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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AI는 인간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빼앗는다. 경험이 사라지면, ‘숙련’의 기회도 사라진다. 그리고 인간은 취약해진다. 인간의 숙련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원리, 다섯 계명 그리고 열 개의 팁. (⏰17분)

여는 말: AI, 최종 단계에서의 ‘인간의 확장’

문명은 (학문과 예술의 진보이면서 무엇보다) 과학과 기술의 진화다. 과학∙기술의 진화는, 굳이 유명한 미디어 학자의 명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왔다. 자동차는 인간 다리 근육의 기계적 확장이고, 세탁기는 인간 팔 근육의 확장이다. 그리고 인터넷은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거리와 관계를 (적어도 이론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무한 확장했고, 그 세계를 스마트폰이라는 손바닥 안 기계에 모방해 축소시켰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AI는 인간의 궁극적 최종 물질, 두뇌를 확장하려고 한다. 인간의 모든 신체에서도 가장 특별한, 인간에게 만약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깃들여 있을 물질, 인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뇌가 이제 드디어 기계적 확장과 변이의 순간을 맞이했다. 도시가 발명됨으로써 신은 망했다고 풍자한 어느 시처럼, AI가 발명됨으로써 인간은 어느 정도 이미 확정적으로 망한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무엇인가에 열광하기보다는, 그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 해결 방법을 궁금해하면서 그 해법에 몰두하는 독특한 캐릭터의 사나이가 있다. 캡콜드(김낙호 드렉셀대 교수)에게 인간을 넘어서려고 하는 ‘도구’로서의 AI 문제를 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물었다.

AI 활용 가이드:
1원리 5계명 10팁

📢 안내 및 알림: 인터뷰는 2026년 6월 18일 밤 11시에서 다음 날 새벽까지 진행했습니다. 질문은 맥락화하고, 캡콜드의 ‘독백 문투’로 정리합니다. 최종 퇴고 과정에는 캡콜드가 참여했습니다.

하나의 원리, 다섯 가지 전제, 10개의 팁

AI를 ‘잘’ 쓰려면? 이 질문은 AI가 ‘도구’라는 중요한 본질을 내포한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원리, 그 원리에 바탕한 다섯 전제, 그리고 열 가지 활용 사례를 뽑았다.

AI는 도구다. 그렇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게티이미지.

지난 인터뷰 이야기를 잠깐 하자. 나는 AI가 ‘체험’을 ‘삭제’한다고 말했다. 물론 체험의 가치가 오히려 과장됐다고 여길 수도 있다. 굳이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만 여행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A에서 B로 이동하기 위한 목적이 ‘여행’인지 ‘출퇴근’인지에 따라 사람은 그 ‘체험’이 추구하는 목적을 다르게 구성한다. 여행은 여정 자체의 감정과 에피소드가 중요하지만, 출퇴근이라면 빠르고 안전하며 합리적인 가격이 중요하다.

A에서 B로 이동한다. 그때 그 이동은 여행인가? 아니면 출퇴근길인가? 중요한 건 이동 자체라기보다는 그 이동의 목적이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여행이든 출퇴근이든 ‘경험’ 자체로 얻어질 체험이라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면 안 된다. AI 자동화, 그러니까 더 긴 시간과 학습의 어려움을 한순간의 ‘생성’으로 교환하면 인간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이 질문은 비판적 사고의 뿌리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고, 인간의 존재 조건에 관해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경험의 기회가 줄어든다고 당장 인간 문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게 존재한다. 바로 ‘숙련’이다. 숙련이 사라지면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원리: 숙련은 ‘위화감’ 감지 능력이다

숙련이란 무엇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숙련이란 ‘어떤 상태’인가. 숙련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즉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숙련은 과제를 이행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보정하는 능력에 가깝다.

가령, 농구에서 자유투를 던진다고 할 때, 주변의 열기, 바람의 흐름, 그 미세한 차이를 ‘보정’해서 골을 넣는 능력이 바로 숙련이다. 혹은 요리할 때 이 소금 한 ‘꼬집’을 더 넣어야 맛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아는 ‘감각’이 바로 숙련이다.

그래서 숙련된 요리사의 능력은 단순히 레시피와는 차이가 있다. 내가 구현하려는 볶음 레시피의 맛을 살리려면 지금 이 양파는 어떤 결, 어떤 크기로 썰어야 할지 감각적으로 조율하는 것에 가깝다. 이것은 교육 문서로 정리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암묵지’ 같은 용어로 칭하기도 한다.

