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도 미얀마도 아닌 곳에서, 매솟 르포 ①]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한국에서의 인연으로 S가 있는 ‘매솟’에 방문한 이수연 작가의 현장 기록. 총 8편에 걸쳐 연재합니다. (⌚6분)
미얀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내전을 거쳐, 1962년 군부가 집권하며 긴 독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¹ 1988년 8월 8일, 이른바 8888항쟁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것?² 2015년 아웅산수지가 총선에서 승리하며 찾아온 짧은 ‘미얀마의 봄’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군부 독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를까.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5시간 20분. 치앙마이에서 매솟까지 버스로 6시간 45분. 긴 시간을 거쳐 나는 매솟 검문소(Check Point) 앞에 서 있다. 매솟 버스정류장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20분. 그러나 검문소에서 군복을 입은 태국 군인이 우리를 멈춰 세운다. 자연스럽게 건넨 여권을 돌려주지 않고, 모든 짐을 내리라고 한다.
버스기사는 트렁크를 열어 우리 짐을 꺼낸다. 캐리어 두 개, 노트북이 든 가방 하나. 조촐하다면 조촐한 짐이다. 이내 버스 문이 닫힌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버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여전히 우리의 여권은 군인 손에 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난민이 아닌 ‘아는 사람’
시작은 2년 전, S와의 만남이었다. S는 미얀마 소수 부족인 친족(Chin) 중에서도 ‘아쇼 친(Asho Chin)’에 속했다. 모임에서 처음 만난 S는 당시 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 난민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이라고 해서 모두 난민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S는 미얀마에서 침례교 목사로 활동하던 중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그가 쓴 논문으로 인해 미얀마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난민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어색한 첫 만남 이후에도 S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지인을 통해, 모임을 통해 꾸준히 만나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져 집에 초대해 저녁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나마 자신 있는 요리를 했고, 늘 긴장해 보이던 S도 그날만큼은 조금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는 길, S는 짧은 인사를 보내왔다. “음식과 선물 고마워요.”(‘Thanks for this meal and present.’)
그리고 머지않아 S는 태국으로 간다고 했다. 18살이 된 첫째 딸이 군부 징집 연령에 해당해, 징집을 피하기 위해 가족을 태국으로 데려올 계획이라면서.³

예상하지 못한 검문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검문소에 잡혀 있던 그 순간, 내 목걸이에는 S가 마지막으로 건넨 은반지가 걸려 있었다. 태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로, 민족 전통 방식의 선물이라고 했다. 비자 문제를 걱정하던 S는 1년 사이 무사히 가족을 태국에 데려왔다. 이번 방문은 S와의 재회이자, 미얀마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지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첫 관문부터 문턱이 높았다.
검문소에서 태국 군인은 번역기를 켜가며 매솟 방문 이유를 물었다. “왜 지나갈 수 없나요?”라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나중에 설명해주겠다”는 말뿐이었다. 나와 일행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인의 다음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그 친구의 국적이 태국인가요?”
S는 당연히 미얀마 국적이었다. 합법적으로 태국에 머물 수 있는 비자가 있었지만,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야 입국이 거부되면 치앙마이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S의 사정은 달랐다. 태국 당국의 기록에 남아 지속적인 감시를 받게 된다면 그에게 위험이 될 수 있었다. 군인이 계속 S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우리는 쉽사리 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군인은 번역기 화면을 내밀었다.
“혹시 미얀마 국적인에게 태국 ID를 발급해주기 위해 왔나요?”
그렇지 않았다. 미얀마를 지원하기 위한 방문이었지, ID카드 발급과는 무관했다. 우리는 최대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결백을 주장했다. 다른 일행은 급히 S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전화하는 척 시간을 벌었다. “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데리러 올 수 없다”고 거듭 설명했지만 태국 군인은 단호했다.
