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름 데 블레이는 [왜 지금 지리학인가] (2015, 사회평론)라는 책으로 국내에서도 약간(?) 유명해진 학자다. [왜 지금 지리학인가]는 지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어떤 이슈를 다루는지 소개하고 테러, 기후변화, 러시아의 지정학적 덫, 아프리카의 문제, 중국의 부상 등 긴급한 현안을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진단한다.
이 글에서 소개할 [공간의 힘]은 2009년에 출간된 책인데, 블레이가 쓴 지리 교양서라는 점에서 세계관이나 관점, 그 메시지는 [왜 지금 지리학인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미묘하게 다르다.
블레이의 문제 의식은 세계화는 완료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중심부와 주변부 간에 형성된 울퉁불퉁한 세계의 풍경을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데 있다. 그러니 세계화라는 과정을 모두에게 이롭게 하려면 현재 세계의 울퉁불퉁한 공간이라는 현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세 가지 유형의 인간
블레이는 책에서 인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1. 세계인
우선 세계 각지를 자유자재로 누비는 세계인(Globals)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의 선진지역, 혹은 대양주에 위치한 선진국의 엘리트 계층이고, 세계화의 확산으로 제3세계라 일컬은 지역에서도 세계인들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인은 사업, 교육, 여행 등을 위해 세계 각지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데 이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그야말로 평평하다. 세계인끼리는 거의 비슷하고 서로 교류하고 오가는 데 장벽이란 없기 때문이다.
2. 지역인
세계인에 반대되는 이들은 지역인들이다. 지역인은 태어난 동네에서 살다가 거기서 가족을 만나고 태어난 곳 가까이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인의 현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따라서 굉장히 다르다. 이런 부, 위생, 종교, 교육기회 등의 지리적 편재는 지리를 거의 운명과도 같이 만든다.
3. 이동인
지리가 운명인 지역인의 운명을 거스르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이동인(Mobals)이다. 이동인은 국내에서 이동하든 국제적으로 이동하든 태어난 곳을 멀리 떠나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 나이지리아 시골에서 라고스로 밀려온 사람들
- 중국 서부의 시골에서 동부 해안의 공장으로 들어온 사람들(‘농민공’)
- 지중해 난민선에 몸을 실은 시리아 난민들
이들이 대표적인 이동인들이다. 한편으로는 이들 중 일부는 세계인과 겹치기도 하는데 실리콘밸리에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도와 중국계 엔지니어들이 대표적이다.
세계의 중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세계인과 지역인, 이동인들이 겪는 현실은 굉장히 다르다. 저자는 은연 중에 세계인, 그리고 중심부의 사람들이 얼마나 주변부와 지역인이 맞닦드리는 현실에 대해 무지한지 통렬하게 지적한다. 태어난 곳, 즉 공간과 공간에서 발견되는 패턴인 지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이 에어컨 쐬며 안락하게 페이스북에서 댓글 쓰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말이다.
8개의 테마
이런 이야기들은 현존하는 세계가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블레이 교수(미시간 주립대학 지리학과)가 어린 시절을 보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와 비슷하다는,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절대 저자의 엄살이나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8개의 주제를 통해 이를 드러내주며 알기 쉬운 사례들과 그야말로 세계 각지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스케치해주며 세계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그 8개 테마는 다음과 같다:
- 언어
- 종교
- 공중보건
- 재난
- 공간의 개방성(정치적이든 이주든 문화적이든)
- 성별 격차
- 도시
- 지방으로의 권력이양 경향
하나씩 간략하게나마 예시를 들자면 이렇다. 현재 언어는 세계적으로 몇 가지의 세계언어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언어인 영어에 대한 접근성을 갖고 있고, 외국어 2개쯤은 우습게 하는 세계인과 사멸해가는 언어에 “묶인”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차이는 극명하다.
한편 서구의 교육받은 계층 사이에서 세속화된 사회가 출현하는 동안 여러 종교들은 극단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으며 이는 포용적 종교로 여겨진 힌두교마저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불교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특히 이슬람교와 미국 일부 기독교에서 관찰되는 반계몽화(endarkment)는 우려할만한 수준이며 이슬람의 초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주민 사회와 원주민 사회 양편에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세계인들은 가난한 열대국가로 여행을 갔을 때에도 값싸고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수많은 열대지방 사람들은 불친절한 서비스와 비싼 가격, 열악한 인프라로 인한 낮은 접근성으로 고통 받으며 열대지방이기에 질병은 더욱 치명적이고 고약할 때가 많다.
네덜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1953년 이래로 범람을 걱정해본 적이 없지만 방글라데시 저지대에 사는 이들에게 수몰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나이지리아나 다르푸르 같은 곳에서 피와 부패로 얼룩진 삶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디도 남성이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여성 할례가 일상인 이집트, 지참금 문제로 신부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인도의 수많은 시골 마을과 여성의 국회진출 비율이 40%를 넘어가는 스웨덴의 차이는 또 어떤가.
세계화의 과정으로 인구 천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가 성장하고 있지만, 라고스의 슬럼가와 도쿄의 스카이라인은 너무나 다르고, 국제적 연결의 면에서 보았을 때 중국의 성도(청두)와 같은 내륙도시와 상해 또한 엄청난 차이를 빚어낸다. 영국의 스코틀랜드나 과거 수단의 남부 지역이나 독립을 열망하는 정치적 운동이 있던 것은 똑같았지만, 스코틀랜드는 독립하면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지역적 네트워크에 평화롭고 쉽게 편입할 수 있는 반면 남수단은 수십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는 처절한 내전을 거치고 나서야 독립했다. 그리고 독립을 하더라도 아프리카 연합 등에서 오는 실질적 지원은 전무하다.
결론에서 블레이는 이러한 격차가 여전히 세계화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서론의 주장을 정리한다. 그러나 블레이는 반세계화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블레이는 “어떤 세계화”를 해야할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완료형의 선언이 아니라, 지구를 더욱 평평하게 만들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삶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과정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게 블레이의 전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은 번영의 확산보다는 이주와 폭력의 물결, 그리고 장벽을 높이자고 아우성치는 세계 중심부 사람들의 반발, 기후변화로 인한 주변부의 생태적 재앙으로 얼룩질 것이라고 블레이는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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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
1. 직업의 지리학 – 엔리코 모레티 (링크)
책이 나온 시기에 이런 문제의식이 활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을 좀 단순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세계인과 지역인의 분리는 세계 핵심부와 주변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핵심부 안과 주변부 안에서도 각각 일어난다. 디트로이트의 흑인 빈민은 대표적인 핵심부의 지역인이고, 실리콘밸리나 뉴욕의 교육 받은 고소득자들은 그야말로 세계인이다. 세계화는 국내에서도 이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 놓았는데, [직업의 지리학]은 이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책이다.
2. 커넥토그래피 혁명 – 파라그 카나 (링크)
[공간의 힘]의 부제는 “지리학, 운명, 세계화의 울퉁불퉁한 풍경”이다. 그런데 파라그 카나의 커넥토그래피 혁명은 “이제 더이상 지리는 운명이 아니다”라고 하는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은 [공간의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장벽을 낮추고 세계를 더욱 평평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이 과정을 어떻게 더 잘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