각 단계에서 어떤 상태가 필요하다는 ‘목표’를 알고 있어야 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바로 숙련이다. 내 입장에서는, 학생들 리포트나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읽고 리뷰를 해야 할 때, 어긋난 부분을 찾고, 부족한 근거의 결핍을 찾고, 논리적 빈약함을 찾아내는 것이 교수라는 일에서의 숙련이다.

게티이미지.

자동화 도구를 숙련된 상태에서 이용하는 것과 미숙련 상태에서 이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AI 시대의 경력자 고용 편향을 생각해 보자. 기업은 숙련된 전문가만 뽑고 숙련되지 않은 사원은 아예 채용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숙련자는 위화감을 감지하고 미숙련자는 그렇지 못하다. 숙련자는 옥석을 가리며 보정해 결과물을 내놓고, 미숙련자는 보정하지 못한 채 치명적 에러를 그대로 짊어질 확률이 높다.

그런데 ‘숙련’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는 전자계산기라는 ‘도구’ 사용이 금지된다. 계산에 관한 숙련 과정을 확보해야 하니까. 하지만 대학의 공학이나 회계학 수업에서는 계산기 사용을 허용한다. 계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숙련 과정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제 계산기는 다음 단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도구가 문제를 일으킬 때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도 바로 숙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그 도구를 믿지 못해서 주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아마 주판이 처음 발명됐을 때는 주판을 믿지 못해 손으로 계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AI 시대의 아이러니: 인간의 숙련을 빼앗아 AI를 숙련시키다

위화감을 느끼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숙련을 쌓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보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반복 작업으로, 같은 과제를 조금씩 다른 조건에서 충분히 반복하면서 패턴을 몸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소싯적에 말콤 글래드웰이 ‘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 것처럼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반복 수행 없이 패턴을 각인하는 편리한 학습법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패턴이 존재한다고 좀 더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 차이는 있지만.

그런데 AI와 같은 자동화 도구는 사람이 ‘반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꽤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숙련은 반복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데, 정작 그런 귀찮은 반복 작업을 생략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도구들이 자랑하는 효율성 아닌가.

얄궂은 게, AI는 인간이 숙련될 기회를 빼앗는데, 정작 인간은 AI를 ‘숙련’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은 AI 시대의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 AI가 숙련화되어서 반복과 보정을 덜 필요로 할수록, 인간은 더욱 스스로 자신을 숙련할 기회를 잃는다.

일례로, 2023년 무렵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이미지 생성기의 초창기 버전에서는 사람의 손가락을 여섯 개 일곱 개로 생성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원래 인간 손가락을 그려낸 이미지의 어색한 지점을 알아차리는 것에 꽤 숙련이 되어 있었기에(허구한 날 현실 세계의 손을 바라 보고 스스로도 사용하니까), 여전히 인간이 낫다는 근거로 쓰이곤 했다.

지난 2026년 3월 15일(현지 시각)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다섯 손가락을 펴고 손가락 개수를 세는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는 3월 13일 공개된 네타냐후 영상 연설에 오른손 손가락이 6개로 보이는 장면이 포함되었기 때문(즉, 네타냐후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이스라엘 정부가 해당 영상을 AI로 생성했다는 근거로 이야기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AI의 오류는 거의 사라졌다. 잘못 생성된 이미지를 인간들에게 지적받고 보정하며 계속 생성하다 보니 조금 더 숙련된 까닭이다. 그러자 정작 인간은 더욱 안심하고 ‘딸깍’질로 대충 적당해 보이는 이미지를 생성하고 거리낌없이 아무 데나 활용하게 되었다. 80점짜리 결과물을 노력 없이 쉽게 얻는다면, 95점짜리 결과물을 힘들여 시도할 동기가 희박해지는 것이다.

AI 작동법을 안다는 것

대부분 사람들은 AI가 ‘어떤 과정’으로 발현되는지 알지 못한다. LLM이 인터넷상의 온갖 말뭉치를 가져다가 단어의 연결 빈도를 토큰화하여 확률 계산한다는지, 다층적 레이어로 기계 학습을 하고 의미 추론을 한다든지, 이미지 생성이 더 이상 단순한 픽셀 인접성이 아니라 그림 구성 요인을 언어로 치환한 뒤 다시 이미지를 뽑아 조합한다든지, 작동 원칙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 당연히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대적 AI의 유용성은 예상한 대로의 결과물만 뽑는 것이 아니라 규칙의 결합과 진화로 당초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창발시키는 것이다.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는 논리가 인간이 해석하는 범주를 넘어서게 되는 것을 ‘블랙박스’로 비유는 이들도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질문 이전에 문제가 있다. 많은 기술적 도구의 일상화는, 작동 원리를 알기는 귀찮고 그냥 사용법만 파악하는 것이 되는 과정이다. 내연기관이 무엇인지는 무관심한데 자동차는 몰고 다니는 이들, 인터넷이 어떻게 연결망을 이루는 것인지는 배울 의지가 없는데 인스타그램 포스팅은 매일 수차례 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라.

