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사가 게임 [오버워치] 내 한국 배경의 부산맵을 공개하면서 게임내 한국인 캐릭터였던 송하나의 시네마틱 단편 ‘슈팅스타’를 내놓았어. 이 단편은 외국에선 싫어요 1.2만 개가 찍히는 등 혹평을 받고 있는 반면, 한국에선 찬사를 받고 있는 중이야.
이 단편은 7분 정도의 길이로 간단한 줄거리를 담고 있어. ‘귀신’이라는 이름의 로봇악당이 해저에서 나타나 한국의 부산을 공격하려오는데 송하나가 자신의 탑승형 로봇을 타고 악당로봇 귀신들을 막아내는 내용.
영상에서 눈에 띄는 점은 송하나를 영웅이자 아이돌 스타로 빛내주는 뉴스 보도 음성과 그에 대비되는 실제 모습이야. 영상이 시작되며 나오는 뉴스에선 “송하나는 럭셔리한 휴양지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송하나는 칙칙한 공장에서 로봇을 혼자서 고치고 있고, 이어서 “송하나는 유명인사들과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고 있다”는 음성이 나오지만, 한숨 쉬는 친구 옆에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콜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
외국 네티즌이 싫어하는 이유는 ‘비현실성’
해저에서 올라온 귀신들이 부산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에서 부산은 크고 멋지게 성장한 미래도시처럼 보이는데 그런 큰 해안도시에서 혼자 싸우는 송하나를 도와주는 군대도 지원사격도 안 나타나고 조용한 바다 위에서 송하나 혼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전투 끝에 귀신 로봇들을 막아낸 뒤 뉴스 보도는 “송하나가 혼자서 부상 하나 없이 승리했고, 승리를 자축하며 포상휴가를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송하나는 뉴스 화면 앞에서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공장에서 다시 로봇을 고치는 장면이 나와.
아. 앞에서 이 단편 영상이 해외에서 혹평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이점이 한국 혐오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걸 먼저 얘기할께. 혐한 문제였다면 단편과 함께 공개한 한국의 전장 ‘부산맵’도 싫다는 반응이어야하겠지? 하지만 외국 유저들 사이에서 부산맵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재밌겠다. 기대된다는 식의 호의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어.
외국 네티즌들이 이 영상에 ‘싫어요’를 찍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전에 블리자드가 공개한 단편들에 비해 떡밥도 없고, 스토리에 개연성도 없었다는 생각인 거야. 송하나가 도시를 등지며 싸우는데 도시에서 아무런 지원사격도 없이 고요하기만 한 모습. 자국을 지키기 위해 로봇 영웅을 만들었다는 나라에서 영웅이 죽을 지경인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 등이 현실성이 없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야.
한국 네티즌이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성’
한국에선 해외 네티즌들과는 반대로 이 단편이 현실성 있는 전개라며 칭찬하는 댓글이 많아, ‘국뽕’ 때문일까? 한국 이야기라서 마냥 좋았던걸까?
“블리자드가 한국을 잘 안다!”
“우와~ 헬조선 현실 반영!!”
한국 네티즌들이 이 단편영상에 환호하는 것은 ‘국뽕’과는 다른 이유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어. 네티즌들의 칭찬 포인트가 단지 ‘블리자드가 한국의 위상을 높여줘서’가 아니라 ‘정부가 재난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송하나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만들고 있으면서도 송하나가 위험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묘사에 공감’ 하고 있으니 오히려 국뽕의 반대격이라고 해야겠지.
이런 감상평들을 보며 ‘게임하는 얘들이 중2병 아이들이라서 그래’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게임 댓글뿐만 아니라 몇해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영화에도 이런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들어가고, 이런 요소가 꽤 공감을 많이 끌고 있거든.
가령 하정우가 연기했던 [터널, 2016]에서는 개인의 생사가 불분명한 사고에 국토부장관(김해숙 역)의 초월적이고 관조적인 듯한 태도가 누군가를 연상케 해 ‘웃픈’ 박수를 받았었어. 같은 해에 개봉한 [판도라]에선 원전이 폭발하는 국가적 사고에 정부가 아무런 대처를 못해서 자살에 가까운 희생을 국민에게 요청하는 장면이 나와. 보름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목격자]는 살인범에게 자신의 거주지를 들켰는데도 끝까지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와. 이런 문화 코드가 왜 계속 나오냐면 우리가 기억하는 국민적 재난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조금씩 문화 요소가 되어 읽히고 있기 때문이지.
경쟁과 내몰림은 다르다
블리자드사가 한국 내의 이런 반응까지 예상하고 설정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외국 네티즌들이 현실적이지 못한 개연성이라고 지적하는 그 현실을 우리는 정확한 현실 반영이라며 칭찬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문화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야.
몇 해 전에 조선일보 기자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한국 청소년들이 게임을 잘 하는 것은 승부사적인 기질 때문이라고, 이 청소년들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커서 시장주의에 순응적인 보수적 인재들이 되어 국위선양할 것이다는 희망찬 어조로 쓰여진 기사였어. 정말 조선일보다운 기사내용이지. 근데. 글쎄. 정말 그럴까?
Mnet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면 이 기사의 예언이 얼핏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해. 10살에서 20살 사이의 아이들이 나와서 춤주고 노래 부르는 걸로 생존 경쟁을 벌이다가 마침내 서바이벌의 생존자가 된 소수의 아이들이 대형 연예기획사에 들어갈 자격을 쥐게 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그 조선일보 기자가 정말 좋아할 만한 스토리인것 같은데) 이제는 진부한 레퍼토리임에도 꾸준한 시청률과 해마다 늘어나는 지원자들을 받고 있어.
하지만 경쟁에 뛰어드는 것과 내몰려져 있는 것은 다르게 이해돼야 해. 십대 청소년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실제 자기의 자리에서 내몰려 받게 되는 승부의 성적표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 현실의 자기 모습은 불안하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아이돌 경쟁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며 스트레스를 푸는거야.
불안한 아이들에게 노력해서 1등을 해야만 주어지는 성과를 이야기하며, 구국의 인재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불안한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겨내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아. 극단적으로 묘사하자면 저 단편 영상의 내용처럼 정비반도 없이 혼자 수리해야하고, 군대의 지원사격도 보내주지 않아 혼자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송하나 개인을 모든 국민을 지켜낼 열쇠를 가진 슈팅스타로 추켜세우는거지.
절묘하게도 단편애니에 등장하는 송하나는 아이돌 스타라는 설정인데 그녀가 아이돌이라는 점이 멋있고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러운 감정을 자아내는 이유는 적들이 출현하지 않아도 딱히 그녀에게 안정적이지 않은, 그녀를 이용하는 국가의 모습 때문이겠지. 같은 이유에서 대형 기획사에 들어간 또래들만을 바라보며 미래가 불투명한 자신의 모습에 한숨 쉬는 청소년들의 모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돼.
걔네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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