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 혼용)이 지난 9월 9일 만 20세의 꽉 찬 성년이 됐다. 올해 20주년을 맞는 시민단체는 많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생긴 단체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행동의 존재는 내게 더 각별하다. 많은 소중한 인연을 시민행동을 통해 만났다. 현 시민행동 사무처장 박준우(일명 ‘곰탱’)도 그중 한 명이다.

오랜만에 박준우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시민운동하는 자의 슬픔과 고단함에 관해 물었다. 의사가 아닌 환자의 동료의식으로 우리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쓸쓸한 대화 속에도 여전히 설렘과 기쁨이 자라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 2019년 6월 7일 금요일 까치울역 근처 카페
    2019년 9월 8일 (전화와 이메일)
    2019년 9월 17일 (전화와 이메일)
  • 인터뷰이: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인터뷰어: 민노씨

 

박준우 혹은 곰탱
박준우 혹은 ‘곰탱’

 

= 자기소개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는 박준우라고 한다. 별칭은 ‘곰탱’이다.

= 본론 전에. 조국 사태, 어떻게 보나.

조국이냐 아니냐는 잘 모르겠다. 다만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구축해온 모델, 소위 87년 체제의 파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태를 계기로 정치 뿐 아니라 기업과 언론, 시민사회 등 각각의 영역에서 자기 성찰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 87년 체제의 파탄? 

87년 대항쟁에서 우리가 주장했던 것들, 가령 언론의 자유화라든지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의 중립이랄지… 정치도 언론도 검찰도 교육도 조국 정국에서는 다들 87년 체제가 그렸던 모습에 가깝해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 보도사진연감)

= 정치도 언론도 검찰도 87체제의 모습에 가깝게 행동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예를 들면, 전교조의 참교육은 전인교육이었고, 그걸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제도 중 하나가 이른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다. 언론 영역에서 이른바 ‘기레기’ 논란, 진위 확인도 없는 무책임한 폭로성 보도들도 87년에 그토록 외쳤던 언론 자유화의 어두운 이면이다.

조국 자신도 386으로서 아버지로서 열심히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습은 ‘계급의 울타리’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윤석열 총장도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한 취지대로 원칙과 소신으로 독립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적인 함의가 강한) 수사가 되어버렸다.

사회는 엉망진창이고, 진영과 계급과 세대로 찢어진 갈등은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87’의 가치가 외면적, 표면적으로는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재적으로는 파탄에 이른 것 같다.

= “또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는데. 다른 상징적인 사건으로 생각하는 건 뭐가 있나.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로스쿨 제도는 사법개혁의 과정에서 생긴 제도지만, 서민 자녀들에게는 ‘문을 닫아버리는’ 제도로 느껴졌을 거다. 어머어마한 학비라든지 ‘귀족화’, ‘세습화’ 논란을 떠올리면 그렇다. 노동 영역에서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정규직의 반발은 노조가 87의 가치를 외면적으로는 내세우면서 내재적으로는 파괴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교조에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한 것도 런 ‘정규직의 반발’이라고 보나?) 내가 보기엔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 20대 남성의 보수화도 그렇다. 남녀평등이나 인권 등 87체제의 보편적 가치가 다수 20대 남성들에겐 ‘역차별’로 느껴진다. 특히 조국 사태는 정치 영역에서 표출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더한 것 같다.

지옥 고통 슬픔

 

 

[divide style=”2″]

 

20년 전, 시민행동

 

함께하는 시민행동

 

= 함께하는시민행동, 누가 왜 만들었나.

1999년 창립 당시에 임원상근자들은 모두 경실련 출신이다.

= 경실련 출신?

그렇다. 당시 90년대 중반은 경실련이 시민사회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권력화 문제가 생겼다.

= 내부 권력화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가장 유명한 게 ’97년 김영삼 아들 김현철 비디오 은폐 의혹 사건이다. 김현철이 돈을 받았다는 비디오 영상 증거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걸 경실련에 제보했다. 그런데 경실련에서 즉시 해당 비디오 영상을 공개하지 않고, 그 시기를 조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근자들이 조직에 비판적 의식을 가지기 된 거다.