일상화의 과정에서, 원리를 잘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층이 확립되고 분업이 정착하면 대충 자연스러운 발전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일종의 사용자로서의 숙련이랄까, 문제가 생겼을 때 인식하는 능력은 가져야 한다. 그래야 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에 맡기고, 인터넷이 느리면 통신사를 부르는 것이다.

AI라는 도구가 보급된 지금 단계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 정도의 숙련조차 없이 그냥 프롬프트를 넣고 자신의 숙련되지 않은 눈에는 대충 그럴듯한 결과를 뽑아 먹는 것에만 익숙해지는 사람이 느는 것이다. 내가 접하는 대학생들만 해도 이런 점에서 상당히 취약하다. LLM을 돌려서 그럴듯한 형식을 갖춘 리포트는 뽑아내는데, 현실 세계에 대한 맥락화와 지향점 없이 그저 아주 틀리지 않은 ‘키워드만 가득 조합한 텅 빈 물건’인 경우가 꽤 있다.

이런 도구 이전에도 ‘생각 없는’ 학생들이야 늘 어느 정도 있었지만, 글이 겉모양부터 엉망이라서 스스로 자기 생각 없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고등 교육의 목표란 본래 근거에 기반한 지적 사고를 숙련하는 과정인데, 성적표와 졸업장을 취득하는 자판기라는 인식으로 AI도구를 휘두르는 것이 당연시되면 그렇게 된다.

게티이미지.
💡 코로나에 이어온 AI


물론 고등교육의 질적 위기는 현재 개념의 AI 붐이 시작된 2023년 이전부터 봐야 하는데, 바로 코로나 국면에서 벌어진 강제 원격 교육이다. 학교는 지식의 전달소에 불과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사회화’라는 게 학교의 본질적 의미다.

대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지식과 근거를 통해서 무언가가 굴러가는 사회적 경험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여러 경험과 관점에서 나오는 사실관계를 견주며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내 지식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협업을 통해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과정 말이다.

그런 소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거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존재하여, 상대의 경험과 관점을 좀처럼 회피하지 못하는 것. 교수가 합리성과 사실관계라는 기준으로 조율하는 상황에서, 마찰하고 협력하는 것. 그게 코로나 때는 확 깨졌다.

원격 수업이라는 환경은 선생 대 학생이라는 창구만 일부 열어 주며 지식 전달만 가능하게 했을 뿐, 지식을 매개로 서로를 감내해야 하는 훈련을 생략시켰다. 그렇게 지식 기반 사회화라는 숙련을 제대로 쌓지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AI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그 텅 빈 숙련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어렵지만, 첫 단계는 그것이 빠져 있다는 걸 자각시키는 것이다.

숙련이 사라진 자리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오늘날 AI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숙련을 통해서 문제점을 발견해 내는 과정을 불필요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크게 두 가지, 그러니까 양적으로는 우월한 생산성, 그리고 질적으로는 얼마나 인간을 따라잡고 뛰어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넘친다.

숙련이 사라진 사회, 그러니까 위화감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마디로 ‘취약’해진다. AI가 코딩을 잘만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개발자를 죄다 잘라내던 것이 2년 전에 트위터가 X가 되면서 겪었던 일이다. 그렇게 엉터리 코딩이 이어지고 서비스 불안정이 빈번했다. AI로 대충 불법은 필터링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지니고 일하던 게시물 모니터링 팀을 도륙하자, 자기네가 야심 차게 장려하는 그록 AI를 바탕으로 생성해 낸 아동 음란물이 넘쳐났다.

이런 문제를 오히려 AI가 아직은 덜 진화해서 생긴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AI 성숙기가 아닌 AI 과도기의 일시적 현실에 불과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화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문제를 찾아내고,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위기 요인이 문제가 되기 전에 자그마한 대처로도 원래 가려던 길을 가는 것이다. 그것은 AI가 아닌 인간의 과제다. 다시 말해, ‘위화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여하튼 진화가 잘 이루어져서 결국 AGI가 출현하면 위화감이라는 숙련의 본질마저 구현하지 않을까.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위화감을 인간이 먼저 느끼고 숙련을 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주목하지 않는 게 문제다. 생산성에만 몰두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위화감을 느끼는 문제의식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다.

