금융’, 재원은 있다
탄탄 입장에서의 ‘월세전환기금’, 즉 공급자에게 장기 저리로 돈을 빌려줘서, 공급자가 세입자에게 저렴한 월세로 집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이다. 이전 칼럼에서 이야기한 LH공사가 ‘땅장사’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장기저리 공급자금융’과 이름도 본질도 같다. 결국 LH의 땅장사를 끝내기 위해서도, 또 전세 사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장기저리 공급자금융’이다.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고?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다. ‘빌려’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세입자를 통해서 임대인에게 나가고 있는, 이미 나가 있는 돈이 있다. 어떤 돈들이냐.
-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연 2.5~3.5%, 수도권 1.2억, 그외 8천만 원 이내
- 버팀목 청년 전용; 2.2~3.3%, 2억 원 이내
- 전세 임대(든든주택): 전세보증금의 최대 80%까지 연 1~2% 수준의 저리로 지원, 수도권 2억 원, 광역시 1억 2000만 원, 기타 지역 9000만 이내
이 돈을, 지금처럼 쓸 게 아니라, 즉 결국은 임대인에게 들어갈 돈인데 이자는 세입자가 내고 반환 책임도 세입자가 지게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직접 임대인에게 빌려주면 된다. 대신! 빌려주는 이자율에서 어떤 상한선(예컨대 1~2% 이내) 이내로만 더 얹어서 월세로 전환하라고 하면 된다.
가령 2%로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대신, 임차인에게 월세로 돌리는 건 3.5% 이내로 제한하면 어떻게 될까? 이때 시중 전월세 전환율이 5%라면, 이 주택은 3.5%/5%, 즉 시세의 70% 선의 월세로 운영되는 주택이 된다. ‘월세로 바뀌면 세입자의 월 지출 부담이 늘어난다’는 걱정도 불식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전환액의 규모와 주택물량에 따라 이자율 차이는 더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월세전환율을 3.5가 아니라 3%로 맞출수 있게 되면, 현 시세의 60% 월세도 가능해진다!
규모가 커지면 리츠를 활용하고, 공적기금은 대출이 아니라 지분으로 넣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공공이 매수하기도 쉬워지고, 무엇보다 선순위 채권이 있는 경우에도 입주자 보호를 우선시 할 수 있게 된다. 기업 구조조정 리츠도 하는 마당에, 주택에 못할 이유가 뭔가.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의 경우, 전세대출에 약 7.7조 원, 전세 임대에 약 4.9조 원을 썼다. 대위변제에 4조원 넘께 쓰는 마당에, 합치면 거의 13조원인 수요자 대출 중에 앞으로는 절반만 전세를 월세화 하는데 써도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확신한다.
전세에 의존한 청년안심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실패했지만, 전세의 월세화에 성공한 탄탄주택협동조합이 증명했다. 협동조합이니 최초 피해자들의 참여가 쉬웠지만, ‘탄탄 모델’을 따른다면, 리츠든, 비영리단체든, 영리사업자든, 누가 해도 참여자의 신뢰만 끌어낼 장치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의 순기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나라도 기업도 은행도 돈이 없던 70~80년대 시절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대한민국 특유의 전세 시스템은 소비자의 돈을 끌어다가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역할을 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강제저축의 효과’는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말’이라 하더라도, 인구이동이 잦은 시기, 수요자들의 입주를 수월하게 해주는 특장점이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월세는 임대인 입장에서 ‘미납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처음 계약 시 임대인은 임차인의 소득 수준이나 신용을 깐깐하게 보게 된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연대보증인을 요구하기도 하고, 월급이 월세의 3~4배가 되지 않으면 계약을 합법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촌향도의 시기, 생판 처음 보는 신용을 알 수 없는 임차인들도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세 덕분이었다. 전세는 미납 리스크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목돈을 마련해 오면, 입주 자체는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전세는 임차인 입장에서 ‘미반환 리스크’가 있다. 다만 이 미반환 리스크는 계속해서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보증금을 못 빼준다’는 경우는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도 없던 것이 아니지만, 결국은 대체로 다음 세입자가 (더 높은 보증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바뀌어 집값 상승이 멈추자마자 전세 부문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우리 모두가 지난 몇년간 목도한 바다. 이제 도시화도 포화 단계에 이르렀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이 넘어선 지도 오래다. 전세라는 다단계 시스템에 추가 가입자가 들어올 여력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금리 때문이든, 규제를 강화해서 투기꾼을 잡아서든, 규제를 완화해서 공급을 늘려서든, 집값이 안정된다면 전세는 어차피 사라져갈 운명이다. 그러니, 누군가 ‘집값을 잡겠습니다. 동시에 전세도 늘리겠습니다(혹은 안정시키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겠다는 말과 같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이제 실수로라도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듣는 이들도 마찬가지고!) 이제 월세 시대의 도래는 막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환영할 일이요, 다만 부작용이나 단점을 줄이기 위해 대비해야 할 과제다.