1997년 경실련 김현철 비디오테이프 은폐 의혹을 보도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1997년 3월 경실련의 김현철 비디오테이프 은폐 의혹을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

=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은 어떻게 진행됐나.

젊은 선배들의 문제 의식은 깊어졌다. 그런던 차에 1999년 유종성 사무총장이 칼럼을 게재했는데, 표절이 의심됐다. 그 건이 대필 사건으로 번지고, 젊은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유종성 사무총장이 이에 방어적으로 나오면서 젊은 활동가의 비판을 정파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젊은 선배들이 몇몇은 ‘잘리고’, 불리한 인사조치의 희생자가 됐다.

1999년 1월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 유종성 칼럼 표절 사건을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8
1999년 1월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 유종성 칼럼 표절 사건을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

= 젊은 활동가 그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1999년 2월 3월쯤 징계가 예정된 상태에서 조양호, 김영홍, 김지영, 정성훈이 사표를 쓰고 나왔다. 새로운 시민운동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된 거지.

= 젊은 활동가 중심으로 함께하는시민행동이 만들어진 건가.

당시에는 정파적인 공격의 배후로 하승창(문재인 정부 초대 사회혁신수석비서관)이 지목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승창도 시민행동에 합류했다. 경제정의연구소(경실련 산하) 임원들, 이필상 교수나 상근자 몇몇이 경실련에 버티고 있다가 나중에 합류했고, 예산감시위원회도 추후에 시민행동에 합류했다.

= 인적 뿌리는 경실련인 셈이네.

‘환경정의’나 ‘우리민족서로돕기’도 90년대 중후반 경실련에서 분화된 단체다. 그래서 아직도 경실련에서 활동하는 선배 활동가 중에는 우리를 배신자로 보는 분도 있고, 우리를 집나간 동생(?) 처럼 심정적으로 애처롭게(?) 보는 분도 있고 그렇다. (웃음)

= 한 집안이었구만.

창립 당시에는 모두 경실련 상근자 출신이다.

= 애증의 관계였네. 지금은 사이가 어떤가.

창립 초기는 애증 관계였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다.

= 시민행동의 창립이 의미하는 시대정신이랄까, 당대의 역사적 흐름은 무엇으로 보나.

아다시피 1999년 김대중 정부(1998년~2003년) 초기엔 많은 시민단체가 생겼다. 그 전에는 경실련와 같은 임의단체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이 만들어졌고, 그 속내용은 시민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전에는 법인, 사단법인, 재단법인만 제도권에 존재했다. 그런데 법인은 허가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던 차에 비영리민단단체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변화한 거다.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 단체를 비롯해 여성환경연대, 환경정의, 문화연대, 지구촌동포연대 등등이 만들어졌다.

1999년은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의 빅뱅
대한민국 시민단체의 빅뱅이 있었던 1999년

= 그래서 99년 당시를 다시 회고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뭐였나.

우리는 경실련을 깨고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민운동을 하자, 경실련의 한계를 넘어서 보자는 의욕이 강했다. 그런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시민 있는 시민운동을 하자”였다.

= 시민 있는 시민운동?

1999년 7월 쯤 창립 즈음에 두루넷과 생방송 토론회를 했다. 선배들 주장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생방송 토론회였다고 한다. (= 토론 주제는?) IMF와 관련한 공적 자금 문제였다고 하더라.

=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한 짓도 많이 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이슈만 생기면.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만 기념하는 행사들도 있다.

= 이상한 짓?

1999년 당시 당시 닉스(NIX)라는 청바지 업체가 3억을 걸고 인터넷 주소를 공모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협력업체와 미리 짜고 수상자를 결정했다는 의혹이 일었다(참조: 위키백과 – ‘안티’). 소비자들이 항의했는데, 우리는 안티닉스 사이트(ihatefree.com)를 만들어서 그 활동을 도왔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최초의 안티 사이트로, 일종의 온라인 소비자 운동을 한 셈이다. (=안티닉스 사이트는 혹시 남아 있나?) 아직도 남아 있다. (=재밌네.)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초기에는 그렇게 이것저것 참여했던 것 같다.

