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도 미얀마도 아닌 곳에서 — 매솟 르포 ④]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S와의 인연으로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 난민촌 ‘매솟’에 방문한 작가의 현장 기록. (⌚7분)
🌱 태국도 미얀마도 아닌 곳에서, 매솟 르포 (연재, 총8회)
1. 매솟 검문소, 보호받지 못한 낯섦을 느끼다
2. 매솟 난민촌 사람들: 여기에 있어도 되지만,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
3. 중국 미얀마 공화국
4. 아이를 팔려던 어린 엄마가 만드는 희망의 귀고리
🎧 ‘팟캐스트’로 듣기. (🕒19분)
슬로우레터를 읽어드립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구글 노트북LM을 이용해서 제작했습니다.
소외된 이들이란 누구인가. 글을 쓰는 내게 뿌리와 같은 질문이다. 2025년 11월, 국제평화단체와 함께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¹ 오랫동안 발전 없이 뿌리박힌 난민촌을 보며 평화단체 활동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모든 전쟁과 폭력을 막을 수 없는데, 지치지 않으세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같이 난민촌에 방문한 이로서 다소 호기로운 질문이었지만, 이내 스스로 답을 찾았다. 세상의 모든 폭력을, 모든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그저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과 살아가는 이유다. 내가 다 할 수 없기에, 우리는 타인이 필요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솟 방문은 한국의 많은 문제를 뒤로한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위해 온 것이었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미얀마에 관심을 품었고 올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겼다. 마침 책을 출간한 축하 의미로 기부처를 찾고 있었는데, 지인이 GCA(Global Child Advocates)📌에 관해 얘기해주었다. 책과 관련 있는 곳에 기부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 센터가 있는지 열심히 묻고 다닌 덕이었다.
📌 GCA: 아동 학대, 인신매매, 착취를 예방하고 아동 보호망을 강화하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 아동 보호 전문 비영리 단체(NGO)로,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태국과 탄자니아 등에서도 재단 및 조직으로 등록되어 활동한다. (편집자)

아이를 팔고 싶지 않아요
GCA를 방문한 날, S와 수잔은 익숙한 듯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GCA를 운영하는 것은 수잔과 그녀의 남편이었다. 해외 컨퍼런스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미국인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는 말에 개인적 후원인지 묻자 “그렇다”고 했다. 약간 의아했다. 사무실과 한부모 가정의 일터, 아이를 보육하는 공간이 한 부지에 모여 있었다.² 건물만 세 채에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된 모습이 NGO에서 운영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수잔은 개인 후원을 모아 운영한다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기부금을 전달하기 전,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GCA는 현재 약 27가정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중 1가정은 싱글파더이고³ 나머지는 싱글맘 가정이었다. 연결된 단체의 소개로 GCA와 이어진 이들은 트라우마 치료, 마음 건강 활동, 교육 등을 지원받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빚 탕감 교육이었다. 노동만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가정의 경우,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빚 탕감을 돕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부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것인가.
수잔의 말 속에서 미얀마 아이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8살에서 12살이 되면 부모는 학교를 보내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집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 대신 부모와 함께 농사일을 한다. 노동력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조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⁴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낯선 이와 살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18살에 아이가 둘인 경우도 있다.⁵ 그러나 이보다 못한 경우도 있었다. 아이를 파는 것이다.
수잔은 친절함을 잃지 않으면서 의연하게 말했다. 자신의 센터에서 돌보는 한 가정의 엄마는 돈이 절실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절실하다’는 것은 곧 생명과 이어지는 일이었다. 혼자 아이를 돌보던 엄마는 어린 자녀를 팔기로 결심했다.⁶ 수잔은 어쩌다 그 소식을 듣게 됐고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라고 하기에 다소 앳된 얼굴이었을 것이다. 오갔을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우리가 도와주겠다. 아이를 함께 키우자. 어린 엄마는 무너지듯 울며 고백했다.
“실은 아이를 팔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아이는 엄마 품에 머물 수 있었다. GCA에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트라우마 치료도 함께 시작했다. 건물 한쪽에서 엄마는 공예품을 만들고, 그 옆 건물에서 아이는 공부와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어린 엄마는 조금 더 성숙해졌고, 자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그 정도의 삶은, 충분히 빛나는 희망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을까요?”
