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다.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8분)
🧶 ‘신청주의’ 논쟁 🧵
이재명 대통령의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라는 발언 이후, 복지 신청주의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전 소셜코리아는 “신청주의는 정부가 국민의 소득과 재산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도입된 제도”라며, 신청주의 폐지 논쟁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기고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노대명은 ‘탈신청주의’를 보편복지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전략의 틀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신청주의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목하며, 제도 개선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 중위소득 및 재산 기준 보완
◾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
◾ 서류 및 절차 간소화
◾ 복지담당자의 재량권 적극 활용
이에 대해 남찬섭(동아대학교 교수)은 “진짜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에 갇힌 복지 억제 기조와 선별주의적 접근”이라며 반박했습니다. 남 교수는 ‘과도한 잔여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며, 더 근본적인 복지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반박하는 글을 노대명이 보내왔습니다. 노대명은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효과적 대안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자동급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소셜코리아’는 앞으로도 복지 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담는 열린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소셜코리아 편집자)
복지 신청주의 폐지(이하 탈신청주의)와 관련한 최근의 찬반 논쟁은 침묵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정치적 구호가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탈신청주의와 복지급여 자동지급에 찬성하는 글을 기고했다. 아동수당이나 사회보험은 물론,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선별적 복지제도도 자동지급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기까지는 충분한 준비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지만, 신청주의 혹은 개인책임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찬섭(동아대 교수)은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 아닌 복지억제와 잔여주의’라는 반론에서 “자동지급제는 위기가구를 지원하는 공공부조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도입이 된다 해도 막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해 애초에 강조된 재정절감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복지 사각지대 발생원인과 자동지급을 둘러싼 쟁점 등 많은 부분에 공감하지만,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기에 이를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자동지급’
대다수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제도와 선별적 복지제도의 조합으로 운영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라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주의는 모든 국민이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적 지향을 의미하며, 보편적 복지제도 자체와는 구별된다.
다만 보편주의는 각 복지제도의 적용 대상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포괄되는가에 따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보험과 같은 보편적 복지제도에서도 적용 대상의 보편성이 핵심이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크다면, 보편주의의 취지는 애초부터 훼손된다. 선별적 복지제도 역시 적용의 보편성이 중요하다. 빈곤층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사각지대가 최소화되어야 사회보험 등 보편적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용 형태가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사회보험 가입율을 높이기는 매우 어렵다. 예외 규정이 많은 사회보험일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시간 소득파악을 통한 사회보험료 통합징수 방식이 사각지대 해소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가 2020년 ‘실시간 소득파악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소득기반 사회보험’과 연계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됐다.
선별적 복지제도 역시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안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시민의 권리의식을 높여 신청률을 제고하고, 선정 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또한 신청 절차를 단순화해 신청 부담과 낙인감을 줄이고, 공동체와 사회복지 담당자의 개입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청주의를 전제로 한 개혁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남찬섭은 그 원인을 복지예산 억제 기조 속,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복잡한 선정 기준과 낙인을 강화하는 선별주의적 구조에서 찾는다.
반면 직권주의(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복지급여의 수급 자격 여부를 수급 당사자의 신청과 관계 없이 공적으로 조사한 뒤 직권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와 자동지급 실험은 복지예산 억제나 관료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주목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활용해 비수급자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그것이다. 실시간 소득 파악, 복지제도의 표준화, 복지급여의 자동지급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비수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물론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신청주의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신청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직권주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복지급여 자동지급 체계로 이행하려는 실험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이미 신청주의에서 직권주의로의 전환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로파운드(Eurofound, 유럽의 복지·노동 정책 수립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핵심 연구기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이상적인 것은 급여를 신청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사회보장정보원이 있다. 전국의 사회복지 행정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간 복지 관련 정보를 연계·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동지급은 사각지대 해소 위한 효과적 대안
현재 신청주의, 직권주의, 급여 자동지급, 위기집단 발굴 등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전개되면서 원인 진단과 해법 제시가 뒤섞인 상황이다. 이는 복지 사각지대의 정의가 모호해 상이한 특성을 지닌 세 집단이 구분 없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이 세 집단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존 복지제도의 선정 기준을 충족하고 있음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집단, 즉 ‘비수급자’(non-take-up, non-recours)다. 이들은 복잡한 신청 절차, 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 그리고 신청 과정에서의 낙인 경험 등으로 인해 수급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급여 자동지급 제도의 직접적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둘째, 선정 기준을 초과해 법적으로 수급자격은 없지만 복지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집단, 즉 ‘사각지대 집단’이다. 이들은 복지제도의 선정기준이 엄격해서 발생한다. 따라서 사각지대 해소는 일차적으로 선정기준 완화를 통해 가능하며, 자동지급은 보조적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복지제도와의 관계보다는 위험의 심각성에 따라 정의되는 집단, 즉 ‘위기집단’이다. 이 집단은 비수급자나 사각지대 집단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지만, 그 밖의 집단에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자동지급이나 선정기준 완화는 위기집단 보호에 일정부분 효과가 있지만, 모든 위기집단을 포괄하기는 어렵다.