1999년 당시 청바지업체 닉스의 '짜고치는' 이벤트 사기를 비판하는 기업 상대 최초의 기업 상대 안티 사이트 '안티 닉스' http://www.ihateifree.com
기업을 상대로 한 최초의 대중적 안티 사이트 ‘안티 닉스’. 1999년 당시 청바지업체 닉스는 이벤트를 빙자해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소비자를 기만했다. 이에 네티즌과 시민행동은 안티 닉스 사이트를 중심으로 온라인 소비자운동을 벌였다. 결과는? 닉스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이벤트 상금 3억 원의 사회 환원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divide style=”2″]

 

좋았던 시절, 밑빠진 독의 추억

 

= 박처장은 언제 합류했나.

2001년 7월 인턴으로 처음 참여했다. 당시는 모두 월급이 5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 초기 어떻게 조직화가 진행됐나.

사업 활동비를 통해 다른 시민단체와 비슷한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예산감시 시민행동이 결합했고, 이에 따른 전문가 집단이 결합했다. 좋은 기업 만들기 시민행동도 생겼다. 특히 인터넷 관련해서 캠페인 정보화 사회에 관심을 가지자고 해서 정보인권팀(당시에는 정보정책팀)을 만들었다.

= 당시 재원은?

참여한 전문가들이 직접 후원하는 방식이었다. (=어떻게?) 재정위원을 따로 두지 않고, 직접 활동하는 전문가 그룹이 직접 돈을 내고, 자신을 후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돈, ‘대’기업 돈을 받지는 않았다.

= 중소기업 돈은 받고?

나의 추정인데, 초기에는 중소기업 돈을 받았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중소기업 돈도 받지 않는다.

= 가장 대표적인 사업, 기억에 남는 사업은.

밑빠진 독상.

= 설명하면.

말 그대로 예산낭비가 심했거나 심할 게 뻔한 사업을 선정해서 그 사업을 책임지는 부처나 지차체에게 밑빠진 독을 시상하는 ‘불명예상’. 첫번째 수상자는 하남시 국제환경박람회가 받았다.

위키백과 표제어로도 등재된 '밑빠진 독상' https://ko.wikipedia.org/wiki/%EB%B0%91%EB%B9%A0%EC%A7%84_%EB%8F%85%EC%83%81
위키백과 표제어로도 등재된 ‘밑빠진 독상’

=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정했나. 기준도 까다로울 것 같은데.

그래도 큰 예산낭비 사례라는 게 성격상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라서. 문제되는 사례들 중에서 검토해서 선정했다.

= 후보들을 추리는 것도 일이었을 것 같은데?

예산을 감시하는 단체가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문제가 되는 생기면 우리한테 왔다. 각 지역 단체들이 해당 지역 문제를 우리랑 상의했다. 우리쪽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했고, 선정위원회에서 투표했다. 사실 후보가 많지는 않아서, 매달 한두 건 선정해서 회람해서 논의하고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1달에 한번씩 시상했다.

= 1년에 12번?

매번 선정하진 못했고, 좀 애매한 달은 빼고. 10번 정도? (타임라인 참고)

= 총 몇 회나 시상했나.

2005~2006년까지 총 30여 회 정도 시상했다. 그 이후 한동안은 시상을 안(못)하고 있다가 최근(2017년)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 대표 사업이었는데 다시한다니 반갑다. 그나저나 예산 측면에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낭비’라는 관점에서는 확실히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낭비’는 비리나 그에 준할 정도의 주먹구구식 집행을 의미한다. 그런 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좀 더 정교한 예산낭비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산 낭비는 '그때'보다 많이 줄었다.
예산 낭비는 ‘그때’보다 많이 줄었다.하지만…

= 정교한 예산낭비?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일정액 이상의 예산을 쓰는 사업은 사전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의 사업을 여러 개로 쪼개서 사전 타당성 조사를 회피하면 감시의 눈길이 미치기가 어려워진다. 혹은 사실상 건설 예산인데 문화예술 예산이나 복지예산에 끼워넣어 효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피하기도 한다.

