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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세월호 사건의 목격자다

2014년 4월에는 유독 슬프고 참혹한 일이 많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열흘 전 28사단 집단구타사망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뚜껑을 열자 험한 군 생활을 겪은 예비역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큼 참혹한 진상이 드러났습니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에게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 행위를 하고 새벽 3시까지 기합을 주고 폭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폭행은 한 달간 매일 지속했습니다. (2013년 3월 3일 신병 대기기간 시작 ~ 2013년 4월 6일 사망일)

처음부터 다 드러난 건 아닙니다. 육군은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 날인 2014년 4월 7일 ‘회식 중에 갑자기 구타가 일어나 사망했다’고 참모총장에게 보고하고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그러다 7월 31일 군인권센터(mhrk.org)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자 다음날인 8월 1일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다는 태도로 변했습니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2014년 8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육군 28사단 윤일병 집단구타사망 사건 현안보고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2014년 8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육군 28사단 윤일병 집단구타사망 사건 현안보고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군대 내에 존재하는 오래된 악습

저도 군대 시절 밤마다 라면이나 빵을 먹으라고 갈굼을 당하거나(좀 우스워 보이겠지만 당사자는 치욕감을 느낍니다), 머리 박기는 기본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선임병이 된 후 군기 잡는 데 열중일 때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의 임무란 게 맑고 투명한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군의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훈련소 시절 훌륭한 소대장이 있었습니다. 자대 가기 직전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폭행과 가혹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반드시 신고해라. 그런데 말이야, 그냥 기분 나쁘다고 고발하지 마라. 자대에 가보면 이 뜻을 알게 될 거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어서 참을성이 다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어떤 X자식 때문에 정말 수류탄 까 넣고 총을 쏠 것 같은, 무장탈영이라도 할 것 같은 그런 심리적 징후가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즉시 고발해라. 허나 저놈 때문에 기분 좀 더럽다고 막 고발하지 마라.”

전 이 말의 뜻을 자대에 배치받고 곧 깨달았습니다. 많은 아빠가 아들에 대해 좀 냉랭하다 싶은 때가 있죠. ‘자식이 저렇게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외로운 데도 왜 모른 척 피할까’, ‘애정이 부족한 건가?’ 하며 의문이 드는 아내들도 있을 겁니다. 군대에 다녀온 많은 남자는 아마도 제 생각과 비슷할 겁니다.

어차피 녀석이 조금만 크면 겪고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군에 가면 겪을 일, 미리 겪는 것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외로운 피해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각설하고 28사단 집단구타사망 사건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살려주세요!”

예비역분들 중에 이런 말 들어본 분 계십니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교전 중에도 적군이 총을 놓고 “살려달라” 하면 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아군이자 전우인 후임이 구해달라고 적극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계속 폭행을 가한 겁니다.

마침내 윤 일병이 쓰러지자 의무병인 가해 병사들은 링거 주사로 윤 일병을 소생시킨 후 다시 폭행을 가했습니다. 윤 일병의 생애 마지막 날, 냉동만두를 먹던 중 윤 일병이 대답을 똑바로 못하자 이 병장은 그를 폭행한 후 자신은 힘들다며 모 상병에게 재폭행을 지시, 모 상병은 윤 일병을 다시 폭행했습니다.

폭행

윤 일병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윤 일병은 사랑한 모든 사람을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황한 가해 병사들은 후방병원으로 그를 급히 이송했고 그들은 윤 일병이 냉동만두를 먹다 체해 숨진 것으로 입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윤 일병은 백 없는 빈곤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맨 처음 병원에 달려온 현직 의사인 매형은 시신 전체에 퍼진 멍든 자국을 보고 폭행 사망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전직 군법무관이자 변호사인 윤 일병의 외삼촌이 국회의원을 통해 헌병대가 재수사하도록 청했습니다. 허나 가해자들이 입을 맞춘 이상 헌병대의 수사도 지지부진에 빠졌습니다.

