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오전 8시]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박사와 나누는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식당 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상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윤석열(대통령), 2023년 10월 30일 국무회의 중에서
평범한 이웃의 이해할 수 있는 차별적 욕망과 그것에 편승하는 포퓰리즘의 정치. 이것이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과제입니다. 그 어려운 과제에 관해 이상헌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제네바 시각 기준 2023년 11월 3일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이뤄진 화상 대화를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이 글은 [“ILO 조항 탈퇴” 발언의 의미]에서 이어집니다.
제네바 오전 8시
민노씨가 묻고 이상헌이 답하다
7. 내가 하는 차별은 다 좋아요, 얼마나 편해요!
민노: 오늘 이야기한 것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문득 궁금해서요. 무인점포가 참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만 해도 정말 눈에 띄게 많아졌더라고요.
이상헌: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아예 무인점포들이 많아졌어요. 최근 중국에 가보니까 엄청 많아요. 전반적인 추세인데, 사실 여기에 관해 코멘트하기 힘들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추세지만, 이걸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양질의 고용을 어떻게 계속 창출할 지 고민해야죠. 큰일났다! 큰일났다! 그렇게 막연하게 걱정하는 건 사실 큰 의미도 없고요.
볼링장 핀세터의 추억
민노: 그렇죠…
이상헌: 50년대인지 60년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볼링핀을 사람들이 다 세웠어요.
민노: 진짜요?
이상헌: 모르시는구나. 볼링핀이 쓰러지면, 바로 사람들이 막 다시 세워요. 레인을 하나씩 맡아서요. 그때 한창 유행이었으니 핀세터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민노: 그러게요. 꽤 많았겠네요.
이상헌: 그런데 볼링핀 세우는 일이 기계 설비로 자동화했잖아요. 그래서 난리가 난 거예요. 이렇게 대책도 없이 자동화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사람들이 많이 잘렸죠.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느냐면, 일부는 볼링장 운영에 필요한 직원이 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기계설비를 관리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옮겨가죠. 그렇게 작은 볼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기술을 취득해서 볼링 기계 조작하는 사람이랄지 홀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같은 업종 내에서 다른 기술을 취득해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요. 업스케일링 혹은 리스케일링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퇴출되는 분들도 많고요.
민노: 그렇겠죠.
이상헌: 사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노동자들이 기술 변화와 같은 요인으로 직업을 잃을 때 어떻게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런 걸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죠. 하지만 큰일 났다, 아마겟돈이 온다. 이런 호들갑스러운 접근으로는, 물론 언론은 좋겠지만, 그런 걱정보다는 구체적인 대책,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해야 하는 사회적 공론장이 없어졌어요.
민노: 그게 제일 안타깝죠…
이상헌: 자동화, 디지털이나 AI도 마찬가지죠. 이와 관련한 기본소득 논의도 저는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본소득 논의의 맹점
민노: 기본소득이요?
이상헌: 기계화로 인해 어차피 일자라라는 게 없어질 거라서 괜히 쓸데 없이 일자리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돈을 주자. 좀 거칠게 말하면, 이런 논의 방향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조금 경계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우선 일자리라는 게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두 번째는 일자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라는 게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나쁜 일자리는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요. 보통 사람은 일하면서 뭔가 사회와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또 많은 경험들을 하잖아요. 그리고 끝으로 중요한 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레 그런 가능성을 포기하는 거죠.
민노: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상헌: 좋은 일자리는 쉽게 포기할 의제가 아니죠. 사회적인 공간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공투자를 어떻게 할 거며, 이런 문제에 관해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은데 ‘자동화 기계화로 직업이 사라지면 기본소득 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식의 단순한 접근은, 정말 중요한 사회적 논의 하나가 더 남아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되게 조심스럽죠.
한국 국제적 위상은 상대적, 차별 공식화하면? 당연히 추락하죠
민노: 끝으로 좀 어려운 질문이고, 좀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양극화도 심화하고, 다양한 사회 경제적 차별도 더 구조화하고 있는데, 나라로서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등이 공동체에 이익이 되고, 차별이 공동체에 결국은 불이익이 된다는 이상적인 명제에 관한 가장 강력한 반증이 한국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헌: 그게 둘 다 맞는 얘기에요. 어떤 나라가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다고 해서 그 나라 내부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 정치, 경제적인 문제가 다른 위상이 적은 나라들보다 적은가, 꼭 그런 건 아니 거든요. 가령 미국이 대표적이죠. 미국 내부에 인종 갈등이나 계층 갈등은 국제적인 영향력이 훨씬 작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민노: 그렇죠.