= 예산낭비의 양산도 과거와는 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낭비의 장본인이었다면, 요즘은 정부 돈을 받은 민간 영역에서 예산낭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 예를 들면.

요양병원이나 유치원.

= 요양병원이나 유치원의 예산 낭비는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해당 영역에는 지원이 필요하긴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원을 끊을 수는 없고, 대신 감독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전산시스템 의무화 등의 방법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지만, 그런 체계와 절차를 지키기 않을 때는 그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 최근(이 인터뷰는 6월 초에 진행) 연합뉴스 연간 300억 보조금 문제가 국민청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연합뉴스 보조금에 관해선 비판적이다. 어떻게 보나. 

환경 변화가 큰 것 같다. 예전에는 통신사가 신문방송에서 특정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SNS 시대, 포털 중심 시스템에서는 어디가 통신사인지 그 의미가 뭔지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문제는 불공정한 경쟁이다. 통신사를 자임하는 언론사들도 생겼다. KBS도 그렇다. 왜 KBS만 수신료를 받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연 300억 원이 넘는 연합뉴스의 재정보조금 폐지를 청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9401
연 300억 원이 넘는 연합뉴스의 재정보조금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 그래서, 연합뉴스 재정보조금은 예산낭비라고 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돈이 안 되고, 철도로 치면 돈 안 되는 시골 노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아무도 관심 없는 그런 뉴스를 생산하는 역할을 일정하게 연합뉴스가 하고, 연합뉴스 외에는 그런 ‘시골 노선 같은 뉴스’를 생산하는 곳은 딱히 없는 것 같다.

= ‘시골 노선 같은 뉴스’를 생산하는 대가로 봐도 300억 원은 너무 커보이는데. 그리고 그 외의 공적 활동이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매상은 물론이고 소매상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까. 

그 돈을 연합뉴스에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시골노선 같은 뉴스’도 꼭 우리 사회에 필요한 뉴스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정부에서 지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연합뉴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divide style=”2″]

 

운동의 위기 

 

= 시민행동의 활동이 최근 5~6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느껴진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공식적으로 가장 큰 위기는 2014년 재정난이다. 당시 상근 활동가 수가 12~13명이었다. 창립 이후 상근 활동가 15명 안팎을 유지했는데, 몇 번 회의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퇴직하면서 실질적인 임금 받은 활동가는 3명으로 줄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좋은예산센터, 좋은기업센터 각각 명의 상근 활동가만 남겼다. 나머지 몇몇은 비상근, 실제로는 무보수로 반상근 형태로 참여하는 형태가 됐다.

= 지금은?

그 뒤로 계속 ‘삽질’이다(웃음). 2012년 이후 2019년 첫 채용이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다!) 비상근이었던 활동가를 상근으로 돌리고, 반상근 활동가도 한 명 더 충원했다. 실질적으로는 현재 활동가는 5명, 행정업무에 참여하는 경우까지 합치면 9명이 소속돼 있다.

= ‘위기’라고 표현한 당시를 회상하면?

줄인 인원에 맞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하는 방법도 바꿔야 하는데, 안 좋은 표현이지만, 팔이 잘렸는데, 그 팔이 있는 것처럼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말부터 예산을 중심으로 인원을 재구성했다. 그래서 현재는 정보인권이나 기업 감시쪽은 ‘면피’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 처장으로서 고민이 깊었을 것 같은데.

올해까지 처장을 맡고 있는데, 원래는 2017년에 처장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20주년까지는 ‘니가 해라’ 그래서 맡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초기의 생동감 있는 그런 보람이나 재미는 아니고, 조직을 위해 뭔가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강한 편이다. (웃음)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이랄까.