결정적 인물, 김 상병과 김 대위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몇 사람이 있습니다.

가해자 중 모 상병은 동기인 김 상병에게 폭행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김 상병은 즉시 포대장인 김 대위에게 보고합니다. 김 대위는 후에 말하길 “김 상병은 본인의 신분이 드러나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두 시, 포대장인 김 대위는 김 상병을 호출합니다. “헌병대에 가서도 같은 진술을 할 수 있겠나?” 김 상병은 확신을 하고 그러겠다고 답합니다. 김 대위가 묻습니다. “자네는 왜 고발한 거지?” 아직 반신반의인 상황에서 충분히 물어볼 만한 질문입니다. 김 상병은 “윤 일병이 불쌍하고 유족들에게 미안해서 그렇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김 상병은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데 공헌한 영웅입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누군가 보기에 포대장 김대위가 상부에 보고한 행위는 특별히 대단하게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마땅히 행해야 하는 공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거지요.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나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파출소장이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범죄가 없는 마을이여.’라고 덮을 순 없죠. 당연히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김 대위는 이 사건으로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불이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이건 용기입니다.

시계

김 상병의 고발은 현장 목격이 아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직 확증이 부족했습니다. 포대장 김 대위는 김 상병을 돌려보낸 직후 머리에 스치듯 두 달 전 천식으로 의무대에 입실하고 있는 어떤 병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목격했을지도 몰라.’ 새벽 3시, 포대장은 불침번을 통해 즉시 의무대에 입실한 그 병사, 김 일병을 호출합니다.

김 일병은 이미 가해 병사들의 행동에 대해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고발을 한 김 상병의 태도에 확신을 한 포대장은 그에게 사실을 말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일개 일병에게는 하늘 같은 존재일 대위가 일병에게 진술을 요청하는데 숨길 수 있는 병사가 있을까요. 그런 건 거짓말을 잘하는 정치인들이나 가능할 겁니다.

김 일병은 완강하게 부인하다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는 “불이익도 있고 성가실까 봐 숨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귀찮을까 봐 숨긴 겁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후에 이 병장이 김 일병에게 ‘OO씨는 자고 있었던 거예요’ 라고 범행 사실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말하도록 협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편집자)

누군가는 방조하고

군에서 신고는 사회에서 112에 신고하기보다 쉽습니다. 김 상병처럼 똑!똑! 바로 문만 노크하면 끝납니다. 그렇게 하라고 수없이 교육을 받습니다. 그는 귀찮아서 안 한 겁니다. 김 일병이 그렇게 용기를 발휘했다면 가해 병사들도 군기교육대나 영창 수준에서 끝났을 겁니다. 윤 일병도 우리 곁에 있겠지요. 이런 걸 방조하면 결국 악마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포대장은 대대장에게 보고했고 대대장은 헌병대에 진실을 전하고 헌병대가 달려와 가해 병사들을 체포한 후에야 우리가 아는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정말 중요한 대목입니다.

얼마후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한수진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발언합니다.

이게 가장 안타까운데 거기 환자들이 몇 명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환자 병사들이 신고를 안 한 게 가장 문제입니다.

김 일병도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런 걸 보면 신고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지 않아가지고 문제가 되었는데, 지금 와서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 (출처: 한수진 SBS 전망대)

당시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 인터뷰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국방부 장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일개 병사, 그것도 일병한테 떠넘긴다고 비난한 거죠. 댓글에서도 ‘왜 잘못을 덮어씌우나.’와 같은 의견이 빗발쳤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 사건과 관련해 김 일병의 신고 누락이 참 이상했습니다. 아니 가장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실제 헌병대에서도 이런 질문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이건 예비역들만 아는 거라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 군대 문화는 철저한 중대 식구 문화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중대별 자치 문화’입니다. 같은 중대의 선임병이 선임병이고, 같은 중대의 쫄따구가 쫄따구입니다. 다른 중대의 병사는 철저하게 나와는 무관한 ‘아저씨’입니다.

