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올린 탈신청주의(자동지급), 보편복지 시대 열까.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9분)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
이재명,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 2025.08.13.
“신청 안 했다고 안 주고 이러니까 지원 못받아 죽는 것…”

얼마 전 한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라고 지적한 뒤, 신청주의 폐지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복지신청주의에서 보편적 복지체계로: 복지 패러다임 전환 긴급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디지털 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 복지급여 자동 지급을 추진하고 있어, 신청주의 폐지는 시대적 흐름이다. 물론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장애물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사회도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복지 신청주의 폐지, 우리가 이미 들어선 길
복지 신청주의는 정부가 국민들의 소득이나 가족관계 등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던 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이미 다양한 정보를 행정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소득 재산 정보는 국세청이 2021년부터 일용직, 자영업자, 특수고용형태 종사자 등 거의 모든 근로자의 소득 정보를 월 또는 분기 단위로 파악하는 ‘ 실시간 소득 파악’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사회 보장기관들도 이 정보를 광범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세부적으로는 보완해야 할 과제가 있지만, 지원 대상을 파악해 복지급여나 서비스를 자동 지급하는 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많은 국가도 이 길을 가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빈곤층 대상 복지급여의 자동 지급을 준비하고 있다. 예컨대 덴마크는 연금 자동 지급을 위해 ‘공공기관 지급용 전용 계좌’(NemKonto)를 활용하고 있으며, 핀란드도 복지급여를 받을 은행 계좌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그 계좌에 연금이 입금된다. 우리나라도 재난 지원금이나 민생 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해 은행 계좌를 지정한 경험이 있다.

이 국가들은 아동수당에서 출발해 연금이나 주택수당을 거쳐 빈곤층 복지제도까지 자동 지급 적용 범위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이들이 복지급여 미신청자 발굴 또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복지급여 자동 지급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탈신청주의, 적용 범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현재 우리나라에도 급여 자동 지급이 가능한 한 복지제도가 적지 않다. 아동수당 등 인구학적 기준만을 적용하는 사회 수당이나 복지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건강보험은 이미 자동 지급이 기본이고, 특정 중증질환이나 보장구 구입,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에만 신청주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연금 수급 안내문을 사전 공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신청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자동 지급 또한 단기간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자동 지급이 힘든 경우들도 있다. 산재보험처럼 산재에 대한 판정 절차가 필요한 경우나, 구직 등록을 전제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고용보험이 그렇다. 정책적으로 부가적 조건을 적용함에 따라 자동 지급이 어려워진 경우다.
선별적 복지제도들을 단기간에 모두 자동 지급으로 전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가적 조건들이 있다고 해서 복지급여 자동 지급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대부분은 기관 간 관련 정보의 자동 연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관련 정보의 자동 연계가 힘들어 신청 절차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주의 폐지와 선정기준 완화
왜 세금과 사회보험료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가 없어도 소득 재산을 조사해 징수하면서, 정작 복지급여를 지급할 때는 많은 신청 서류, 개인정보 제공동의 등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는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제도는 왜 이리도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제도에 선정 기준과 일정한 절차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득이나 재산의 유무, 가구 내 장애인이나 질환자가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 및 재산 기준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된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하며, 기타 선정 기준과 절차는 최소에 그쳐야 한다. 그 시금석은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다.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선정 기준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기준 중위소득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현재 생계급여는 기준 중위소득의 32%,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8%, 교육 급여는 50%로 되어 있으며, 구체적 액수는 2025년 4인 가구 기준 609만 7,773원, 1인 가구는 239만 2,013원이다.