= 깊이 공감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젠가.

2015년~2016년 가장 마음이 힘들었다. 줄이긴 줄였는데,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계획도 세웠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시기였다. 조직이 줄었음에도 일은 예전과 같이 진행해서 과부하를 넘어서 중지되는 수준이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포기할 건 포기하고, 아무튼 규모가 커지면 자기 중심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다른 단체와 연대하면서 하려고 한다.

= 활동가들은 어떤가.

요즘은 좀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일하는 방식도 현상황에 맞게 적응한 것 같고, 재정적으로도 안정이 된 것 같고.

Elisabeth Audrey, CC BY ND https://flic.kr/p/5d3b7b
Elisabeth Audrey, CC BY ND

[divide style=”2″]

 

시대의 변화, 운동의 변화

 

= 시민행동의 위기는 시민행동에만 속한 위기였다고 보나, 아니면 시대적인 흐름의 일부로 판단하나. 

시대적인 흐름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 시대적인 흐름의 측면에선?

전통적인 형태의 시민단체, 특히 권력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축소했다. 특히 MB 정권 들어서면서 그 전까지는 ‘입으로’(성명서) 시민활동을 해왔는데, 그렇게 하면 그때까지는 정부가 그런 시민단체의 성명에 대해 싫다, 좋다, 하겠다, 못하겠다 등등의 반응을 내놨다. 그런데 MB 정부부터는 아예 무대응이다. 그에 따라 말로 하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그런 상황에서 경실련도 많이 위축되고, 참여연대도 로비형 단체로 바뀐 것 같다.

= 로비형?

큰 싸움 한쪽에는 민주노총이 있고, 또 한쪽에는 참여연대가 있어서 큰 틀을 정하는 경우가 잦다. 민주노총은 물리력을 동원하고, 참여연대는 국회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그런 역할을 ‘공익로비’라고 부른다. 참여연대는 자기 사업 위주에서 연대체 사업 위주로 변한 것 같다.

참여연대는 연대체 사업 중심의 '로비형'으로 변화했다.
참여연대는 연대체 사업 중심의 ‘로비형’ 시민단체로 변화했다.

= 그런 흐름은 ‘이명박근혜’ 정부가 종식된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다고 보나.

일부는 유지되고, 일부는 변화하는 것 같다.  현 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많이 하고, 시민단체에 반응도 많이 한다. 정부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거버넌스 체계를 늘려가고 있는 것 같다.

= 바람직한 변화네. 아쉬움은 없나.

다만, 그 전에는 아예 안 듣거나 단순히 들러리 세우려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오히려 정부에서 별 고민없이 나와 ‘너네 아이디어 좀 내놔봐’라는 식이 많다. 충실히 수용해주면 괜찮은데, 힘들이지 않고 외관상 있어 보이는 것들만 챙겨가고, 큰 노력을 요구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 시민도 변했다.

미디어 변화가 특히 중요한 변수인 것 같다. 시민들 스스로 훨씬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늘고 있다. 기자가 ‘기레기’ 소리 듣고, 평론가가 ‘덕후들’에게 밀리고, 그런 현상이 시민단체에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아예 시민단체는 이제 ‘관심권 밖’인 것 같다는 거다. (웃음)

가장 큰 문제는....'무.관.심.'
가장 큰 문제는….’무.관.심.’

= 그럼에도 시민단체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각자 다르겠지만,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시민단체가 필요하다. 더불어 시민이 직접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필요하다. 직접 하다가 부족한 한계를 보충하는 거, 그런 측면에서는 여전히 시민단체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시민단체의 목표는 시민단체가 없어지는 것’

옛날에 저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냥 늘 작든 크든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시민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찾을 공간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divide style=”2″]

 

시민행동의 오늘:
‘참여예산’ 

= 2019년 올해 주력 사업은.

공식적으로는 예산감시. 작년에도 그랬는데 지난 2~3년 동안 참여예산에 주력하고 있다.

