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인터뷰 31.] 마루노조를 아십니까? 20년째 평당 가격 1만 원짜리 노동자.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노동과 인간. (⌚8분)
마루노조는 독립노조입니다. 민주노총 산하의 건설노조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건설노조는 주로 골조 노동자들입니다. 골조 노동자가 현장에서 싹 빠지면 우리가 현장에 투입됩니다. 서로 한 순간도 겹치지 않죠. 우리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마루 시공을 합니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노동을 하는 게 꿈입니다.
늦은 저녁 아파트 공사장에 불이 켜져 있다면 그건 저희 같은 마루 노동자가 아직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건, 다른 건설 노동자들은 일당으로 받지만 우리는 ‘평 떼기’로 돈을 받습니다. 20년 전 평당 1만 원 하던 단가가 지금은 1.3만 원 정도 합니다. 그러니 더 오래 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노조가 2년쯤 전에 세상에 알린 ‘인분 아파트’(한 신축 아파트 벽면에서 인분 봉지가 나온 사건) 공사 현장의 어려움은,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합니다. 마루 노동자는 화장실 한 번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장에 설치한 간이 화장실도 골조 노동자들이 빠질 때 모두 철거됩니다.
최우영(마루노조위원장), 2024 지리산포럼 발표 및 본지와의 인터뷰.
마루노조? 독립노조? 둘 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2024 지리산포럼’에서 최우영(마루노조위원장)의 짧은 발표로 처음 접했고, 큰 인상을 받았다. 포럼이 끝난 뒤 찾아뵙고, 인터뷰했다. 4시간 넘게 그 사연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따로 정리해 발행할 예정이다.
독립노조는 상급단체(예를 들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가 없는 노조를 말한다. ‘독립’과 ‘노조’ 둘 다 평범한 단어지만,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노조든 노동자든 독립보다는 서로 연대해야,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눠야 더 좋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나 감상과는 상관없이 노조를 둘러싼 현실은 차갑다. 그 차가운 현실에 관해 이상헌 박사에게 물었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31]
프렌들리 소사이어티:
독립노조가 스스로 돕는 법
질문, 정리: 민노
안내 알림
이 글은 2024년 10월 18일(금)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1. 노조의 씨앗
왜 같은 건설노동자가 서로 연대하지 않는가? 물어볼 수 있다. 최우영(마루노조위원장)도 처음에 그런 의문을 품고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을 느꼈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게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서로 분리된 작업 공정
사람들은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잘 모른다. 그냥 모델하우스만 보고 입주한다. 주택 건설이라는 게 골조작업 → 배선, 배수 작업 → 마루 작업과 벽면 작업(나무를 깐다든지 벽지를 바르거나 페인트칠을 한다든지)으로 마무리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완전히 서로 분리된 독립적 공정이다. 그 공정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정체성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 노동자가 속한 팀 자체는 다르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일반적으로는 이 모든 공정에서 노조가 개개로 독립해서 따로 존재한다.
골조는 골조 따로, 전기는 전기 따로, 배수는 배수 따로, 마루는 마루 따로. 한국에서 건설노조는 주로 골조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배수나 벽면, 마루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다(참고로 건설노조 측에 문의한 바, 수년 전 마루노조와 한옥노조의 가입을 내부적으로 논의한 바 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편집자).

노조의 씨앗: 시공간(물리적) 정서적 공감대
건설노조의 핵심은 골조 노동자다. 같은 공사 현장이라고 해도 서로 시공간적으로 접점이 없는 다른 업종 사람들을 함께 포섭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우영(마루노조위원장)의 말처럼, “마루 노동자는 골조 노동자와 서로 얼굴 보고 만날 일이 없”고, “골조 노동자가 싹 빠진 뒤에 마루 노동자가 현장에 투입”된다.
이건 단순히 시공간의 공유/분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노조는 서로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고통, 슬픔과 억울함 등을 공유한다. 그런데 그런 정서적 공감대는 물리적인 시공간의 공유를 전제한다.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연대하지 않는다고 건설노조를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바운더리’: 노조 역사의 아이러니
노조가 성장한 역사를 보면 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영향력 있는 노조가 자기 바깥 영역에서 다른 현장 세력을 규합하는 사례는 노조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도 그렇고, 외국도 그렇다. 노조는 자기 영역, 그 바운더리(경계)를 철저하게 지킨다.
