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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는 시기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산업 강국의 유산을 더 키워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도 있고, 우리 세대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다. AI 혁명 역시 삐끗하면 바로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기 요인이다.”

김정관(산업통상부 장관), 2026.08.04.

지난 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묻어난다. 정부의 위기 인식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로봇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서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위기감이 ‘속도전’으로만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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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특구특별법 속도전에 가려진 것들

정부는 반도체·AI·로봇(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약 1,600조 원을 투입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완공 시점을 대폭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일반산업단지는 2045년에서 2033년으로, 국가산업단지는 2047년에서 2039년으로 각각 12년과 8년을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호남권 클러스터는 현 정부 임기 안에 착공과 생산 시작을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압축된 시간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메가특구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메가특구특별법)이다. 이 법의 핵심 골격은 재정·세제·인재·인프라·금융·제도·기술 등 7대 패키지를 범부처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전력과 용수 부족, 인허가 지연 등 산업단지 조성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장애물을 해소하기 위해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현재 거론되는 법안에는 산업 인프라 지원을 넘어 근로시간과 고용형태에 관한 규제 완화까지 포함돼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이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법으로까지 확장되는 순간, 메가특구특별법의 성격은 ‘산업 인프라 지원법’에서 ‘노동 규제 완화법’으로 바뀌게 된다. 

그 전환 과정에서 정작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와의 논의는 생략된 채, 정부가 사용자 측의 의견을 반영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우려스럽다. 최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양대 노총 위원장들과 비공개로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고 하지만, 공식적이고 투명한 논의 절차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문제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2026.06.29. 청와대.

화이트칼러는 제외? 되풀이되는 ‘52시간 예외’ 시도

사실 정부는 이미 한 번 실패했던 길을 다시 걷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연구개발직에 대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 조항이 논란이 되었다. 노동계는 “과로사 인정 기준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조치”라며 반발했고, 다행히 국회는 여야 협상 끝에 올해 1월 주 52시간 예외 조항 없이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채 1년이 되지 않아 비슷한 내용이 ‘메가특구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얼마 전 좌절됐던 제도가 이름만 바꿔 다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메가특구특별법에서 제기되는 노동 규제 완화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화이트칼라 제외(white-collar exemption, 관리자·전문직 등 특정 노동자를 근로시간 상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소득 상위 3% 수준에 해당하는 관리자와 연구개발자 등 전문가에게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 상한제뿐 아니라 휴게·휴일 규정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적용까지 면제하는 방안이다. 고소득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의 보호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사기업 재직 시절의 경험 떠올리며 근로시간 규제 완화에 힘을 싣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 IT기업이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 하루 12시간·주 72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근무 관행) 도입을 시도하자 직원들이 한 술 더 떠서 자정까지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그렇게 바뀌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996은 이미 2021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불법으로 규정한 제도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소득이 높으면 사용자와의 힘의 균형이 대등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틀렸다. 연봉이 높다고 야근을 거부할 협상력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구개발직일수록 성과와 프로젝트 마감 압박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 조항의 원형이라 할 반도체특별법의 ‘연구개발직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결국 법안에 반영되지 못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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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근로시간제, 기간제 연장, 파견 대상 업무 확대

둘째, 선택적 근로시간제(노동자가 일정 기간의 총 근로시간 범위 안에서 출퇴근 시각과 일별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제도) 정산기간 확대다. 현행 1개월(연구개발직은 3개월)의 정산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이다. 정산기간이 길어지면 기업은 생산이나 연구개발 일정에 따라 특정 시기에 노동시간을 집중시킬 수 있다. 전체 기간의 평균만 놓고 보면 법정 기준을 지킨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이 ‘평균’에 가려지게 된다. 

