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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62년 군사정권이 기획한 헌법 8조와 정당법(62년 체제). 그 항체로서 지역정당의 의미에 관해 ‘행인’ 윤현식 박사가 말한다.

62년 체제를 넘어서

  1. 나팔새와 대깨문: 62년째 1962년 체제
  2. 위성정당, 정치가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
  3. 지방소멸과 지역정당
  4. 지역의 협치? 거버넌스로 포장된 통치
  5. 민들레당, 푸근하고 넉넉하게 모자라도 함께 뭐라도 해보는
“박정희 의장에게 세배 드리는 어린이들” (직접 인용)

일제의 폭압이 있었고, 미군정의 대리 통치가 있었으며, 반민특위의 좌절이 있었고, 60년 미완의 혁명이 있었으며, 5.16 쿠데타가 있었고, 72년의 유신이 있었으며, 10.26 정변이 있있고, ‘서울의 봄’을 짓밟은 12.12와 광주민주항쟁/학살이 있었다. 87년 대항쟁과 노동 대투쟁이 있었으며, 3당 야합과 노태우의 당선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 핑퐁 게임을 하듯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와 문재인이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진영의 뿌리


진영과 증오의 뿌리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와 전두환의 ‘5월 광주’라고 생각했다. 독재자의 전략적 기획(지역 불균형 발전)과 권력을 향한 야만(광주민주항쟁)이 그 진영과 증오의 토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어느새 더 단단하게 진화한 진영적 증오를 다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권력은 이제 서로 몸을 뒤섞으며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폐지 줍는 노인은 OECD에서 가장 많다. 젊은 남자는 국민의힘을 찍고, 젊은 여성은 민주당을 찍는다. 태극기는 촛불을 증오하고, 촛불은 태극기를 무시한다. 우리는 모두 진영의 한 쪽을 강요받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쓴 책 중에 [침묵의 뿌리]라는 책이 있다. 그 책 표지엔 한 여자 아이 사진이 있다. 군데군데 얼룩이 침잠한 더러운 옷, 오랫동안 씻지 못한 것 같은 머리와 얼굴, 슬픈 듯한 눈빛, 크고 아름다운 눈, 꼭 다문 부르튼 입술… 그 이미지가 왜 침묵의 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미지는 어떤 원형 같기는 하다.

항상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행인’이라는 학자가 있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는 헌법을 공부하고, 정당 활동을 해왔다. 그가 얼마나 용감한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뭔가를 시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그에게 증오의 뿌리, 그 진영의 뿌리에 관해 물었다. 그는 ’62년 체제’라고 답했다.

이 짧지 않은 글은 기득권의 적대적 공생 구조, 그 초석을 마련한 62년 체제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안이라고 행인이 주장하는 ‘지역정당’,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불법정당’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1962년 체제’란 무엇인가


민노: [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행인 님께선 ‘1962년 체제’로 명명한 정치 시스템에 관해 쓰셨습니다. “지역정치를 압살하는 제도적 체계”라고 지적하시면서요. 62년 체제를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신다면요.

행인: 학술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고요. 한국의 정당 정치 구조를 이야기할 때 1962년이라는 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고, 그때 만들어진 틀이 사실상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으며, 그 틀을 기획했던 사람들의 의도가 오늘날 더 공고하게 관찰되는 측면에서 1962년 정치 체제를 62년째 유지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민노: 62년 체제의 개념 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요.

행인: 간단히 구조를 설명하면, 61년 박정희 군부가 5.16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군부의 집권을 공고히 하고, 영속화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그 틀을 기획했던 사람이 JP로 호명되는, 영원한 이인자 김종필이었습니다.

김종필이 민간 이양 형태지만, 군이 주도하는 집권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그런데 4.19혁명으로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60년 장면 정부을 쿠데타로 뒤집었다는 건 민주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집권하려면 어쨌든 민주주의로 포장해야 했습니다. 즉, 주권자인 유권자로부터 제도적으로 승인받은 정부라는 걸 보여주는 게 가장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제도를 정비했고, 헌법 안에 그런 원리를 집어넣고, 그 원리에 따라서 법을 만들었죠. 그래서 했던 작업이 1962년 개헌을 하면서, 헌법 8조(당시는 헌법 7조)에 정당 규정을 넣었습니다. 이 구조는 지금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헌법 제8조

①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②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③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④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그리고 헌법에 규정한 그 핵심 원리를 하나의 제도로 만들어놓은 틀이 바로 정당법인데요. 이때 만들어진 정당법의 큰 틀은 현재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2년 체제의 핵심입니다.