수잔이 물어왔다. 나는 그들의 ‘마음 건강’에 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고 대답했다.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 너무나 큰 난민 규모와 부족한 인프라 때문에 그들의 마음 건강까지 챙기는 것이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⁷ 그런데 GCA는 자신 있게 그들의 마음 건강과 트라우마를 신경 쓴다고 해 관심이 쏠렸다.
“많은 가정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요. 가족이 폭격으로 사망하거나 다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우도 있고, 배우자가 바람을 펴 싱글이 된 경우도 있어요. 일부 청년들은 우울증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때때로 자해를 하는 경우도 봤어요.”
그들이 제공하는 ‘마음 건강’ 지원은 단순히 상담 치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사 면허를 가진 정신과 의사들이 그들의 마음을 챙기고 있었으며, 필요하면 약물 치료도 병행하고 있었다. 단순히 상담 교육만 이수한 이들이 아닌,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온 의사가 책임진다는 말에 자신감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속 얘기를 나누는 대화’가 마음 건강의 전부가 아닌 셈이다.
“매달 900밧 정도 치료비가 들어요. 상담과 약물 비용이죠. 어떤 청년은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그대로 차에 박아 죽고 싶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그를 설득해서 치료를 받게 했죠. 물론, 약물 치료도 함께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치료 결과가 아주 좋아요.”
만약 그가 난민이 아니고 돈이 많다 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것을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렵사리 모국을 빠져나와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그대로 차에 뛰어들었다면, 그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더 나은 삶으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의사가 말했다. 모든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험난한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질만이 아니었다.

희망을 만든다는 것
수잔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정신이 들었다. 많지 않은 돈이라 얼굴이 붉어졌지만,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수잔은 환하게 웃었고 나는 준비한 기부금을 전했다. 돈은 때에 맞춰 환전할 수 있도록 달러로 전달했다. 기부금 영수증도 없고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는 돈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믿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하고 있기에.
마지막으로 수잔은 GCA 센터 여기저기를 보여줬다. 싱글맘이 일하는 공방으로 들어서자 앳된 얼굴의 엄마들이 손으로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만든 공예품은 태국과 미국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다시 운영비로 쓴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 동안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수줍은 웃음. 맑은 표정에서 ‘안정감’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아름다운 수공예품을 몇 가지 골라 구입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이 나뉘어 있지만 걸어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수잔은 엄마와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가까이서 보살피는 단체는 태국에서 여기뿐이라 말했다. 웃음에서 안정감을 느낀 건, 언제든지 아이와 함께 있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푹신한 패드 위에서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은은한 종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숙소로 돌아와 구입한 수공예품을 다시 열었다. 이음새가 깔끔하고 꼼꼼하게 검수한 티가 물씬 풍겼다. 귀고리를 직접 차보니 더욱 아름다운 빛이 들었다. 그들이 만드는 건, 단순히 보기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 살아가겠다는 의지. 주고 온 마음보다 받은 마음이 더 많아서일까. 그 모두가 선물 같았다.
🔖 각주
¹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콕스바자르(Cox’s Bazar) 일대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으로,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이후 약 100만 명 이상이 피난해 있다.
— UNHCR. “Rohingya Refugee Crisis.”
— Human Rights Watch. “Massacre by the River.” 2017. hrw.org
² GCA(Global Child Advocates). 태국 매솟에서 미얀마 출신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 ‘한부모’라는 표현은 싱글맘과 싱글파더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³ 이전에는 싱글파더 가정이 2가정이었으나, 취재 당시 기준 1가정이 남아 있었다.
⁴ 미얀마의 조혼 실태. 미얀마는 법적 혼인 연령을 18세로 규정하고 있으나, 농촌 지역과 분쟁 지역을 중심으로 조혼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미얀마 여성의 약 16~19%가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보고되며, 조사 시점과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 UNICEF. “Child Marriage in Myanmar.”
⁵ 이는 특정 지역과 상황에 국한된 사례이며, 미얀마 전체의 보편적 상황을 의미하지 않는다.
⁶ 아동 매매는 미얀마 내 분쟁 지역과 극빈 가정에서 보고되는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다.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TIP Report)는 미얀마를 인신매매 고위험 국가로 지속적으로 지목해왔으며,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역시 미얀마 내 인신매매 실태를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 US Department of State.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Myanmar.” 2023.
⁷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의 정신건강 지원 현황.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밀집 지역인 콕스바자르는 인프라 부족으로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이 극히 제한적이다.
— 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 “Mental Health in Cox’s Bazar.” msf.org
— WHO. “Mental Health and Psychosocial Support in Rohingya Response.” who.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