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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62년 군사정권이 기획한 헌법 8조와 정당법(62년 체제). 그 항체로서 지역정당의 의미에 관해 ‘행인’ 윤현식 박사가 말한다.

62년 체제를 넘어서

  1. 나팔새와 대깨문: 62년째 1962년 체제
  2. 위성정당, 정치가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
  3. 지방소멸과 지역정당
  4. 지역의 협치? 거버넌스로 포장된 통치
  5. 민들레당, 푸근하고 넉넉하게 모자라도 함께 뭐라도 해보는

지방소멸과 지역정당


민노: 어려운 질문이고, 광범위하고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질문입니다만, 지방소멸을 막거나 그 속도를 늦추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큰 과제에서 지역정당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행인: 저에게는 그렇게 추상적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역정당으로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입니다. 현재로서는 지역정당이 제도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운동과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질문하신 바로 그 내용입니다. 지역이 다 없어진 다음에 지역정당을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향후 고민은 말씀하신 내용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요. 현재 가진 가장 큰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서울, 수도권입니다.

나라 이름을 그냥 ‘서울’이라고 하자


행인: 나라 이름을 그냥 서울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모든 게 서울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맞춰져 있느냐면 지방에서 우리 동네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하는 그 모델이 다 서울이에요. 그냥 서울화입니다, 서울화. 그러면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서울를 흉내낸 동네에서 사는 것보다는 그냥 서울에 가서 사는 게 낫죠.

굳이 지방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돈 벌어서 서울로 가든지 서울 가서 돈을 벌든지 서울화한 지역에 사느니 서울에 가서 사는 게 나은 판국에 무슨 지역 발전 모델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이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한은 지역 소멸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지역에 혁신도시를 만들잖아요. 혁신도시의 내용이 뭔지 아십니까? 그게 다 아파트 짓는 거예요. 그 아파트 모델이 다 어디 모델인가요? 서울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게 현재 지역 혁신 정책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부산은 서울과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없습니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다르다는 걸 우리는 이야기하지 못합니까.

‘차라리 그들(바르셀로나)처럼 제주도가 분리 독립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너희들과는 삶의 조건과 방식도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난 이런 걸 한번 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처럼 살고 싶어서 서울 사람들도 하는 것처럼 해보겠다고 하면 결국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의 소모품으로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서울 못 가는… 노인들만 남은 지역


행인: 지금 지역에는 노인들밖에 없습니다. 이 분들 지역 상가 활성화 이런 거 얘기하면서 무슨 문화의 거리, 축제 이런 거 하면서 기껏 하는 게 뭡니까? 음식점이라든가 이런 거 하지 않습니까? 노인들은 뭐 하느냐. 그 음식점에서 다 서빙합니다. 밥하고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서빙하죠. 시골 노인들은 도시 사람 치다꺼리하는 일을 합니다. 그 연세에 언제까지 그 일을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서울 가서 살 수 있습니까? 못 가죠. 그저 자식들이나 공부시켜서 서울 보내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라도 지방의 특수성, 자주성, 독립성 같은 것들이 보장돼야 하고, 그것들을 보장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지역정치가 살아아냐 한다는 겁니다. 중앙정치와 대척할 수 있는 정치세력. 난 너희처럼 안 한다. 지역에는 지역에 필요한 정치가 있고, 그런 정치가 살아야 하고, 그 방법이 지역정당이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지역정치를 살리려는 사람들이 그냥 시민단체만 해서는 저는 안 된다고 봐요. 시민단체가 공직선거 후보 출마시킬 수 있습니까? 시민단체 출신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이 됐다고 해도 단체가 그 후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습니까? 혹은 무소속은 힘들 것 같으니까 너 민주당으로 출마해라. 민주당으로 출마한 뒤에 당선되면, 그 당선인을 단체가 관리할 수 있나요? 안 되죠. 그냥 그때부터 민주당 사람인 거예요. 그냥 그건 민주당 의원인 거죠.