= 참여예산?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것.

= 예산 ‘편성’에만? 집행은 아니고?

예전에는 예산 편성 과정으로 국한되어 있었는데, 2018년에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집행과 결산까지 예산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 초기이다보니 많은 곳에서는 편성에만 국한해서 도입했고, 그것도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게 중요한데, 단순히 아이디어 공모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왔다.

= 예를 들면.

불광천의 산책로 화장실. 최근에 중랑구, 동대문구 사이에 중랑천, 그 중간중간 다리가 있는데, 중간에 징검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 등.

참여예산? 예를 들면, "징검다리 만들어주세요!"
참여예산? 예를 들면, “징검다리 만들어주세요!”와 같은 아이디어 제안에서부터 예산 편성과 집행까지.

= 생활과 친한 영역인 것 같다.

공무원이 생각하는 예산의 우선순위와 시민이 생각하는 예산의 우선 순위가 다를 때가 많다. 상권 이용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공무원들이 하는 방식으로 예산 책정을 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느낀 불편함이나 바람이 직접 반영되는 점에서 특징이다.

= 시민행동이 참여예산에서 하는 역할은 뭔가. 

참여하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활동가들을 연결시키는 일들을 한다.

= 우리나라 참여예산 제도는 잘 운용되고 있다고 보나.

아직은 ‘아이디어 모으는 수준’에 불과하다.

= 그나저나 참여예산은 어떻게 시작된 제돈가.

브라질 ‘뽀르뚜알레그리’(도시 이름)가 참여예산의 시초다. 전임 시장이 예산을 다 써버려서 새 시장(브라질 노동자당; PT, ‘뻬떼당’ 소속)은 자신의 공약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어떻게든 남은 돈을 잘 쓰긴 해야 하니까 시민들에게 우선 순위를 맡기자고 한 거다.

시민들은 전기, 수도, 가스 등 기본 생활에 관한 요구가 많았다. 반상회 같은 과정을 거치고, 또 각 지역 대표자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적은 예산을 효과적으로 민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시작했는데, 그걸 전 세계가 따르는 제도가 된 거다.

참여예산제의 시조 역할을 한 브라질의 도시, '뽀르뚜알레그리' (구글 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참여예산이 시작된 브라질의 도시, ‘뽀르뚜알레그리’ (출처: 구글 지도)

= 우리나라에선?

처음에는 광주에서 시범적으로 진행됐고, 울산 동구 등에서도 시범적으로 진행됐다. 주로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에 있다. 그러다가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참여예산 편성을 보장하면서 시민들이 결정하게 된 거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아이디어 한번 내봐’라는 ‘공모전’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있었다.

= 그래서 개선은 있었나.

2016년 서울시 참여예산 제도개선을 통해서 민관협의회(시민+민간전문가+사업부서 공무원)를 통해 제안사업에 대한 숙의가 강화되었다. 최근 10~15회 정도 민관협의회에서 숙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함께 숙의를 진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다고 본다. 그 인식과 충분한 숙의를 통한 성과를 위해선 여전히 많은 비용과 시간 투자가 이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서울시의 참여예산 규모는 얼마나 되나.

서울시 예산이 40조 원 정도인데, 2019년 기준으로 주민참여예산이 720억 원, 숙의 예산은 1300억 원이다. 향후 1조 원까지 확대할 거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참여예산 https://yesan.seoul.go.kr/intro/index.do
서울특별시 참여예산

= 참여예산 ‘집행’ 단계의 모습은 어떤가.

공무원의 의지와 관련되는데, 제안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는 정도다. 어느 지역에서 보도블록을 깐다고 치자. 그런데 공무원이 주민들에게 물어보니까 원하는 게 다 다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느 지역은 오르막이라서 엠보싱이 있는 거 깔아달라고 하고, 어떤 지역은 젊은 여성이 많이 사는 곳이라서 민무늬에 밋밋한 걸 좋아한다. (=왜?) 하이힐이 안 끼니까.