제가 8중대 병장이라면 7중대 이등병은 완벽하게 그냥 아저씨입니다. 병장이랍시고 “어이 거기 7중대 이등병 이리 와 봐.”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 그 이등병이 ‘야이 XXX, 디질래?’ 발길질을 날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부대마다 조금씩 상황과 정도가 다르긴 합니다. – 편집자)

사회에서 제가 102동에 사는데 106동 506호 박씨랑 같은 관계죠.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칩니다. 오히려 더 단절된 관계입니다. 우리 이등병 건드리면 중대별 패싸움이 날 수도 있을 정도로 중대는 자신만의 식구 문화가 있습니다.

즉, ‘중대별 자치 문화’를 고려하면, 김 일병이 다른 중대의 폭행 사실인 윤 일병 가혹행위를 그 즉시 보고하지 않은 점은 몹시 아쉽습니다. 자기 식구에 대한 불편한 지적도 아닙니다. 하지만 김 일병은 그걸 목격하고도 눈을 감았습니다. 의무대 내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감정이입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런 거 없습니다. 자대배치 받는 순간 다 끝납니다. 군대에서 ‘다른 중대 아저씨’는 철저히 남입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숨기고, 그 진실은 뒤늦게 알려진다

김 일병은 이 사건 초기에 사건에 대해 눈을 감았고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의 편에 서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김 대위와의 면담에서 그는 목격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결국, 그는 이 사건의 재판에서 목격자로 등장합니다만 저는 지적합니다. 김 일병은 이 참혹한 사건의 가해자는 아닐지언정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완벽한 방관자였습니다. 군 검찰은 김 일병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장교들은 30년을 복무해도 사병의 세계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사병만이 사병의 세계를 알고 있고 이를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김 일병은 그 후 천식으로 조기 전역을 했는데 국방부는 김 일병의 부모가 진술에 대해 거절했다는 이유로 더는 진술을 듣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군인권센터의 발표로 나중에 밝혀지지만, 국방부의 말은 사실을 덮어 사태를 키우지 않기 위한 또 하나의 거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사건 초기부터 김 일병은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군 당국에 표명했다고 한다. 김 일병 아버지는 ‘열 번이라고 만나야죠. 만나서 얘기를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천식이 심해도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월호 사건의 목격자다

이 사건을 세월호 이야기에 대입해보면 어떨까요.

용기 있게 진술한 김 상병이 될 것인가. 무려 한 달간 폭행을 목격하고도 눈 감았던 김 일병이 될 것인가. 김 상병은 되지 못하더라도 김 일병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김 일병이 되더라도 더 빨리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두고 종북이라니요. 유가족들에게 세금도둑이라니요. 현 집권세력의 행태가 28사단 집단구타사망 사건의 가해자와 사고를 축소하려 했던 군 당국과 뭐가 다릅니까. 이런 끔찍한 일을 두고 모른 척할 수는 없지요.

2015년 4월 4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촉구를 위한 도보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2015년 4월 4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촉구를 위한 도보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정의철 기자)

유가족들이 왜 삭발하고 투쟁하는지 의외로 모르는 분이 많더군요. 교통사고만 나도 서로의 과실 여부에 대해 손해사정인이나 변호사가 와서 감정합니다. 합의가 안 되면 법원 재판에서 과실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거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한쪽은 권력과 선이 닿아 있고 심지어 대통령과도 관계가 있어 보이는 겁니다. 만약 그 강한 한쪽이 ‘재판은 그만두고 위자료는 딱 8천으로 끝내자. 나 이미 공탁했다. 이제 그만 떠들어라.’라고 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 그 정도가 아니죠. 당사자들은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지난 1년 동안 유가족들이 어떻게 했고, 현 정부가 어떻게 했는지를 지켜본 분들이 많을 겁니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목격하고도, 보고 들은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서글픈 참사의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또 한 명의 방관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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