일본의 정치단체


민노: 지금 말씀하신 것 때문에 떠오른 건데요. 책에 보면 일본 사례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정당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데 정치단체로서는 우리나라 제도와 좀 다르게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행인: 정당 제도 자체가 좀 다르고요. 사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라 정당법을 가진 나라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랑 비슷한 정당법을 가진 나라로 독일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독일은 지역정당을 다 허용하고 있고요. 독일에는 유권자 연대라는 게 있어요. 그건 정당이 아닙니다. 정당은 아니지만, 예컨대 한국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곳에서 후보를 낼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후보를 내면, 정당법에서 정당을 다루듯이 그 단체를 다뤄줍니다.

민노: 그러면 정당이 아니어도 단체성을 가진 조직이 정당에 준하는 자격으로 후보를 낼 수 있는 건가요?

행인: 쉽게 말하면 어떤 단체가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 조직에서 후보를 내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국가에서 그 조직을 정당처럼 다루는 거에요.

민노: 아, 정당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았을 뿐이고요?

행인: 그렇죠. 다만, 정당과 다른 건 뭐냐면, 정당법이 있는 나라에서는 정당을 평상시에 정당으로 다루잖아요. 정당은 선관위가 정당을 다루는 그 틀로 관리한단 말이죠. 그런데 이런 유권자연대 같은 경우에는 일본처럼 지정단체와 같은 곳은 그렇게 선관위와 같은 국가 기구가 다루질 않습니다. 선거시에는 정당에 준하는 취급을 해주는 거고요. 평상시에는 정당으로서 국가로부터 관리받지 않는 대신에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이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는 거죠.

민노: 일본의 정치단체, 지정단체 제도는 우리나라로 보면 하나의 과도기적 체제나 제도로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요?

행인: 아니죠. 과도기적인 게 아니라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식 모델도 괜찮고, 쉬운 얘기로 많은 다른 나라들처럼 정당법을 없애버려도 되는 거죠. 혹은 독일처럼 정당법을 두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지역정당이나 비전국정당을 보장하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요. 핵심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전국정당만 허용한 현 시스템을 해체하자는 겁니다.

지역정당의 단위: 기초정당과 광역정당


민노: 지역정당이라고 했을 때도. 그 지역의 규모가 있잖아요. 그 규모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최소 단위나 최대 단위나 그런 게 있을까요?

행인: 지금 지역정당은 대한민국에서 아무런 논의가 없는 ‘제로 베이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어떤 단위로든지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은 지방자치법이라는 게 있어요. 그 법에는 기초자치단체와 광역단체가 있습니다. 정당이라는 틀로 만약 지역의 단위를 규율한다면 가장 편한 방법은 기초정당과 광역정당을 만드는 거죠. 기초정당은 기초지역에서 활동하고, 광역정당은 광역에서 활동하는 거죠.

그런 틀이 일단은 우리나라 법제에는 맞을 것 같고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기초 정당은 허용더라도 광역정당은 허용하면 안 된다는 분도 있고요. 반대로 광역정당은 허용해도 기초정당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아까 이야기한 유권자연대 같은 것도 만들어야 된다. 또 어떤 분들은 지금 기초단체만 하더라도 너무 크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떤 가능성도 다 열려 있다고 봅니다. 모든 제도의 장점을 다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거죠.

민노: 수도권은 인구가 몰려 있잖아요. 지역의 크기와 함께 인구가 문제될 것 같은데요.

행인: 예컨대 우리 동네, 은평구가 46만 명이 넘습니다.

민노: 지방도시와 비교하면 거의 경북 포항에 육박하네요. 포항이 50만 정도인데 말이죠. (포항 인구는 2023년 7월 기준 50만141명. 편집자)

포항 밤거리.