이런 전제를 깔고, AI를 도구로 잘 쓰기 위해서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게티이미지.

5계명

1계명. AI가 ‘조수’라는 인식을 버려라. ‘도구’다.

기업들은 우리에게 자꾸 AI를 ‘조수’든 ‘비서’든 인간이라는 틀로 포장하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AI를 의인화하는 것은 성능의 우월함을 자랑하는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마치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체해야만 한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인간이나 다름없는데 값도 더 싸고 노동권도 따지지 않을 것 같으니. 로봇과 ‘인조인간’이라는 명칭이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용어는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는 ‘피지컬 AI’라는 말은 더욱 위험하게 느껴진다.

의인화는 도구 활용의 가장 잘못된 방식이다. 내 일을 돕는 위치의 ‘사람’이라면, 나와 어느 정도 큰 목표를 공유하고 움직인다는 전제가 있다. 내가 교수로서 연구 조교를 둔다고 한다면, 그가 그저 내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분야 학문에서의 일정한 성취든 교육 기법의 훈련이든 일정한 공동 목표를 공유한다는 인식이 있다. 연예인이 매니저의 도움을 받든, 경영자가 비서의 도움을 받든, 목공 장인이 도제를 기용하든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는 내 명령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보충할 수 있고, 내가 틀렸다면 바로잡아 주고, 내가 방향을 잃었다면 적절히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도구’다. 내가 ‘입력’하면 ‘출력’하는 것이다. 계산기나 전기톱과 무슨 가치관을 공유하겠나. 도구가 내 실수를 에러 메시지로 경고한다고 해도 그것은 가치관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전에 주어진 명령에 입각한 알고리즘이다. AI가 해주는 모든 것은 도구로서의 기능임을 늘 인식해야 잘못된 기대치를 피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기계에는 ‘의식’이 없다”(“The machines we have now are not conscious “)고 말하는 테드 창(SF 작가). 테드 창은 ‘인공지능’이라는 말 대신에 ‘응용 통계’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FT 갈무리.
2계명: AI는 이미 숙련된 자가 다음 단계로 가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AI를 도구로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숙련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없이 AI에만 의존하면, AI가 오히려 나의 숙련 과정을 스킵하게 만든다. 사실 숙련이라는 것은 계속 안 쓰다 보면 퇴보하기도 하는 것이기에, 숙련자조차 일정 정도는 다시금 단순 반복을 해둬야 한다. AI는 이미 충분히 숙련된 부분에 대해서 단순 반복을 생략해서 내가 그다음 단계의 새로운 기능 숙련에 착수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로서 쓸 때 가장 바람직하다.

3계명: AI 활용을 위한 ‘비판적 사고’는 사람을 통해서만 훈련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는 무엇이든 에러를 찾고 트집을 잡는 딴지 걸기가 아니다.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이 왜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의 메커니즘을 살피고, 특히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계속 반추하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가치관이 있어야 하고, 권력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사람의 ‘처지’에 대한 탐구를 전제로 하고, 생성된 가상의 모델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방식’이라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즉, AI 활용을 위해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흔히들 말할 때, 그 비판적 사고는 실제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계명: 생산성 신화에 현혹되지 말고, 인간 모니터링 한계를 초과하는 생성 금지.

요즘 너도나도 AI에 조금 양식 있어 보이려면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HITL) 개념을 인용하곤 했다(참고로 이 개념은 AI가 작동하는 전 과정이나 의사결정 단계에 인간이 직접 개입하여 시스템을 감독, 수정 및 검증하는 협업 방식으로 AI의 높은 효율성과 인간의 섬세한 판단력·책임감을 결합해 오류를 방지하는 게 핵심이다. 편집자).

HITL은 양적 측면을 경시하면 무의미해진다. 일례로 태곳적에, 기사 댓글을 관리하려면 사람이 반드시 모니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왜? 현실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까. 도저히 인간이 커버할 수 없는 규모다.