5.16 쿠데타(당시 5.16 혁명)를 다룬 대한뉴스 제314호 중 박정희가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

그러니까 박정희 군부가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해 만든 틀이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지금에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모순이죠. 이것이 바로 62년 체제의 형식적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당은 중앙당과 지구당으로 구성해야 했다. 중앙당은 반드시 수도에 두어야 하며, 국회의원 지역구 총수의 1/3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의 지구당을 두고 있어야 했다. 한편 지구당은 5개 이상의 시·도에 분산되어 있어야 하며, 각 지구당은 50인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했다. 복수당적은 금지되며, 당원은 지구당이 있는 지역 안에 거주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군부가 제정한 정당법에 의한 정당 등록의 요건은 직전 정부는 물론,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권에서 정당을 규율했던 기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 것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오로지 전국정당의 창당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일정한 규모의 정당으로서 중앙집권적 관리체계를 보유한 정당이 아니면 정당으로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군부는 쿠데타 성공 후 국회를 비롯한 각종 의회기구의 해산,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통한 입법·행정·사법의 장악,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의 시행 등의 조치를 통해 모든 민주적 사회구조의 작동을 정지시켰다. 쿠데타 다음 해인 1962년 들어 군부는 ‘정치활동정화법’ 제정 시행으로 야권의 분열 및 군부 친화적 정치구조 형성, 헌법개정을 통한 정당의 국가 관리체계 확립, 강력한 규제를 규정한 정당법의 제정 및 시행으로 집권을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수순을 밟으며 ‘1962년 체제’를 완성했다.

이 흐름을 통해 군부는 두 가지 정치적 효과를 획책했다. 하나는 정적의 도전 자체가 근절된 상태에서의 기민하고 확실한 집권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집권의 정당성 확보였다.

윤현식, ‘헌법과 정당법 그리고 지역정당’ – ‘1962년 체제: 지역정치 압살의 제도적 체계‘, [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 쇠뜨기: 2023. 7. 중에서

62년 체제 깨뜨릴 두 번의 기회, 80년과 87년


민노: 62년 체제를 깨뜨릴 만한 역사적인 기회가 있었을까요?

행인: 저는 그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80년 광주민주항쟁로 이어지는 12. 12. 사태가 있습니다. ‘서울의 봄’을 경유하면서 광주까지 이어졌던 그 기간, 그 기간에 주권자의 역량과 요구를 모아 한 번 바꿀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두 번째 기회는 87년 6월 항쟁, 그리고 7월에서 9월까지 노동자 대투쟁, 저는 이때도 기회가 있었고,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5월 광주에서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고 그 피 위에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되는 전두환.
62년 체제를 깨뜨릴 두 번째 기회는 87년 민주대항쟁. 사진은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는 보도사진연감.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 복권 등을 포함한 6.29 선언을 보도한 당시 신문 1면.

민노: 80년 광주민주항쟁과 87년 민주대항쟁, 그 두 번의 기회…

행인: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 두 시기에 정당 구조의 문제는 공론화하지 않습니다.

민노: 왜 정당구조 개혁에 관한 논의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런 문제 제기 자체가 없었나요?

행인: 87년 개헌 과정 논의에서는 위헌정당해산 제도(현 헌법 제8조 제4항)에 관해서만 잠깐 논의가 있었고, 그 외에 헌법의 정당 규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해서는 논의 자체가 없었던 걸로 확인했습니다.

민노: 그랬군요. 그렇다면 62년 체제를 깨뜨릴만한 어떤 마중물 내지는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행인: 80년과 87년에 못했던 건 이런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봐요. ‘이렇게 합시다’라는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새로운 정당 제도에 관한 고민 이전에 군부를 어떻게 종식하느냐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었죠. 군부를 밀어낸 다음에 군부가 사라진 자리에서 군부가 만들어놓은 틀을 어떤 식으로 바꿀 것이냐까지는 미리 준비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갑자기 군부가 물러날 것 같으니까 그 빈자리를 누가 장악할 것이냐만 가지고 얘기하다보니까,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잡느냐, 네가 잡느냐만 있었지, 군부가 만든 틀 자체를 근본에서 해체하는 논의는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민노: 그랬군요.

행인: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016년 연말과 2017년 연초의 박근혜 정부 탄핵 촛불집회를 보면, 그 탄핵 과정에서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게 바로 그겁니다. 80년과 87년의 데자뷔 같은 거죠. 박근혜를 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근혜가 만든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를 논의해야 해야 하는데… 이건 박근혜가 물러나면 내가 집권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처음에는 탄핵은 무리한 거 아니냐고 했던 민주당도 달라붙고, 누구도 달라붙고… 막 이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80년과 87년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특히 87년하고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 거죠.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사진 제공 옥토.

나팔새와 대깨문: 62년 체제의 기획 의도


민노: 87년과 똑같은 박근혜 퇴진 운동?

행인: 그냥 박근혜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 새누리당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흘러갔던 거죠. 그런데 기억하시겠지만, 영남 유권자들에게 물어봤지 않습니까? 지난 총선 때 누구 뽑았는지 기억나느냐고 물어봤더니 한 영남 유권자가 “나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이에요.”라고 답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설 때 보여줬던 그들 주변의 정체성은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대깨문)이잖아요. 저는 이게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민노: 나팔새와 대깨문이라…

행인: 62년 체제야말로 그 시스템을 전복시킬 위험이 있는 경쟁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체제 유지에 합의한 당사자들끼리(민주당과 국민의힘) 서로 그냥 잠깐씩 자리만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게 이 62년 체제의 기획 의도라는 말이죠.

민노: 62년 체제의 맥락에서 지역정당운동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면요.