각 욕구별급여의 소득 기준만 놓고 보면 다른 OECD 국가들에 견줘 낮지 않다. 문제는 재산 기준에 있다. 주거용 재산의 소득환산율이 연 12.48%, 비주거용 재산은 연 50.04%에 달하는 상황에서 재산이 기본 공제액을 조금만 초과해도 수급자가 되기 힘들다(예컨대, 주거용 재산의 가치가 기준 공제액을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연 12.48%를 곱해 ‘소득’으로 간주하고, 상가, 토지 등 비주거용 재산에 대해서는 연 50.04%를 적용해 소득이 훨씬 높게 책정된다). 소득이 없어도 재산을 소득 환산액으로 계산했을 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부가적 선정 기준 또한 최소화해야 한다. 과거 부양의무자 기준(수급 조건이 충족되어도 부모, 자녀, 배우자가 있으면 수급을 받지 못하도록 한 조치)으로 인해 가족 간 불화, 빈곤층의 수급 신청을 포기 등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잖았다.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어, 현재는 부양의무자가 고소득 ․ 고재산자일 경우에만 수급이 어렵다. 하지만 가족 간 부양의무를 강제하기 힘든 시대에 이 또한 폐지 수순으로 가야 한다. 이는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탈신청주의와 복지급여 자동지급의 파장
아마도 선정 기준을 완화하고 신청 절차를 최소화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지난했고, 그나마 제도 개혁을 계기로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신청주의는 줄어들고 복지급여는 자동 지급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복지급여 자동 지급을 위해서는 전 국민 소득 재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급대상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선정 기준 표준화, 신청 서류 간소화, 신청 절차 단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사각지대 규모를 추정해, 단계적 해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각지대 규모를 기존의 설문조사 데이터로 추정해 보면, 현재의 선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사각지대는 현 수급자의 약 20.1%(30.5만 명)로 추정된다. 즉, 생계급여를 자동 지급으로 전환할 경우 보호할 수 있는 빈곤층 규모가 30.5만 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재산 기준을 중위 순재산(전체 가구의 순자산, 즉 보유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가구의 금액으로 2024년 기준 2억 4,000만 원)의 30%(생계급여의 중위 소득 기준 32%와 비슷한 수준)로 완화하기만 해도 수급자 규모는 현 수급자 대비 약 80.1%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추정 방식은 행정 데이터를 활용한 추정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우리도 북유럽 국가들처럼 법률로 국세청 소득 재산 자료를 사회보장 기관과 연계해 지원 대상을 좀 더 명확하게 표적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 제공 동의와 같은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복지급여 수급 자격 판정과 급여 자동 지급을 할 수 있다. 이미 지자체·복지부 등 공공기관들은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협업 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에, 데이터 연계 방식은 한국에도 어려운 시도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보장기본법이나 사회보장급여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기존 복지 멤버십 제도(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개인 맞춤형 복지 안내 서비스’로, 국민의 소득·재산·가구 특성 등의 정보를 분석해 수혜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자동으로 추천)를 보완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확도가 높은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빈곤층이나 취약계층 대상 복지급여를 자동 지급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다.
위기가구 보호를 위한 보완 조치
선정 기준 완화와 복지급여 자동 지급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나 위기가구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예컨대, 자살이나 사망사고에 처한 사람 대부분이 사전에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일부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급여 신청을 포기했다, 또 일부는 복지급여 수급까지 60일 이상의 대기기간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긴급했다. 따라서 선정 기준 완화와 자동 지급 효과가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복잡한 신청 서류를 간소화하고, 수치심이나 낙인감을 유발할 수 있는 제출 서류부터 없애야 한다. 부정수급에 대한 우려로 여러 규제가 추가되어 온 점을 고려해, 향후 선정 기준을 추가할 경우 공정성·차별 여부·신청자의 인권 보호 등 윤리성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복지급여 신청부터 수급까지의 시간 단축도 시급한 문제다. 절박할수록 수급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자동 지급이 오히려 대기시간을 늘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①신청 ②접수·검토 ③소득 재산조사 ④심사·결정 ⑤통보 ⑥지급 신청 ⑦사후관리로 구성된 행정절차 중 ①~⑤단계를 대폭 줄이고, 소득 조사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는 정책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30일~60일로 규정된 대기기간을 2주 내외로 줄일 수 있다.
복지 담당자의 재량권을 강화해 선정 기준을 초과해도 상황이 심각할 경우엔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재량권은 있지만 감사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복지 담당자로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재량권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런 상황을 대비한 것이 긴급복지지원제도다.
AI 활용해 복지담당자의 재량권 강화해야
위기가구 보호에 있어 복지 담당자의 재량권 보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량권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실무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나 통합 사례 관리사(복지·보건·주거·정신건강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동시에 겪는 개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여러 복지서비스와 지역사회 자원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맞춤형 지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전문 복지 실무자)가 닫힌 문을 두드리며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많은 사회복지 전문 인력이 서류 업무에 매몰되어 본연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까지는 단전·단수나 체납 자료 등을 활용해 잠재적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그 명단을 지자체에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발굴 성과가 낮고, 적시 발굴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분석에 활용된 자료가 수개월 전이라 개입이 늦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데이터가 축적되고 발굴 모형이 정교해지면서 발굴 성과가 높아지고 있지만, 적시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쉽지 않다.
위기가구나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의 흔적을 남기는데, 주민센터 상담 기록이 그것이다. 이 기록 속에는 이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 AI를 활용해 실시간 상담 기록을 분석하면 적시에 위기가구를 판별하고 개입할 수 있다. 이렇게 측정된 위험도는 복지 담당자들이 재량권을 행사할 때 근거자료나 보완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
복지급여 자동 지급을 위해서는 공공데이터 연계와 정보시스템 개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과거 시행착오에서 얻은 교훈을 살펴봐야 한다. 예컨대 2023년 국민 편의와 행정 효율을 위해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개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과 공무원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던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정보시스템 개발은 초기 설계의 무결성(데이터 구조, 작업 흐름, 기능, 규칙 등이 논리적으로 잘 짜여 있어 오류나 모순이 없어야 함)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거대 정보시스템을 오류 없이 개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오류발생의 위험은 언제나 있다. 충분한 시험 가동과 철저한 위기관리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셋째, 정보시스템 개발은 전문 기관에 권한을 주고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넷째, 문제해결 과정에서 비전문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문제 발생 때 급한 마음에 더 많은 개발자를 투입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문제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정보시스템 개발의 격언이 된 브룩스의 법칙을 기억해야 한다.
📌 브룩스의 법칙(Brooks‘ Law)
지체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인력을 추가하면 프로젝트 완성 시점이 오히려 더 늦어진다는 법칙.
끝으로 기존의 복잡한 복지제도들을 정비해 시스템 개발의 난도를 낮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25년 9월 현재 ’복지로‘(대한민국의 대표 사회복지 정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복지급여와 서비스는 중앙정부 부처 소관 사업만 368종, 지방자치단체 소관 사업 4,553종을 더하면, 4,921종에 이른다. 이 사업 중 대다수는 연 1회 지원사업이나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소액 사업이며, 유사 사업 또한 적지 않다. 이 많은 사업을 그대로 정보시스템에 담을 경우, 과부하로 인해 복지급여 자동 지급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유사 중복사업을 통합하고, 선정 기준과 급여 기준을 표준화·간소화하는 재구조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보편복지 패러다임의 전환: 탈신청주의, 소득기반 사회보험 등
복지 신청주의의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한계보다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주장해 왔던 선정 기준 완화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서류와 신청 절차에 대한 간소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탈신청주의가 복지급여의 자동 지급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파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소득 기반 사회보험 등 보편복지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전략의 틀 속에서 이 논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복지 사각지대나 위기가구 보호 등 절박한 가구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탈신청주의를 통해서 해결하기 어렵다. 복지급여 자동 지급 논의 과정에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성공적으로 보편복지의 시대로 전화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