한 사람이 하루 수십 개의 댓글에 응대할 수는 있지만, 수천 개의 댓글에는 불가능하니까. 현명한 AI 도구 활용의 기본은, 사람이 품질 통제를 하겠다면 애초에 폭주하는 생산성 이전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절 분량’만을 생성하는 페이스를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5계명: 가치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AI는 출처와 맥락의 경중을 효과적으로 판단하도록 설계되지 않는다. 물론 ‘공식 홈페이지’를 우선시한다든지 하는 기본 얼개는 흔히 갖추고 있지만, 상충하는 내용들을 맥락에 맞추고 가치관에 입각하여 인정 내지 기각하기보다는, 흐리멍텅 적당히 합성하는 쪽을 선택하기 쉽다. 당장 사람이 건네는 듯한 문장으로 시원한 답을 내놔야 하니까. 그 결과 생겨나는 빈틈은 반드시 사람이 채워야 한다. 애초에 빈틈이 있다는 위화감부터 느껴야 하고. 대답을 내놓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얻어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나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입장의, 바로 우리 같은 사람이 말이다.

얄궂게도, 태곳적에 구글이 검색의 제왕으로 등극했던 이유는 페이지랭크라는 가중치 시스템을 통해서 인터넷상에서 더 권위 있는 출처를 골라내는 기술 덕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무언가를 찾아볼 때 더 중요하다는 듯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검색엔진이든 소셜미디어든 뭐든, 관심과 트렌드의 전략적 몰아가기에 성공한 것, 광고 스폰서, 혹은 아예 시스템을 오남용한 것투성이 아닌가. 이런 판이기에 검색 결과의 가장 우선순위 답변으로 제미나이 AI의 정보 요약을 던져주기로 결심한 구글의 경우, 결국 의존하는 것은 그나마 여전히 사람이 묻고 사람이 대답을 해주는 거대 게시판 커뮤니티인 레딧이다.

게티이미지.

AI 활용팁 10

이런 전제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많은 분들이 AI를 사용하는 개별적인 용례 위주로 몇 가지 팁을 던져볼 수 있겠다. 절반 (1~5)은 생산 도구로 사용할 때, 나머지 절반은 (6~10) 소비 도구로 사용할 때 정도로 가볍게 나눠보도록 하자.

1. 문서

LLM으로 문서 작성을 하는 것은, 익숙한 형식과 무색무취 문체를 목표로 하면 굉장히 도움이 된다. 예) 공문서. 현황 보고. 단, 자신의 개성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결코 기필코 쓰지 마라.

2. 창작 보조

비슷한 발상으로, 창작 작업에 있어서도 ‘개성’을 오히려 적극 배제해야 하는 경우는 도움이 된다. 개성적인 캐릭터나 서사와 강렬한 대비를 시키려고 한다든지, 혹은 타인의 개성을 기계적으로 패러디할 때도 좋다. 고흐의 화풍으로 하늘을 나는 고양이 그림 한두 개 생성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생성물에 담긴 개성 요인의 원본 출처를 파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사람의 몫이다. 알고 하면 패러디, 모르고 하면 표절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내 창작의 몫은 생성물 위에 ‘내가 더한 것이 있는지’의 영역임을 잊지 말고.

3. 코딩

AI를 코딩 작업에 쓰는 것은 지금으로도 상당히 완벽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프로토타입 제작 도구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코딩의 완성은 기계화로 끝이 아니라 아니라 인간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뭐가 어디에 왜 달려있는지 나중에 사람이 알아볼 수 있어야 문제 발생 시 대처할 수 있으니까.

4. 응대

AI로 응대 도구, 예를 들어 자동화된 문의 상담창을 만드는 경우 말이다. 이용자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할 필요성이 적을 때만 쓰자.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냥 갑갑하지만, 기계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나를 이런 상황에 던져 넣은 푸대접에 화난다.

5. 발견

발견 도구로서 AI는 강추한다. 단백질 폴딩이든 수식 검증이든, 조합 패턴을 찾아내고 전혀 새로운 가능성의 경로를 찾는 것. 그러니까, 꾸역꾸역 모든 것을 계산해 보고 사람의 고정관념으로는 찾기 어려웠던 것을 발견하는 데는 아주 유용하다. 다만 그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은 결국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희망적으로 보면, 사회적인 시뮬레이션으로 정책을 보완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정책 활용의 다른 가능성을 예측하고, 제도적 구멍의 오남용 방법을 진단하고, 이해 당사자 간 생길 수 있는 마찰의 지점을 찾아낸다든지 말이다. 가령, 최근 엔비디아 협력으로 700만 명의 가상 한국 인구를 만들어서 화제가 됐었다. 이 AI 모델을 한국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활용하는 것은 턱없는 오버지만, 이들이 자아내는 갈등의 패턴이나 공동의 목표를 의외의 지점에서 찾아내는 데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AI가 만든 가상 한국인 700만 명. ⓒ 이승환2026.04.26.
6. 해답

구글링했을 때 제미나이가 처음 알려주는 결과가 딱 이런 경우다.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일목요연하게 바로 해답을 주는 것. 그런데 이 답변은 일종의 ‘펌’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정보 출처를 최소한 확인해야 한다. 출처의 신뢰도 판단은 인간의 몫이고, 안타깝게도 그 인간은 하필 당신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자.