그 바운더리가 좀 더 넓어지기도 하지만,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고 긴장관계나 갈등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그때 외부 노조가 힘이 좀 세져야 서로 합치기도 하고 그런다. 중요한 건 세력이다. 힘이 세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거대 노조인 건설노조가 마루노조를 신경 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참고로 건설노조 쪽에 확인한 바, 건설노조 규모는 윤석열 정부의 ‘건폭’ 몰이로 최근 2~3년 동안 7만~8만 정도였던 조합원 규모가 4.5만 명 정도로 줄었다고 밝혔다. 마루노조 조합원은 2024년 10월 현재 106명 정도다. 편집자).
접점의 가능성: 마루노조의 사회적 공론화
노조라는 게 어떻게 보면 아주 냉정하다. 사회적 이슈가 없는 한은 합치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마루노조가 다루는 이슈가 사회적인 파급력이 있다면, 그리고 신경을 쓸 여유도 있다면, 그때는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가령, 2017년 11월 12일 출범한 민노총 산하 마트산업노조가 그런 경우다. “마트 노동자들 의자 있어도 못 앉는다”(매일노동뉴스, 2018)와 같은 노동 현장의 이슈가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면 노조도 정식으로 출범하고, 그 규모도 커질 수 있다. 마루노조도 ‘인분 아파트’를 공론화(2022.07)하긴 했지만, 마루노조에 특화된 사안은 아니라서 한계가 있었다.
마루노조는 일단 마루노동자들 현장에서도 거의 혼자 일하고(작업 지시를 받고 자기가 담당한 구역에서 혼자 일하는 구조), 일 자체가 고단한 건 별론으로 그 일 자체가 건강에 치명적이라거나 하는 그런 것은 또 아니라서 사회적인 공론화나 노조 내부 조직화에도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

2. 단가 문제: 결국 협상력 문제
또 다른 문제는 단가다.
마루 공사의 가역적 성격
시공사가 공사비를 골조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건설노조에서 신경 써주고, 배선이나 배수 등은 상대적으로 전문 분야라서 신경 쓴다. 특히 배선이나 배수 등 공사는 잘못되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뒤집어서 해야 하니까. 비가역적 성질이 있다(뒤집기 아주 힘들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바닥(마루) 공정은 뭔가 잘못돼도 다시 되돌리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쉽고, 그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다른 건설 공정 부문보다는 협상력이 뒤지는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조직을 키우지 않으면, 누가 먼저 나서서 돕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술적 숙련성의 측면
마루 업무라는 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더 그런 경향이 있다. 기술적 숙련도로 보면 마루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다른 건설 공정보다는 좀 낮아 보이긴 하다(이 점에 관해 최우영 마루노조 위원장은 전기나 수도 등은 기술 분야, 마루 시공은 숙련 분야라고 말했다. -편집자). 물론 유럽에도 마루에 관한 전문 회사들이 있다. 그 회사에 마루노동자가 고용된 형태다. 하지만 그리 크지는 않다.
규모도 적고, 기술적 숙련도로도 다른 건설 공정보다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인식되는 경우라서 협상력을 높이기는 좀 쉽지 않다. 여기(유럽)에는 ‘핸디맨’이라고 무엇이든 다 하는 분들이 있다. 핸디맨들이 마루 작업까지 한다. 핸디맨의 전문성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보면 숙련도가 좀 떨어진다.

구조 자체로 보면, 협상력을 보면, 회사를 통해서, 협동조합을 통해서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최우영 위원장이 4명~5명이 팀을 만들어서 전국 공사 현장을 뛰는 경우가 많다고 한 걸로 봐서는, 한국에서는 그냥 개인이 묶인 팀으로 (재)하도급 형태로 계약하면 당연히 그 조건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여기 유럽에서는 회사는 아니라도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평 떼기: 20년째 평당 1만 원~1만 3000원
사람들은 마루를 굉장히 쉽다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마루 공사는 쉽지 않다. 원목, 강마루, 대리석, 특수 재료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그 소재마다 마루를 까는 방식도 다 다르다. 방수 처리 등도 까다롭다. 마루 공사 자체는 아주 힘든 노동이다. 그런데 힘이 없으니까, 협상력이 부족하고, 규모가 크지 않으니까… 20년째 1만 원에서 1만 3000원 사이로 단가가 사실상 제자리다.