‘나팔새'(“나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꾼 2021년 이후로는 ‘나팔국’이라고도 부른다.

행인: 현 정부가 물러난 다음에는 어떤 정치 체제를 우리는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계속적인 문제 제기를 하면서 그 의제 중 하나로 지역정당운동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지역정당운동이 활성할 수 있도록 정당제도가 바뀐다는 건 가장 근본적으로 영남당과 호남당, 즉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근본적인 정치적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정치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62년 체재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지역정당운동의 흐름 속에서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준비해야 우리가 실기(失期)했던 80년과 87년과 유사한 계기를 만났을 때 그저 단순히 누가 다음 대권을 가져갈 거냐가 아니라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또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영속적 권력을 위해 만든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이야기가 좀 나오지 않겠느냐, 그 저변을 만드는 운동 중 하나가 지역정당운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62년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


민노: 62년 체제를 깨뜨리겠다는 의지랄까 문제의식을 가진 기성 정치 집단은 있을까요?

행인: 군소정당들은 그런 생각 안 하는 당은 없을 거예요. 정치학자 중에도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고요. 현재의 양당 제도를 깨지 않으면 자기들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하는데, 정작 정당법에 관해서는 그렇게 크게 신경들 안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선거법에만 매달리는 거죠. 당장 선거법에서 비례 의석을 확대하면 나한테 얼마나 유리할지만 생각해요. 주권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주권자들을 그냥 투표하는 사람들로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아무튼 말씀하신 그런 의지를 가진 정치 세력은 저는 많다고 봐요. 다만 방식이 저와는 좀 다른 거죠.

민노: 지금까지 제도권 정치개혁 논의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길고 지지부진하고 기득권을 내놓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관철하는 과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행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치개혁을 통해 현 체제를 뒤집자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네들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우리 의석을 좀 더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러려면 선거법을 어떻게 할까, 딱 이거거든요. 그러면 두 당 외의 정치 세력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이라는 건 뭐냐. 예컨대 알량하게 국회 몇 석 확보한 이 정당들조차도 ‘나도 선거법만 바뀌면 쟤들처럼 의석이 많아질 수 있을거야’라고 착각한다는 거죠.

많은 이들에게 선망이 공간이자 불신과 혐오의 공간이기도 한 국회. 국회 제공.

민노: 선거법 바꾸면 의석을 훨씬 더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군소정당의 착각이다?

행인: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거죠. 왜냐면 지금 주권자가 투표하는 것 외에도 참여 방법을 열어놔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여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달랑 선거법만 바꿔서 봉쇄조항 3%를 2%로 낮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거든요(*봉쇄조항: 군소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일정한 비율 이상으로 득표한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하는 문턱 조항).

저는 정치개혁 논의가 선거법에만 국한되는 게 굉장히 불만인데요. 선거법 바꾸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100분의 1만 들이면 정당법을 바꿀 수 있고, 그렇게 정당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당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제일 먼저 영남하고 호남부터 흔들릴 겁니다. 지금 대구 사람이나 광주 사람이 국민의힘 좋아서 찍고, 민주당 좋아서 찍는 게 아니거든요.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힘 찍고, 민주당 찍을 뿐이죠.

그런데 누군나 정당을 만들 수 있고, 그 안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과 지역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람들, 의제로 경쟁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정치 세력화하면 양당 체제는 그 기반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면 양당제는 거기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된다고 확신합니다. (계속)

참고: 내각제와 대통령제 그리고 정당법

행인: 힘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가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대통령제 안에서도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있습니다. 물론 내각제도 괜찮은 제돕니다. 그런데 내각제가 잘되려면 전제가 뭡니까? 다양성이거든요.

양당 체제에서 내각제가 뭔 필요가 있어요? 가령 미국을 떠올려보십시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둘 중 하나가 상원이나 하원을 장악하든 말든 정부는 정부대로 움직이는데 그런 양당제에서 무슨 내각제가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각제가 성공하려면 예컨대 독일이나 유럽처럼 여러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그 안에서 뭔가 만들어가는 시스템이 돼야 이 내각을 독선적으로 운영할 수 없구나 느낄 거고요. 결국 그게 되러면 다양한 세력들이 정치판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내각제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정당법 개정에 소극적인 건 저는 굉장히 아쉽고, 또 의문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바꾸려고 했던 나라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바꾸는 데 성공한 나라는 뉴질랜드와 칠레 정도밖에는 없어요. 캐나다도 실패했고, 미국은 아예 시도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됐던 정치관계법 개정과정을 보면요, 정치권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나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에서도 함께 했던 87년 이후 그 숱한 과정에서 선거제도 바꾸는 걸 정치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 군소정당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었나요? 군소정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도록 법이 바뀐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지난 21대 총선 직전 2019년에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서 선거법을 올렸는데 결과는 뭡니까? 위성정당이잖습니까. 근본에서 다양한 정당들이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게 제도를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선거법 열날백날 바꿔도 안 되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정당법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게 선거법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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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나팔새? 나팔문. 대까문이 맞지! 자금의 민주당을 봐라. 거의 저 북쪽의 체제와 똑 같지 않은가? 그어떤 비판도 용납치 않고 어떤 다른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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