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 집게손가락 표현을 ‘남성 혐오’라 우기는 억지 주장을 여과없이 수용해 유사 표현들을 자체검열하고 있는 대기업과 정부기관이 여성혐오에 동조하는 블랙리스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공적 가치를 생산하는 정부기관과, 그와 유사한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기업은 공적 가치 생산과 사회적 자원 배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들의 의견 표명은 사회 질서와 균형을 잡는 데에 큰 무게감을 가진다. 그렇기에 정부기관과 대기업은 사회에 대한 막중한 책무를 항시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책무를 잊은 채 집게손 블랙리스팅에 적극 가담하였다.
검증되지도 않은 논란에 앞장서서 사과하고 억지 근거로 지목한 이미지를 바쁘게 지우고 표현의 당사자를 징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였고, 우리 사회 내 반페미니즘 풍조에 힘을 실어주어 페미니스트들의 대항 표현을 전반적으로 위축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커뮤니티 내 남성들의 억지 주장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이 그것을 기정사실로 오인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데 다 함께 일조했다.
혐오 표현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공적 가치 생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공공기관이라면 집게손가락 표현을 혐오 표현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여부는 물론이고 남성 혐오 표현이 성립 가능한가부터 따져보았어야 했다. 우선 ‘혐오 표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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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이란?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 ‘혐오 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 보고서(국가인권위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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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혐오 표현은 단순히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표현이 아니다. 특정 맥락에서 사용된 집게손가락 표현이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 표현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남성의 사회적 지위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니 집게손가락 표현은 혐오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남성 혐오 표현이라고도 규정할 수 없다. 또한, 특정 사회에서 다수이거나 그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한 비판적 표현이나 희화화한 표현도 혐오 표현으로 성립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표현이 혐오 표현으로 규정된다면 백인을 대상으로 한 소수 인종의 대항 표현,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기 위한 한국인의 비판적이고 대항적인 표현 역시 모두 혐오 표현으로 제한받을 것이다. 더욱 허탈한 것은 지금까지 문제시된 포스터들이 명확하게 남성을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스터라는 근거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보편적 표현 하나 ‘삭제’… 어처구니 없다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정부기관과 기업이 인지하고 있었다면, 사과하고 삭제하는 데 급급하기 전에 이들 이미지가 명백하게 누군가를 경멸하려는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거듭 생각해봤어야 했다. 집게손 이미지는 물론이고 집게손가락 표현은 정치적 의미를 떠나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미지이다.
정부기관과 기업의 고민 없는 즉각적인 반응은 우리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는 보편적인 표현 하나를 없애버렸다. 집게손가락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더 이상 집게손가락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향한 (극히) 일부 남성의 비난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후에서야 그 도를 넘은 비난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지 우리 사회는 깨달아가고 있다. 부디 얼마 지나지 않아 꺼져버릴 불씨에 허둥지둥하다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기업과 정부기관이 합리적이지 못한 주장에 휘둘리며 더는 블랙리스트를 생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기업과 정부기관의 중심 잡힌 대처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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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 삭제한 정부와 기업 명단
현재까지 집게손가락 표현이 포함된 포스터에 대한 지적에 사과하고 포스터를 삭제한 정부기관과 기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부(공공)기관
- 행정안전부
- 국방부
- 서울경찰청
- 경기남부지방경찰청
- 경북 포항시
- 경기 평택시
- 전쟁기념관
- 인천교통공사
기업
- 교촌치킨
- 서울이랜드FC
- 스타벅스RTD
- 제네시스비비큐
- GS리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