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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 이전까지 ‘건강보험’의 개념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병원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적으면 원무과 직원은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성함이 Y가 맞나요?”
“네”

Jorge Gobbi, CC BY https://flic.kr/p/9on1qb
Jorge Gobbi, CC BY

내 급여명세표엔 없는 ‘건강보험’

그동안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온 것은 온전히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가 직장 건강보험을 통해 나를 부양하는 동안, 나는 피부양자 자격으로 삼십 년을 살았다. 스무 살부터 본가를 떠나 홀로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사회적 어른’이었던 적이 없고,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울타리였던 것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첫 강의를 나가던 무렵,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내게 직장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조심스레 물었다. 퇴직 후 두 분을 내 ‘피부양자’로 등록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내 급여명세표 어디에도 ‘건강보험’ 항목은 없었다. 어머니께 “시간강사는 건강보험이 안 되는 모양”이라고 답하며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아니, ‘너덜너덜해졌다’는 표현이 더욱 알맞겠다. 내 부모님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Ceci Newton, CC BY NC SA https://flic.kr/p/nnawqE
Ceci Newton, CC BY NC SA

대다수 시간강사에게도 건강보험은 없다 

드라마 [미생] 최종화에서 오 차장은 장그래에게 “너 4대보험만 해주면 된다고 했지?”하고 묻는다. 별것 아닌 장면이었지만 나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오버랩 되며 몹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장그래에게도 4대보험은 중요하며, 당연한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학과 사무실에서 ‘행정 노동’을 했고, 시간강사를 하면서는 ‘강의 노동’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4대보험 테두리 바깥에 있었다. 고용주인 ‘대학’은 4대보험의 의무 혹은 자선을 단 한 번도 이행하거나 베푼 바가 없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강을 나가는 선배들이나, 학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친해진 동료연구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대학원생/시간강사는 없었다. 그것은 명문대와 지방대, 국립대와 사립대, 과정생과 학위 수여자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box type=”info” head=”보험료: 지역 10만 원 vs. 직장 3~5만 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서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는 생각보다 크다.

소득분위에 따른 징수 기준이 어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그런 중고차와 오래된 20평 아파트를 대출 가득 끼워 가지고 있는 내 주변의 30대 시간강사들 대부분이 10만 원 내외 보험료를 매달 납부한다.

만약 시간강사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라면 6학점과 시급 4만 원을 기준으로 해 전체 월급의 3%인 월 3만 원을, 10학점 이상 강의한다고 해도 월 5~6만 원 가량을 납부하면 충분하다. [/box]

어떤 댓글, “시간강사 직장의료보험 가입됩니다”

나는 ‘나는 시간강사다’를 슬로우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시간강사와 건강보험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글엔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한 댓글로 인해 편집장이 직접 나서 해명하는 일까지 생겼다. ‘대학 시간강사 K’라고 밝힌 독자가 남긴 댓글이었다. 부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대학 시간강사 직장의료보험 가입 됩니다. 글쓴이는 아직 대학원생이어서 그런겁니다. 우리나라 대학 시간강사 대우가 부당할 정도로 열악한 것은 맞지만, 글쓴이의 경우가 우리나라 대학 시간강사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슬로우뉴스에 대한 애정에서 말씀드리건데, 이 시리즈 내용들 신중하게 연재하기 바랍니다.

– 대학 시간강사 K

이렇게 기본적인 사실 확인 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공개적인 글을 연재하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논문을 쓰고, 양질의 강의를 할 수 있을까요? (…중략…) 제 생각에는 이 분은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글을 쓰는 건 삼가하셨으면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오히려 이런 분들의 엉터리 글이, 이 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 대학 시간강사 K

{studiobeerhorst}-bbmarie, “you are not listening”, CC BY http://www.flickr.com/photos/74782490@N00/6268874114/in/photolist-axXBSs-CVQtm-bFjZpF-5VYr2A-aeLwXq-9dTZK6-T2ZS1-dAdPGQ-5cFGhQ-7DsjCB-9JTPd8-7c3sB9-8uNQYG-4EKN56-4EKMSn-4EQ4TA-6TwFT9-6TsF44-6TwFRj-6TwG1A-5S1iMM-hFg6hM-dcM567-9nKTEV-9p1DpF-9nKUvp-58HCnh-bemMJr-c6ubSY-thZNG-9YBZDW-a7xB3U-7P5iup-3tEqDH-a9pQXt-5wHMjW-5wDrfa-5yrg9E-9u3eAa-itAH4-9kwa5m-daDCa7-dgr5iu-a8p2go-7a6Ttj-7c3xNm-7UZzhw-7UZznm-2eTYH-9nKUcn-aUQzSc
{studiobeerhorst}-bbmarie, “you are not listening”, CC BY

“선무당의 엉터리 글”이라고요? 

첫 번째 댓글은 “대학 시간강사 직장의료보험 가입됩니다”는 솔깃한 이야기였고, 두 번째 댓글은 “선무당의 엉터리 글”이라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이었다.

“제대로 된 논문을 쓰고 양질의 강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거나 “일반 회사에 들어가려 했어도 취업과정부터 근무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 나는 무척 우울해졌다. 아이디나 댓글로 미루어 보아 그는 전/현직 강사로 짐작됐다. 어째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이처럼 내게 날을 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강사는 직장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혹여 진실된 명제라고 해도, 그 혜택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면 더욱 문제인 것이다. 편집장은 댓글에 개입해 ‘4대보험이 제도로 강제(의무화)된 것은 아니’라는 교수노조 사무국장과의 통화 내용을 남겼다.