예컨대 정산기간을 6개월(26주)로 늘리면, 이론상으로는 16주 연속으로 주 80시간씩 일하더라도 나머지 10주의 근로시간을 대폭 줄이면 26주 전체 평균은 법정 기준(주 52시간)에 맞출 수 있다. 이처럼 통계상 총량은 법정 기준에 부합할지 몰라도, 그 안에서 개별 노동자가 몇 주 연속으로 몰아서 과로하는 형태는 감춰지게 된다.

셋째,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다. 현행 2년에서 2년 더 늘려 최대 4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기간제법의 2년 제한, 즉 ‘2년 초과 사용 시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간주’ 규정은 불안정 고용을 무한정 방치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였다. 이를 4년으로 늘리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노동자가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사용자는 노동자를 3년 11개월 동안 고용한 뒤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넷째, 파견 대상 업무 확대다. 경제자유구역법 등 기존 특별법에 적용되고 있는 32개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파견근로는 원래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는 고용형태다. 그런데 그 ‘예외’ 목록이 특별법을 매개로 계속 늘었고, 이번 메가특구특별법에서 다시 한 번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파견이라는 간접고용 형태를 첨단산업 현장의 상시적 인력 운용 방식으로 자리 잡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면, 900만 명 수준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메가특구특별법의 4가지 노동 규제 완화 주요 내용. 우상범 정리.

한번 풀린 예외는 원칙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동자의 동의나 서면 합의 절차를 거치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힘이 과연 대등한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사용자가 인사권과 업무배치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합의할 자유가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의 권력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노동계가 이러한 동의 절차를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가 아닌 면피용 장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한시적 예외’가 영구적인 제도로 굳어져온 우리의 경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문재인 정부 시기의 특별연장근로(재해·재난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인가 사유 확대다. 당시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는 재해·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 입법이 국회에서 지연되자,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인가 사유를 확대했다. 이때 △긴급한 생명보호와 안전확보 조치, △갑작스러운 시설·설비 장애·고장 수습, △업무량의 대폭 증가, △소재·부품·장비산업 연구개발 등이 추가되었다. 당시 정부는 제도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일시적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이후 인가 사유는 폐지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2019년 906건에서 2021년 6,477건으로 약 7배 증가했고, 최근에는 신청 건수 대비 인가율이 매년 90%를 웃돌아(2024년 94.0%, 2025년 92.9%) 사실상 상시적인 주 52시간 예외 제도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 번 완화된 규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예외’는 시간이 지나면서 ‘관행’이 되고, 관행은 다시 ‘제도’가 된다. 일시적 예외로 도입된 규제 완화가 정권을 넘어 영구적 제도로 굳어지는 구조적 패턴이 반복돼 온 것이다. 메가특구의 노동 특례 역시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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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메가특구특별법의 반노동정책 강력 규탄

이번 논의가 탄핵 정국을 거쳐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대 노총은 공동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반노동정책이 메가특구특별법을 계기로 재추진되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AI 전환과 메가특구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고, 그 출발점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136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도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노동 문제뿐 아니라 기후·생태 위협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재까지 함께 문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메가특구특별법을 밀실에서 밀어붙일 것이 아니다. 법안 내용을 국회 상임위와 노동자 대표 조직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동계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공식적인 논의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 양대 노총이 요구한 대통령 면담과 AI 전환·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노동정책을 위한 토론의 장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자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첨단산업 육성과 노동권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며, 숙련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첨단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고용을 유연화하는 것만으로 산업의 미래가 보장된다면,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속도보다 합의된 방향성이 더 중요

‘광장에서 출범한 정부’라는 정체성은 구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산업 경쟁력이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서도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비로서 증명된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정부의 위기 인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다고 반드시 멀리 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희생하면서 만들어진 산업 경쟁력이 과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인지도 물어야 한다.

메가특구에 필요한 것은 빛의 속도보다 빠른 법안 처리가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노동자와 기업,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걸음처럼 느리더라도 천 리를 간다’는 오래된 지혜가 지금 이재명 정부에 가장 필요한 조언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만든 법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합의된 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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