밋밋한 보도블록을 요구하는 이유? 하이힐이 끼니까. (출처: KBS) http://mn.kbs.co.kr/news/view.do?ncd=2645250
밋밋한 보도블록을 요구하는 이유? 하이힐이 끼니까. (출처: KBS)

= 더 중요한 건?

더 중요한 게 결산을 검증하는 과정, 평가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 전체 예산에 관해서도 교육하나.

‘온예산’은 예산 전체에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인데, 아무래도 너무 복잡하고, 예산 규모도 크니까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으로서 이런 과정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다.

= 아직은 초기 계몽, 교육 단계로 보인다.

아이디어 모음은 많이들 한다. 광주 같은 곳에서는 2003년 참여예산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지금은 법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2011년에 의무화되면서 어떻게든 지자체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 어떤 시민들이 참여하는 건가. 시민단체에서 체험이 있는 분들? 아니면 분야의 전문가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건 아니고, 정말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

= 통장 반장 이런 분들?

통장, 반장, 지역 터줏대감,  공무원과 친하게 지내는 주민들. 기본적으로는 회의를 해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낮에 회의하는 지역에서는 회의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니 직장인은 아무래도 배제되고, 전업주부나 은퇴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하게 된다.

앤토스를 사용하려면 큰 돈을 내야 하야 한다.
최근 2~3년 동안 시민행동의 주력사업은 ‘참여예산’이다.

= 제도가 일부 의무화했다고 했는데.

2011년에 의무화했지만, 의무화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1년에 지역유지 10명이 한번만 모여서 해도 주민참여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18년부터는 행자부가 실질적으로 참여를 검증하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 공무원들이 힘들어졌겠네. 

교육을 얼마 이상하고, 회의를 얼마 이상하고…. 그런 항목들이 평가 기준으로 새롭게 생겼다. 그래서 엄청나게 수요가 늘었다. 그래서 가끔씩 공무원도 교육하고, 시민들 교육하러 우리 활동가들이 전국을 돌아다닌다. (웃음)

= 활동가 한 명이 얼마나 교육을 가나.

30-40명을 교육하는데, 작년에는 2,500-3,000명 정도. 그러니까 1년에 80번 정도. 올해는 벌써 3천명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지금은 지자체 수요에 대응하는 차원인데, 좀 더 운동적인 관점에서 지역 네트워크도 만들고, 교육도 체계화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마을만들기나 중간지원조직(NPO센터, 사회적 경제센터 등) 민주당 지자체는 박원순식 방식을 참고한다.

= 박원순 방식?

사회운동으로 해왔던 걸 센터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센터를 운영해야 하니까 사회운동하던 이들이 요즘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돼서 센터를 운영하는 거다. 그러다보니까 진짜 주민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없어진다. 안정적으로 월급받고 예산나오는 사업을 하는 것과 주민 상대 회의하면 2만 원 3만 원 주는 것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기존 활동가들은 그런 활동을 하지 않게 되고, 참여예산 활동가가 점점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주민 속에서 다시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된거다.

= 참여예산 교육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

참여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전국 260개의 지자체에서 지자체당 0.8명에 불과하다. 즉 지자체에서 직접 교육을 수행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참여예산 교육을 사업으로 발주했다. 문제는 지자체 공무원을 교육해야 하는 것도 그 지역 자체에서 자생력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교육 요청이 와도 그동안은 안 받았다. 그런데 지역은 역량이 없고, 자격이 부족한 곳에서 계속 이상한(?) 교육은 하고 있고…. 그래서 차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자고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 예산 활동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겠네.

기회이기도 하고 책임이 커진 것이기도 하다.

 

[divide style=”2″]

 

하고 싶은 것 남기고 싶은 것

 

= 시민행동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뭔가. 

2016년과 2017년은 생존을 위한 시기였다. 그 시기가 지나니 이제 비전이랄까 방향을 고민한다. 20주년을 맞은 거창한 비전은 아니고, 3~4년 정도 로드맵을 만들자는 거. 비전이라기보다는 중단기 계획이랄까, 방향성을 논의 중이다.