행인: 포항시는 은평구 같은 자치구는 아니지만, 기초지역인데도 너무 크다는 겁니다. 오히려 읍면동으로 쪼개자. 읍면동 단위로 마음대로 당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분도 있죠. 그런데 저는 지금 지역정당 논의는 완전히 제로 베이스라서 뭘 해도 먼저 깃발을 꼽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웃음)

현재 제가 가진 생각은 현재 우리 제도의 틀에 부합하는 기초정당과 광역정당 정도는 보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광역정당 경우는 연방정부체제를 가진 독일에서 주 단위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있잖아요. 그런 독일 제도를 참고해 거기에 준하는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정당의 최적 단위? 최소 단위?


민노: 지역정당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전제에서 지역정당의 단위를 어쨌든 쪼개야 하는데요. 제도적으로요. 어떤 최적의 단위가 있다고 보세요? 가령 제가 인터뷰한 정수경 박사(도시공학)는 지역 자립을 위한 적정 인구 단위를 5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던데요.

행인: 그런 걸 정해놓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거죠. 지금 정당법이 그렇거든요. 적어도 5개 광역에 시도당을 둬야 한다는 식이죠.

민노: 그런데 최소 단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 단위요.

행인: 그 최소 단위가 어디까지냐는 예컨대 미 군정이 정당을 등록하도록 했습니다. 그 정당등록제도는 미 군정이 한국의 정치 세력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군정이 정해놓은 정당의 기준이 뭐였느냐면, 3인 이상이었습니다. 3인. 30명도 아니고 3인이었다는 거죠. 거기에는 전국 조직을 가져야 한다 이런 거 없죠. 지역에서 신고하고 싶으면 지역에서 신고하고, 중앙에서 신고하고 싶으면 우리 사령부에 와서 신고해라. 그뿐이었어요.

민노: 생각보다 그 최소 단위가 굉장히 작네요. 작은 정도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미 군정 시절에도 정당은 3명이면 등록할 수 있었다!

일본 중앙정치는 망했다? 지역정치는 살아 있다!


행인: 우리 정당법상으로는 첫 번째, 현재 5개 이상 시도당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각 시도당마다 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5천 명 전체 5천 명 이상은 있어야 하고요. 세 번째가 서울에 중앙당을 둬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정당으로 성립이 안 되는 그런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규정을 둘 이유가 있느냐는 거에요. 아까 일본 말씀하셨는데, 일본에는 이런 규정이 아예 없어요. 몇 명이 되어야 한다, 뭘 어디에 둬야 한다, 중앙당은 도쿄에 있어야 한다 그런 규정이 없어요.

그런데 일본 중앙정치는 망했다고 사람들이 평가하는데요. 자민당 장기 집권을 그 예로 설명하죠. 1955년 창당 이래 60년 이상 집권 여당을 유지해왔다고요. 그런데 일본 지방 지역정치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 작은 가게 옆에 자기가 속한 정당 후보 포스터를 선거 끝났는데도 그대로 붙여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 뭐라고도 안해요.

헌법 현실… 헌법재판소는 정치재판소


민노: 지금까지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우리나라 정당법의 엄격한 규정들이 대단히 위헌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머지않은 미래에 위헌결정을 받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행인: 정치권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건 정말 정치적인 문제 아닙니까? 정치적인 문제가 사법적인 문제가 되면 안 되는데… 물론 헌법재판소는 정치재판소입니다. 법과 친하지 않은 분들께서 좀 착각하기 쉬운 게 헌법재판소도 대법원이나 고등법원처럼 형식적 법률에 관해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헌법재판은 정치재판이고 정치적으로 어떤 형태가 형성되면 헌법재판소도 거기에 맞춰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헌법 현실’이라는 거잖아요.

헌법 조항은 뭐든 헌법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한 거고요. 그런데 헌법을 만든 건 옛날이잖아요.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아요.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있는 거죠. 바뀐 시대 상황에서 오래전 헌법을 어떻게 현재에 받아야 들어야 하는가. 그 역할을 하는 게 헌법재판소잖아요. 그래서 정치재판이에요.

문제는 그런 정치재판인 헌재결정을 통해서 해결할 사안도 분명히 있지만, 그 전에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게 더 좋다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굳이 정치 재판까지 갑니까.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지금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입니다. 국회의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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