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62년 군사정권이 기획한 헌법 8조와 정당법(62년 체제). 그 항체로서 지역정당의 의미에 관해 ‘행인’ 윤현식 박사가 말한다.
62년 체제를 넘어서
- 나팔새와 대깨문: 62년째 1962년 체제
- 위성정당, 정치가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
- 지방소멸과 지역정당
- 지역의 협치? 거버넌스로 포장된 통치
- 민들레당, 푸근하고 넉넉하게 모자라도 함께 뭐라도 해보는
목차.
정당 시스템의 하부 단위로 전락한 지역 시민 조직
민노: 지금 활동하고 계신 은평민들레당은 은평구에 있는 기존 정치 조직이나 시민 조직과의 관계가 어떤가요?
행인: 좀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기존 거버넌스 시스템에 관해서는 시민사회가 반성적 입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미 그 시기가 지났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민주당이 집권하는 지역도 그렇고, 국민의힘이 장악하는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역에서 주민 조직이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는 지역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요. 그렇게 활성화됐다는 평가가 있던 때가 90년에서 2천년대 초까지고, 2010년대까지도 끌고 갔던 지역 조직도 많았고, 적어도 2천년대 후반 2010년대를 지나면서 사실상 전국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였던 지역 조직들이 지금은 다 어떻게 됐느냐면, 사실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집권하는 정당의 하위 파트너 형태가 돼버렸습니다.
은평구에만 한정해야 말씀드리면, 과거에 지역에서 지역의 주민단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그 단체들이 지금 구와 꽤 많은 사업을 같이 하고, 그 사업을 하기 위해서 구로부터 여러 가지 재정적인 것들을 받아내고 있고요.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조직이 굴러가기 때문에… 결국은 과연 이 단체들이 관을 얼마나 제대로 견제하고, 비판 세력으로 자기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요.
광주,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전라디언의 굴레]의 지적
행인: 이 시스템을 그냥 계속 이대로 두면, 결국은 그냥 옛날에 우리가 비판했던 관변 단체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겁니다. 저는 그게 지금 가장 위험한 시민사회의 문제라고 보고, 더 심각한 건 이런 문제가 단순히 은평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은평구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왜? 민들레 당이 있고, 여기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직도 그 안에 건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혹시 [전라디언의 굴레] (2022, 조귀동)라는 책을 읽으셨나요? (민노: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졌던 현대산업개발 공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광주에서 같은 업체에 의해 두 번이나 큰 사고가 일어나죠. 조귀동 씨는 그 사고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면 그런 부실한 업체들이 활개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건 어떤 견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관뿐만 아니라 누구한테도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 그렇게 판단하거든요.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그동안 민주당이 집권하고, 그 민주당과 유착하면서 그 지역에서 잘먹고 잘사는 거고, 그 지역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도 지역의 맹주인 민주당 하고만 친하면 별 탈 없고… 그러다 결국 이런 사고들이 벌어지는 거다. 그게 다 그 정치 구조 안에서 나온다는 게 조귀동 씨의 책 [전라디언의 굴레]에 나오는데요. 그런데요. 광주만 그랬겠냐는 거에요. 대구는 안 그랬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게 그러다보니 그런 지경에까지 왔어요.
은평구만 보더라도 관과의 관계, 거버넌스로 포장된 관계, 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줬던 그런 유착 시스템에 관해서 시민사회가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고, 그 검토 끝에 나와야 하는 건 그럼 뭐냐. 문제 제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 제기 집단이 스스로 정치적 책임까지 질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하고, 그게 아까 말씀드렸던 정당의 역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역정당 운동은 그런 차원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운동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버넌스 이후의 거버넌스
민노: 굉장히 중요한 지적으로 생각합니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예쁜 이름으로 포장된 관계가 결국 서로 알음알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착이었고, 진정한 거버넌스로 거듭나기 위해선 비판 세력이 존재해야 하며, 스스로 비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까지 자임하면 더 좋다. 그게 지역정당이다. 이런 말씀인데요.
행인: 자꾸 협치라는 말로 포장하는데, 사실 거버넌스 자체가 거번먼트(government)를 대체하는 것이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처음 거버넌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계기는 단순히 통치 시스템이 아니라 그것에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 그게 협치, 거버넌스였던 건데요.
민노: 그렇죠. 그래서 (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stakeholderism)이 거버넌스를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개념필요적 요소로 이야기됐었죠.
거버넌스로 포장된 ‘통치’
행인: 그러니까요. 지금도 사실 그 취지 자체가 부정되어선 안 된다고 저는 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통치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거버넌스라는 건 그냥 통치죠. 말만 거버넌스고 사실은 일방적인 통치잖아요.
민노: 거버넌스가 일종의 알리바이, 일종의 포장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시죠?
행인: 포장제 역할만 하는 거죠. 지금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니라 주민자치‘회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마을 단위에서 기초 협의체로 주민회의라는 걸 만들려고 하는 데가 많아요. 저는 이거 아주 중요한 변화라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참여예산제라는 건 주민자치 예산제, 즉 지자체 사업이 결국은 주민들이 원해서 하는 사업이라는 걸 형식적으로 꾸며주는 것에 불과했잖아요. 은평구 같은 경우 실상 사업순위 정해주는 게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하는 일의 다에요.
제가 한번은 가서 공무원에게 질문을 했어요. 왜 A라는 사업을 처음에 하기로 했냐. 그 사업 예산이 왜 여기에 이 정도로 투입이 되느냐. 그런데 나와서 설명하던 공무원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해요. 그런데 그런 걸 사업이라고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1순위, 2순위, 3순위 정해주세요? 그게 무슨 자치예요? 그건 자치가 아니라 통치죠.
단일 의제 정당… 기본소득당에 관한 생각
민노: 예산을 말씀하셔서 연상이 되는 게요. 책에 보면, 스페인에는 반긴축정당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당과 같은 하나의 의제, 이슈에 집중하는 단일 의제 정당, 흔히 ‘원 이슈 파티’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행인: 저는 원 이슈 파티도 지역정당만큼이나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보고요. 예컨대 기본소득당 같은 경우에는 이미 단일 의제 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고 보고요. 다만 기소당은 단일 의제를 가지고 저렇게 활동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서울에 중앙당을 둬야 하고, 5개 시도당이 있어야 하고, 5천 명 이상 당원을 확보해야 하느냐는 거죠.
민노: 기본소득당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행인: 저는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에 관해서는 그다지 호의가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일단 저는 기본소득이라는 거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지금 기본소득당이라는 당은, 아까도 말씀드렸던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반민주주의적인 어떤 행태(‘위성정당’)에 편승해서 자기 기득권을 만들어가는 모델이기에 존중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다가오는 총선과 관련해서 기본소득당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 과거 위성정당에 참여했던 걸 반성하거나 극복하려는 것보다는 다시 한번 그 틀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권력을 연장해보고 싶다는 그런 행태의 정치 활동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저런 반민주적 활동을 했더니 그 당이 잘 되더라, 그러니까 우리도 저렇게 한번 하면 되지 않겠니’ 하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거, 저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민노: 결과 위주고, 원칙과 철학을 깨부수는 차원에서는 인정하기 쉽지 않다?
행인: 저는 물론 그 당의 태생부터 알고 있다보니 좀 그런 것도 있는데, 대중에게 보여진 것만 가지고 말씀드려도 그렇다는 겁니다. (계속)
I enjoyed reading your thoughts on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