“태국 ID카드를 가진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검문소는 매솟 시내와 꽤 떨어져 있어 누군가 데리러 와야 함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태국ID카드를 요구했다. 결국 S는 아는 인맥을 동원해 태국 ID카드를 가진 사람을 택시기사와 함께 보냈다. 우리의 보증인이 될 그는 태국인 목사로, S와 우리의 사정을 모두 잘 아는 이였다. 검문소에 잡힌 지 2시간 30분. 마침내 보증인이 도착했다. 파란색 후드티 뒷면에는 마치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하듯 ‘예수는 진실, 사랑'(‘Jesus is True, Lov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증인은 ID카드를 제출하고 군인과 짧게 대화를 나눴다. 잔뜩 긴장한 그의 표정을 보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시선을 돌렸다. 기다리는 동안 파악한 것은 하나였다. 2025년부터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 국적자는 매솟에 입경하기 위해 태국 ID카드를 가진 보증인이 필요하다는 것.⁴ 국경지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기 범죄와 인신매매, 밀입국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보호보다 통제처럼 느껴졌다. 해당 국가 리스트에는 중국, 일본, 네팔, 인도네시아 등 38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내 보증인이 심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 순간, 태국 군인은 차 앞에서 번호판이 나오도록 우리와 보증인의 사진을 찍었다. 매솟을 먼저 방문한 적 있는 일행은 말했다. 우리가 어디를 다니는지 태국 당국에 의해 추적될 거라고.
차에 올라탔을 때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결 표정이 풀어진 보증인은 만약 우리가 납치되거나 미얀마로 밀입국할 경우 자신이 높은 벌금과 함께 조사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그와 S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한국인을 위해, S를 믿고 보증을 선 것이었다.
매솟에 도착하다
택시를 타고 매솟 시내 호텔로 이동하는 길, 우리는 보증인에게 물었다. 사기 범죄와 인신매매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어제도 있었어요.”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군인이 호텔 위치와 가진 돈을 물어본 이유를 이해했다. 올 초 캄보디아 스캠 단지가 큰 이슈가 됐는데,⁵ 미얀마 국경지대인 매솟 인근에도 대규모 스캠 단지가 있고, 일자리 알선을 명목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⁶
매솟(태국)과 미얀마는 작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어 밀입국이 어렵지 않은 구조였다. 실제로 검문소를 통과하는 타국적 사람들은 준비된 서류를 제출하며 절차를 밟았다. 아무런 서류도 없던 우리에게 숙소를 물은 것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고, 환전 금액을 확인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매솟에 머물기 위해 왔는지를 가늠하는 절차였다.
무사히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S의 연락이 왔다. 고생했다고, 내일 아침 호텔로 마중 나가겠다고. 짐을 풀고 미지근한 물로 씻으니 긴장이 풀리며 피곤함이 몰려왔다. 일행도 지난 매솟 방문이 2007년이었기에 최근 바뀐 법을 몰랐고, S 역시 알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섭도록 하얀 호텔 침구를 몸에 덮는 순간,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것은 보호일까, 감시일까. 우리가 만약 S와 함께 사진에 찍혔다면? S가 매솟에 있다는 사실을 미얀마 정부가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까.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 1박에 3만 5천 원짜리 낡은 호텔에 누워 한국을 떠올린다. 아무도 신분을 묻지 않고, 국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속에서, 시선보다 무관심이 오가는 일상. 때로 외국인을 마주칠 때 보내는 낯선 눈길. 이 낯선 도시에서 외국인임을 실감하면서도, 한국 국적이라는 보호막 안에 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던 나. S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을까. 보호받지 못하는 낯섦이란 얼마나 불안한 일상일까.
그 일부의 일부만 느낀 2시간 30분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가진 자의 욕심처럼 느껴져 한참을 뒤척였다.
(계속)
🔖 각주
¹ 미얀마 군부 집권 (1962년) | Encyclopaedia Britannica: “Myanmar history military coup 1962” / BBC Country Profile: Myanmar
² 8888항쟁 사망자 수 | Human Rights Watch 1988년 보고서 / Amnesty International: “Myanmar 8888 uprising”
³ 미얀마 징집법 (18~35세 남성, 18~27세 여성) | Reuters 2024.02: “Myanmar conscription law 2024” / BBC Myanmar
⁴ 매솟 입경 보증인 제도 (2025년) | Bangkok Post / Khaosod English: “Mae Sot checkpoint foreigner 2025”
⁵ 캄보디아 스캠 단지 | 연합뉴스 / KBS: “캄보디아 스캠 단지 인신매매 2024”
⁶ 매솟 인근 스캠 단지 및 인신매매 | The Irrawaddy: “Mae Sot scam compound trafficking” / UN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 동남아 인신매매 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