유럽(여기)에서는 협상한다. 마루노조가 협상하는 당사자는 집주인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인테리어 총괄하는 에이전시다(우리나라 현장에서는 그런 에이전시 혹은 공정 담당 관리 직원이 가격을 책정한다. 최우영의 인터뷰에서 참고함, 편집자). 유럽에선 단독이나 연립일 때는 건축사무소나 시공사 등이 협상하고, 평당 얼마로 언제까지 끝내라고 납품 계약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우영(마루노조위원장)의 말처럼, 건설 현장의 역학에서 가장 힘이 약해서 사실상 협상한다기보다는 ‘칼질'(다른 영역에서 먼저 예산을 할당하고 마루 등 임금을 책정해 임금이 낮아지는 것)을 당한다.
3. 공동체 만들기는 ‘공짜’가 없다
‘6411의 목소리’가 담긴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를 읽었다. 다양한 노동 소외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 게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쉽지 않다. 노조를 만든다는 게 정치적으로 당위적으로 ‘단결합시다!’ 하고 그렇게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대공장의 분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런 과정 속에서 특정한 노동조건의 문제나 공동의 과제랄까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노조의 성공적인 모습은 한곳에서 일하는 대공장이다. 한 곳에서 정서적으로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 밥먹고, 족구도 하고… 그리고 여기에서 일어난 첫 파열음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다. 노동 공동체가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플랫폼도 캐디도 마루도… 힘들다
마루노조가 가장 힘든 건, 서로 모이기가 너무 힘들다. 그걸 억지로 만든다는 것도 너무 힘들다. 누구나 힘들게 일한 뒤에는 쉬고 싶다. 그런데 노조 활동까지 하라고 하면… 이중삼중으로 고단해진다. 마음이 급하다면,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서 노조를 키우는 목표를 세울 수도 있지만, 그 방법은 더 쉽지 않을 거다.
우리에게는 그런 과제가 남아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를 읽어보면, 참 많은 분들이 힘들다. 플랫폼 노동자도 힘들고, 캐디 노동자도 힘들고, 마루노동자도 힘들다. 모두 저마다 내부적으로는 튼튼한 협상력을 확보해야 하고, 서로 연대해야 하고, 더 큰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공짜가 아니다.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서 ‘같은 공간’에서 정서적으로 소통해야 하니까.
그런 게 없으면 너무 힘들다. 그래서 마루노동자가 더 힘든 거다.

4. 스스로 돕는 법
실내 건설노조로 묶기
최우영(마루노조 위원장)의 바람처럼 마루, 벽지 등 마감 노동자, 더 나아가 실내 건설 노동자가 서로 힘을 합칠 수 있으면 당연히 좋다. 옳은 방향이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의 정서적 공감대는 공간적인 밀착과 같은 업무를 한다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거라서 ‘건설’ 혹은 ‘실내 건설’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는 서로 동질감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진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소비자로 남은 시민
보통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는 건 쉽지 않다. 인터뷰 맨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 건지 잘 모른다. 모델하우스 한번 가고, 현장 한두 번 둘러보고, 그리고 완성된 집에 입주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공사하는 모습을 직접 들어가서 살 사람들이 봤다(단독주택). 요즘은 현장의 건설 노동을 눈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을 건설 노동자의 어려움과 고단함에 연결시키는 상상력이나 감수성의 재료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오로지 소비자로서의 입장만 남았다.
프렌들리 소사이어티
큰 방향에서 조직화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꾸준히 대화하고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연결과 매개를 만들어내서 내부 회비든, 침목 활동이든 그렇게 서로 실질적으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 데에서 생기는 비용이나 방법 등 노하우에 관해서는 지자체나 사회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노조에 들어오라고만 하면 서로 힘들다. 만들자고 하면 너무 힘들 수 있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프렌들리 소사이어티’(friendly society: 영국에서는 ‘공제회’를 뜻함, 돈을 거둬 구성원이 힘든 일이 생기면 그 돈으로 돕는 단체)라고 하는데, 그렇게 조금씩 이슬비에 젖는 것처럼 관계를 맺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