진실: 모두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단, 시간강사는 빼고 

시간강사가 4대보험, 특히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까닭은 의외로 단순하다. 대학이 국민건강보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교직원’과 관련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문제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1. 원칙: 모든 교직원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된다. (법 제6조 제2항)
  2. 예외: 단, 시간강사 등은 빼고. (법 제6조 제2항 제4호 및 시행령 제9조)

법

[box type=”info” head=”국민건강보험법 직장가입자의 원칙과 예외”]

국민건강보험법 제6조 (가입자의 종류)

① 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한다.
②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은 직장가입자가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4. 그 밖에 사업장의 특성, 고용 형태 및 사업의 종류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

④ 제2항제4호에 따른 근로자 및 사용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직장가입자가 되거나 탈퇴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9조 (직장가입자에서 제외되는 사람)

법 제6조제2항제4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1. 비상근 근로자 또는 1개월 동안의 소정(所定)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
2. 비상근 교직원 또는 1개월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시간제공무원 및 교직원

[/box]

시행령에 따르면, 시간강사는 “1개월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고, “비상근 교직원 또는 시간제 공무원 및 교직원”에 모두 해당한다. 특히 위 시행령 제9조 제2호는 누가 보아도 ‘시간강사’를 위한 맞춤법안이다.

어느 특정 대학에서 15학점 이상 강의한다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3학점 강의 하나를 맡기도 힘든 현실이다. 게다가 시간강사가 10학점 이상의 강의를 맡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강의료를 지급하지 않는 대학들도 있다.

그러니까, 법은 시간강사를 “직장가입자에서 제외되는 사람”으로 ‘맞춤’으로 규정하고, 대학은 이를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패스트푸드점 ‘알바’ 노동자가 됐다 

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뛴다. 그렇게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되어 월급의 3%, 매달 1만 2천 원을 납부한다. 분 단위로 계산된 최저시급까지 보장 받는다. 대학에서 노동하는 동안 누려 보지 못한 호사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패스트푸드점 역시 국민건강보험법을 충실히 따른다.

나는 패스트푸드점 월 60시간 이상 노동하고 있기에, 직장가입자 자격을 취득했다. 60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그 달의 건강보험 자격은 지역가입자로 전환한다. 그래서 몸이 아프든 어쩌든, 스케줄 표에 기록해 나가며 반드시 월 60시간의 근로시간을 채운다. 감기가 심해 한 주를 통째로 결근해야 했던 지난달엔 스케줄 매니저에게 부탁해 추가 근무하는 것으로 간신히 시간을 채웠다.

근로명세서에 찍힌 ‘61.2’라는 근로 시간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나마 방학 중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렇게 월 60시간 이상을 1년 이상 채우고 퇴직하면, ‘임의계속가입’을 신청해 2년간 직장가입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얼마 전 지역 건강보험공단 관계자와 통화해 확인한 내용이다.

전화를 끊으며 반드시 1년을 더 버티겠다고 마음 먹었다.

패스트푸드

강의와 연구가 ‘본업’인 직장가입자 되고 싶다 

‘시간강사는 직장의료보험 가입자가 될 수 있다’는 댓글 주장은 틀렸다.

“비상근 시간제 교직원이자 단시간근로자”인 시간강사에게 대학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을 보장할 의무가 없다. 법이 그렇다. 간혹 ‘혜택’을 받기도 하지만, 대학 측에서 ‘자선’을 베풀었을 경우로 한정된다. (단시간근로자도 고용주와의 협의를 통해 4대보험 임의가입이 가능하다.)

시간강사의 꿈,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길은 국민건강보험법과 대학의 찰떡 궁합으로 원천차단된 상태다. 이것은 단순한 ‘생계’의 차원을 넘어, 노동하는 한 인간이 응당 가져야 할 노동자이자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나는 지금 1만2천 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생업으로 생각하는 대학에서의 노동, 강의와 연구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또 적절한 액수의 보험료를 낼 수 있길 바란다. 아마 각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들 역시 형편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간강사 대부분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예외”에 해당하도록 규정하는 국민건강보험법과 그 시행령은 개정되어야 한다.

Tim Geers, CC BY https://flic.kr/p/8DFBf3
Tim Geers,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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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시간강사의 4대보험 혜택 여부 현황과 관련해서 좀 이것저것 뒤져봤는데 최근 자료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일단 과거 자료들(국감, 논문 연구 등)을 좀 찾아 보면 산재랑 고용보험은 그나마 최근 몇년사이에 제도가 바뀌면서 늘어났지만 의료보험혜택은 바닥을 기는것같네요. 가입은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학당국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의료보험가입을 지원해줄때나 가능한 일이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사립대학 이야기고 찾아보니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일단 12년 기재부 발표자료를 보면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것같습니다. 즉 그 댓글 작성하신분은 국립대학에서만 일하시는건가…

  2. 전업시간강사임을 확인하는 것이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입니다 어찌보면 시간강사는 직업이라기 보다 넘어서야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체성이 불분명한~
    어려운 현실,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3. 초단시간근로자,즉주당15시간미만근로자에대한근로기준법상의기준이우선개정되어야합니다.이는단순히시간강사만의문제가아닙니다.

  4. 그냥 보다가 도중에 팀킬하는 댓글보고 빡쳐서 로그인 해 씁니다.
    세상이 이렇게 외로운 이유는 말이죠, 저 댓글 단 사람처럼 자기 상황이랑 자기가 아는 것만 생각하고 조언이랍시고 까내리는 사람이 수두룩해서 그렇습니다.

    오해는 무슨, 그게 걱정 됐으면 그냥 지적만 하면 될 걸, 인신공격해서 글쓴이 마음을 후벼파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지금껏 연재해 온 글 중에, 당신같이 한 마디 잘난 척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도 그렇게 많은데, 그럼에도 굳이 일격을 먹이는 사람이 사람입니까? 아 볼 수록 빡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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