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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차례의 연재에서는 인지언어학적 관점에서 간략한 언어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지언어학의 방법론을 엄밀히 적용한 이론적 분석은 아닙니다만, 언어현상을 텍스트 수준을 넘어 다양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요인들과 연관 지어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인지언어학적 분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먼산’이라는 표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산’의 인지언어학적 분석

‘먼산’ 바라보기

트위터나 등의 소셜 네트워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표현 중에 ‘먼산’이 있습니다. 보통 괄호 안에 넣어서 ‘(먼산)’과 같이 표기되죠. 그러고 보니 ‘먼바다’, ‘먼우주’ 등의 변이도 본 적이 있군요. 예를 들어 ‘먼산’이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A: 논문 얼마나 썼냐고 묻는 건 박사과정생에겐 일종의 터부다.
B: 아 그렇군요. 그런데 논문 얼마나 쓰셨어요? (먼산)

많은 분이 짐작하셨듯이 여기에서 ‘먼산’은 이전 진술이 친근한 장난임을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앞 문장의 성격에 대한 일종의 주석(commentary)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box type=”note”]맞춤법상 ‘먼 산’이 맞으나 이 글에서는 ‘(먼산)’이라는 표기로 이용되는 표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먼산’으로 표기합니다. (편집자)[/box]

트위터의 대화 유형, 그리고 언어유희

“먼산”이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트위터상의 대화 유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트위터 대화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꼽으라면 ‘정보성 트윗’과 ‘격언성 트윗’ 그리고 ‘사회적 독백’과 ‘친교성 트윗’ 등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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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성 트윗

먼저 정보성 트윗은 링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고, 신문의 헤드라인이나 웹페이지 본문의 요약 혹은 키워드 등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격언성 트윗

소위 격언성 트윗은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지칭하기 위해 제가 쓰는 용어입니다. 속담, 경구, 명언 등을 옮기는 경우(예: “No human is illegal.” “어떤 인간도 불법적이지 않다.” – 하워드 진), 혹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상화된 진술을 하는 경우(예: 애정과 희생 없는 관심은 오지랖이다.)가 있죠.

사회적 독백

사회적 독백은 정보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지만, 타인이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트윗입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 이게 며칠째 똑같은 라면인가. 몸이 흐물거린다.”

이런 식의 트윗은 독백에 가깝지만, 불특정 다수를 청자로 상정하기에 사회적 독백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타인에게서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면 트위터와 같은 열린 공간을 고집할 필요가 없겠죠. 워드프로세서를 열어서 잘 쓰고 잘 저장하면 될 테니까요.

친교성 트윗

마지막으로 ‘친교성 트윗’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사회적 독백에서 발전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회적 독백에 대해 답을 하는 트윗이 달리면 유쾌한 대화를 통해 사회적 친분을 쌓아가는 대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친교성 트윗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언어유희, 혹은 ‘농담 따먹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트윗과 그에 대한 반응이 있다고 해봅시다.

A: “부장, 아주 완전히 피를 말리는구만.”
B: “부장님이랑 고스톱 치면 절대 안 되겠네요.”

이런 대화에 정보성은 없습니다만, 유희나 놀이를 목표로 대화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트위터상의 소통이 친근한 말장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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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의 주제인 “먼산”에 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산)

진지함을 줄이고 유머 코드를 넣으면서 트윗을 날릴 때 왜 ‘먼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직관적으로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중 ‘먼산’이 처한 환경 즉 괄호에 주목해 봅시다.

희곡이나 시나리오에서 괄호 안의 내용은 보통 화자의 행동 혹은 심리상태를 나타내죠. 따라서 ‘(먼산)’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서 멀리 있는 산을 올려다보는 행동을 묘사함과 동시에 화자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확신을 하고 사실을 진술하거나 진심을 전달할 때 보통 상대방의 눈을 바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왜 자꾸 눈을 피하니?”라든가 “딴 데 보지 말고 내 눈 보고 이야기해. 네가 했던 말 다시 한 번 더 해봐. 뭐가 어쨌다구?”와 같은 대사가 말이 되는 것이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믹한 표정을 짓는 여인

사회적 언어와 사적 언어

‘먼산’이 심리상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담화 연구에서 종종 이야기되는 ‘사회적 언어(social speech)’와 ‘사적 언어(private speech)’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화 상황에서의 모든 말이 상대방을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화의 특정 부분은 종종 자기 자신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흠흠” 혹은 “다시 한 번”, “오케이” 등이 사적 언어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꼬여서 ‘자, 다시 한 번’이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에게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자신을 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사적 언어가 사용되는 경우, 화자는 상대방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피해 상대방의 좌우, 아래, 혹은 위쪽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마지막 경우가 ‘먼산’과 유사하겠네요.

이상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말의 경우에는 화자의 시선이 여타 사회적 언어와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말과 신체의 운동 나아가 화자의 심리적 상태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산’ 뒤에 숨어 있는 심리상태 및 신체 행동

이제 위의 지식을 SNS의 ‘먼산’ 표현에 적용해 보도록 하죠. “(먼산)”이 들어가 있는 트윗은 대체로 원래 상대방의 트윗이 의도했던 바에서 조금 비껴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먼산)”을 담은 트윗은 원래 트윗의 ‘팩트’를 뒤틀거나, 다른 어조를 입히거나, 장난스럽게 반응하는 경우이며, 이 과정에서 언어유희 및 유머의 요소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먼산’은 괄호 안에 위치하여 말하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사회적 언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사적 언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지언어학이 흥미로운 점은 위와 같이 인간의 말과 심리, 몸의 움직임, 맥락 등을 통합적이고도 역동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언어 자체의 독특성과 완결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인지 및 정서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나아가 몸의 움직임(시선, 제스쳐, 몸의 방향 등)과 통합되는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요?

여러분이 트위터나 여러 메시지 서비스를 통해 제게 “먼산”이라고 말할 때 여러분의 시선이 제 눈에서 잠시 멀어졌다가 살며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산)

먼산을 바라보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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