= 남기고 싶은 건? 

개인적으로 유산보다는 마지막 기여, 욕심이랄까. 시범사업으로 ‘디지털 DNA’랄까, 그런 마인드를 체험하고 형성해갈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목표는 좀 막연한데, 작은 거라고 온라인에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 예를 들면, 밑빠진 독상을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한다거나.

함께하는 시민행동 20년 (제공: 시민행동)
함께하는 시민행동 20년 (제공: 시민행동)

= 2001년으로 다시 돌아가면 시민운동을 하겠나.

99%는 하겠지.

= 나머지 1%는.

공부.

= 어떤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사회과학. 학자로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으니까. 예전부터 공부도 좋았지만, 운동이 더 좋았던 것 같다.

= 전범이랄까. 

제레미 리프킨.

= 리프킨의 어떤 점.

예지력이랄까.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왔고, 스스로 자신을 사회운동가로 말하는 리프킨의 모습이 멋있다.

= 리프킨의 책 중에서 추천한다면.

[소유의 종말] 원제목은 ‘접속의 시대’. 디지털 시대 사람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사회의 구성 원리와 소비 방식은 어떻게 변화할지를 탐구한 책이다. 그리고 리프킨은 이제 ‘소유가 아니라 접속으로’라고 말한다.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저 | 민음사 | 2001년 05월 25일 | 원제 : The Age of Access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저 | 민음사 | 2001년 05월 25일 | 원제 : The Age of Access

=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대북 정책은 잘하는 것 같다. 딱히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심상정이라도 마찬가지였을텐데, 개혁적 진보 쪽에서 정부가 수립된다면, 다음 정부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관료제도에 대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계기라도?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하고, 직접적으로는 규제개혁을 외쳤는데, 규제개혁이라도 하든가. 물론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선악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개인정보도 선이고, 데이터 산업을 발전하는 것도 선이다. 최저임금도 선이고, 자영업자 안정도 선이다. 그러니 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관료는 그걸 조율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

= 이해관계자를 조율할 권한이 부족하다? 능력이 부족하다? 둘 모두다? 

권한이나 능력을 논하기 전에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 빅딜(대타협)이 필요한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야지, 조금씩 고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좀 더 미시적으로, 실무적으로 보면.

그런 차원에서는 순환 보직도 큰 문제로 생각한다. 국회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조정체계라서 뭔가 사회적인 이슈를 조정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는 것 같고, 관료 체제는 정부가 원하는 계획을 하기에는 그 조직 시스템에 내재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 그렇다면 대안은? 거대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그런 것도 필요하겠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아니라 개혁을 완수할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 분야에서 헌신한 사람들이 최고 실무자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 문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건.

문재인이 정말 못한 건 적폐청산이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출처: @knuepck) https://twitter.com/knuepck/status/816546973452935168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출처: @knuepck)

= 적폐청산을 너무 잘해서 탈 아니고?

적폐청산은 사람 자르고, 감옥 보내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실체를 투명하게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 투명성 확보는 부족하다.

=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그 사람들(적폐세력)을 사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실체를 밝히는 것이 그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세월호에 이토록 무능하게 대응했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상세하게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과 절차에 관해 우리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어떻게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는지 투명하게 잘 알지 못한다. 그게 적폐세력을 감옥에 잡아 넣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https://www.facebook.com/leepary
우리는 여전히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어떻게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는지 투명하게 잘 알지 못한다. 그게 적폐세력을 감옥에 잡아 넣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 끝으로 한마디. 

20주년을 맞아 2020년대 시민사회운동을 이끌 젊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두 달 간 논의를 통해 시민행동의 새로운 비전을 한 줄로 정립했다. “We make the activists” 단체 활동가가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이 활동가로 나설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 길에 함께 해주십사 초대드리고 싶다.

 

[divide style=”2″]

[box type=”note”]

함께하는 시민행동 함께하기 

[/box]

관련 글