축소하던 전세 억지로 키우고 악화한 정부, 결자해지 나서야
실제로 2016년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전세의 시대는 갔다’고 했다. 전세의 종말’이라는 표현은 2013년에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전세는 1995년 주택 중 비중이 29.7%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9년에는 15.1%로 반토막이 날 정도로 2000년대 내내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이런 전세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것이 또 박근혜 정부였다. 미분양으로 고전하던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분양 대신 전세로 돌려라, 보증해 줄게’라며, 사적 계약인 전세에 공적 보증 제도를 들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하여 2013년은 전세의 운명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전세대출 문제의 기원을 이명박 정부때로 꼽는데, 사실 전세대출제도는 1990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초기엔 ‘영세민’ 전용으로 소액만 빌려주던 제도에서 1994년 부터 대상이 점점 확대되고, 2006년엔 8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008년엔 2억 원으로 지원 한도가 늘어났다. 전체 대출액의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일 컸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이 분야를 키운 셈이다. 모두의 인식이 전세는 서민의 주거 사다리요, 복지의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관행과, 이게 어떤 문제를 낳을지를 몰랐던 시대적 한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야 할까.
그러나 야금야금 늘어나던 전세 대출의 범위나 규모, 즉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 그 ‘성격’ 차원에서 변화가 온 가장 극적인 시점을 꼽으라면? 바로 2013년 9월9일이 되겠다. 사금융이었던 전세가 사실은 건설사를 위한 ‘공급자 금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국가가 전면에 내세우며, 공적인 보증제도로 그 뒤를 받쳐준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제 국가가 결자해지에 나설 때가 되었다. 작금의 전세라는 시한폭탄에는 국가 책임이, ‘추상’과 ‘원론’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차원에서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제 차분한 ‘전세 탈출’을 시작할 때, 그래야 ‘내 집 마련’도 쉬워진다
문제는 전세 그 자체에 있다. 이제 국가는 최종 수요자의 전세보증금을 받아다가 초기 비용을 상환하는데 써버리는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전세가 없어도 공사비를 천천히 상환할 수 있도록 공급자에게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전세라는 것이 집값이 올라야만 작동하고, 그래서 다음 입주자가 더 비싼 전세금을 감당하고 들어와야만 앞사람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폰지사기와 같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전세를 철폐할 순 없지만, 차차 월세(또는 반전세)로 시장이 변해야 함을 수긍하고, 그 속에서 부작용을 줄일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영리기업도, 사회적기업도, 청년안심주택도, 사회주택도 모두 전세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성공비결은 구성원들의 신뢰 속에 진행된 ‘전세의 질서 있는 월세화’에 있다.
그리하여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집값을 잡겠다면, 무엇보다 전세의 월세화 방안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로 집값을 잡을 수 있고, 따라서 내 집 마련도 쉬워진다. 순서가 그렇다.
월세로 전환할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수요자 대출을 공급자 대출로 바꾸면 된다.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갭투자자가 아니라면, 이제 더 이상 전세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