7. 검색

좀 더 전통적인, 해답을 바로 얻는 게 아니라 다른 출처를 추천받기 위한 경우라도 다르지 않다. AI가 추천해 주려고 긁어오는 정보는 검색에 잘 걸리라고 이미 처리된 상태의 정보다.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정보(여러 경로와 단계로 인용된 정보)가 우선시된다.

그러다 보니 구글 영어판에서는 위키백과와 레딧 사이트의 자료들이 (광고주 다음으로) 압도적으로 우선 검색이 되며, 특히 영어로 작성된 자료들이 최우선이다. 체계적으로 색인하기 편하니까. 반드시 정확하고 우수한 정보라서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과 가치관이 반영되는 정보 정리 형식, 특정 언어에 대한 편향이 그냥 늘상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고 결과물을 받아들이면 된다.

8. 요약

요약의 과정에서 생략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원문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핵심 취지를 추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어 자체로만 다룬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논점의 강세가 흐트러지고, 중간중간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디테일이 중요한 경우라면 그 디테일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개별 조건이 중요한 경우라면 원본을 반드시 교차 확인해야 한다.

9. 번역

비슷한 이치로, 개략적인 의미를 살피는 것은 좋다. 하지만 맥락과 디테일이 중요하다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라. 특히 AI 번역은 이전 세대의 기계 번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맥락을 번역해 주지 않는데도, 그냥 문장이 더 자연스럽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받아먹기 쉽다.

10. 상담

개인적으로 AI를 상담 도구로 쓰지 않기를 강하게 권고한다. 나를 위한 처방을 얻으려는 것이라면, 오정보를 얻을 때 위화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또한 상담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나라는 내담자가 상담자라는 타인과의 관계를 수행하는 경험을 차근차근 반복적으로 쌓아야 한다. 그런 ‘숙련’ 기회를 배제하고 답안만 받는 자판기 같은 상담은 없다.

심리 상담이든, 사회복지든, 중국집 메뉴 고르기 연습이든. ‘고도 비만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고 민노씨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 서비스는 점점 더 비싸지고, AI 서비스는 점점 더 싸구려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AI를 인간 대체용 상담 도구로 쓰는 건 병적 징후다.

그럼에도, AI 상담의 ‘장점’을 꼽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모르겠어요, AI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요, 나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방향을 제시해 줘요… 등등. 그런데 바로 그런 상태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프로 상담사들이다.

다만 비용 문제와 가능한 시간에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접근성 문제가 남는데,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적잖은 상담 재원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홍보가 먼저다. 그리고 인간 상담이 더 중요해지는 현실을 반영한 사회적 지원, 그러니까 더욱 많은 상담 재원을 확충하는 정책 방향이 필요한 것이다. 뭐랄까, 결식이 문제인 동네라면 무료 급식소를 만들고 이용 안내를 해야지, 사람들이 예쁜 소꿉놀이 모래 요리로 배를 채우게 놔두면 되겠는가.

AI는 인간이 느끼는 마음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을까?

도구로서의 AI

요약하자면, AI를 도구로 쓰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도구’로 인식하여 그 작동 원리를 염두에 두고, 내가 숙련된 부분에 관해서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생성하게 해야 한다. 그런 당연한 활용법에 가장 큰 장해물은 역시 사회가 가열차게 밀어붙이는 생산성, 효율성 신화다. 그 압박으로부터 인식을 전환하고 인간적 고민과 고려를 담은 도구 활용법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법의 단어가 필요해 보인다. 장인? 한 땀 한 땀? 수제품? (웃음) 아직 찾지 못했다.

여기에서 이야기한 10가지 활용팁은 어디까지나 내 직업인 ‘교수’라는 분야에서 체득한 것이다. 모두에게 다 나처럼 적용되는 활용팁은 아닐 거다. 부모, 자녀, 교사, 학생, 취준생, 은퇴자…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활용 방식을 생각하고 익혀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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