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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회적 합의보다 빠르게 일상과 제도의 근간에 스며들었다. 마침 ‘AI 기본사회’라는 말도 정책 담론의 한복판에 들어왔다. 모두에게 AI의 후생을 보장하자는 제안은 반갑다. 그러나 그 제안에는 큰 빈자리가 하나 있다. 누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이야기인데, ‘AI를 누가 소유하고 누가 결정하는가?’는 질문은 비어 있다. AI를 둘러싼 가장 익숙한 질문은 ‘누가 얼마나 빠르게 똑똑해질까?’이지만, 사회의 모양을 실제로 가르는 질문은 따로 있다. 

‘누가 AI의 주도권을 쥐는가?’

시장도, 국가 주도도 아닌 제3의 길 ‘민주적 AI’

지금 AI의 미래를 그리는 지배적 모델은 둘이다. 하나는 시장 주도 모델이다. 미국에서 두드러지는 이 경향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자본과 시장이 혁신을 이끈다. 속도와 자본력은 압도적이지만 소유와 결정과 이익이 소수의 거대 기업에 집중된다. 윤리적 AI나 ‘AI for Good’의 약속은 그 구조 위에 자선으로 얹히지만,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이 길의 도착점은 시민이 고객으로 자리하는 사회다.

유엔 산하 디지털 기술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2017년 ‘AI for Good’을 설립해 인류에게 도움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은 2025 AI for Good 글로벌 행사장 모습. AI for Good 유튜브 갈무리.

다른 하나는 국가 주도 모델이다. 중국에서 두드러지는 이 경향은 국가 차원의 자원 동원에 강점이 있지만, 결정권이 국가에 집중되며 시민의 주권은 구조적으로 소외된다. 도착점은 시민이 통치의 대상이 되는 사회다. 두 모델의 공통점이 곧 그 한계다. 어느 쪽도 시민을 결정의 주체로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 3의 길’은 가능한가. 시장 주도도 국가 주도도 아닌, 다중의 이해당사자가 함께 소유하고 결정하고 나누는 AI를 ‘민주적 AI’라 부르자. 기술을 ‘민주적’이라 부르려면 세 측면을 함께 통과해야 한다.

  1. 누가 소유하는가(소유·공공재),
  2. 누가 결정하는가(거버넌스),
  3. 누가 이로움을 누리는가(후생).

셋이 함께일 때 민주적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좋은 AI—윤리적이고, 누구나 쓸 수 있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와의 차이는 바로 이 토대에 있다. 무료로 열어 준 서비스는 정책이 바뀌면 닫히고, 선의로 지킨 윤리는 경영진이 바뀌면 흔들린다. 소유와 결정의 구조가 비어 있으면, 표면의 좋음은 언제든 거두어들여질 수 있다.

소유 구조 내 사전 분배 원칙…모두 이득보는 구조 필요

교황 레오 14세도 첫 회칙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에서 같은 점을 지적했다. 더 도덕적인 AI라도 그 도덕을 소수가 결정한다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고안하고 자금을 대고 사용하는 이들의 성격을 띠기에, 물어야 할 것은 표면의 선함이 아니라 누가 결정하는가다.

교황 레오 14세는 지난 5월 첫 회칙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도록 ‘무장 해제’가 필요하며, 인공지능은 모두의 이익과 공동선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청.
💡 레오 14세(교황), AI 위험에 대한 경고


‘위대한 인류애(Magnifica Humanitas)’라는 제목의 회칙(encyclical)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AI는 창의성과 분별력, 진리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약화해 인간의 판단력을 훼손할 수 있다.
2. AI는 인간적 유대감 없이 돌봄을 모방한다. 공감 능력을 인간적 유대감으로 오해하게 한다.
3. AI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데이터, 컴퓨팅 성능, 규제 영향력이 소수의 주체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4. AI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5. AI는 치명적인 결정을 손쉽게 내리게 하고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더 쉽게 일으킬 수 있다.

레오 14세는 “어떤 알고리즘도 전쟁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더 큰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희생시키는 선택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

분배도 마찬가지다. ‘민주적 AI’가 말하는 분배는 초과이익에 세금을 매기는 ‘사후 분배’를 넘어—사후의 조정도 중요하지만—처음부터 소유 구조 안에 분배가 내재되어 있는 ‘사전 분배’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기치 못한 막대한 이득이 생기더라도, 민주적 AI가 자리 잡아 모두가 함께 이득을 보는 구조가 미리 마련되어 있다면, 그 이득은 뒤늦게 거둬서 나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함께 나누는 몫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빅테크가 진단 AI를 무료로 내놓고 환자 데이터는 기업이 보유한다면, 격차는 줄어도 의존도는 심화된다. 이와 달리 의료 협동조합이 데이터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환자 데이터를 신탁이 관리하며, 알고리즘의 방향을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정한다면, 격차 해소와 함께 ‘의료 주권’이 자란다.