선별적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있어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제도와 낙인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수급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선정 기준을 완화해 사각지대 집단을 보호하더라도, 적용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복지급여 자동지급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탈신청주의의 극복 과제
탈신청주의나 자동지급 문제에 관한 남찬섭의 기고에 공감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별적 복지제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남찬섭은 복지 사각지대는 신청주의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복지예산 억제 기조 ▲그 기조를 수용한 관료주의 ▲관료주의로 인한 엄격한 선정 기준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은 지난 25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장과 개편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쳐왔다. 탈신청주의 개혁 역시 복지예산 억제라는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이 매우 큰 과제로 남아있다.
남찬섭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는 단순한 발굴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사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회복지 담당자가 위기집단을 발굴해도, 당사자가 복지제도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 주로 민간자원을 연계하지만, 지원규모나 지속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위기집단이 필요로 하는 주요 복지급여의 선정기준을 완화하고, 사회복지담당자가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공적 자원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이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남찬섭의 지적에도 동의한다. 2010년 이후 서구 각국에서 진행된 복지급여 관련 의사결정 자동화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AI 알고리즘이 인종·성별 등에 따른 편견을 드러내거나, 복지급여 자동지급 과정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수급탈락이나 급여 오지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나 오류들이 직권주의와 자동지급을 향한 실험을 중단해야할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정확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탈신청주의가 더 인간적이다
남찬섭의 글 중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건 신청주의에 대한 옹호, 복지급여 자동지급 방식에 대한 해석이다.
먼저, 순수한 신청주의가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남찬섭은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지출을 억제하려는 기조가 낳은 과도한 관료주의와 그것에 지배된 선별주의, 즉 과도한 잔여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청주의는 엄격한 선정 기준, 관료주의, 복지예산 억제 기조와 분리된 순수한 어떤 것이 아니다. 신청주의는 제한된 예산에 맞춰 선정기준을 엄격하게 만들고 선정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청주의가 억압적 기제와 분리되어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둘째, 신청주의는 여전히 수급 신청자에게 권리의식을 심어주고 있는가의 문제다. 남찬섭은 “공공부조에 따른 낙인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권리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세기 초·중반 공공부조가 생겨나던 시기에는 신청주의가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수급자에게 신청주의에 기반한 신청 절차가 권리의식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신청주의 위에 구축된 엄격한 선정 기준과 복잡한 절차가 권리의식을 약화시키고, 직권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셋째, 신청절차의 인간화와 신청절차 폐지 중 어느 것이 낙인감 해소에 유용한가의 문제다. 남 교수는 “낙인은 신청절차 때문이 아니라…복지급여 대상자가 스스로 그 취약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신청주의가 신청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과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신청 절차는 어떻게 가능한가? 신청 과정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과 그 관계는 통제 가능한가? 자동지급 방식에도 많은 문제가 따르지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 않고도 급여를 신청하고 수급하는 방식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까?

자동지급 시스템, 비용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
복지급여 자동지급,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급여의 자동지급은 가능하다. 물론 선별적 제도에 대한 최초 신청과 급여수급의사 확인 등을 위한 절차에서는 사회복지담당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후의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지금도 수급자 선정과 급여에는 공공데이터 연계를 통해 생성된 정보를 이용하고 있으며, 각 단계의 작업은 빠른 속도로 자동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자동급여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한 각종 시스템 구축 비용 역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자동지급으로 인한 급여 절감 효과가 시스템 구축 등 개혁에 필요한 비용을 상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탈신청주의와 복지급여 자동지급 시스템의 구축은 디지털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 국세청과 사회보장행정기관 간의 데이터 연계, 전 국민 사회보장 통합 데이터의 구축과 활용, 이를 기반으로 한 복지정책 및 복지사업 개발,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강화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복지급여를 한꺼번에 자동지급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