이상헌: 그리고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는 건 완전히 상대비교예요. 전 세계가 전체적으로 완연하게 나빠지고 있고, 한국은 그에 비해 약간 내리막도 있고, 약간 오르막도 있고, 고만고만하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한국이 좋다는 거고요.
민노: 아, 상대적으로…
이상헌: 제가 공공연하게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합법화하고, 합리화하는 움직임을 걱정하는 이유는 뭐냐면요. 지금도 이미 상황이 안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차별을 합법화, 합리화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거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시장의 피라미드화가 이뤄지잖아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위상은 당연히 추락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민노: 외국인 노동자 차별 합법화는 노동시장 피라미드화를 공인, 공식화하는 거라는 말씀이네요.
이상헌: 피라미드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면, 상층에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이해관계에 맞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 일을 했을 때 뒤치닥거리하는 계층은 따로 정해져 있어요. 상층부 그룹은 잘 살아요. 하지만 뒤치닥거리하는 하는 하층부 그룹은 계속 마이너스 삶을 하는 거죠. 이걸 전체로 합쳐놓으면 사회로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거에요. 그 전형적인 예가 인도죠.
민노: 인도요?
이상헌: 인도는 경제 성장을 많이 하고, 인구도 늘었는데 인도에 가면 일반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기 참 힘들어요. 그게 중국과의 차이점이에요. 중국에 가면 (최근에는 힘들긴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인도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인도는 노동시장 피라미드화가 ‘된’ 나라인 거고요. 위에서 사고를 치면 죽죽 내려가서 맨 하층에서 그걸 다 해결하는 구조라서….
민노: 그렇군요.
내가 하는 차별은 다 좋아요, 얼마나 편해요!
이상헌: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요. 용산과 여당이 의도적인 차별에 관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리고 그런 공론이 전 사회에 퍼지게 되면, 공동체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커요.
민노: 차별의 공식화는 공동체 전체에게는 마이너스 가능성이 크다?
이상헌: 차별은 있잖아요, 내가 하는 차별은 다~ 좋아요. (민노: ㅎㅎㅎ;;; ) 그런데 서로서로 차별하면 엉망진창이 돼서 문제인 거죠. 차별하면 얼마나 편해요? 예를 들어서 오늘은 100만 원 줬다가 내일은 90원 줘도 되고. 그래서 차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편하니까 하고 싶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차별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끔직하죠. 그리고 또 하나, 차별할 수 있는 사람과 차별할 수 없는 사람이 구별되잖아요.
민노: 그렇죠.
이상헌: 그러면 세상은 딱 두 가지로 나눠질 수밖에 없어요. 그야말로 공고한 피라미드화가 진행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윤석열(대통령) 발언이 아쉬웠던 게 그거에요.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차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죠.
민노: 그렇죠. 대통령이 차별을 응원하는 셈이 되니까요… 저는 그 발언은 실언에 가깝지만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인 것도 분명하잖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어필하려는. 그런데 누군가는 대통령의 그 발언에 ‘아! 속 시원하다!’ 했을 것 같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자영업하면서 고생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라는 게 더 안타깝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기까지 하죠.
이상헌: 전형적인 트럼프식 발언이죠.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계층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해주고, 그 사람들이 당장 느끼는 그 심리적 상태에 딱 맞춰서 발언해줘요. ‘~때려 잡자’ ‘~하지 말자’ 이런 식으로 트럼프는 이야기해요. 그게 트럼프식 정치고, 트럼프가 살아남은 방법인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인이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들, 그걸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마저 싹 사라져버리거든요. 그게 걱정스러운 거죠.
우리는 이미 트럼프식 정치가 미국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알잖아요. 지금 윤석열(대통령)의 “ILO 조항 탈퇴” 같은 발언이 쌓이면 그런 정치는 한국에 뭘 남기겠어요….
민노: 끝으로 하나만 더. 사람들 마음 속에는 평등을 바라는 자아도 있고, 아까 말씀하신 정말 편하고 좋은 차별을 바라는 욕망도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욕구가 발현하는 방식은 그래도 좀 평등에 가까운 방향으로 발현할까요, 아니면 좀 더 차별적인 욕구에 이끌릴까요?
이상헌: 사회가 개인을 계속 차별하면서 성장할 방법은 없어요. 이런 방향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터닝포인트가 와요. 이렇게 계속 가면 너도 안 좋고, 나도 안 좋구나 하는 순간, 그런 정치적인 사회적인 터닝포인트가 있어요, 대부분 모든 사회에. 그래서 그런 순간이 오면 다시 돌아가기는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터닝포인트가 안 왔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그런 전환점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 조금 더 계속해서 나빠지지 않을까, 느낌은 그래요. (ㅎㅎ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