노동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이 알고리즘으로 일감을 배분하고 일하는 속도와 보수까지 정한다면, 일하는 사람은 결정의 대상이 된다. 같은 알고리즘을 노동자가 단체교섭으로 함께 정하거나 플랫폼을 협동조합으로 공동 소유한다면, 일하는 사람이 결정의 주체이자 알고리즘의 주인이 된다. 차이는 기능이 아니라 토대에 있다.

한국은 민주적 AI 실현 조건 갖춰…AI  강국의 글로벌 모델로

흥미롭게도 한국은 민주적 AI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다. 우리는 민주적 기술을 이미 작동시켜 본 국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의 강점으로 산업화와 정보화, 그리고 문화 강국을 꼽는다. 제조 역량과 정보 기술, 문화 파워를 모두 갖춘 유례없는 국가임을 스스로 주목한다. 그러나 이 강점들은 오래 축적된 교육 역량이 민주주의와 만나면서 발현된 결과다. 거기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시민성이 더해졌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시민기술 운동이 무르익었고, 공론화와 시민 참여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법적 기반 위의 상설 기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시민 개발자들이 공공데이터로 만든 마스크 재고 앱, 2024년 12·3 비상계엄 직후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다양한 시민 기술 프로젝트들처럼, 위기의 순간에 시민이 직접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어 공동체를 지킨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그 두터운 시민성과 민주주의 위에 AI를 놓는다고 상상해 보자. 한국이 만드는 민주적 AI는 ‘국민 주권과 기본사회 실현’이라는 헌법적 지향을 실현하는 강력한 기반이자, 인권·민주주의·평화라는 가치를 구현한 진짜 AI 강국의 글로벌 모델이 될 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전 세계 ‘민주적 AI’ 움직임…기술을 소수가 아닌 공동체 손에 두자

모든 AI를 단번에 ‘민주적 AI’로 바꾸자는 주장은 아니다. 디지털 사회연대경제(SSE)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주적 AI’를 세우고 생태계를 키워 가자. 국가와 싸우지도, 국가에 흡수되지 않으면서 시민과 다중 이해당사자가 함께 소유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자. 

이 길은 한국만이 처음 가는 길도 아니다. 해외에서도 공동체와 공익의 관점에서 AI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민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2025년 파리 AI 행동정상회의에서 출범한 독립 비영리 ‘Current AI’는 열린 도구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공익의 토대로 쌓겠다고 했고, 파이어폭스로 알려진 비영리 모질라는 거대 기업의 독점에 맞설 열린 AI 생태계에 자원을 쏟고 있다.

Current AI.

미국에서도 로 칸나 같은 정치인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장한다. 그가 내건 ‘민주적 AI’ 일곱 원칙의 첫째는 노동이다. 사람을 결정의 고리 안에 남겨,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사람의 능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여기에 데이터 배당으로 빅테크에 쏠린 부를 노동자와 시민에게 되돌리는 길을 더한다. 기술을 소수의 손이 아니라 공동체의 손에 두려는 의지는 세계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로 칸나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 2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AI 관련 타운홀 미팅에서 AI의 영향과 부의 집중 현상에 대해 발표하며 ‘민주적 AI’를 위한 7대 원칙을 제시했다. 포브스 유튜브 갈무리.

기술이 저절로 더 나은 민주주의도 더 좋은 사회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연결이 늘어난다고 신뢰가 늘지 않았고, 데이터가 쌓일수록 그 힘은 시민이 아니라 소수의 플랫폼에 모였다. AI도 다르지 않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쥐느냐가 사회의 모양을 가른다.

그러므로 ‘AI 기본사회’를 말한다면, 이용과 후생의 제안 위에 소유와 결정의 질문을 나란히 놓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미래를 향한 결정을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내리고 있다. 그 자리에 시민을 놓아야 한다. 우리가 답을 다 가졌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더듬어 왔으니, 함께 만들어 가자는 초대다. 그 함께 만듦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민주적 정체성이고, 그 정체성을 담아 우리의 AI를 민주적 AI로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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